교회언론회, ‘발전적 관계 지속되길’ 논평
美, 북한 핵공격 시 압도적 핵우산
동맹, 안보와 국방 지탱 지대한 공
양국 국민 간 신뢰와 공감대 유지
한국교회언론회(대표 이억주 목사)에서 한미 동맹 70주년을 맞아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을 국빈 방문한 것과 관련, ‘한미 동맹은 한국의 안전과 평화를 지켜주었다: 더 발전적인 한미 관계가 지속되기를 바란다’는 제목의 논평을 발표했다.
교회언론회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단순히 군사동맹뿐 아니라 교육·복지·문화 등에도 적용돼,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수많은 원조와 도움을 받아왔다”며 “1978년 11월 7일 ‘한미연합군사령부(CFC)’가 창설돼, 한미 양국의 군사력을 통합 운영할 수 있는 연합방위체제가 구축됐다”고 소개했다.
이들은 “한미 동맹은 70년간 모범적 조약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6.25 이후에도 우리나라를 적화(赤化)하려는 북한의 침략 야욕을 꺾고, 안정적으로 우리나라의 경제적·정치적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며 “한국과 미국은 이미 1882년 ‘한미수호통상조약’을 맺은 바 있다. 그런데 6.25 전쟁을 통해 한국의 방위(防衛)를 위해 새로운 차원의 동맹 조약을 맺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언론회는 “현재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을 국민 방문 중인데, 이는 한국 대통령으로서 12년 만의 일이다. 양국 대통령은 워싱턴 D.C.에 있는 한국전 참전비를 찾아 헌화했다. 이는 28년 만에 있는 일”이라며 “양국 정상은 북한의 핵 위협이 날로 더해지는 가운데, 북한이 한국을 핵으로 공격할 시 미국의 압도적인 핵무기로 대응할 것이란 선언을 채택했다”고 전했다.
또 “우리나라가 전쟁 억제력을 갖는 핵 개발과 핵 보유를 의미하는 ‘핵 주권’을 갖지 못하지만, 북한이 무모하게 핵을 사용할 시 북한의 멸망을 가져올 암시를 주므로, 우리나라를 북한의 핵 위협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분명한 입장을 밝힌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와 함께 “지금까지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우리나라의 안보와 국방을 지탱하는데 지대한 공을 세웠음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양국 간 동맹이 외부 침략요인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지속되기를 바라고, 이는 양국 국민 간에도 신뢰와 공감대가 유지돼 자유와 민주, 인권과 평화를 수호하는 공통분모가 되고 우리에게는 확실한 안전망이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논평 전문.
한미 동맹은 한국의 안전과 평화를 지켜주었다
더 발전적인 한미 관계가 지속되기를 바란다
올해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맺은지 70주년이 된다. 이 조약은 1953년 8월 8일 가조약이 되고, 그해 10월 1일 정식으로 조인되었으며, 1954년 11월 18일부터 공식적으로 발효되기 시작하였다.
이 조약이 맺어진 것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의 김일성 공산 집단이 6.25 남침 전쟁을 일으키고, 이에 유엔의 결의 하에 미국을 비롯한 전투 참전 16개국과 의료지원 등을 포함한 63개국의 도움으로 남한이 공산화되는 것을 물리친 후에 체결되었다.
사실 미국은 자유와 평화를 위하여 6.25전쟁에 참전하여 17만 2천 여명의 희생을 치루었다(전사자 5만 4,246명, 실종자 8,177명, 포로 7,140명, 부상자 10만 3,284명) 이는 국군 희생자 65만 4,000명의 27%에 해당하는 것으로, 미국군이 한국 전쟁에 참전하여 엄청난 희생을 치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뿐만 아니라, 이 전쟁에 미국 장성급 이상의 아들들 142명이 참전하여 35명의 전사자를 내기도 하였다. 여기에는 대통령의 아들도 있었고, 미8군 사령관의 아들도 포함된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한국과는 이역만리 멀리 떨어진 나라가 무슨 이득이 있다고 상호방위조약을 맺었는가? 이것은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승만 대통령의 외교적인 업적에 따른 것이다.
6.25 전쟁이 발발하고 1951년 7월부터 휴전회담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1952년 5월에 어느 정도 휴전에 대한 논의들이 있었으나 포로송환 문제가 남았다. 그러는 가운데 1953년 4월 11일 상호포로교환협정이 성립되어 각서가 교환되었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휴전을 반대하는 입장이었는데, 그해 6월 18일 북한으로의 귀환을 거부하는 반공포로 2만 6천 명을 과감하게 석방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에 깜짝 놀란 미국 측에서 한미 간 상호방위조약을 맺을 것과 경제 원조를 약속함으로 한미 간에 이루어지기 극히 어려운 상호방위조약이 맺어지는 기적과 같은 사건이 있게 된 것이다.
이 조약에는 한미 양국이 안보 문제에 관해 긴밀히 협의할 것(제2조) 당사국 일방이 침략을 당할 경우 공동 대처한다는 것(제3조) 미군의 한국 주둔을 인정한다는 것(제4조) 이 조약이 1년 전 통고가 없는 한 무기한 유효함이 지속된다는 것(제6조)을 내용으로 담고 있다. 그것이 70년이 지난 현재까지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 지켜져 오고 있다. 세계적으로 이렇게 오랫동안 성실하게 지켜져 오는 조약이 없을 정도이다.
이 조약으로 인하여 미국은 한국군의 군대 양성을 위하여 원조를 하기로 하여, 1960년대까지 매년 3억 달러에 달하는 원조를 하였다. 이는 한국이 사용하는 국방비의 8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고 한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단순히 군사적인 동맹뿐 아니라, 교육·복지·문화 등에도 적용되어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수많은 원조와 도움을 받아왔다. 이후에는 1978년 11월 7일 ‘한미연합군사령부(CFC)’가 창설되어, 한미 양국의 군사력을 통합 운영할 수 있는 연합방위체제가 구축되었다.
한미 동맹은 70년간 모범적인 조약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6.25 이후에도 우리나라를 적화(赤化)하려는 북한의 침략 야욕을 꺾고, 안정적으로 우리나라의 경제적·정치적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고 본다.
한국과 미국은 이미 1882년 ‘한미수호통상조약’을 맺은 바 있었다. 그런데 6.25 전쟁을 통하여 한국의 방위(防衛)를 위하여 새로운 차원의 동맹 조약을 맺었던 것이다.
현재 윤석열 대통령이 방미 중에 있는데, 이는 한국 대통령으로서 12년 만의 일이며, 양국 대통령은 워싱턴 D.C.에 있는 한국전 참전비를 찾아 헌화했다. 이는 28년 만에 있는 일이다.
양국 정상은 북한의 핵 위협이 날로 더해지는 가운데, 북한이 한국을 핵으로 공격할 시 미국의 압도적인 핵무기로 대응할 것이란 선언을 채택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전쟁 억제력을 갖는 핵 개발과 핵 보유를 의미하는 ‘핵 주권’을 갖지는 못하지만, 북한이 무모하게 핵 사용을 할 시에는 북한의 멸망을 가져올 암시를 주므로, 우리나라를 북한의 핵 위협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분명한 입장을 밝힌 것이다.
지금까지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우리나라 안보와 국방을 지탱하는데 지대한 공을 세웠음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양국 간 동맹이 외부 침략요인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지속되기를 바라며, 이것은 양국 국민 간에도 신뢰와 공감대가 유지되어 자유와 민주, 인권과 평화를 수호하는 공통분모가 되고 우리에게는 확실한 안전망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