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공생애의 ‘배경’이었던 로마제국, 그리고 열두 사도의 순교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제5차 마스터스 특별강좌 열려

로마제국, 총독 파견해 유대 통치
사도, 하나님에게 보내심 받은 자
열두 지파 대신 신약 교회 설립자

▲최더함 목사가 강연하고 있다.

▲최더함 목사가 강연하고 있다.

제5차 마스터스 특별강좌가 지난 5월 27일 오전 서울 은평구 바로선개혁교회(담임 최더함 목사)에서 개최됐다. 이날 최더함 목사(마스터스세미너리 책임교수)는 ‘기독교와 로마제국’을 주제로 강연했다.

최더함 목사는 로마제국(Imperium Romanum)의 건국부터 에트루리안들로부터의 독립과 성장, 지중해 패권 차지, 삼두정치,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의 로마제국 ‘팍스 로마나’와 쇠퇴, 멸망과 그 이후 현대 이탈리아 역사까지, 그리고 기독교가 출현하고 로마 국교가 되기까지 간략한 역사를 훑고,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제자의 활동을 소개했다.

최 목사는 “고대인들은 천둥·번개 등 자연 현상을 하나의 신호로 여겼지만, 고대 그리스인들은 자연과 사물을 과학적 눈으로 주의깊게 관찰했다. 만물의 이치에 대한 깊은 상고는 과학과 철학을 싹트게 하는 동력이 됐다”며 “물·불·흙·공기, 원자 등으로 만물의 근원을 탐구하던 철학자들의 ‘물질론’에 찬물을 끼얹은 소크라테스(B.C. 470-399)는 영원불멸한 진리만이 참다운 지식이라 가르쳤다. 그의 가르침은 플라톤(B.C. 427-347)과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로 이어져, 그리스 철학의 핵심이 됐다”고 전했다.

그는 “그리스 철학과 정신문화는 그대로 로마에 이식됐다. 이후의 서양은 그리스와 로마 문화가 합쳐져 만들어낸 산물이다. 로마인들은 전 세계를 ‘하나의 세계’로 만들려는 야심을 가졌다. 로마는 알렉산더 대왕의 헬레니즘 세계동포주의를 계승, 전 세계로 제국을 확장하는 정책을 일관되게 준수했다”며 “서로마제국은 주후 476년 정치적으로 멸망했지만, 로마의 정신(Romanism)은 사라지지 않았다. 800년 서로마제국은 이름을 다시 찾았고, 962년 ‘신성로마제국’이 세워져 1806년까지 무려 844년이나 유지됐다”고 말했다.

또 “로마는 정부 구조와 현대화된 법률을 후대에 남겼다. 오늘날 국가원수에게 주어진 군대통솔권은 로마에서 유래한다. 인구조사부터 토지와 종합소득 및 수확품목 파악 등 현대 세금제도도 로마에 기원한다”며 “로마가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은 ‘법’이다. 오늘날 법전의 모델은 1804년 제정된 나폴레옹 법전(Code Napoleon)이나, 그 뿌리는 로마법전이다. 로마는 모든 행위를 법에 기초하는 사회였다. 법에 따라 시민의 재산과 권리를 보호하고 치리했다”고 설명했다.

최 목사는 “로마제국 공식언어인 라틴어도 세계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서양어는 거의 라틴어의 영향을 받았다. 학교를 뜻하는 라틴어 스콜라(Scola)는 에스파냐어로 ‘에스쿠올라’, 프랑스어로 ‘에코’, 독일어로 ‘슐레’, 영어로 ‘스쿨’이 됐다”며 “열두 사도 중 야고보는 디에고, 이아고, 제임스가 됐고, 베드로는 페트로누스, 페드로, 피에트로, 페테르, 피터가 됐으며, 라틴어로 지오반니인 사도 요한은 영어로 존, 독일어로는 요하네스, 러시아에선 이반, 스페인에선 후안으로 불린다”고 했다.

▲강연이 진행되고 있다.

▲강연이 진행되고 있다.

또 “로마제국은 멸망했지만, 기독교는 더욱 세를 확장했다. 그 중심은 로마 교황이었다. 유럽 대다수 국가의 통치자는 교황에게 인준받지 못하면 권좌에 있을 수 없었다. 교황에 의해 로마제국의 후계자로 인정될 때 통치자로 군림할 수 있었다”며 “반면 교황은 세속 권세가들과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며 권세를 이용하다, 위기를 맞으면 관련된 국가의 통치자에게 SOS를 보냈다. 751년에 왕위에 오른 프랑크 왕국의 피핀은 오늘날 바티칸이라 불리는 교황령을 설치하고, 불가침 영역으로 선포했다. 이후 교황은 바티칸 시국 통치자이자 전 세계 가톨릭 교회의 수장으로 군림하고 있다”고 했다.

이후에는 예수가 태어나던 시절의 로마에 대해 소개했다. 이에 대해 “로마인들은 예수가 태어나고 살았던 팔레스타인 지역의 삶을 이미 결정해 뒀다. 주전 64년 폼페이우스 장군이 지휘하는 로마 군대는 그 지역을 통과하면서 마을을 불태우고 노동력을 가진 포로들을 데리고 갔으며 반항자들을 살해했다”며 “폼페이우스는 예루살렘 점령 후, 대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는 지성소를 군홧발로 짓밟았다. 대신 로마 앞잡이인 힐카누스를 대제사장에 임명하고 해마다 조공을 바치도록 했다”고 말했다.

그는 “로마제국은 안보를 위해 우세한 군사력을 앞세워 다른 민족을 정복한 다음 충성 맹세를 받았고, 이에 반항하는 세력에 대해 군대를 보내 완전히 초토화시켰다”며 “복종하지 않고 저항하는 개인은 십자가형을 받게 하거나 단순히 십자가에 매달아 맹금류의 먹이가 되게 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은 끊임없이 로마에 대항했다. 예수님이 탄생하셨던 주전 4년에는 바루스 장군에 의해 세포리스 도시 전체가 불탔고, 모든 주민이 노예로 끌려갔다. 바루스는 엠마오 마을도 초토화시켰다”고 했다.

이와 함께 “로마는 총독을 파견해 유대를 통치했다. 유대 사회 중심인 예루살렘 성전의 기능과 역할을 축소시키고, 대제사장들도 퇴위시키는 등 유대의 로마화를 꾀했다”며 “이두매 출신 헤롯을 지역 분봉왕으로 임명해 유대인들에 정신적 모욕을 줬고, 예루살렘 성전을 웅장한 그리스식으로 완전히 개조했다. 정치적 입지를 구축하기 위해 헤롯은 해마다 많은 조공을 보냈고, 이를 위해 과도한 세금을 징수하고 경제적 수탈을 감행해 점점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졌다”고 이야기했다.

최 목사는 “공생애 전후 2세기 동안 팔레스타인에선 네 차례의 대형 반란이 있었다. 첫 반란은 B.C. 40년 헤롯이 유대 왕으로 왔을 때 유다인·갈릴리인들이 3년 동안 저항했다. 둘째는 B.C. 4년 갈릴리의 유다가 농민들을 이끌고 세포리스의 헤롯 요새를 급습했다”며 “셋째로 A.D. 66년 예루살렘 주민들이 로마의 앞잡이 대제사장들을 공격하고 로마 수비대원들을 살해했다. 이에 67년 로마 군대가 진군하자,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와서 유다인들과 합세해 네 번째 반란을 일으켰다. 로마는 70년 예루살렘 성전을 완전히 파괴하고, 저항자들을 처형했다. 더 이상 반란 시도는 불가능해졌다”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사도

다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사도, 제자들에 대해 차례로 소개했다. 그는 “사도란 구약의 모세나 엘리야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Apostolos)로, 복음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라는 명령을 수행하고, 교회 규범을 결정하고 교회를 치리하며, 죄를 용서해 주는 권세와 성령의 인도함, 음부의 권세로부터 보호를 받도록 보장받았다”며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대신하는 신약 교회의 설립자 및 대표자라 할 수 있다”고 정의했다.

먼저 베드로(Peter)에 대해 “열두 제자 가운데 중심 위치에 있었고, 예수 부활 승천 뒤에도 유지됐다. 그는 초대교회 지도자로서 여러 지방을 두루 다니며 전도했다”며 “가톨릭 전승에서 베드로는 사도행전 기록 이후 로마에 가서 교회를 세워 초대 주교가 됐고, 네로 황제 때인 64년 무렵 바울과 함께 로마에서 순교했다고 전해진다”고 설명했다.

▲거꾸로 십자가에 매달렸다는 베드로의 순교 전승을 표현한 그림. ⓒ크투 DB

▲거꾸로 십자가에 매달렸다는 베드로의 순교 전승을 표현한 그림. ⓒ크투 DB

최더함 목사는 “베드로는 로마에서 순교 후 바티칸 언덕 공동묘지에 이교도와 함께 묻혔다, 발레리아누스(Valerianus) 황제의 기독교 박해 때 사도 바울 유해와 함께 오늘날 성 세바스티아노(San Sebastiano) 성당이 위치한 아드 카타쿰바스(ad catacumbas) 지하묘지에 임시 안치됐다고 전해진다”며 “후에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베드로 무덤이 있던 바티칸 언덕에 성 베드로 대성당을 세우고 성상을 모신 제단 밑에 베드로 유해를 다시 옮겼다고 한다. 그러나 베드로의 로마 활동이나 무덤에 관한 역사적 증거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사도 요한(John)에 대해선 “요한복음·요한서신·요한계시록 저자로 알려져 있다. 상징이 독수리인 이유는 다른 복음서에 예수의 구세 사업만 기술한 반면, 요한복음에는 주로 예수의 신성을 기록했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마르키온의 가현설을 반박하기 위해 예수의 죽음을 자세히 묘사했다는 설도 있는 등, 예수의 인성도 강조했다. 요한복음 사가로서의 저술 활동을 하늘 높이 나는 독수리에 빗댄 것”이라고 서술했다.

야고보(Jacob)는 “44년 그리스도인을 탄압하던 헤로데 아그리파 1세(Herod Agrippa I)에 의해 체포돼 파스카 축일 전날 참수형으로 39세에 순교했다. 야고보의 유해는 처음 예루살렘에 안장됐으나, 이후 행방이 묘연했다. 그러던 중 9세기 즈음 하늘에서 별빛이 내려와 숲속 한 동굴을 비춰 사람들이 가보니 야고보의 무덤이 있었다고 한다”며 “그 후 야고보 유해는 스페인 서북부 갈리시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이장됐고, 당시 국왕 알폰소는 묘지 위에 150년에 걸쳐 웅대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을 건축했다. 대성당 안으로 들어가보면 그의 유골함이 전시되어 있다”고 소개했다.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Andrae)는 “형과 달리 성실하고 온건하며 신중한 성격으로, 러시아에 최초로 복음을 전파했다고 한다. 초대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로, 우크라이나의 수호 성인”이라며 “전승에 의하면 안드레는 그리스 북부 에피루스(Epirus) 등지에서 선교하다 후계자로 스타키스 주교를 임명했다. 70년 경 네로의 박해로 마케도니아 남부 아카이아(오늘날 그리스) 주파트라스 시에서 체포돼, 에게오 총독에게 심문을 받고 X자 형태의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했다”고 했다.

도마(Thomas)는 “가톨릭에서는 도마가 52년 인도 남쪽 끝 케랄라 주에까지 가서 전도하다 순교했다는 전승이 있다”며 “인도 첸나이에는 토마스가 순교했다는 장소이자 그의 무덤이 안장된 성 토마스 대성당이 있는 ‘토마스의 언덕’이 있다. 도마는 이교도 제사장을 격노케 해 인도 코르만델에서 창에 찔려 순교했다고 전해진다”고 했다.

빌립(Philip)은 “‘오병이어’에서 보듯 빌립은 이성적이고 계산이 빠른 반면, 소심하고 소극적인 성품을 가졌다. 예수님 부활을 친히 목격하고,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았다”며 “말년에 소아시아 브루기아에서 사역하다 히에라볼리에서 순교한 것으로 전해진다(Eusebius). 사도행전 6장의 집사 빌립과는 다른 사람”이라고 했다.

▲로마 콜로세움. ⓒunsplash.com

▲로마 콜로세움. ⓒunsplash.com

나다나엘(Nathaniel)은 “대부분 성경 학자들은 나다나엘과 바돌로매가 같은 사람이라고 믿는다”며 “교회 전통에 따르면 나다나엘은 인도 북부 지역에 마태복음의 번역본을 실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아르메니아에서 산 채로 칼에 의해 살가죽이 벗겨지고 그 후 머리가 베어졌다고 한다”고 했다.

알패오의 아들로도 불리는 작은 야고보는 “기도하는 사람으로 유명했는데, 항상 무릎 꿇고 기도를 해 무릎에 굳은 살이 박히고 딱딱해져 마치 낙타 무릎처럼 보였다고 한다”며 “요세푸스에 의하면 가장 예수님을 닮은 제자였다. 전승에 의하면 순교당할 때 돌을 던졌는데도 목숨이 쉽게 끊어지지 않자, 톱을 켜서 죽었다고 한다”고 했다.

시몬(Simon)은 “알패오의 아들로 작은 야고보와 형제 간이라는 것 외에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제자가 되기 전 열심당 일원이었고, 마카베오의 후계자를 자처하며 로마제국으로부터 해방을 부르짖었다”며 “전승에 따르면 이집트에서 설교하다 유다 다대오와 페르시아로 가서 전도했는데, 예수에 대해 설교한 뒤 신상을 파괴하니 그 속에서 악마가 튀어나왔다. 흥분한 이교도들이 그들에게 달려들어 죽였는데, 시몬은 기둥에 거꾸로 매달려 사타구니에서부터 머리까지 톱으로 육신이 두 동강이 나는 형벌을 당했다고 한다”고 했다.

다대오(Jude Thaddaeus)는 “‘유다’가 이름이고 ‘다대오’는 아람어 별명이다. 작은 야고보와 형제 간이며, 신약 성경에는 사도들 이름을 나열할 때만 총 4회 등장한다”며 “성령강림 이후 다대오는 시몬과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에서 복음을 전파했고, 페르시아 제국 지역으로 가서 포교 활동을 벌이다 순교했다. 십자가형에 처해졌다고도 하고, 활에 맞았다고도 한다”고 했다.

마태(Matthew)는 “징세청부업자(세리)로 살다 예수의 부름을 받은 뒤, 일을 그만두고 제자가 됐다. 당시 세리는 창녀와 비슷할 정도로 경멸을 받는 직업이었다”며 “로마 순교록에 따르면, 에티오피아에서 사역하던 중 에티오피아 나다바에서 순교했다”고 했다.

끝으로 가룟 유다를 대신한 맛디아(Matthias)에 대해 “유세비우스는 맛디아가 유대에서 전도하다 돌에 맞아 순교했다고 하고, 도로테우스(Doroteus)는 에티오피아 콜키스에서 전도하다 십자가에 처형됐다고 한다”며 “그에 따르면 맛디아는 히수스 바다의 항구와 파시스 강이 있는 에티오피아 내륙에서 야만인과 식인종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바스토폴리스에서 죽은 후 태양의 신전 가까이 묻혔다고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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