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레 선교칼럼 53] 대구 대현동 모스크, 무엇이 문제인가?
좁은 골목길에 주거 밀집지역
무슬림 몰리면 주민들에 피해
모스크 생기면 이슬람 마을 돼
대구 대현동에서는 3년째 이슬람 모스크 건립 문제로 유학생들과 지역 주민들이 대치하고 있다. 법적 문제도 행정 문제도 아닌 문화 문제로 대치 중이라, 어떻게 하면 해결될지 누구도 손대지 못하고 있다. 이 문제의 앞날을 생각하며, 실마리를 찾아보자.
문제의 시작은 파키스탄 무슬림 유학생이 경북대에 컴퓨터공학을 배우러 유학을 왔다가, 자신의 편의를 위해 학교에서 가까운 곳에 빌라를 구입해 숙소와 기도처로 사용한 것부터다. 그런데 이 숙소를 개인 기도처뿐 아니라 더 많은 무슬림들의 신앙을 위해 모스크로 변경하려 대구 북구청에 건축허가를 신청했고, 건축 허가가 나와 모스크를 건축하기 시작한 것이다.
모스크 건축 현장을 본 지역 주민들은 깜짝 놀랐다. 그렇지 않아도 주거밀집 지역에 좁은 골목길인데, 개인 빌라가 이슬람 기도처가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30일의 라마단 기간이나 일주일 동안의 이슬람 축제 기간이 되면, 좁은 골목길을 다 차지하면서 축제를 벌였다. 이로 인해 이웃집 주민들이 많은 피해를 입고 있었다. 게다가 해뜨기 전, 오전, 정오, 해질 때, 잠자기 전 하루 5번씩 기도처에서 매일 모여 집회를 하면, 기도처에서 나오는 빛과 소음 때문에 이웃 주민들은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래서 지역 주민들은 모스크 건립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하고, ‘국민 잔치’라는 이름으로 이슬람이 금기시하는 돼지고기 삼겹살 파티를 하기도 하고, 돼지고기 통바베큐를 구워서 다같이 먹으며 “모스크는 나가라”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그러자 모스크 측은 공사방해죄로 소송을 제기하고, 10차례 넘는 고발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웃 주민들이 이슬람의 종교생활과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역 주민들의 입장은 다르다. 자기들이 이곳에 먼저 들어와 살았고 나중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다중시설인 모스크를 지으려면 먼저 이웃 주민들의 의견을 물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의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아무도 모르게 짓기부터 시작해 놓고, 왜 이슬람 문화를 이해해 주지 않고 양해해 주지도 않냐고 주장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과정을 거치면서 해결에 아무런 진전 없이 공사를 강행하기도 했다.
그러다 지난 5월 27일, 홍준표 대구시장이 SNS를 통해 “서로 포용하면 안 되겠느냐, 이슬람도 기독교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같은 뿌리에서 나왔으니 서로 잘 지내면 좋겠다”고 쓴 것이다. 그러나 이는 문제를 더 크게 만들고 말았다.
만약 주민들이 이슬람을 포용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유럽의 경우를 살펴보면서 앞날의 행동을 결정해 보자.
첫째, 기독교와 이슬람의 뿌리는 서로 다르다.
성경 창세기 11장에 나오는 아브라함은 아들이 이스마엘과 이삭이고 아버지는 데라이다. 그러나 꾸란 6:74에 나오는 아브라함은 아들이 이스마엘이고 아버지가 아자르이다. 아브라함의 아버지가 다른 동명이인이다. 한 마디로 조상이 다른 동명이인이다. 뿌리가 다르다는 것이다.
그럼 왜 일부에서 기독교와 이슬람의 뿌리가 같다고 알고 있을까? 그것은 이슬람이 자기들의 종교적 정통성을 찾기 위해, 일부러 성경의 아브라함·이스마엘이 꾸란의 아브라함·이스마엘과 같은 사람이라고 속여 이슬람을 전파한 것이다.
이러한 이슬람의 속임수 말에 이제는 속지 말아야 한다. 이슬람은 7세기 요르단 페트라 지역에서 살던 아랍계 나바티안 민족이 섬기던 종교가 8세기 초 사우디아라비아 메카로 이전해 지금까지 유지해온 종교이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 이름이 꾸란에도 나오지만, 서로 다른 이야기를 말하고 있으니 완전히 서로 다른 종교인 것이다.
둘째로 모스크가 우리 마을에 들어서면, 모스크 주변 지역은 서서히 이슬람 마을로 변해간다.
영국의 경우 마을에 모스크가 세워지자, 무슬림들이 하루 5번 기도하는 율법을 지키기 위해 편의상 모스크 주변으로 이사를 왔다. 모스크 주변 슈퍼마켓은 할랄 음식을 팔기 시작했고, 히잡을 쓰고 다니는 여성들이 늘어났다.
이러한 환경에서 영국인들은 자신들이 중동에 사는지 영국에 사는지 혼란스럽고, 자녀교육에도 좋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점차 마을을 떠났다. 그 빈자리를 채운 사람들은 무슬림들이었다. 그렇게 서서히 동네는 무슬림 마을로 바뀌었다.
나중에는 마을을 지키는 경찰관도 백인이 아니라 무슬림 경찰관으로 바꿔달라고 항의하고, 가정법원도 영국법이 아닌 꾸란에 의해 판결되는 이슬람 가정법원을 세워달라고 주장해 영국 전역에 샤리아 법정이 85곳 생겼고, 샤리아 폴리스도 생겼다. 샤리아 파출소는 프랑스에도 720곳, 스웨덴에도 55곳 있다.
프랑스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이렇게 계속 가다간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 전체가 이슬람화될 것이라는 위협을 느꼈다. 프랑스에서는 둘 또는 여러 문화가 함께 사는 공존 정책이 아니라 이제 프랑스 땅에서는 하나의 법과 문화로 이끌어가는 동화 정책으로 전략을 바꿨다. 지금 프랑스 거리에서는 히잡을 쓰고 다니면 불법으로 간주돼, 누구든 현장에서 25만 원 상당의 벌금을 내도록 법을 제정했다.
유럽이 40-50년 동안 다문화정책을 시도한 끝에 배우고 깨달은 것은, 이슬람과 함께 다문화로 사는 공존 정책은 실패할 뿐이고, 강력한 동화 정책만이 살 길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나라에서는 처음부터 현재 지역별 대표적 모스크 외에, 추가로 지역 주민들의 삶터 곳곳에 모스크를 세우려는 시도를 막아내야 한다. 이는 우리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것이면서, 우리 자녀들이 한국적인 문화환경에서 교육받을 수 있도록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셋째, 이슬람은 평화를 보장하지 않는다.
근본 보수주의 불교이든 진보주의 불교이든, 불교 문화는 평화를 지향한다. 기독교 역시 근본주의 기독교든 진보주의 기독교든 평화를 보장한다. 그러나 이슬람은 근본주의 이슬람일수록 9.11 테러와 같은 사회적 소란을 일으키지만, 평화를 지향한다는 평범한 무슬림 가운데서도 거짓말, 도둑, 사기, 성폭행, 살인 사건 등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며칠 전에는 우간다에서 기독교인이 성경책을 읽고 있었다는 이유로 평범한 무슬림이 기독교인을 살해해 국립공원에 시체를 버렸다 발견됐는 엽기적 뉴스가 보도됐다. 3년 전 튀르키예에서는 한국 청년이 무슬림 청소년에게 칼부림을 당해 살해당하기도 했다. 이들은 근본주의 무슬림이 아니었지만, 자기들 신앙이 같지 않으면 사람을 죽이곤 한다.
이슬람권에서는 기독교 선교사들이 상가 건물이나 아파트에서 교회를 열고자 하면 먼저 상가 건물 내 거주하는 이웃들에게 동의서를 받아와야 한다. 아파트라면 모든 주민들에게 동의서를 받아와야 하고, 빈 땅 위에 지으려 해도 이웃 주민들의 동의서를 받아와야 허가가 나온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모스크를 지으려 할 때는 이웃들에 물어보지도 않고 법적으로 건축허가만 나오면 지을 수 있으니, 얼마나 불공평한가? 우리나라에서도 동일 조건을 제도로 만들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전까지는 우리 마을에 모스크가 들어오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고 반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중한 삶의 터전이 무슬림화되고, 우리 자녀가 이슬람 문화 환경에서 자랄 수 있기 때문이다.
모스크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앞선 유럽의 선진 사례를 보고 배우는 것이고, 우리의 미래를 보장하는 현명한 대책이다. 언젠가 우리나라도 프랑스처럼 무슬림과의 공존이 아니라 대한민국 하나의 법과 문화로 법제화되기까지, K-문화를 지켜야 한다. “모스크는 물러가라”.
장찬익 선교사
아일레 선교회 대표
광주중앙교회 협동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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