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협 6월 조찬기도회 및 발표회
대한민국 성공국가 진입 원동력,
기독교 확산과 제도·정신 내면화
반봉건·반식민·반공산 투쟁 선두
6.25 전쟁 가장 많은 순교와 피해
반공산 투쟁과 대규모 희생 기록
국가 사회적 역사에서 배제 이유
배제 세력들 중심으로 과대 독점
기독교 역할 정당한 교육 절실해
대한민국 당면 문제 해결은 물론
올바른 미래 지향하는 토대와 힘
‘6.25 전쟁: 한국 기독교의 수난과 화해’라는 주제로 한국복음주의협의회(회장 임석순 목사, 이하 한복협) 6월 월례 조찬기도회 및 발표회가 지난 9일 오전 서울 중구 영락교회(담임 김운성 목사)에서 개최됐다.
이날 발표회에서는 김윤태 교수(백석대) 사회로 진실·화해를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김광동 위원장이 ‘6.25 전쟁: 한국 기독교의 수난’, 정종기 원장(예장 고신 통일선교원)이 ‘6.25 전쟁: 한국 기독교의 화해’를 각각 발표했다.
◈대한민국 문명을 바꾼 기독교
먼저 김광동 위원장은 “기독교는 1517년 종교개혁 이후 500년 간 세계사적 문명 변화를 주도한 삶의 태도, 사상 및 인식론적 기반을 형성시켜 왔다”며 “세계인들이 모델로 삼는 국가들은 대부분 기독교적 정신과 제도의 기반 위에 있다. 근현대 대한민국도 명확하게 기독교적 기반 위에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대한민국이 성공국가로 진입한 것은 한국 사회의 기독교 확산과 개신교적 제도 및 정신의 내면화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전했다.
김광동 위원장은 “한국 근대문명 체계가 만들어진 계기는 1876년 개방·개항 이후 펼쳐진 기독교 문명 및 기독교 활동자들의 정신과 생활규범 재정립에 바탕한다. 특히 1882년 미국과의 수호조약 후 기독교 조직과 활동이 문명 변화를 만들어냈다”며 “1885년을 전후로 가장 고립된 폐쇄, 낙후 체제였던 한국에서 기독교의 활동은 문명사적 전환과 대한민국 대비약을 시작하게 했다”고 평가했다.
김 위원장은 ‘대한민국 기독교의 3대 프로젝트’를 꼽기도 했다. 먼저 ‘봉건적 사회 종식’에 대해 “1880년대 이후 개신교의 과제는 한반도에서 수백 년 계속된 미신과 토속신앙 극복, 봉건적 계급제도, 남녀차별, 사농공상 신분제도와 차별 폐지에 있었다”며 “그 결과 근대적 기본권 개념과 천부인권적 자유에 입각한 개인의 시대를 여는 토대를 만들었다. 근대 교육 및 의료체계는 모두 개인의 삶의 질과 생명을 중시하고 전근대적 봉건적 삶의 존재양식을 바꿨다.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는 종교를 넘어, 근대적 가치와 근대적 삶을 형성시키는 문명사적 변화를 만드는 기수였다”고 설명했다.
둘째 ‘반식민투쟁’에 대해선 “자주독립국가 지향과 근대 민주공화제 건립 기반이 된 3.1운동 정신이나 독립문을 만들어 세운 독립협회 활동, 만민공동회 사건, 물산장려운동, 105인 사건 등 근대 독립국가를 향한 주도적 활동가 모두 기독교였다”며 “정동교회와 배재학당을 기반으로 했던 이승만 대통령이나 평양의 조만식·이승훈 등 민족 지도자들도 모두 기독교적 기반에 입각했다”고 강조했다.
셋째로 ‘전체주의 공산-독재체제와의 투쟁’에 대해 “신의주 의거나 황해도 신천투쟁 및 공산주의를 대상으로 한 반공투쟁 주역들도 거의 기독교였다. 전남 야월교회·진리교회·옥구교회, 충남 병천교회, 서울 신당교회 등 6.25 전쟁에서 가장 많은 희생을 입고 재기의 중심에 섰던 것도 기독교였다”며 “그런 면에서 기독교는 지난 140년간 반봉건투쟁과 반식민투쟁은 물론, 전체주의에 대항한 반공산투쟁의 선두에 섰고, 그런 과정을 넘어 근대 문명적 대한민국을 만드는 초석이자 최전선에 있었다”고 밝혔다.
나아가 “기독교는 개인 중시, 장사와 상업 천시 극복, 기업과 무역에 대한 자존감, 사농공상적 사회 타파, 상품과 서비스 제공자에 대한 존경과 보상체계 등을 형성시켰다. 수백 년 간 한국 사회를 지배해온 과거급제와 사시-행시 등 공직자 중심에서 기업 중심으로의 사회변화도 마찬가지”라며 “신분을 획득하거나, 권력중심적 지배자가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필요로 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가 성공하는 사회로 바뀌게 했다. 근면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상공업 사회로의 변신이다. 교회와 기독교 정신이 없었다면, 봉건적·전통적 한국 사회가 오늘날 같은 근현대 사회로 바뀌지 못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기독교는 일(toil)과 직업(vocation)에 대한 인식을 바꿨다. 노동은 더 이상 부역이 아니라, 신의 소명(calling)이 됐다. 주어진 사회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것이라는 인식론은 근대를 여는 혁명이었다”며 “결론적으로 명-청 시대와 조선 시대를 500년 가까이 물려받은 한반도는 폐쇄적 중국의 영향과 문명적 고립을 겪으면서 근대화가 매우 늦어졌고, 서구 및 기독교와의 접촉은 불과 130여 년 전부터 가능했다. 그러나 ‘늦어진 한반도의 근대 문명’과 기독교의 만남은 한반도 문명의 완벽한 변신의 계기가 됐다”고 정리했다.
김광동 위원장은 “자유민주 질서는 기독교적 신앙의 자유를 지키려는 분들에 의해 주도적으로 지켜지고 발전됐다. 평안도·황해도·함경도 기독교인들까지 월남해 끝까지 지켜낸 결과”라며 “대한민국은 평안·황해도 등의 장대현교회, 산정현교회, 창동교회 등이 함께 만들고 지킨 나라였다. 특히 1945년 이후 공산주의와의 대결과 대한민국 건국, 그리고 6.25 전쟁에서 가장 투철하게 전쟁에 임하고 가장 많은 순교와 피해를 본 것은 개신교였다는 것은 한국 근현대사가 보여주는 그대로”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그럼에도 근현대 140년 대한민국 역사에서는 기독교의 역할과 대규모 희생을 일체 담고 있지 않다. 특히 공산 전체주의 세력과 싸웠던 것과 대규모 희생에 관한 기록은 단지 순교 관련 교회들과 교단별 기록으로만 존재할 뿐, 국가 사회적 역사에서는 배제돼 있다”며 “대한민국이 여전히 공산 전체주의로부터 명백한 위협을 받는 현재 상황은 물론, 한반도 북쪽에는 2천만 이상이 민족 유린과 문명 파괴에 놓여있는 사실에 비출 때, 기독교의 역할과 집단희생의 역사가 묻혀지고 잊혀져 있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고 언어도단적”라고 우려했다.
그는 “기독교의 역할과 집단희생에 대한 역사 배제는 곧 배제한 세력들 중심으로 대한민국 역사가 과대 대표(過大代表)되어 있거나 독점되었다는 의미”라며 “자유민주 질서를 수립하기 위해 전체주의에 대항했던 기독교의 역할과 집단희생에 대한 진상규명 및 정당한 역사기록과 교육은 대한민국이 지금 현재 맞이하고 있는 문제의 해결은 물론, 올바른 미래를 지향해가는 토대이자 힘”이라고 역설했다.
끝으로 그는 6.25 전쟁 당시 교회 피해 상황을 소개했다. 이제까지 위원회를 통해 공식 확인된 것만 집단 피해 교회 수는 62곳, 집단 피해자 수는 591명이다. 영광 염산교회, 논산 병촌교회와 우곤교회 등에서는 60-70명씩 순교하기도 했다고 한다.
◈북한과 화해할 수 있을까?
이어 정종기 교수는 “6.25 전쟁의 결과 분단 고착화, 동족상잔의 비극, 냉전지속, 그리고 서로 원수가 됐다. 현 정부 들어 남북관계는 강대강 전략으로 대치의 정점에 있다. 이런 문제를 한국 기독교가 해결한다면, 그 방법은 ‘성경적 가치의 화해’”라며 “화해는 기독교의 참된 가치이다. 한국 기독교가 6.25 전쟁과 관련해 화해해야 하는 이유는 성경 말씀이기 때문이고,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라고 운을 뗐다.
정종기 교수는 “화해의 대상은 누구인가? 당시 전쟁에 참여했던 인민군, 북한 기독교, 현재 북한 정부 등과 화해할 수 있을까? 개인적 피해자들이 아직 남아있는 상태에서, 누가 대신 용서하고 화해할 수 있는가”라며 “그래서 한국 기독교는 가장 먼저 하나님과 화해해야 한다. 잘못된 행동을 회개하면서 다시는 그런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결단과 교회적·사회적으로 정의를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기존 화해 방법은 ‘가해자의 사과가 전제된 희생자의 용서’라고 믿어 왔다. 타당성 있고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현실에서 그런 식으로 화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며 “가해자는 자신들의 과오에 대해 진실하게 사과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적 방식으로 갈등의 현실에서 화해를 제안하고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북한은 6.25 전쟁을 통해 한국 기독교에 어떤 피해를 입혔는가? 이북 지역 교회들이 월남해야 했고, 전쟁으로 남한에서만 207개 교회가 파괴되고 706개 교회가 피해를 입었으며 500여 명의 목회자가 죽임을 당하거나 납북됐다”며 “해방 전후 교회가 가장 많았던 평북 용천과 의주 일대는 교인 대다수가 살육당했고, 북조선기독교도연맹에 가입하지 않은 목회자 60여 명은 강제 연행됐으며, 젊은 목사들은 대부분 의용병으로 끌려가 낙동강 전선에서 대부분 전사했다. 이 외에도 셀 수 없는 피해를 본 한국 기독교는 이런 일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한국 기독교는 피해자임과 동시에 가해자이기도 하다. 신천 사건에서 일부 기독교인들이 학살에 연루됐고, 국군이나 미군에 의해 북한 정부에 협조하던 조선기독교도연맹 신자들도 희생됐다. 이들이 국군과 미군이라 해도, 배후에는 공산주의에 의해 고통받은 기독교인들이 있었다”며 “북한은 6.25 전쟁에 대해 피해자 의식을 갖고 있고, 기독교에 대한 감정도 매우 좋지 않다”고 주장했다.
정종기 교수는 “물론 기독교의 화해는 세상의 방식과 다르다. 하나님이 먼저 화해를 하신다. 화해의 주체가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신앙으로 은혜 가운데 가해자를 용서하면 희생자에게서 용서받은 가해자는 참회하게 된다는 것”이라며 “이는 하나님의 화해가 전제 되었을 때 가능하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 모든 것들 역시 하나님의 간섭 없이 안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야곱과 화해한 에서의 마음을 미리 만지셨듯, 북한도 미리 만지셔야 한다”고 전했다.
정 교수는 “회개는 가해자가 하는 행위이다. 피해자인 한국교회는 가해자인 북한으로부터 회개를 들어야 하고, 혹 한국교회가 가해자였다면 가해 사실에 대해 회개해야 한다. 그러나 북한 교회나 정부가 회개할 리 없다”며 “회개하거든 용서하라는 말씀도 한국 기독교의 난제이다. 머리로 이해하지만, 마음으로 하지 못하는 것이다. 용서는 무조건적으로 주는 것이지만, 주는 쪽에서 건네고 받는 쪽에서 받아들여야 하는 선물이다. 용서를 받아들여야만 용서받을 수 있다”고도 했다.
결론에서 그는 “한국 기독교는 화해를 위해 몇 가지 결단을 해야 한다. 먼저 6.25전쟁의 배경이 되는 반공을 뛰어 넘어야 한다. 공산주의를 용납하라는 것이 아니라, 반공 프레임으로 북한과 대화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화해는 이념 갈등 즉 공산주의를 뛰어넘어야 하는 과제를 극복한 자들의 몫”이라며 “둘째, 남북이 만날 수 있는 일을 만들어야 한다. 만나야 화해가 조성된다”고 밝혔다.
또 “셋째, 피해자 보상을 하라. 6.25 전쟁 때 한국 기독교로 인해 피해를 보았다면, 북한 피해자뿐 아니라 남한의 피해자까지 보상해 주었으면 한다”며 “넷째, 주위를 둘러보라. 남북 문제를 넘어 중국, 러시아, 유엔 참여국 교회들과의 회개와 용서가 병행돼야 진정한 화해가 된다”고 했다.
정 교수는 “다섯째, 화해를 먼저 시도하라. 화해는 쌍방이 하는 것이지만, 기독교가 먼저 회개하고 용서하고 화해를 시도한다면 어느 시점이 지난 후 할 말이 생긴다”며 “여섯째, 기독교 역사학자들을 통해 6.25 전쟁 시 일어난 기독교 관련 사건들을 가감없이 기록하고 한국교회에 가르치라”고 당부했다.
끝으로 “일곱째, 화해의 결과는 북한의 복음화이다. 이것은 결과이기도 하지만 또한 전제이기도 하다. 즉 복음없이 화해할 수 없다”며 “화해는 실천하기 매우 어렵다. 신앙으로 해결하려 하지만, 구체적 방법이 제시되지 않았다. 이 화해 프로세스의 구체적 진행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이루는 일이고, 이러한 화해 실천은 이 땅에 6.25와 같은 전쟁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게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선 기도회에서는 이일호 박사(전 칼빈대 교수) 사회로 김운성 목사가 설교했으며, 유관지 목사(북녘교회연구원장)가 ‘한국교회를 위하여’, 박완신 장로(소망교회)가 ‘우리나라를 위하여’ 기도를 인도했다. 2부 발표회에서는 회장 임석순 목사의 인사와 이용호 목사(예장 고신 증경총회장)의 축도, 총무 이옥기 목사(UBF 전 대표)의 광고 등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