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성 박사, 미국 한인교회 설교
성령 체험으로 ‘믿음 구원’ 깨달아
성령 세례와 충만 등 두 차례 체험
오늘 우리도 성령 도우심 사모해야
웨슬리언교회지도자협의회 대표회장 양기성 박사(청주신학교 학장)가 지난 6월 23일 LA 백송교회(담임 김성식 목사)와 25일 세리토스충만교회(담임 김기동 목사)에서 영적 대각성 운동을 일으킨 존 웨슬리(John Wesley)의 부흥과 성령 운동에 대해 설교했다.
양기성 박사는 “존 웨슬리는 1735년 조지아주 선교사로 사역하다 실패하고 귀국하던 중 풍랑을 만나 두려울 때 모라비안 교도들의 활기찬 모습과 평온한 신앙에 충격을 받았다”며 “이후 1738년 5월 24일 오후 8시 45분경 올더스게이트 거리 모임에서 로마서 8장 16절의 주석을 듣고 뜨거운 성령을 체험했다”고 소개했다.
이에 대해 “그동안 웨슬리는 종교적 열심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했는데, 올더스게이트 성령 체험을 통해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성령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는 것을 깨닫는 체험 이후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라고 밝혔다.
양 박사는 “1739년 1월 1일 새벽 3시경 새벽 런던 페터레인 집회소에서 몇몇 기도 동지들과 심야기도를 하던 중 위로부터의 능력을 덧입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를 페터레인 체험이라 부른다”며 “올더스게이트 체험이 성령으로 인해 거듭나는 사건이었다면, 페터레인 성령 체험은 성령 충만의 능력을 얻고 성령의 은사를 체험한 사건이었다”고 풀이했다.
그는 “올더스게이트 체험이 성령 세례라면, 페터레인 체험은 성령 충만이었다. 웨슬리는 물세례를 육적 세례, 거듭남을 성령 세례(spiritual baptism), 성화를 성령 충만으로 해석했다”며 “성령 세례는 영적 탄생을 일으키는 일회적 사건이지만, 성령충만은 우리의 영적 성숙을 위해 계속된다. 거듭남은 성화의 출발이요 입구이기에, 성화가 올더스게이트 사건 이후 시작됐지만, 결정적으로 드라마틱하게 성화를 체험하기 시작한 것은 페터레인 사건”이라고 분석했다.
양기성 박사는 “존 웨슬리는 종의 믿음에서 자녀의 믿음으로 당당하고 자신있게 구원을 확신하게 된 것”이라며 “독일 마르틴 루터의 성자 신학, 프랑스 존 칼빈의 성부 신학에 이어 영국의 존 웨슬리의 성령 신학까지 개신교 3대 스승이 완성됐고, 이 때부터 웨슬리는 일평생 성결복음의 성령운동, 곧 영적 대각성운동에 박차를 가했다”고 말했다.
양 박사는 “존 웨슬리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고,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기쁨 가운데 교구목회 사역을 하고 있었지만, 국교회에 의해 설교를 금지당했다. 복음주의 신앙으로 방언과 예언을 하고 신유 은사를 행하는 웨슬리의 유별난 전도 활동을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며 “이를 통해 ‘세계는 나의 교구’라는 그의 슬로건이 나오게 됐다. 당대 최고 설교가였던 조지 휫필드(George Whitfield)처럼 옥외 설교를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그는 “야외 설교를 하면서, 존 웨슬리는 전도자로서 뜨거운 ‘사명적 회심’을 하게 된다. 웨슬리는 광부들을 대상으로 설교했는데, 깜짝 놀랄 만큼 하나님께서 강하게 역사하심을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며 “교회 밖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그들이 구원의 복음을 기다리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살리시기를 시급히 원하심을 알게 됐고, 그의 신앙 구조에 대변혁이 찾아왔다”고 했다.
양기성 박사는 “존 웨슬리는 1738년 성령 체험 후 1791년 6월 2일 소천받기까지 53년 동안 ‘오직 성경의 사람, 오직 성령의 사람’이 되기 위해 부단히 몸부림치면서 사도 바울처럼 날마다 자신을 죽이는 위대하고 거룩한 삶을 살았다”며 “오늘 우리도 존 웨슬리처럼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사모해야 한다. 그러면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하늘로부터 능력을 덧입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권세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