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기독교 변증가인 로빈 슈마허(Robin Schumacher) 박사가 최근 ‘모든 개, 그리고 사람들은 실제로 천국에 가는 건가?’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칼럼을 크리스천포스트(CP)에 게재했다.
로빈 슈마허는 소프트웨어 경영자, 기독교 변호사로서 활동하며 다수의 기독교 서적을 저술했으며, 최근 저서로는 ‘확신에 찬 믿음: 사도 바울의 변증으로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기’가 있다. 다음은 그 주요 내용.
현재 살아 있는 사람 중 누구도 자신이 죽어서 지옥에 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다. 적어도 정신적으로 정상인이라면 - 예컨대 사도행전 2장 21절을 따르면 - 이러한 최종 결과를 바꾸려고 노력할 것이다.
틀림없이, 지옥에 대한 생각은 예전처럼 많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걸음 물러서서 덜 지옥스러운 비슷한 질문을 해보자. 죽음 이후의 삶을 믿고, 한번 죽으면 분명 끔찍한 일을 당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는가? 나 역시 만나지 못했다.
퓨리서치는 17%의 사람들만이 ‘이 생이 전부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이는 83%가 ‘우리가 (죽어서도) 어떤 식으로든 살아갈 것’이라고 믿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나는 그들의 2라운드가 나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기독교에서 이러한 사고는 궁극적인 화해(ultimate reconciliation)라고 불리는 보편주의(universalism) 가르침에서 발견된다. 이는 하나님이 결국 언젠가는 모든 영혼과 재회하여, 모든 사람들이 기꺼이 그분과 영원히 함께할 것이라는 발상이다.
여기에는 영원한 형벌은 없다. 영원한 이별도 없다. 대신, 보편주의에 관한 어느 책의 제목처럼 “모든 것은 잘 될 것이다”(All Shall Be Well).
좋지 않은가? 단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모든 것이 순조롭진 않을 것이다. 최소한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넓은 문으로 들어가며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을 통해 가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마태복음 7:13).
즉 보편주의는 거짓임을 의미한다.
성경에서 가장 오래된 거짓말
보편주의의 개념은 동산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성경에서 가장 오래된 거짓말이다. 사탄은 하나님의 금지령과 우리의 첫 조상에게 주신 그분의 결과를 조롱한 후 “너희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교묘하게 주장했다(창세기 3:4).
처음으로 부정된 교리가 심판이라는 사실이 흥미롭지 않은가? 이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논란이 되는 주제다.
교회사적 관점에서, 학자들은 보편주의를 옹호한 최초의 인물로 아프리카 신학자인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게네스(Origen of Alexandria, AD 185-254)를 꼽는다. 오리게네스는 성경을 비유적으로 접근했고, 그리스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으며, 지옥에서 죄인들이 받는 영원한 고통을 경시했다.
수천 년이 흘러, 로브 벨(Rob Bell)의 책 ‘사랑이 이긴다’(Love Wins)가 인기를 끌었다. 오리게네스의 사고를 따라 벨은 보편주의에 대한 핵심 주장으로서 다음의 질문들을 던졌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지 않으시며(디모데전서 2:4), 원하는 것을 갖지 않는 분입니까?”
“성경에는 예수님이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셨고(요한일서 2:2),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자신과 화해시키리라(골로새서 1:20)는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보편주의가 불가피한 결론이 될 수 없는지 벨은 물었다.
예수님께서 지옥이 실재한다고 말씀하신 것은 비기독교인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내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변호인은 회의론자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를 증인석에 불러들였다. 그는 이렇게 썼다. “내 생각에 그리스도의 도덕적 성품에 한 가지 매우 심각한 결함이 있는데, 그것은 그가 지옥을 믿었다는 점이다. 진정으로 인간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영원한 형벌을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성경을 쉽게 읽는다면, 그리스도께서 지옥을 설교했다는 러셀의 결론이 옳게 보인다. 여러분은 부자와 나사로에 대한 그분의 이야기(누가복음 16:19~26), 산상수훈의 결말(마태복음 7:13~14, 21~23), 그분의 많은 비유(마태복음 13:40-41, 22:13), 죄의 결과에 대한 그분의 훈계(마가복음 9:43), 더 나아가 그리스도 이외의 다른 사람들에게 지옥은 매우 실제적인 목적지로 여기셨다.
그렇다면 왜 보편주의를 믿는 사람이 있는 것일까?
이 가르침을 신봉하는 사람들의 주된 노력은 하나님의 자비와 영원한 심판의 현실을 조화시키는 데 있다. 그들의 혼돈에 대한 해독제는 하나님의 전제와 결과적인 뜻을 명확히 이해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지만 결과적으로 은혜를 거부하는 사람은 형벌을 받게 된다. 또는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가 설명했듯이, “그러므로 의로운 재판관이라고 할 수 있다. 추정하자면, 그분은 모든 사람이 살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살인자는 교수형에 처해질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지만, 결과적으로 그분의 공의에 따라 어떤 사람들은 저주를 받게 될 것이다.”
감사하게도 그리스도는 그 처형장에 우리를 대신하여 앉으시며, 우리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신다.
그러나 그분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따라서 87%의 사람들이 사후 세계를 믿으며, 자신의 다음 생이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성경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궁극적인 화해 및 보편주의의 가르침은 우리의 인간적인 친절에 호소한다. 하지만 그것은 순전히 잘못되었고 비성경적이다. 성경은 현생 너머에 두 번째 기회는 없다고 가르친다.
대신 성경은 “오늘은 구원의 날”(고후 6:2)이라고 선언한다. 현생에서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돌이켜, 그분을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사랑이 진실로 승리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지옥의 개념을 무시하는 사람들은 영원(eternity)이 부정하기에는 지독하게 긴 시간임을 알게 될 것이다. 또는 작가 오스 기네스(Os Guinness)가 말했듯이 “어떤 사람들에게 지옥은 순진하게도 너무나 늦게 깨달은 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