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목숨 건 여정을 떠나는가?
北, 나치 수용소보다 끔찍·사악해
북한 인권, 정치 아닌 인권 이야기
진보 세력, 진짜 인권의 길 갔으면
수퍼맨 목사, 탈북민 4천 명 구출
한국교회, 북한 김일성 우상숭배
직·간접 지원 사악한 죄 벗어나야
이지성의 1만 킬로미터
이지성 | 차이정원 | 320쪽 | 18,000원
“하지만 나는 그 잔을 마실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양심에 화인을 맞은 사람들이 된 것은, 우리 형제자매들이 나치 수용소보다 더 끔찍하고 더 사악한 일들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북한 땅에서 70년 넘게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라도 되는, 아니 알고 깨닫고 말하면 오히려 평화를 해치는 전쟁광(?)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사회를 만들게 된 것은 우리가, 특히 지식인들이 지난 수십 년 동안 ‘북한 인권’이라는 쓴잔을 마시는 게 두려워서 다들 도망쳤기 때문이다.”
최근 코로나19 이후 중국 당국에 의해 구금돼 있는 탈북민이 2,600여 명에 달하며, 이들이 곧 강제북송당할 것이라는 보도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에 서울 중구 명동 중국대사관 앞에서는 매주 월요일마다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인권단체들의 강제북송 중단 기자회견 및 집회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 7월 31일 집회에는 과거 3년 가까운 949일 동안 북한에 억류당했다 풀려난 임현수 목사(TMTC 대표)와 탈북민 꽃제비 출신 지성호 의원(국민의힘) 등이 나와 외쳤고, 8월 7일에도 감사원장 출신으로 대선 후보까지 지낸 최재형 의원(국민의힘)이 목소리를 높였다.
탈북민들은 강제북송당하면 보위부에 의해 가혹한 고문을 당하고 모든 소지품을 빼앗기며, 임신부들은 강제 낙태를 당한다. 고문 후에는 감옥에 수감되거나 노동단련대에서 강제노동을 당하고, 기독교인과 접촉했거나 성경을 소지했을 경우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거나 처형을 당하기도 한다.
중국 시진핑 정권은 현재 이런 상황의 탈북민들을 난민으로 인정해 대한민국 등 원하는 국가로 보내주는 대신, 도리어 이들을 목숨 걸고 탈출했던 북한 땅으로 돌려보내는 만행을 저질러 왔다.
이에 국경을 넘으면 중국으로 갈 수밖에 없는 탈북민들은 필사적으로 중국에서 제3국으로 또 다시 탈출해야 한다. 그러나 최근 중국-베트남 국경을 넘으려다 국경 인근에서 5백여 명이 체포돼 난닝(南寧) 인근에 구금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와 함께 중국 지린성 난핑(南坪)과 북한 함경북도 무산을 잇는 난핑-무산 세관이 지난 6월 20일 개통됐다는 보도가 전해졌는데, 전문가들은 해당 통로를 비밀 북송이 용이한 장소라며 우려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북한 국경이 봉쇄돼 중국에서 구금한 탈북민들을 북송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것이 재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열린 집회는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중국은 1982년 난민협약에 가입했으며,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이자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서 국제 평화와 인권 문제에 책임을 다해야 함에도, 반대로 홍콩과 신장-위구르 등 날이 갈수록 인권 탄압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탈북민들의 이러한 참상은 여러 방송과 서적 등을 통해 폭로돼 왔지만, 여전히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4월 출간된 <이지성의 1만 킬로미터>가 꾸준히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 책은 탈북민들이 북한을 탈출해 중국과 라오스·태국·베트남 등 동남아를 거쳐 대한민국으로 들어오는 탈북민들의 지난한 여정을 보여준다.
책 제목에 나와 있는 ‘이지성’은 우리가 아는 그 이지성 작가다. <꿈꾸는 다락방>, <독서천재가 된 홍대리>, <리딩으로 리드하라>, <에이트>, <미래의 부> 등 자기계발서를 주로 썼던 저자는 5년 전 ‘수퍼맨’ 목사를 만나면서 자유를 위한 탈북민들의 ‘1만 킬로미터’ 여정에 함께하며 그들을 돕고 있다.
특히 지난 5년은 북한 인권 운동가들에게 ‘고난의 행군’ 시절 같았던 자칭 인권변호사 문재인 대통령 치하인데다 코로나19까지 덮쳤던 때니, 이 작가가 경험해야 했던 좌절과 고초를 가히 짐작할 수 없다.
‘잘 나가는 작가’인 저자는 어쩌다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위대하고 가장 무섭고 가장 위험한 사역’에 동참하게 됐을까. 지난 30여 년 동안 4천 명 이상의 탈북민들을 구출한 한 그리스도인, ‘수퍼맨’이라 불리는 목사를 만나, 직접 ‘탈북 루트’인 중국 단둥의 현장을 체험하면서부터였다.
그에게 이러한 결심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가 몸담고 있는 ‘지식인계(?)’는 북한 김정은 정권에는 한없이 호의적이지만 북한 인권에는 한없이 냉정하기 때문이다. 북한 주민들의 인권이나 중국 내 탈북 여성들의 인권에 대해 말하면, 방송·언론계에서는 ‘퇴출 대상’이라고 한다. 그 역시 그런 과정을 겪어야 했다.
그들, 한국의 소위 진보 세력은 말끝마다 ‘민주와 인권’을 부르짖고 하다 못해 반려동물을 비롯해 도롱뇽(천성산), 범고래(후쿠시마 오염수)의 권리까지 챙기지만, 히틀러의 아우슈비츠 수용소보다 더한 세계 최악의 감옥에서 죽지 못해 살아가는 2,500만 북한 주민들은 철저히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항변한다. “나는 지금 정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인권 이야기를 하고 있다. 부디 대한민국 진보 세력이 진짜 인권의 길을 갔으면 한다.”
탈북민(저자는 ‘탈북인’이라고 쓴다) 구출을 인도적 차원의 국제 구호활동의 연장선상 정도로 생각했던 저자는 중국 단둥에서 만난 한 노부부를 통해, 이 사역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영역에 속했음을 깨닫게 됐다.
탈북민과 북한 선교·인권 단체들이 그 목사에게 ‘수퍼맨’이라는 별명을 붙여준 이유도, 그와 함께 오래 일하다 보면 이 사역이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수퍼맨 목사’는 함께 일하는 이들이 그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될 때, 복음을 전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와 함께하는 일꾼들은 대부분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다. 단 너무 고되고 힘든 일이라, 이를 미처 깨닫기 전에 그만두는 이들도 많다고 하면서.
저자는 이 ‘북한의 쉰들러’ 수퍼맨 목사를 통해 탈북민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특유의 흡입력 있고 생생한 문체로 서술하고 있다. 이는 저자가 수퍼맨 목사와 동남아 곳곳을 함께 다니며 각종 위험을 직접 체험한 덕에 가능했다. 저자 자신의 내려놓음을 통해 무거운 주제이지만 가볍게 술술 읽히는 것도 미덕이다.
저자는 코로나 이후, 탈북민들과 그들을 위한 구출 사역에 ‘열 가지 재앙’이 닥쳤다고 한다. 북-중 국경이 폐쇄되고 동남아 루트까지 막혔으며, 그에 따라 대부분의 일꾼들이 떠났다. 중국 내 비밀 쉼터들과 동남아 선교관까지 모두 발각돼 2020년 3월부터 탈북민 구출이 불가능해지면서, 절망을 느낀 탈북민들의 극단적 선택도 잇따랐다.
수퍼맨 목사는 저자 등의 도움으로 열 가지 재앙에 맞선 ‘열 가지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하고 있다. 북한 내부 조직을 재건하고, 북한 고아원·양로원·꽃제비들에게 식량과 생필품 등을 제공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으며, 중국 일꾼 조직과 협력자 조직, 중국·라오스 국경지대 일꾼 조직과 메콩강 일꾼 조직, 미얀마와 베트남 구출 루트를 복구시키고, 태국에 새로운 선교사들과 선교관들을 세웠으며, 러시아 구출 루트를 새로 만들어 나가고 있다.
하나님의 일하심만큼, 사탄의 방해도 끈질기다. 코로나 기간 수퍼맨의 ‘첫 번째 왼팔’이 석연치 않은 덤프트럭 교통사고로 사망했는데, 2주 후 덤프트럭이 수퍼맨의 차를 덮쳤다. 수퍼맨은 간발의 차로 피해 무사했다고 한다. 수퍼맨 역시 코로나19 백신 부작용으로 눈과 심장에 문제가 생겼고, 이후 코로나19 확진 후유증도 심각했다.
수퍼맨의 ‘두 번째 오른팔’은 문재인 정권 시절 중국에서 위법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여권이 정지당했다. 그 행위란 탈북민 4명을 구하려다 붙잡힌 것이다. 최고 전문가인 그가 출국하지 못하면서, 조직 복구 작업이 크게 지체됐다고 한다.
한국교회에 대한 안타까움도 전한다. 훌륭한 활동가들과 단체들도 물론 있지만, 북한 인권과 선교를 내건 많은 활동가들과 단체들이 ‘사역의 특수성’이라는 명분 속에 깨끗하지도 아름답지도 못한 일을 자행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
간증을 접하면 탈북민 구출은 모두 그가 하는 것 같은 L은 정작 탈북민 구출 현장에 가본 적도, 실제로 구출해본 적도 없이 구출 비용만 삼중 사중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북한 인권·선교 분야에서 핫한 I는 다른 활동가나 인권·선교 단체들의 공적을 가로채는 것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다. 동남아 국경도시에 선교관을 비밀리에 운영하며 목숨 걸고 탈북민들을 돕는다는 P는 가장 비싼 동네에 고급 주택을 갖고 구출 비용을 오중 육중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그뿐 아니다. 북한 선교로 유명한 어느 대형교회 목사는 후원금 사기를 치다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탈북민 출신 한 북한 인권 운동가는 그를 유명하게 만든 북한에서의 모든 경력과 탈북 스토리가 모두 거짓으로 밝혀졌으며, 다른 탈북민 출신 유명 북한 인권 운동가는 도움을 요청하러 온 국내 탈북 여성들을 지속적으로 성추행하다 발각돼 감옥에 갔다. 다른 탈북민 출신 목사는 선교 후원금으로 신도들과 마약을 하다 체포됐다.
어떻게 보면 가장 심각한 것은 G 선교단체다. 매주 한반도 평화 기도회를 여는 이곳은 북한 주민들의 자유와 인권 회복, 자유민주주의 통일에 대한 기도는 일절 하지 않고,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통한 평화를 추구한다. 저자는 “한국의 적지 않은 북한 선교단체들이 G의 길을 가고 있다”고 개탄한다. “제발 한국교회가 아주 오래된 죄에서 떠났으면 한다. 북한 김일성 우상숭배를 ‘사랑과 평화와 선교’라는 이름으로 직·간접적으로 지원하는, 그 거대하고 사악한 죄에서 말이다.”
이지성 작가는 ‘왜 이 일을 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하나님께서는 인류 사회에서 가장 미련하고 약하고 천하고 멸시받고 없는 존재인 탈북민들을 택하셔서, 북한과 중국 대륙에 자유와 인권의 물결이 넘쳐흐르게 하시려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를 중앙아시아와 중동, 아프리카 등 전 세계로 확장시키려고 하시는 것은 아닐까?”라고 반문한다.
그러면서 “북한 인권 운동가들은 탈북인들을 가리켜 ‘미리 온 한반도 통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탈북인들은 ‘미리 온 인류 평화’”라며 “필히 핵전쟁으로 이어질 제3차 세계대전을 막고 온 인류에게 ‘북한 핵으로부터의 자유’를 선물하고 전 세계에 자유와 인권의 물결이 넘쳐흐르게 할 존재들”이라고 답했다.
저자의 꿈은 이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 ‘오직 복음으로, 1만 킬로미터가 0킬로미터가 되게 하라!’ 나는 탈북인들의 1만 킬로미터가 0킬로미터가 되는 그날까지 달려볼 생각이다. 당신도 나와 함께했으면 좋겠다.”
5년 간 생사고락을 함께한 ‘수퍼맨 목사’는 부록에서 이지성 작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북한 인권 운동가들 중에 자신의 사비를 털어서 온갖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위험한 구출 현장까지 가는 사람을 나는 지금껏 본 적이 없다. 작가님은 늘 자신은 초보자에 불과하다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미 북한 인권에 관해서는 세계적인 전문가의 경지에 올라 있다. … 내가 비전을 통해 움직였듯, 작가님 또한 그러지 않았을까? 눈에 보이는 세상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세계를 보는 사람이 가지 못할 길이 없고, 하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