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하천으로 탈바꿈한 개천과 크리스천 문화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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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록, 한 점의 그림] 부천 베르네천

오염 하천, 주민들 의해 휴식처로
집중호우로 망가져, 공사 후 개장
미술 작가들 활동 교회 이해 못해
창조세계 섬김, 인간의 첫째 사명

▲한때 '오염하천'으로 불렀던 부천 베르네천이 생태하천으로 탈바꿈해 지금은 주민들에게 휴식처가 되어주고 있다.

▲한때 '오염하천'으로 불렀던 부천 베르네천이 생태하천으로 탈바꿈해 지금은 주민들에게 휴식처가 되어주고 있다.

천연의 개천이었던 우리 동네 베르네천이 생태하천으로 재탄생한 것은 20년 전이다. 베르네천은 부천시 원미산에서 발원하여 오정동 동부간선수로로 합류하는 소하천이다.

생태하천으로 조성되면서 하천 주변에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다양한 수목 식재, 의자, 운동시설 등을 설치, 주민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수백 마리 잉어가 노닐고 야생 오리가 터를 잡은 이 하천은 도심 속 시민들에게 고마운 휴식처가 되어주고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베르네 생태하천이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초기에는 물 흐름을 유지시키는 용수를 제대로 공급받지 못해 악취가 발생하고 여름철 모기떼가 기승을 부렸다.

하천 곳곳이 오수에 찌들어 ‘오염 하천’이란 오명까지 얻었다. 그러자 지자체와 시민들이 나서서 하천 주변의 쓰레기 및 오물 수거, 이끼 제거, 풀 깎기, 시설물 정비 등 수변 공간을 가꿨다.

무엇보다 베르네천이 생태하천으로 조성되면서 달라진 것은 자연 생태계가 살아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는 점이다. 1km 정도 소하천에 불과하지만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풍광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많은 주민들이 찾는 곳이 되었으며, 필자도 그중 한 명이다.

그런데 이곳은 살다 보니 그다지 안전한 곳이 아님을 안 것은 작년 장마철을 지나면서다. 이곳이 저류지이다 보니 폭우가 오면 빗물을 일시적으로 저류시키는 용도 때문에 하천의 수위가 급격히 올라가고, 이에 따라 석축이 무너지고 주위 수목, 식물에 피해를 입힌다.

작년 8월 중부지방에 쏟아진 집중호우로 공원은 기반이 무너지고 석축을 지탱하던 돌덩이가 쓸려가 원래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됐다. 튼튼한 재료로 지어진 목재 다리도 붕괴되어 볼품없이 되어버렸다.

하천이 원상을 회복하는 데는 수개월이 걸렸다. 공사기간 내내 시커면 흙탕물로 변해 물고기들이 죽지 않을까 걱정되었지만, 다행히 큰 피해 없이 지나갔다. 무너진 석축을 다시 쌓고 시설을 정비하는 등 공사를 마치고 드디어 올 여름에 생태하천이 복원되었다.

시설 정비를 마치자 하천은 다시 예전의 활기를 되찾아갔다. 산책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수변 산책로를 이용해 귀가하는 사람, 인접한 요양병원의 어르신들과 가족, 한 걸음한 걸음을 무겁게 내딛는 재활병원의 환자들도 마주하게 된다.

얼마 전 수변 야외무대에서 코로나19로 힘든 시간을 보낸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춤과 연주, 노래 등 콘서트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는 베르네천 공원이 여러 사람들의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음을 알려준다. 베르네천의 상처는 치유됐고, 점차 기능을 회복해가고 있다.

▲작년 집중호우로 입은 피해를 복구하고 새롭게 정비한 베르네천 공원을 산책나온 주민들이 이용하고 있다.

▲작년 집중호우로 입은 피해를 복구하고 새롭게 정비한 베르네천 공원을 산책나온 주민들이 이용하고 있다.

베르네천 생태하천의 복구 과정을 경험하면서, 필자는 문득 ‘문화의 회복’이란 용어가 스쳐갔다. 흔히 우리는 문화의 이슈를 다룰 때 그것을 영혼의 문제만큼 중요하게 취급하지 않는다.

필자가 종사하는 미술계의 경우 크리스천 작가들이 창작 활동에 열심을 내고 그들 중에는 뛰어난 작가도 있지만, 교회 내에서의 입지는 좁다.

창조의 능력을 부여받은 특별한 달란트로 아름다운 세상을 이해하고 그것을 축하하는 창조계의 청지기로 부르심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이들을 이해해주는 교회가 얼마나 될까.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크리스천의 문화적 참여와 생산이 상당히 위축돼 있다는 점이다. 왜 크리스천의 문화 활동은 소극적일까. 창세기 2장 말씀처럼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15)” 하셨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문화적 사명을 묘사하는 동사를 두 개 발견한다. 에덴동산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셔서 문화를 섬기고 지키면서 다스리게 하셨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일이 자신의 형상을 반영한 인간을 통해 이루어지도록 이 세상의 질서를 설정하셨다.

그래서 크리스토퍼 라이트(Christopher J. H. Wright)는 “창조세계를 다스리고 섬기는 것이 이 땅에서 인간의 첫 번째 사명이다”고까지 하였다.

온 세상이 하나님의 거룩한 영역인 것이 사실이라면, 그 영역이 오염됐고 악취가 풍긴다면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문화가 병들었는데 인간의 삶이 온전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착각이기 때문이다.

병든 문화는 인간의 삶에 그만큼 치명적인 상처를 유발시키고 우리가 지금껏 소중히 지켜온 가치나 신념을 붕괴시키기 위해 더 집요하게 공격한다. 축구 경기로 치면 홈팀이 여유를 부리는 동안 사기가 충천한 원정팀이 골을 넣는 것과 비슷하다.

C. S 루이스는 크리스천이 문화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로, 그렇지 않은 경우 나쁜 문화가 기승을 부리기 때문이라고 명쾌히 분석했다. 문화 참여와 책임은 크리스천들에게 맡겨진 소명의 추가적 부분이 아니라 핵심적 부분이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부분은 일상에서 ‘베르네천 범람’이 매일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무서운 일이다. 작년 겪은 ‘베르네천 범람’은 일시적 현상이라는 점에서 그나마 다행스럽다.

그러나 ‘문화의 범람’은 우리 삶에 시간의 경과와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입힌다. 그럴 경우 우리의 삶이 점점 진부해지고 빈약해져갈 것은 쉽게 예상되는 부분이다.

피조된 세계는 궁극적 세계와 무관하며 우리 불멸의 영혼들은 하루 빨리 그곳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려야 한다는 식의 생각이야말로 문화 참여를 가로막는 영지주의적 발상이라고 톰 라이트(Tom Wright)는 일갈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이 인간을 통해 이루어지도록 세상의 질서를 제정하신 것을 성찰하며 ‘탄식하며 고통을 겪는(롬 8:22)’ 문화의 구속을 위해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 먼저 내가 맡은 일이 크든 작든 세상의 문화에 참여하는 사람으로 보냄을 받았다는 사실에 자긍심을 가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 사명은 하나님과 함께 장엄한 이야기에 참여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 장엄한 이야기의 보장될 절정을 가져오실 때까지 말이다(Christopher J. H. Wright).”

서성록 명예교수(안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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