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고전 관통> 이종필 목사 (2)
아마존, 네이버, 스타벅스, 캐논, 베르사체, 리니지…. 접점이 없어 보이는 이 기업들과 게임의 교집합은 바로 ‘그리스로마 신화’이다.
아마존은 말 그대로 아킬레우스와 싸운 용맹한 여성부족 아마조네스에서 따왔고, 네이버는 제우스의 전령 헤르메스의 모자 이미지를 로고로 사용했다. 스타벅스는 오디세우스 일행을 유혹했던 세이레네스를 차용했고, 캐논 카메라 브랜드 이오스(Eos)는 새벽의 신 이름이다. 베르사체는 신화 속 메두사의 이미지를 활용했고, 리니지는 상체가 여자이고 하체는 뱀인 괴물 라미아의 이미지를 차용한 것.
이처럼 신화는 서양 문화의 원천으로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BTS가 포도주의 신이자 풍요의 신 ‘디오니소스’라는 곡을 쓸 정도. 킹덤처치연구소 이종필 목사(세상의빛교회)의 <서양 고전 관통(전 4권)>은 이러한 신화를 비롯해 이름만 대면 아는 서양 고전들을 성경적 관점에서 요약하고 해석한 책이다. 다음은 기독교적 관점의 ‘지대넓얕(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서양 고전 편 같은 책을 펴낸 이종필 목사의 나머지 이야기.
인본주의, 인간의 삶 동경·옹호해
고전 해석, 인본주의 행태 비판해
욕망 따르면 망한단 메시지, 복음
서양 고전 관통(전 4권 세트)
이종필 | 목양 | 총 952쪽 | 69,000원
-‘인문학은 인본주의적 아니냐’는 질문을 많이 받으셨을 것 같아요.
“인본주의는 복음이 없을 때, 복음 제시가 없을 때 그렇죠. 기독교인들이 ‘허준이 진짜 훌륭하다. 허준처럼 살았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드라마 속 허준은 허구의 인물이거든요. 이처럼 인본주의는 그 인간의 삶 자체를 동경하고 옹호하는 것입니다. 반면 저는 고전 해석을 통해, 인간의 삶을 동경하고 인간의 삶을 그대로 존중하는 것을 아주 처절하게 비판하는 입장입니다.
예를 들어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의 <그리스인 조르바> 속 주인공 조르바는 현대인들이 가장 원하는 포스트모던적 인간상입니다. 하지만 조르바는 사실 또라이죠(웃음). 그렇게 해석해 줘야 한다는 거예요. 우리 현대인들은 지금 ‘또라이’를 동경하고 있고, 이것은 진짜 복음이 아니다. 당신들이 조르바 같이 살면 다 성병 걸리고 가정이 파괴되고 모든 사람이 주인 되는 삶이 된다고 알려줘야죠.
이것이 얼마나 복음과 순방향적인가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이게 순방향이잖아요. 그래서 예수님이 오신 것이죠. 반면 <그리스인 조르바>는 대안적 우상숭배의 삶을 만들어내죠. 인간의 욕망이 정당화되는 부분을 비판해야죠.
그래서 해석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허준’에 은혜 받으면 안 된다는 말은, 철저히 복음적으로 다시 해석돼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설사 허준이 기독교인이라도 마찬가지죠. 많은 분들이 그렇게 인본주의에 빠지지만, 저는 반대로 가야 한다는 겁니다.
복음으로 가는 방향은 정해져 있어요. <보바리 부인>을 보세요. 그렇게 살아간 주인공의 끝이 불행하다면, 이 작품은 복음의 순방향이겠죠. ‘하나님을 떠나서 망했다’, 성경 이야기와 순방향입니다. 물론 작가가 그런 성경적인 이야기를 쓰려던 건 아니겠죠. 플로베르라는 작가는 그다지 경건한 사람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그것이 자기가 관찰한 인생이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보바리 부인>은 그의 대표작입니다.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썼겠어요. 5년 동안 쓰고 고쳤대요. 목숨을 건 작품이잖아요. 그런데 그 작품에서 자기가 그리고 싶었던 인간상은, 허황된 욕망을 좇다 망하는 여자였어요. 그게 그 사람의 사상 아닙니까? 물론 작가는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말도 안 했죠. ‘그렇게 살다 죽었다’, 이게 끝이죠. 대체로 문학가들은 작품을 쓰게 된 어떤 사건이 있어요.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했거나, 모티브를 얻은 고전들어 있어요.”
오늘날, 아이들도 신화 믿지 않아
신화, 당대인 해석한 인류의 시작
다른 모든 이야기, 신화의 패러디
-<그리스로마 신화>가 맨 처음 나옵니다. 이는 말 그대로 ‘신화’인데, 크리스천들이 꼭 읽어야 하나요.
“서양 고전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문명이 있는 곳에는 다 신화가 있었어요. 그리스로마 신화가 다른 신화들보다 우세하게 된 건, 이를 토대로 발전한 서양 문화 덕분이겠죠. 지금 영국과 프랑스, 독일과 이탈리아의 등을 타고 여기까지 온 겁니다. 주류 문화가 됐죠.
신화는 재가공될수록 풍성해져요. 우리나라 ‘단군 신화’처럼 아무도 읽지 않으면 사장되겠죠. 신화란 그 나라 사람들이 해석한 ‘인류의 시작’입니다. 이를 연구하다 보면, 복음과 순방향적인 것도 있고, 역방향적인 것도 있겠죠.
오늘날 ‘그리스로마 신화’를 믿는 사람은 지구상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왜 읽어야 할까요? 인류의 기원을 그렇게 상상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알아야 해요. 그들이 그런 이야기를 만든 이유는 하나님을 몰라서, 모든 것들을 자연발생으로 봤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카오스(Choas)에서 대지의 여신 가이아(Gaia)가 나와서 남편 없이 하늘의 신 우라노스(Uranus)를 낳고, 둘이 사랑의 신 에로스(Eros)를 힘입어 결혼해서 크로노스(Chronos·시간), 히페리온(Hyperion·빛), 오케아노스(Oceanos·바다), 헬리오스(Helios·태양) 등을 낳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아이들이라도 이걸 믿을까요? 인류가 이런 세계관을 가질 수 있구나 하고, 성경과 비교해서 무엇이 더 우위의 세계관인지 판단해 보고, 성경을 택하겠죠.
다음으로 파에톤(Phaethon)은 태양신 헬리오스의 아들입니다. 파에톤은 늘 하늘에 있어야 하는 아버지 대신 어머니 클리메네(Clymene)와 사는데, 친구들이 파에톤에게 ‘아빠도 없는 놈’이라 놀립니다. 그래서 파에톤이 아버지를 만나러 가서, 아버지임을 증명하라고 합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뛰어내리라’던 사탄의 시험 같죠?
헬리오스는 아들 파에톤에게 어떤 소원이라도 들어주겠다고 했는데, 파에톤이 태양 마차를 몰게 해달라고 합니다. 죽을 수도 있으니 안 된다고 말렸지만, 맹세 때문에 결국 들어줍니다. 파에톤은 태양 마차를 몰다 추락해 죽고 말죠.
허락되지 않은 것을 원하다 몰락하는 인간상, 성경과 순방향이죠? 이런 이야기가 250개나 있어요. 그게 바로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입니다. 왜 이름이 ‘변신 이야기’냐 하면, 사람이 나무로 변하거나 사냥꾼이 곰으로 변하거나 하는 이야기들이라 그렇습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베르길리우스(Vergilius)의 <아이네이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 등 3대 비극 같은 그리스 신화들과 로마 신화라 할 수 있는 <변신 이야기>까지 합쳐서 토마스 불핀치(Thomas Bulfinch)라는 19세기 미국 작가가 영어로 정리한 책이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그리스로마 신화>입니다.
그리스로마 신화는 다른 모든 이야기가 패러디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1권에서 가장 먼저 다뤘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과 <맥베스>, <오셀로>도 나왔습니다. 괴테의 <파우스트>에도 그리스 신화 이야기가 나오죠.”
-고전(古典)에 고전(苦戰)해 왔지만, 다시 도전(挑戰)해 봐야겠네요.
“칼을 누가 잡느냐에 따라, 식칼도 흉기도 되지 않습니까. 그 해석자 역할을 우리가 해야 합니다. 모든 이야기는 사람 사는 이야기이고, 그 안에는 교훈이 있습니다. ‘교만하면 죽는다, 욕망은 반드시 파멸을 부른다’ 같은 이야기들로 돼 있습니다. 예수님도 비유로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몰라서 써먹지 못하고 있어 아쉽습니다.
성경에도 여러 이야기들이 있지만, 여성들 이야기는 많지 않습니다. 구약에는 그나마 드보라, 사라, 리브가, 레아와 라헬의 시기 질투도 있는데, 신약에는 여성들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별로 없어요. 그럴 때 고전을 들어 설명할 수 있겠죠.
저는 수가성 여인이 <보바리 부인>과 되게 비슷하다고 느꼈거든요. 이들이 왜 남자들을 계속 만났을까요? 마음이 공허해서 그랬겠죠. 그러다 어느덧 창녀가 돼 있잖아요. 창녀가 되고 싶어서 된 사람이 있겠습니까? 소녀들은 다 자라서 잘 살고 싶죠. 하지만 누군가는 창녀가 되고, 누군가는 이혼녀가 되고, 누군가는 자식에게도 버림받는 여자가 됩니다.
고전에 곧바로 도전하기보다 길잡이용 책부터 읽는 것이 좋은데, 기독교 쪽에서는 아직까지 이 책밖에 없는 것 같아요. 고전을 본격적으로 설명한 책은 있고, 서양 고전 관점에서 성경을 읽어내는 책들도 있지만, 성경적 관점에서 서양고전을 논하는 책들은 많지 않아요.”
-성경도 고전이라고 하는데….
“고전이란 계속 읽히는 책, 유명한 책, 인간의 공감을 끊임없이 드러내는 책, 오래된 책 등의 의미가 다 섞여 있어요. 성경도 고전이라고 하죠. 그 말은 성경을 책으로 보는 거죠.
그러나, 성경은 절대적인 책이죠. 고전은 오독할 수 있기 때문에 해석을 잘해야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지 않아요. 우리가 성경으로 해석돼야죠. 성경이 고전이라는 이야기는 세상 사람들이 하는 말일 뿐입니다. 성경은 절대적인 진리의 책입니다.”
비교와 대조, 글쓰기의 가장 기본
입체감 부여 위해, 반대 가져와야
소설 읽으면 안돼? 전형적 이원론
-어릴 때는 성경만 읽어야 하는 줄 알았어요.
“신앙이 좋은 분들은 그럴 수도 있어요. 그렇게 따지면 왠만한 책은 다 금서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해석자의 눈만 가진다면, 그 책을 읽고도 왜 그 주인공을 따라가지 않아야 하는지를 설명하면서 우리의 것을 더 명쾌하게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보통 글을 쓸 때 내 이론을 명확하게 하려면, 그 이론의 반대 내용의 문제점들을 설명하잖아요? ‘왜 공부해야 하는가’는 공부를 안 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통해, ‘왜 교회를 다녀야 하는지’는 교회에 안 다니면 어떻게 되는지를 통해…. 이런 비교와 대조의 방법이 가장 기본적이죠. 모든 글쓰기의 기본입니다. 반대되는 부분을 안 가져오면, 입체감이 떨어집니다.
그림이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발달한 것이 원근법입니다. 그 이전 그림은 2차원으로 보이는데, 르네상스 이후 그림은 멀리 있는 것과 가까이 있는 것에 차이가 나죠. 입체감을 준 것입니다. 설교에도 입체감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다면, 설교에서 사탄 이야기도 하면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탄 이야기, 사울 이야기 다 없애야죠. 성경은 망한 이야기들도 다 남아 있고, 심지어 다윗 같은 인물이 간음하고 살인한 이야기도 그대로 실렸습니다.
소설을 보면 안 된다는 것은 전형적인 이원론이죠. 그렇게 생각하시는 목사님들은 아마 토요일엔 성관계도 안 했을 거예요. 그 시절엔 그랬습니다. 목사라면 여자를 멀리하고, 강단에서 주무셨을 거예요. 그런데 지금도 그렇게 전하고 있다면, 그 교회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현대 문화 현상도 크리스천으로서 해석할 수 있어야 하잖아요. 성도님들에게 고전 강의를 다 했더니, 고전에 자기 삶의 이야기가 있는 줄 몰랐다고 합니다. 끝에는 항상 성경 말씀과 신앙으로 연결해 드리니, 신앙의 진보도 많이 나타났고요.
영적으로 잘 성장하지 못하면, <안나 카레니나>의 안나처럼 ‘왜 우리 남편은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가’ 하게 될 수 있습니다. 남편이 직장생활 마치고 집에 와서 낭만적으로 뭔가 해줄 시간이 있을까요? 그건 영화나 드라마가 현실을 속이는 겁니다. 그런 드라마에 빠져 살다 보면, 보바리 부인처럼 바람이 나거나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할 수 있어요.
여자들은 잘 유혹당하지 않으니 죄를 지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데, 마음이 공허하면 낭만적인 상대가 나타났을 때 심쿵 해서 불륜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남자는 말할 것도 없고요. 성경에도 나오지 않습니까.
-목사님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인가요.
“어려운 질문이지만, 최고의 문학가는 <신곡>을 쓴 단테(Dante Alighieri)라고 생각합니다. 단테를 비롯해 호메로스와 셰익스피어, 괴테까지 왜 4대 시성이라고 하는지, 읽어보면 정말 대단하죠.
그런데 이번 책을 쓰면서, 여성 주인공의 작품들에 흥미가 생겼어요. 여성들에 대한 공부가 많이 됐어요. 목회자로서 여자는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였어요(웃음). 그런데 고전을 통해 여자들이 왜 우울증에 걸리고 쇼핑에 중독되고, 불안에 늘 시달리는지 어느 정도 알게 됐어요.
여성 성도들을 대함에 있어 많은 공부가 됐죠. 제가 도덕을 강조한다 해서 성도들이 바뀌지 않아요. 마음 근원이 치유돼야 함을 알았어요. 복음을 전하는 방식이 좀 달라졌다고 할까요? 성도들에게도 강요하는 방식보다, 이미 외롭고 공허한 그 마음을 주님과의 교제 속에서 풀어주는 방식으로 가게 됐습니다.
가르치고 교훈을 준다 해서 성도들이 따라오는 게 절대 아니에요. 공감되어서 본인이 변하고 싶어도, 의지만으로도 안 되죠. 주님께서 정말 내면을 채워주셔야 해요. 고전 읽기와 공부가 제 목회 방향에도 많은 유익이 있었어요.”
-앞으로의 계획은.
“세미나를 통해서 인문학을 보급하는 사역은 계속 하고 있어요. 10기까지 했는데, 평신도가 10% 정도이고 목사님들이 주로 오세요. 한국교회에 더 알려야죠. 글을 쓰는 것보다 운동을 일으키는데 좀 더 관심을 가지려 합니다.
최종 목적은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제 사역지가 킹덤처치연구소이고, 교회를 잘 세우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모든 책과 교재 집필은 교회를 세우는 데 봉사하기 위함이지, 책 자체로는 의미가 없어요.”
◈이종필 목사는
학부에서 독일문학을 전공한 후 신학에 본격 입문했다. 하나님 나라를 구현하는 교회운동 ‘킹덤처치’에 인문학을 접목해 젊은 세대에 공감을 얻는 복음 사역을 하고 있다. 인간에 대한 통찰과 성경을 연결하는 설교로 유명하다. 문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열정으로 그가 개척한 교회는 건강한 공동체로 성장했으며, 많은 교회들에 영감을 주는 모델이 되고 있다.
열정적인 성경 연구와 인문학 지식을 바탕으로 다양한 양육교재를 만들었고, 킹덤처치연구소 사역을 통해 국내와 세계 각지 목회자들에게 새로운 시대에 맞는 복음 사역에 대한 이론과 구체적인 방법론을 동영상과 줌을 통해 나누고 있다. 특히 하나님 나라 개념을 중심으로 한 교재들 《하나님나라 성경관통 워크북》(넥서스크로스)과 《하나님나라제자훈련 워크북》(목양)을 개발해 목회자를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