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강 목사, 한국개혁주의설교연구원 특강 전해
부흥 방법 없어… ‘부흥주의’ 경계
하나님 긍휼하심 속 주권적 은혜
우리 불쌍히 여겨 달라 기도할 뿐
하나님 역사와 성경의 교리 정돈
체계화한 것이 개혁주의 아닌가?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교훈 체계
한국개혁주의설교연구원(원장 강문진 목사) 설립 31주년 기념세미나 마지막 날인 23일, 서문강 목사(중심교회 원로)가 ‘주의 일을 이 수 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라는 제목으로 ‘부흥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마지막 특강을 전했다.
서문강 목사는 “6개월 전 美 애즈베리대학교에서 일어난 ‘부흥 현상’은 우리에게 ‘부흥’에 대한 생각을 일깨웠다. 실로 ‘부흥’이란 주제는 거대하고 영광스러운 주제가 아닐 수 없다”며 “‘부흥’은 하나님 이름과 나라와 그 뜻의 영광의 측면에서나,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백성들의 복락 측면에서나 거대한 주제이다. 마치 구약과 신약 시대 구속사의 반지(斑指)에 박힌 ‘최고가의 다이아몬드’와 같다”고 운을 뗐다.
서문 목사는 제목 속 하박국 본문(3:2-18)의 ‘부흥’에 대해 “하박국은 이전에 (어떤 현실도 하나님의 통치와 섭리의 수중에 있음을 알고 있기에) 현실을 주목하며 하나님의 행사를 이해하려 했지만, 이제 ‘기가 막힌 현실에도 기록된 묵시(성경)로 계시된 하나님의 정한 뜻, 그의 사랑하시는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그 이름의 영예를 위해 나라를 이루시려는 소망과 위로로, 더 능동적으로(actively) 구원의 주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사람이 됐다”고 평가했다.
이어 “교회들 중 ‘우리 교회에 부흥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지 않는 교회가 있을까. ‘부흥’이란 어휘만큼 교회에서 많이 사용되는 단어도, 사람에 따라 다양한 뉘앙스를 가진 단어도 없을 것”이라며 여러 학자들의 ‘참된 부흥’에 관한 견해를 소개했다.
먼저 18세기 미국 교회의 영적 각성과 부흥의 중심에 있던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는 “성경이 말하는 대로 곧 사도들이 택한 자들의 믿음으로 명시한 대로 믿는 믿음의 역사가 무기력하던 어떤 사람에게서 보이면, ‘그가 성령께 이끌려 참되게 회심하여 구원 신앙에 이른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부흥’ 개념은 새로 회심하는 자가 급작스럽게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주목하면서도, 그 역사의 진정한 표지는 각 개인의 참된 회심, 또는 거듭남에 치중하고 있다고 보았다”며 “이는 흔히 ‘부흥 개념’에 ‘내면의 본질적 변화보다 숫자의 갑작스런 증가 현상’을 떠올리는 것을 극히 경계하게 한다”고 소개했다.
20세기 최대 성경 강해설교자이면서 ‘참된 부흥’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찼던 ‘부흥 신학자’ 마틴 로이드 존스(D. M. Lloyd- Jones, 1899-1981)는 교회사 속 ‘부흥 시대들과 그때 부흥의 중심에서 은혜를 입고 소명받은 사람들’을 집중 연구했다.
로이드 존스는 “부흥의 진수는 성령께서 함께 모인 사람들 위에 임한다는 사실이다. 교회 전체 또는 다수의 교회들, 어느 지역이나 혹은 한 나라에 임하시는 것”이라며 “부흥이란 성령의 임재하심 또는 다른 용어로 성령의 부어주심이다. 그 효과로 참여한 사람들이 영적인 것을 의식하기 시작한다. 부흥은 하나님의 은혜가 소낙비 같이 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외에 윌리엄 스프레이그(William Buell Sprague, 1795-1876)와 이안 머레이(Iain H. Murray, 1931-)의 부흥론을 소개한 뒤, 서문강 목사는 “흔히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심령 부흥회’라는 간판을 걸고 집회를 하는데, 이는 흔히 무슨 방도로 ‘부흥하게 하시는 하나님 은혜’를 끌어들일 수 있다는 개념을 갖게 할 수 있다”며 “이렇게 귀하게 사모할 부흥이 일어나는 일정한 방식이나 도식을 세울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로이드 존스 목사는 ‘부흥에는 방법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는 ‘부흥 이야기를 읽어 보라. 특별하게 사용한 방법이 없다. 그러므로 그런 방법 차원으로는 부흥을 설명할 수 없다”며 “이안 머레이도 ‘부흥’에 도식이 있어 그 방식대로 하면 부흥이 일어나게 할 수 있다는 ‘부흥주의(revivalism)’를 지극히 경계한다”고 밝혔다.
서문강 목사는 “부흥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원한 목적을 따라 백성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의 행사다. 그래서 우리는 오직 우리를 불쌍하게 여기시어 그 부흥을 주옵시기를 기도할 뿐”이라며 “그래서 우리는 하박국의 간구를 우리 간구로 여겨야 한다. 구약 시대부터 구속사의 전체 줄기는 ‘죄 가운데 죽어 있는 죄인들 중 택하신 백성들’을 찾아오시어 그 이름과 나라와 영광을 드러내 당신의 일을 부흥케 하신 하나님 역사(役事)의 역사(歷史)였다.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교회사의 줄기도 그런 역사(歷史)였다”고 전했다.
서문 목사는 “사도 시대와 이후 초대교회, 교부시대 신학 논쟁과 교리적 정돈, 4-5세기 어거스틴의 은총론 논쟁, 16세기 종교개혁과 이어진 청교도 시대, 18세기 영적 대각성과 부흥 시대, 19세기 여러 부흥 사례들, 20세기 초엽 부흥 사례들의 줄기를 따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을 부흥케 하셨다. 여기서 개혁주의가 탄생한 것”이라며 “이런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 성경의 교리를 정돈하고 체계화한 것이 바로 개혁주의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개혁주의는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훈 체계다. 개혁주의 교리 중 치열한 영적 공방과 갈등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편향된 몇몇 신학자의 사견(私見)’의 표현은 없다”며 “개혁주의 신학은 거룩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공론(空論) 과정을 통해 나온 교훈 체계(롬 6:17-18)”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언제나 그런 하나님의 행사를 대항하는 악한 사탄이 계몽주의·합리주의·인본주의를 총동원해 자유주의를 탄생시켰고, 20세기에는 교회성장주의라는 ‘기가 막힌 교회 부흥 대안’을 제시했다”며 “그러나 교회성장주의가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세속주의와 찰스 피니적 ‘방법론에 입각한 부흥주의’와 합해, 교회 거룩성의 막을 다 훼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문강 목사는 “참된 부흥은 하나님의 이름과 나라와 그 영광의 목적과 그에 수반된 택한 백성들의 구원과 거룩하게 하심의 불가항력적 세력의 표현이기에, 우리는 그 부흥을 사모해야 한다. 참된 부흥의 진위는 ‘부흥의 현상’ 자체가 아니라 ‘그 열매’로 판단돼야 한다”며 “부흥 시대가 지나서라도 받은 은혜를 따라 섬기는 자들로 이어지게 하시는 하나님의 행사가 아름답다. 하나님께서는 피로 값주고 사신 교회를 그냥 버려두지 않으실 것이다. 그것을 바라고 주님 은혜 안에서 복음에 철저하게 충실한 교회상을 견지해야 할 것”이라고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