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 열쇠는 문해력이다! 6] 간절한 물음으로 큐티를 시작한다!
큐티, 말씀 해석과 적용 중요하나
‘간절한 물음’으로 말씀 앞에 서야
비기독인들, 정보력으로 정답 찾다
‘전문가들’에 낚여 욕망의 노예로
말씀 읽기만 해선 문제 해결 안돼
간절함, 하나님 말씀 문 여는 열쇠
“문이 막히면 담을 넘으면 되지 않습니까?”
푸실이의 말에 아씨는 반문한다.
“뭐라? 그 책에 담을 넘으라 쓰여 있더냐?”
“아닙니다. 책에서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도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라고 했습니다. 힘차게 나아가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가씨 말씀에 귀 기울이고 힘차게 나아갈 방법을 생각한 것입니다.”
“그렇구나. 너는 담을 넘은 아이구나.”
김정민님의 동화책 <담을 넘은 아이>의 한 장면이다. 주인공 푸실은 어떻게 ‘담을 넘는다’는 생각을 해냈을까? ‘여군자전’이라는 책에서 ‘힘차게 나아가라’는 글을 읽고, 힘차게 나아갈 방법을 생각하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어린 소녀는 자신이 맞닥뜨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간절한 물음을 품었던 것이다.
주인공 푸실이뿐 아니라 현대를 사는 우리도 질문을 품고 있다. 하지만 푸실이처럼 담을 넘을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녀처럼 간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래 전 일이다. 교회 수련회에서 어느 성도님이 물으셨다.
“아니, 꼭 통성으로 기도해야 하나님께서 들어주시는 건 아니잖아요?”
계속해서 이어지는 통성기도가 힘드셨나 보다. 그 분께 말씀드렸다.
“기도는 소리 크기가 아니라 진정성 문제입니다!”
당연히 데시벨이 높아져야만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시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소리를 질러가며 기도를 하는 걸까? 간절하기 때문이다. 그 간절함에, 데시벨이 자동으로 올라간다. 바꿔 생각하면, 소리만 냅다 지른다고 간절한 기도는 아닌 것이다.
큐티도 마찬가지다. 성도들은 하나님 말씀을 잘 해석해서 하나님 뜻을 찾아내는 것이 큐티라 생각한다. 그 하나님 뜻을 실천하기 위해 나 자신에 어울리는 적용을 하는 것에 집중한다. 큐티를 쉽게 하는 방법을 찾아다니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먼저 해야 하는 것이 있다. ‘간절한 물음’을 품어야 한다.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한 우리는 갈급함으로 하나님 말씀 앞에 서기 때문이다.
그 간절함이 하나님 말씀을 보는 눈을 뜨게 하고, 듣는 귀를 열게 한다.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깨닫고, 내게 하시는 말씀이 우리 마음에 와 닿게 된다.
그러니까 ‘간절한 물음’은 자동차키와 같다. 간절한 물음이 없으면 큐티를 할 수 없는 이유다. 아무리 자동차를 잘 다루고 안전하게 운전을 할 줄 알아도, 차키가 없으면 시동을 걸 수 없기 때문이다.
간절한 물음은 성도들뿐 아니라 세상 사람들도 품고 있다. 일상에서 벽에 부딪힐 때마다 자문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세상 사람들은 그 질문을 ‘정보력’으로 해결하려 한다. 암호화폐며 챗GPT며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는 것들을 좇아 우르르 몰려다닌다. 그런 그들을 ‘낚기 위해’ SNS에서 혹은 메신저에서 그물을 내리고, 저마다 전문가라며 외친다. 사람들이 정답을 찾다가 그들의 그물에 낚여, 욕망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인생은 정보력으로 되지 않는 것들이 많다. 해답을 얻는 열쇠는 정보력이 아니다. 제대로 된 답을 들을 수 있는 분께 질문을 해야 한다. 인생의 답을 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 한 분이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앞에 서야 하는 이유다.
만약 하나님 말씀을 읽기만 해도 우리 인생 문제들이 해결된다면, 큐티를 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하나님 말씀이 우리 말씀으로 적용되기 위해서는 ‘간절한 물음’으로 열어야 한다. 간절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여는 열쇠인 것이다.
이제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펼치고 시동을 걸자. 하나님 말씀이 움직이게 된다.
이석현 목사
블로그 읽고 쓴다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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