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변화시키는 설교노트 22] 피드백 비교
듣는 사람 받아들일 만큼만 전하라
본문 현재화 위해 스토리 사용하라
저격용 총 대신 산탄총 쏴선 안 돼
설교, 정보 아닌 메시지 전달 시간
보수 교단 목회자들 특히 주의해야
본문에서 조금 자유해질 필요 있어
이 시점에서 보수 교단 목사님들의 강점이자 동시에 단점으로 작용하는 문제를 톺아보고 싶습니다. 필자가 알기로 고신 교단만큼 본문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존중하는 교단은 없습니다.
김영봉 목사님(감리교)께 제 설교 원고를 보내드리고 피드백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광주은광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재직하신 전원호 목사님께서 제 설교를 피드백해 주신 부분과 상당히 상반된 내용이어서 소개하고 싶습니다.
먼저 김영봉 목사님의 피드백에서 장점으로 짚어주신 부분을 먼저 소개하겠습니다.
1. 우선 문장을 깔끔하고 명료하게 쓰신다는 점을 칭찬하고 싶습니다. 목회자들 중 이렇게 명료하고 깔끔하게 자기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문장에 관한 한 고칠 것이 거의 없을 정도로 문장 훈련이 잘 되어 있다는 점에 놀랐습니다.
2. 본문에 대한 존중심 또한 칭찬하고 싶숩니다. 본문 배경 연구와 본문 자체에 대한 연구에서 설교를 구성하고, 끝까지 본문 흐름을 따라 가는 점이 아주 좋습니다.
이어 전원호 목사님께서 저에게 해주신 피드백을 소개하겠습니다.
1. 지 목사의 설교는 본문에 대한 접근이 신선하다. 삶에 대한 적용이 구체적이다. 듣고 나면 남는 것이 있다. 공부한 보람이 있다.
2. 지 목사는 본문이 약하다.
흥미로운 부분이 보이지 않습니까? 본문에 대한 평가입니다. 김영봉 목사님은 필자의 설교를 보고 본문에 대한 존중심이 대단히 좋다고 평가하셨습니다. 반면 제가 모신 목사님은 제 설교에 본문이 약하다고 평가하셨습니다. 고신에서 뿌리가 깊은 목사님은 필자에게 본문이 약하다고 하시고, 감리교 목사님은 본문이 강하다고 하십니다.
이 사실이 고신 교단(보수 교단이라 바꿔 읽어도 좋습니다)에 속한 설교자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고신 교단에 속한 설교자는 본문을 너무 중요하게 여긴다는 사실입니다.
고신 목사에게 본문 존중은 DNA와 같습니다. 본문을 중요하게 여기고, 본문 중심으로 설교하고, 본문을 설교합니다. 이것은 분명 장점이자 강점입니다. 하지만 당혹스럽게도 약점이자 문제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김영봉 목사님이 제게 해주신 피드백 단점이 무엇인지 소개하겠습니다.
1. 설교자도 그렇고 글을 쓰는 사람도 그렇고 자주 끌리는 유혹이 하나 있습니다. 자신이 발견하고 깨닫고 배운 지식을 모두 전하고 싶은 욕심입니다. 요즘 그것을 TMI라고 하던가요? 설교자가 본문 배경을 연구하고 본문 자체를 연구하는 것은 숙제입니다. 그 숙제를 마치고 설교로 넘어가면, 이제 communicate해야 합니다. 커뮤티케이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이지요. 말하는 사람이 말하는 만큼이 아니라 듣는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만큼이 중요합니다.
목사님께서는 숙제를 통해 얻은 여러 가지 발견과 지식과 정보를 모두 사용하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지루하거나 복잡하거나 짜증이 나는 일입니다. 설교를 통해 지향하는 하나의 메시지를 위해 꼭 필요한 정보들만 사용하고 나머지는 아까워도 다음을 위해 예비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2. 교단 배경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만, 저는 설교에서 스토리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예화집에서 찾을 수 있는 스토리 말고, 설교자가 직접 겪었거나 읽은 스토리를 말합니다. 그런 스토리는 과거의 본문을 현재화시키는 일에 큰 도움을 줍니다.
목사님의 설교는 성경 강해식입니다. 그러다 보니 스토리가 별로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되면 평신도로서는 조금 추상적인 신학 이론을 전달받은 정도가 되고 말겠지요.
필자가 보내드린 설교 원고는 ‘요한복음에 나타난 7가지 이적의 의미’를 추적하는 설교였습니다. 이 이적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찾아가는 형식의 설교여서, 강해식 설교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요점은 명확합니다. 본문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귀한 전통입니다. 고신 교단 소속 목사는 물론, 보수 교단에 속한 설교자의 가장 강력한 강점에서 당황스러운 문제가 발생합니다. 본문을 너무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본문을 전부 다 다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립니다.
본문을 존중하기 때문에 본문으로 삼은 모든 구절을 다 다루어야 한다는 생각, 본문에 나타난 중요한 단어를 다뤄야 한다는 생각, 그 안에 중요하게 다가온, 연구하면서 발견한 내용을 다뤄야 한다는 생각이 문제를 일으킵니다.
본문에서 발견한 모든 것을 강조해서 가르치면, 자연스럽게 설교 초점이 흐려집니다. 집중력이 사라지고 산만해집니다. 저격용 총이 아니라 산탄총을 쏴대는 느낌입니다.
본문을 존중한 나머지 청중 존중이 약해집니다. 심할 경우 청중을 간과합니다. 강단에서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니 청중석에 앉은 사람은 무조건 들어야 한다는 식으로 전락할 수도 있습니다.
기억해야 합니다. 설교는 설명이 아닙니다. 강의도 아닙니다. 설교는 설교입니다. 설교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시간이지, 정보를 전달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내가 말하는 만큼 다 들어야 한다는 식이 아니라, 청중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로 압축해서 전달해야 합니다.
보수 교단에 속한 설교자라면 성경 본문에서 조금은 자유하셔도 좋습니다. 어지간해서는 뼛속까지 각인된 본문 존중 태도를 벗어나지 않고,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설명이 아니라 설교라는 사실을 기억할 때, 삶을 변화시키는 설교는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지혁철 목사
잇는교회 개척
<설교자는 누구인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