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희 교수 <불멸의 화가 카라바조>
성경 속 인물들 화려한 장식 피해
노인 베드로 등 사실적으로 그려
십자가 순간조차 진실 표현 추구
극명한 명암 대비, 극적 효과 연출
자연 장식 아닌 특별한 의미 부여
인간 가치와 종교적 의미도 담아
정물화 속 정물, 하나님 창조물로
성경 속 소재들도 강렬함 선택해
불멸의 화가 카라바조
고종희 | 한길사 | 420쪽 | 120,000원
바로크 미술을 탄생시킨 거장이자 개신교인들 눈에도 낯익은 여러 성화(聖畵)들을 남긴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1571-1610)의 ‘모든 것’을 담은 책이 발간됐다.
<불멸의 화가 카라바조>는 카라바조의 흔적과 작품을 따라 길쭉한 이탈리아 국토 전역을 다니면서 작품 세계를 깊이 연구해온 미술사학자 고종희 명예교수(한양여대)의 ‘작품’이다. 고 교수는 1983년 이탈리아 국립피사대 미술사학과에서 카라바조를 접했고, 이후 책과 사료들을 모아 집필을 완료했다.
이 책은 한 번 보면 잊혀지지 않을 없을 정도로 강렬한 인상의 카라바조 작품 총 73점을 가로 24cm, 세로 28cm 대형 판형에 담아 수록하고 있어, 독자들에게 그의 작품을 직접 감상하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책은 이름부터 예술가 같은 ‘카라바조’가 그의 원래 이름이 아니며, 그가 태어났다고 알려진 마을 이름이라는 점을 폭로(?)하면서 시작한다. 그의 본명은 미켈란젤로 메리시(Michelangelo Merisi). 왜 이름이 아닌 지명으로 불려야 했는지 이해할 만하다.
더 큰 폭로(?)도 이어진다. 이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가 태어난 마을이 정작 카라바조가 아니라 밀라노였음이 2007년 밝혀진 것. 이탈리아 현지에서는 핵폭탄급 사건이었지만, 우리나라에선 이 책을 통해 알려지게 됐다. 그래도 ‘밀라노’보단 ‘카라바조’가 어울린다.
카라바조는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e, 1452-1519), 티치아노(Tiziaon Vecillio, 1490-1576), 틴토레토(Tintoretto, 1518-1594) 등 낯익은 거장들의 걸작을 보면서 성장했다. 저자는 카라바조가 도제 시절과 여행, 성화 복제 경험 등을 통해 자신만의 화풍을 정립해 가는 과정을 소개한다.
“지혜로운 사람에게 헛된 경험이란 없는 듯하다. 카라바조의 천재성은 기존 작품을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여 완전히 다른 장르로 탄생시킨 데에 있었다. … 그의 그림에는 정교한 기법 외에도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그 무엇이 있었다. 고위 성직자들도, 귀족들도 그를 아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의 그림에 매료되었다.”
성화를 많이 그렸는데, 신앙은 어땠을까. 종교개혁이 한창이던 1600년 전후, 그는 가톨릭 지역에 속했다. 그 시절 기록에 따르면, 카라바조는 본당 미사에 참여해 성체성사와 고백성사 등 가톨릭 신자로서의 의무를 이행했고, 무려 3일 이상 지속된 부활절 행사에도 참여하는 등 신앙생활을 충실히 한 것으로 보인다.
카라바조의 성화는 그의 가장 중요한 후원자이기도 했던 페데리코 보로메오(Federico Borromeo, 1564-1631) 추기경이 쓴 <성화론(De Pictura Sacra)>의 영향을 받았다. 이에 성경 속 인물들을 그릴 때 화가와 동시대인들의 복장을 하고, 화려한 장식을 피했으며 서민들을 가난하고 주름진 얼굴로 그렸다. 많은 작품들에 등장하는 붉은색 천이나 옷은 부활 또는 승리의 상징이었다.
성경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것도 중시해, 베드로의 순교 장면에서 노년의 베드로를 흰 대머리에 늘어진 피부의 노인으로 그렸고, 다메섹 도상의 사울은 검은 머리의 젊은이로 그렸다. 의상과 나이를 비롯해, 십자가에 달리는 순간조차 가장 진실하게 표현하고자 했다.
카라바조 작품은 명암 대비를 극명하게 사용해 극적 효과를 연출할 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어두운 색조를 띠게 하는 ‘테네브리즘(Tenebrism)’ 기법이 특징이다. 인물의 입체감을 강조하는 이 화법은 17세기 바로크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가장 위대한 개신교 화가 중 한 명인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도 마찬가지. 저자는 “카라바조가 없었다면 렘브란트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라고 묻는다.
성경 속 위대한 인물들에게도 권위 대신 인간적인 모습을 부여하는 등 전통적 도상을 벗어나 새로운 해석을 시도했다. 고종희 교수는 책에서 그의 성화들을 하나하나 상세하게 신학적 의미까지 해석해 전달해 주고 있다. 가난한 이들을 모델 삼아 어떤 꾸밈도 장식도 없이 있는 그대로 평범하게 그렸다는 대목에서는 렘브란트나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도 떠오른다.
그림 자체도 강렬하지만, 성경 속에서 길어온 소재들 자체도 강렬한 것들이 많다. 골리앗의 목을 베는 다윗을 여러 작품 남겼고, 가시관을 쓴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의 죽음, 못자국에 손을 넣어보는 도마와 다메섹 도상에서 눈이 머는 사울(바울), 희생제물이 되기 직전의 이삭과 세례 요한의 (잘린) 머리를 들고 있는 살로메 등 유독 극적인 순간들을 상상으로 포착해냈다.
이들 중 칼을 들고 있는 주인공들이 많은데, 카라바조는 실제로 우연찮게 살인을 저질렀다. 당시 이탈리아 가톨릭 세계에서 최고 주가를 올리며 작품 의뢰를 받던 화가 카라바조는 오늘날 테니스 경기와 비슷한 공놀이 ‘팔라코르다(Pallacorda)’를 하던 중 싸움이 일어나 서로를 칼로 찔렀는데, 상대는 사망했고 그는 부상을 당한 것이다. 그는 하루아침에 도망자 신세가 돼 로마를 탈출해야 했고, 생애 마지막 4년 동안 이탈리아 남부를 전전하다 40세도 되기 전 세상을 떠나는 비극적 운명을 맞았다.
저자는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종교를 주제로 한 그림들이 개신교 지역에서 금지되자, 화가들이 살 길을 찾아 개척한 분야가 바로 풍속화, 정물화, 풍경화였다”며 “카라바조가 그리면 정물화도 특별해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부분 인물화 속에 정물을 포함시키는 방식으로 정물화를 그렸으나, 인물 없이 정물만 그린 그림도 몇 점 남아 있다. 그리고 시들고 썩은 과일과 식물들을 모델로 삼았다.
“그는 자연을 단순한 장식물로 보지 않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카라바조 연구자들은 이 작품이 인간의 가치와 종교적 의미까지 담았다고 해석한다. 그는 정물을 신의 창조물로 인식했고 거기서 인간을 보았다.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을 정물에 투영했고, 인간의 생로병사를 보여주었다.”
바로크 미술의 시작점이자 자연주의 회화 양식을 대표했던 카라바조는 시대를 뛰어넘은 천재들이 그러했듯 오랜 기간 부정적 평가를 받아오다, 19세기 말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 1819-1897)의 사실주의 회화와 함께 새롭게 조명받기 시작해 20세기 들어 본격 연구가 시작돼 전성기를 맞이했다.
동아일보에 의하면 고종희 교수는 지난 8월 22일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카라바조가 그린 성경 속 인물들은 신발도 신지 않은 맨발이었다”며 “꾸밈없는 진실한 인간 세상을 그린 카라바조의 작품이 개신교가 추구하는 시대정신과 맞아떨어졌기에 한 시대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라고 해석한 바 있다.
카라바조의 대표작 중 하나인 ‘뱀에 물린 청년(뱀에게 물린 소년)’은 현재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10월 9일까지 진행되는 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에서 감상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유명 화가들의 대표작 50점을 전시하는 전시회를 대표하는 포스터 그림으로 뽑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