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성경 18-5] 바나바와 바울의 영원한 우정 (5)
고린도전서 9장 5절에 힌트 남아
바울처럼 미혼으로 자비량 사역
바울도 결국 마가 용서하고 용납
바나바 행전 단서? 위경 못 믿어
8. 바울과 결별 이후 바나바의 행적
이처럼 마가로 인하여 바나바와 바울은 다른 전도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이후 이 둘의 관계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것이 많은 기독교인들이 가진 초미의 관심사입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성경은 더 이상 바나바의 행적에 대해 다루지 않기 때문에, 둘의 관계가 어떻게 됐는지는 추측의 영역에 남을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의 관계에 대해 성경에 하나의 힌트가 남아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고린도전서 9장 5-6절입니다. 여기에서 바울은 “자신과 바나바만이 아내를 얻을 권리가 없고 또 일하지 않을 권리가 없느냐”고 반문합니다. 즉 바나바는 아직도 살아 있으며, 바울처럼 결혼을 하지 않았고 자비량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기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는 바울이 제3차 전도여행 초기 에베소에서 3년간 지낼 때 쓴 편지입니다. 이 시기는 바울이 바나바와 헤어져 제2차 전도여행을 떠난 뒤부터 거의 3-5년 정도 지난 시점입니다.
즉 바울과 바나바의 관계는 제2차 전도여행에서 서로 헤어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바울이 제3차 전도여행을 시작한 에베소에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바울이 쓴 편지 내용을 볼 때, 바울은 바나바와 아직 연락이 끊어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서로의 사정을 잘 이해하고 아직도 우정을 나누고 있는 사이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만일 둘의 관계가 지속되지 않고 껄끄러운 관계였다면, 바울은 굳이 이 편지에서 바나바의 이야기를 꺼낼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오히려 자신의 처지와 매우 비슷한 바나바의 예를 꺼냄으로써, 이들의 관계가 아직도 잘 유지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이다.
대부분의 다른 사도들과는 다르게 바나바도 바울처럼 결혼을 하지 않았고 생계를 위하여 일을 하고 있는 사실을, 바울은 사도로서 또 자유인으로서 자신의 입장을 보강하는 예로 꼽은 것입이다. 이런 점에서 바나바의 우정은 마가 사건 이후에도 흔들리지 않고 지속되고 있음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점을 고려해볼 때, 마가 사건 정도로는 이들의 우정을 갈라놓을 수 없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단지 마가의 행동을 바라보는 눈이 서로 달랐을 뿐이었습니다. 바울의 고지식한 사고 방식은 젊은 마가의 철없는 행동을 용납할 수 없었고, 가슴이 우주처럼 넓은 바나바는 언젠가 마가가 회개하고 다시 돌아올 것을 알았기 때문에 기다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머지않아 바울도 마가를 용서하고 받아들이게 된 사실을 성경에서 읽어볼 수 있습니다. 골로새서 4장 10절에 따르면 마가는 바울과 함께 로마에서 가택 감금을 당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특별히 마가가 골로새 교회를 방문할 때 “부정적으로 보지말고 따듯하게 대접할 것”을 지시합니다. 왜냐하면 골로새 교인들은 마가와 바울의 이전 관계를 잘 알고 있어, 자칫 마가를 섭섭하게 대접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이런 당부는 바울이 마가를 진심으로 용서하고 동역자로 삼았음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골로새서와 함께 쓰여진 빌레몬서 1장 24절도 마가를 분명하게 동역자 중 한 명으로 호칭합니다.
그리고 디모데후서 4장 11절은 마가가 바울의 사역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보여줍니다. 로마 가택 연금에서 풀려났다가 상황이 급격히 변하여 재수감되자, 바울은 디모데에게 마가를 데리고 오라고 편지합니다. 여기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가 나의 일에 매우 유익하니라”고 하여, 이제 마가가 화해 정도가 아니라 바울 사역의 중심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바울과 끊임없이 우정을 지속해 나눴던 바나바의 최후에 대해 정확하게 알려진 것은 없습니다. 다만 우리에게 남아있는 자료는 <바나바행전>인데 이 위경은 바나바가 구브로 섬에서 순교당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편지가 기원후 5세기경 쓰여졌다는 점입니다. 구브로 교회가 안디옥 교회 감독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가짜 <바나바 행전>을 통하여 정치적으로 사용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즉 의도적으로 바나바가 구브로에서 순교당했음을 주장해, 구브로 교회 위치를 안디옥 교회와 동등하게 높이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역사적 고증을 거쳐 쓰여진 것이 아니라 구브로 교회의 이익을 위하여 만들어낸 주장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 문서의 한계입니다.
결국 바나바가 마가 문제로 바울과 헤어진 이후 어떤 삶을 살았고 또 어떤 최후를 마쳤는지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습니다. 바울이 회심한 후 제2차 전도여행을 시작하기 전까지 순수함으로 불타 올랐던 바나바의 우정은 이제 더 이상 그 행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바나바의 후기 행적이 미궁에 빠지게 됨으로 말미암아, 바울과 바나바 사이에 있었던 뜨거운 우정에 대한 후대의 관심도 빨리 식어버리게 됩니다.
보통 사람들 흉내내기 힘든 우정
초기 상황 유추해 결론 추정해야
하나님 구속사역 성취 중요 역할
크나큰 그릇 바나바, 바울 이끌어
9. 나가는 말
신약 성경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기록된 문서가 아닙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재림이 멀지 않아 곧 일어날 것이라 생각하여 자세한 기록을 거의 남기지 않았습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당대에 재림이 있을 것이라 믿었던 바울은 모두 13개 편지를 남겼는데, 이 편지들은 모두 특정 교회의 특정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것들이었습니다. 즉 후대를 위한 기록을 남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또 남기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예수님을 직접 목격한 자들이 점점 세상을 떠나면서 재림이 늦어지는 것이 보여지기 시작하자, 비로소 복음서나 역사서가 쓰여지게 된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초대교회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남아있지 않고, 많은 부분은 추론에 의지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바나바와 바울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로 성경에 기록된 이들의 초기 우정을 보면 보통 사람들은 매우 흉내내기 어려운 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남아있는 기록은 매우 짧으며, 따라서 초기 상황을 유추하여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는 실정입니다.
결국 구약의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이나 신약의 바울과 바나바의 우정은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성취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이처럼 각 시대마다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 필요한 우정이 있었던 것처럼, 지금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우정이 어느 곳에선가 빛을 발하고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속 사역을 위하여 필요한 시간에 또 필요한 곳에 하나님의 사람들을 심어 놓으시는 것입니다.
불편부당하고 열린 마음을 가진 바나바라는 크나큰 그릇이 있었기에, 열심과 재능으로 가득찬 바울이라는 커다란 재목이 자랄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재림이 가까운 이 때 교회 모든 구성원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자신의 그릇 크기나 모양에 따라 주어진 역할을 감당한다면, 나도 모르는 사이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재하여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이러한 형제들의 순수한 연합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류관석 교수
대한신대 신약신학
서울대 철학과(B.A.), 서강대 언론대학원(M.A.), 미국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M. Div.),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 (Th. M. 구약 / M. A. 수료), Loyola University Chicago(Ph. D., 신약학)
미국에서 Loyola University Chicago 외 다수 대학 외래 교수
저서 <구약성경 문화 배경사>, <산상강화(마태복음 5-7장)>, <기적의 장(마태복음 8-9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