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록, 한 점의 그림] 장 샤르댕
하녀 그린 작품 ‘시장에서 돌아옴’
집안일 하는 여인과 일 가치 표현
의미 없는 모티브? 아름다운 행실
모럴 강조, 네덜란드 회화의 영향
평범한 사람 아름다움, 깊은 관심
노동, 타인에게 유익 끼치는 행위
우리나라 근대 화가들이 선호하던 유럽 화가로 루오, 고흐, 마네시아 등이 있지만, 장 바티스트 샤르댕(Jean Siméon Chardin)이란 이름도 빼놓을 수 없다.
근대 화가들은 그가 루이 15세의 적극적 후원과 왕립미술원 화가로 활약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시골 화가’로 여기고 각별한 친근감을 표시했다.
그에 관한 화집이나 평전이 없었는데도 샤르댕을 좋아한 것은 그의 작품이 갖는 대상에 대한 따듯한 시선 때문이었다. 또한 서민적이고 토속적인 분위기, 검소한 단색조의 색채가 이를 거들었을 것이다.
장 샤르댕의 시대에는 로코코 양식이 순풍에 돛단 듯 개가를 올린 시기였다. 로코코는 발랄함과 경쾌함 속에 표현되는 부드러운 곡선과 섬세한 장식을 추구하는 미술양식을 말하는데, 당시 사회 구조가 왕실과 귀족 위주로 이루어진 만큼 미술도 그들의 취향 즉 유희적이고 장식적인 귀족적 경향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우리 예상과는 달리, 장 샤르댕은 18세기 프랑스 사회의 분위기에 연연하거나 신경을 쓰는 등 동시대의 풍토에 개의치 않는 대담함을 보였다. 오히려 그는 서민의 소박한 삶을 강조한 17세기 네덜란드 문화 쪽에 기울어져 있다.
그 무렵 프랑스 미술계는 로코코 양식이 성행하였지만 한편으로는 네덜란드 장르화가 소개되어 인기를 끌었는데, 이것이 샤르댕의 작품을 형성할 수 있는 발판이 되어주었다. 샤르댕은 그중에서도 네덜란드 화가들, 곧 니콜라스 마스(Nicholaes Maes), 헤라르트 테르보르흐(Gerdard ter Borch),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의 작품에 호감을 가졌다. 그런 특성을 <시장에서 돌아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시장에서 돌아옴>(The Return from the Market, 1738)은 우리 식으로 하면 정육점과 빵가게를 다녀온 여인을 담아냈다. 여인은 부르주아 가정 하녀이며, 그 집의 아이를 챙기는 일에서부터 음식 준비, 차 끓이기, 청소, 세탁, 장보기 등 집안 허드렛일을 맡고 있다. 홍조를 띤 얼굴을 보면 그녀가 찬바람을 맞고 방금 전에 집으로 돌아와 장마구니를 풀어놓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성은 매우 성실하며 건강해 보이는데, 이것은 집안일을 전담하는 하녀가 갖는 직업적 자부심을 표현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는 “위대한 화가들은 외부 세계에 대해 배우고 사랑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했는데, 이 그림이 그러한 예이다. 혹자는 ‘장보기’라는 의미 없는 행위를 모티브로 삼는 게 대수냐고 물을 수 있지만, 샤르댕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샤르댕에게 있어 그녀가 아름다운 이유는 그녀의 행실이 아름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이 그림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숨어있다. 여인의 시선을 따라가 보자. 그녀는 얼굴을 반쯤 돌려 구석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에 집중한다. 집주인으로 보이는 듯한 한 남성이 젊은 하녀를 향해 무언가 말하는 동작이 눈에 띈다. 그 남성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까? 그림만으로는 대화내용을 파악하기 어렵다.
그 의문에 대한 답은 몇 년 후에 나온 니콜라 베르나르 레피시에(Nicolas-Bernard Lépicié)의 판화에서 찾을 수 있다. 샤르댕의 승낙을 받아 제작한 판화 하단 설명문에는 주인이 “사랑하는 딸아, 나는 네가 집에서 옷값을 훔치고 있다고 알고 있단다”라고 되어 있다. 그녀의 차림새는 스타킹을 신고 리본을 단 모습이 하인치고는 눈에 띄게 화려한 옷차림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판화 버전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우리는 육신을 위해 온갖 노력을 퍼붓는다. 우리 영혼은 이로 인해 신음하고 우리 마음은 고통을 받는다. 우리는 이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 문제를 방치하는 것일까?”
그림은 남의 것을 탐내기, 육신을 위해 치장하는 것과 같은 도덕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같은 모럴(moral)의 강조는 샤르댕 예술이 네덜란드 회화에 크게 빚지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샤르댕이 이 그림에서 강조한 것도 시장에서 장을 보고 돌아온 여인이었다. 마르셀 프루스트 역시 ‘별볼 일 없다고 치부한 일상의 향기’를 내뿜고 있는 여인에 주목하였다.
샤르댕의 평범한 일상적 소재의 관심은 이 외에도 <청소하는 여인>, <가정부>, <비눗방울>, <와인저장고의 소년>, <차를 마시는 여인> 등에서도 연이어 나타난다.
이런 작업 경향으로 미루어, 그는 평범한 사람의 아름다움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는 소박한 정물 풍경이 선사하는 기쁨을 표현한 정물화에서도 동일하게 확인되지만 말이다.
샤르댕은 등장인물인 하녀를 하류 계층의 일원으로 보는 대신, 그녀가 행하는 일의 가치를 존중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통념적 시각이 아니라, 노동을 타인에게 유익을 끼치는 행위로 보았다는 점에 있다. 그런데 우리는 실제 삶에서 그런 사실을 종종 잊는 경향이 있다.
미로슬라브 볼프(Miroslav Volf)의 말처럼 “우리는 행하는 것을 통해 살아갈 뿐 아니라, 넓게 보면 우리는 우리가 행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찮은 일이든 중요한 일이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부여된 일만큼 소중한 것도 없으며, 그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이자 선물이다.
영화 ‘불의 전차(Chariot of Fire)’에서 주인공 에릭 리델의 아버지는 아들을 타이른다. “완벽하게 해내기만 한다면 감자 껍질을 벗기는 일로도 주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단다.”
서성록(안동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