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의 순례자’ 박신일 목사 (2)
“믿음은 어려운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나타나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태도다. … 믿음이 있어도 사용하지 못한다면, 도대체 어떤 믿음인가?”
캐나다 밴쿠버 그레이스 한인교회 박신일 목사는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지난 20년간 이민교회에서 목회하고 있다. 그는 올해 초 <평생의 순례자>에 이어, 기도에 대한 소그룹 교재 <기도의 사람들 1>을 펴냈다. 성경 속 인물들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가 무엇인지 알려주고, 그렇게 기도할 수 있도록 이끄는 책이다.
박 목사는 이 책에서 “기도할 때 주님께 ‘무엇이든지’ 구해도 괜찮을까? 시시콜콜한 것까지 기도하는 것은 염치없는 일일까”라며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자녀이다. 자녀 된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든 상관없다. 기도는 연약한 우리가 전능하신 주님께 드리는 것”이라고 기도하는 이들을 격려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이든 구하다 보면 때로는 내 욕심으로 구할 수 있다. 욕심이 지나쳐서 죄로 흘러 버리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욕심이나 죄를 숨겨서는 안 된다”며 “그럴수록 아주 솔직하게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숨김없이 다 내놓고 기도한다면, 지나친 부분은 하나님이 조정해 주신다. 잘못 구하고 있는 것도 다 알려 주실 것”이라고 강조한다. 무엇보다 기도가 힘든 이들에 대한 ‘처방전’이 실제적이다. 다음은 1편에서 이어지는 박 목사의 목회와 기도 이야기.
영성, 자연스러움, 몸소 중요시해
은혜 받으면, 결국 스스로 움직여
계획했던 일 다 막으셔, 후회 없어
-요즘 드문 일인데, 심방을 오래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니 한번 가면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웃음). 제게는 세 가지 중요한 가치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영성(Spiritual)’입니다. 저는 4대째 목사 집안이지만, 이건 영적으로 별 의미가 없어요. 그래서 영적인 사람이 되려고 계속 노력합니다. 그것이 기도 제목이고, 제게는 소중한 가치입니다.
둘째는 ‘자연스럽게(Natural)’입니다. 욕심을 막 부려서 이것저것 좋다는 걸 막 하기보다, ‘하나님의 타이밍’이 맞으면 합니다. 저희 교회는 모든 성가대 지휘자·반주자들도 다 교인입니다. 외부에서 데려온 사람이 없어요. 공개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사례비도 없어요.
셋째는 ‘몸소(in person)’입니다. 예배당에 3천 명 정도 수용 가능한데, 지난 20년 동안 교인이 늘어나면 계속 분리 개척을 해서 밴쿠버에 6개 교회를 개척했어요. 부목사님들이 다 담임목사가 됐습니다. 그중 한 곳은 밴쿠버 10대 교회 안에 들어갔어요. 처음부터 헌금을 다 해주고 개척합니다.
5-6부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영상 틀어주면서 예배드리는 것은 제 철학과 맞지 않습니다. ‘in person’, 직접 만나야 합니다. 주일날 예배드리러 온 성도에게, 어떻게 비디오를 틀어 줍니까?
그래서 분립개척 교회가 새로 출발할 때, 부목사님들 따라가라고 광고도 합니다. 성도들은 안 가려고 하죠, 그래서 개척하는 부목사님들이 상처도 받지만, 사람은 하나님께서 붙여주시는 겁니다.
목회해 보니, 인간적으로 친하려고 하는 건 아닙니다. 은혜를 끼치면 은혜받은 사람들이 결국 움직입니다. 기도를 통해 주님이 가라 하시면, 그 성도는 정말 가서 평생 함께합니다. 그래서 걱정하지 말고 믿음으로 가라고 합니다.”
-이민교회 목회 동안 가장 후회되는 것이 있다면.
“저는 사실 이민목회를 할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다른 모든 장학금을 포기하고 리젠트 칼리지로 갔습니다. 그러다 (카나다광림교회로) 청빙이 돼서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이후 애즈베리 신학대에서 목회학 박사를 시작해 3분의 2 정도 마쳤을 때, 하나님께서 개척에 대한 비전을 주셨어요. 그래서 공부를 그만두게 됐습니다. 개척과 공부를 같이 하는 건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천국의 박사를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이어 ‘교단을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기존 교단법으로는 개척을 시작하기 힘들었습니다. 교회 제도도 한국교회와 완전히 달랐고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경적 교회를 세우기 위해, 떠났습니다. 4대째 감리교 목사이고 아버지가 감리교 감독으로 은퇴하셨기에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지만, 결국 순종하는 마음으로 떠났습니다.
저는 사실 한국에서 개척할 줄 알았습니다. 부목사로 있던 교회에서 유학 생활 5년 동안 학비와 생활비까지 후원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한 사람을 키우는 마음으로 결정해 주셨죠.
그런데 기도하던 중 이민자들을 불쌍하게 여기시는 마음을 주셨어요. 밴쿠버 영혼들을 섬기라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독립교회로 개척을 시작했죠. 잠깐 감리교회를 맡았을 때 400명에서 1,200명으로 늘어나 가장 큰 교회가 됐는데, 그때 말씀으로 양육하던 분들이 시드 멤버(seed member)가 됐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떠날 생각이었죠. 이민 목회를 준비하지 못했지만, 교회 개척 후 시민권을 받았어요. 이민 목회자는 이민자가 돼야 한다는 마음으로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습니다. 개척 목회 동안 청빙을 많이 받았지만, 하나님께서 1%의 마음도 주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20년간 왔고, 이 여정에서 후회는 별로 없어요. 애초 제가 하고 싶었던 일들을 다 막으셨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살고 싶었지만 막으셨고, 그것이 주님의 인도하심이라고 확신하기에 후회는 없어요. 오히려 훨씬 더 감격이 큽니다.”
이민자들, 하나님 훨씬 더 의지해
저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목사
코로나 기간, 믿음의 실체 드러나
기독교 예배 공동체, 함께 모여야
-이민목회 20년 동안 깨달은 것이 있다면.
“이민 목회를 하면서 저는 이런 걸 느꼈습니다. 이민교회는 성도들이 교회를 쉽게 떠납니다. 조국을 떠나신 분들이잖습니까? 그리고 이민 목회는 각지에서 몰렸던 분들이기 때문에, 선후배 문화가 형성이 안 돼요. 그만큼 나그네 같은 사람들인데, 그래서 장점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훨씬 더 의지합니다.
그리고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순례자 정신이 강합니다. 결국 여기도 자신의 고향이 아님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이민교회가 힘들다지만, 반대로 훨씬 더 주님께 가까이 갈 수도 있습니다. 훨씬 더 힘든 이민교회라고들 생각하지만, 제게는 훨씬 더 행복한 이민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제 별명이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목사’입니다.
감사한 것은 밴쿠버에 오래 있다 보니, 밴쿠버 담임목사들 중 제가 가장 오래 됐어요. 코로나 팬데믹 전부터 한국에 나가서 목회자 훈련을 하고 있었는데, 밴쿠버 젊은 목사님 30-40명이 찾아와서 훈련해 달라고 요청했어요. 그래서 매년 1박 2일간 말씀 묵상과 설교 세미나를 하고 있습니다. 그게 너무 고맙습니다.”
-요즘 가장 큰 고민과 20주년 이후 비전.
“후임자가 정해졌습니다. 제가 1961년생이니 만으로 올해 62세가 됩니다.원래는 올해 은퇴하고 한국에서 목회자 훈련을 본격적으로 하고자 했어요. 조선족 목회자, 한국 1980년대생과 1990년대생 목회자 등 세 그룹이 있어요. 저를 찾아와서 훈련을 요청한 분들이 많아서, 이제 목회 전략에 마음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팬데믹 때문에 3년이라는 시간이 날아갔습니다. 저희 교회는 헌법상 65세 은퇴입니다. 그래서 4년 동안 후임자를 찾았는데, 추천해 주신 분이 있었습니다. 계속 교제하고 기도하다 하나님께서 응답을 주셔서 지난 1월 말 결정했고, 3월 투표로 인준됐습니다. 미국에서 공부한 1.5세 목회자로 3개 국어를 합니다.”
-코로나 기간 이민교회는 어떻게 보냈고, 목회자로서 무엇을 느끼셨나요.
“첫째로는 제 믿음의 실체가 드러난 시간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신앙을 잘 지킬 수 있는지 없는지, 유지할 수 있는지 없는지 실체가 드러났습니다. 저는 오히려 그것을 절망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제 믿음의 상처를 보고 어떻게 살아냈는지 개인적으로 깨닫는 시간이 됐습니다.
그동안 교회를 떠난 사람도 있고, 아직도 온라인으로 예배 드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한 번쯤 신앙을 점검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둘째로 예배의 소중함을 많은 분들이 더 느끼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모여야 사는구나. 건강한 면에서는 그것이 굉장히 살아나는 것 같습니다. 셋째로는 그와 함께 약간의 위기가 올 것 같습니다. 온라인 예배도 예배로 여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이 위기입니다.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기독교는 예배 공동체입니다. 주일 공중 예배는 기독교를 대표하는 예배입니다. 개더링(Gathering), 모이는 예배 말입니다. 온라인 예배는 전염병 상황의 특수한 예배였을 뿐, 일상 예배로 볼 수 없습니다.
신학적으로는 주일날은 교회에 모여서 드리는 예배가 우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독교회의 예배임을 교인들이 의식하고 수용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건강이 안 좋거나 위험이 있어 온라인 예배를 드리는 분들은 보호해 줘야죠. 그러나 게을러서 또는 편해서 좋다는 것은 결국 신앙에 마이너스가 됩니다.
그런 트렌드도 오게 될 것입니다. 심지어 온라인 처치(online church)도 등장할 것입니다. 저는 이를 신학적으로 위험하게 봅니다. 특수 상황을 보편화시키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책보다 실제 하면서 배워야
성경 속 ‘기도의 사람들’ 특징 분석
개인 문제 공동체에 공개하고 기도
공동체는 서로를 잘 알수록 깊어져
기도, 하나님과 친밀감… 리듬 중요
10분만 성경 읽고 묵상하고 기도를
-<기도의 사람들>도 최근 나왔습니다. 이 외에도 기도에 대한 책이 정말 많은데, 기도를 책으로 배울 수 있나요.
“아니죠. 책은 기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자료 정도입니다. 정보가 있어야 깨닫고 움직일 수 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는 것 아닙니까. 그런 책들은 많이 있지만, 기도는 하면서 배우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기도를 실제로 해야 합니다. 다음으로는 더 깊은 기도를 위해 도움이 필요합니다. 깊은 기도를 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도도 하고, 정기적으로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중요합니다.
<기도의 사람들>에서는 성경 속 인물들마다 가진 기도의 특징들을 분석합니다. ‘아, 이래서 기도하는구나’, ‘이렇게 기도할 때 어떤 일이 있구나’, ‘기도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이렇구나’ 하고 배우고 적용할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번에 그걸 시작하고, 굉장히 열심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20개 그룹에서 목사님들이 가르치고 있는데, 책 자체가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많이 갖도록 구성했어요. 자신의 문제를 내어놓고 함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무조건 공개할 필요는 없지만, 기도 공동체는 서로 잘 알수록 깊어집니다. 모르는 사람들끼리 모였다면, 너무 내밀한 이야기까지 하는 건 별로 좋지 않겠죠.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고요.”
-젊은 시절엔 기도를 했지만, 머리가 커져서 그런지 기도가 안 되고, 벽이 느껴집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친밀감인데, 어떻게 보면 불완전한 인간이 완전하신 분과의 친밀함 속에 들어간 거거든요. 그런데 이제 교회를 공격하고 문제가 되는 부분들을 자주 듣다 보면 회의가 생기고, 주님과의 친밀감에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언론인들은 교회를 대상으로 보고 관찰을 하다 보니, 좋은 것들도 보지만 나쁜 것들도 다 보게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리듬(rhythm)’을 중요시합니다. 기독교 영성사에서 사막 교부들은 기독교가 공인되고 국교가 되면서 사막으로 들어갔습니다. 영성에 대해서 정리한 분들 중 사막 교부들의 영성을 한 단어로 정리했어요. 그게 바로 리듬입니다. 세상 일을 좇아가는 리듬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사람으로서 시간의 리듬을 만드는 것입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세상의 박자에 맞춥니다. 하지만 사복음서의 초점은 예수님이신데, 과연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삶에 찾아오시고, 변화를 일으키시고, 안아주시고, 십자가에 매달리셔서 죽으시고, 다시 사셨습니다. 그 가운데 주님께서 홀로 계셨던 시간이 바로 그 리듬입니다.
수없이 많은 정보의 홍수 시대에, 이민자들은 외로우니까 드라마를 많이 봅니다. 저는 드라마를 반대합니다. 너무 많이들 보세요.
우리가 하루 10분만 주님께 머물 수 있다면, 그 10분의 고요한 시간이 24시간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주님과의 깊은 교제,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각과 순전함이 생기고, 개인적 욕심은 씻겨질 수 있습니다. 10분만 투자해보세요.”
-10분은 실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10분 동안 무엇을 해야 하나요.
“가장 좋은 것은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따라 기도하면 됩니다. 그 말씀이 우리 마음을 찌를 때가 있습니다.
저는 매년 두 번씩 한 달간 한국교회로 나오는데, 너무 고마운 일들이 있습니다. 평택의 어떤 교회에 가서 집회를 하는데, 초등학생들이 앉아 있어요. 왜 어른 집회에 참석하냐 물었더니, 은혜 받으러 왔다고 합니다. 설교 시간에 질문하면 답을 다 해요.
이후에 같이 통성기도를 시작했는데, 5학년 여자아이가 가슴을 치면서 기도합니다. 저런 영성을 우리에게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한국교회에 수많은 부정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알려지지 않았지만 좋은 목사님들도 너무 많습니다.
이름 없이 지방의 변두리나 서울의 작은 마을에, 정말 신실한 교회들이 남아 있습니다. 생수들입니다. 정말 잊히지 않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에 소망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