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세대 다시 보기 14] 기도 (2)
기도, 그들은 쌓아가고 우리는 잃어
기도하는 전통, 불통 되기 시작해
기도도 하지 않고 성경도 읽지 않아
교회학교 교사들도 점점 기도 안 해
무슬림, 삼성·LG 가전제품 ‘기도
모드’ 나올 정도로 기도 전통 세워
그리스도인 위한 공항 기도실,
그리스도인 위한 기도 모드는?
#기도, 조상들은 쌓았으나 우리는 잃어간다
잠깐! 잠시 오늘 아침을 생각해 보자. 당신이 눈을 뜨자마자 한 일은 무엇인가?
기도인가? 아니면 핸드폰을 확인한 일인가?
솔직히 말해, 필자는 오늘 아침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부터 확인했다.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화면을 켰을 때, 읽지 않은 메시지들이 눈에 들어 왔다.
자연스레 메시지를 읽고 있다가, ‘아차’ 싶었다. 얼른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기도를 시작했다. 그러나 집중할 수 없었다. 읽지 않은 메시지들이 계속 눈에 아른거렸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기도의 종교다.” 언젠가 어떤 목사님의 설교에서 들었던 말이다. 그 정도로 기독교에서 기도가 차지하는 영역은 절대적이다. 특히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듯, 다음 세대를 담당하는 교역자와 교사들에게 있어 기도는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영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기도의 영성, 기도의 무게를 좀 쌓을 필요가 있다.
우리 조상들은 누구보다 기도의 무게를 잘 알고 있었다. 기독교를 떠나, 우리는 이른 새벽 정화수(井華水)를 떠놓고 평안을 기도하던 어머니들의 치성(致誠)을 기억한다.
필자는 어릴 적 할머니가 왜 장독대에 그릇을 올려놓고 그렇게 손을 비비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보니, 할머니는 자녀들을 위한 기도의 무게를 쌓는 중이었다. 자녀를 위한 치성, 그래서 그 누구보다 간절했던 것이다.
기독교로 돌아오면, 새벽기도가 있다. 이 단어는 한국 기도 문화에서 생긴 특별한 단어다. 생명의말씀사에서 출간한 《교회용어사전》에 보면, 새벽기도를 이렇게 설명한다. ‘동틀녘 곧 하루의 일과가 시작되기 전의 시간에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를 통해 힘을 얻고 그날의 삶을 맡기는 기도.’
하루의 첫 시간에 하나님을 찾는 것, 기도로 하루의 삶을 시작하는 것이 한국교회의 전통이다.
그러나 기도하는 전통이 불통이 되기 시작했다.
현대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하던 전통을 따르지 않는다.
눈을 뜨면 조상들은 손을 모아 기도부터 했으나, 우리는 손을 뻗어 핸드폰부터 본다. 우리는 눈을 뜨자마자 SNS부터 확인한다.
우리 할머니들의 머리맡에는 항상 성경이 있었다. 눈을 뜨면 성경 몇 구절 보고 기도하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자리를 핸드폰이 대신한지 오래다. 성경책은 저기 어딘가 가방 속이나 책장에 있고, 여기에는 오직 핸드폰만 있다.
심지어 <과학기술정보통신 블로그>는 ‘WHO 산하 국제암연구소에서 휴대전화 전자파의 암 발생 등급을 2B로 분류한 만큼, 전자파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고 경고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핸드폰은 위치는 반드시 우리의 ‘머리맡’이어야 한다. 손을 뻗어 언제든 잡을 수 있는 ‘여기’에 있어야 한다. 역으로 우리의 기도는 저만큼 멀어져 간다. 멀어지는 거리만큼 무게도 가벼워져 간다.
기도, 조상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쌓았으나 우리는 점점 잃어버리고 있다. 그렇게 기도하지 않는 교사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 것, 요즘 교회학교의 현실이다.
#기도, 우리는 잃어가나 무슬림은 쌓아간다
기도는 기독교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모든 종교에는 기도가 있다. 그 가운데 무슬림은 기도의 무게를 아는 대단한 민족이다.
무슬림의 하루는 기도로 시작하여 기도로 끝난다. 새벽부터 밤까지 하루 다섯 번 기도한다. 절차도 간단하지 않다. ‘알라는 위대하다’는 것을 외치는 것으로 시작하여, 5가지 절차로 진행된다. 그럼에도 그들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유튜브 ‘갈때까지간 남자~’에서 <태양광 설치 일당 25만 원 받는 외국인>(2023. 4. 9 업로드) 편을 방영했다. 여기서 눈에 띈 점은 바로 무슬림 노동자들이 한 행동이다.
일을 하던 중 갑자기 한 무슬림 노동자가 자리를 뜬다. 그는 장소와 상관 없다며 생수로 발, 다리, 손을 씻고 기도를 시작했다. 이 모습을 지켜본 한국 사장은 말했다. “저는 무교인데,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저도 덩달아 경건해지고 그러네요.”
무슬림은 어디에 있든 기도의 무게를 쌓는다. 그러니 세상이 그들을 무시할 수 없다. 기실 여러 나라들의 공항만 가봐도 안다. 그들을 위한 기도실이 따로 있다.
인천공항에도 기도실이 있다. 기도하는 모든 종교를 위한 공간이라고는 하지만, 공간이 주는 분위기와 준비 물품들은 딱 봐도 무슬림들을 위한 것이다. 롯데월드나 코엑스는 아예 표지판을 이렇게 만들어 놓았다. ‘무슬림 기도실’.
이런 건 어떤가? 얼마 전 삼성과 LG에서는 아예 무슬림들을 위한 가전제품도 내놓았다. 조선일보는 이 가전제품을 이렇게 설명한다.
“삼성과 LG는 시장 특화형 제품을 속속 내놓고 있다. 삼성의 가전 관리 앱 스마트싱스(smartThings)의 ‘기도 모드’가 대표적이다. 하루 5번 기도하는 이슬람 문화를 고려해 개발된 맞춤형 서비스다.
정해진 기도 시간이 되면 사용자의 워치에 알람이 오고, 기도에 집중할 환경이 조성된다. 스마트 블라인드가 작동되고 조명의 조도가 낮아지며 TV 전원은 꺼진다.”
기업이 무슬림들의 성향을 가전제품에까지 반영한 것이다. 그들이 더 깊게 기도할 수 있도록 기업은 아예 가전제품을 기도의 조력자로 만들어버렸다.
반면 기도하는 종교인 기독교, 기도하는 전통을 가진 그리스도인, 과연 우리의 주소는 어디에 있을까?
무슬림 관광객들을 위한 기도실을 만든 것. 무슬림들을 위한 가전제품을 만든 것. 그 자체를 반대하는 건 아니다.
다만 좀 슬프지 않은가.
왜 세상은 기독교인들의 기도에는 집중하지 않는 것일까?
왜 대한민국의 가전제품에는 기도 모드가 없는 것일까?
왜 버튼 하나만 누르면 조도가 낮아지고, TV 소리가 꺼지는 모드가 없는 것일까?
우리가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기도가 국가나 기업의 매출에 흥미를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의 기도의 무게가, 우리의 기도 무게가 가볍기 때문이다. 그것이 슬프다.
기억해야 할 것은, 단지 슬퍼하는 것만으로 끝나면 안 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지금 전쟁 중이다. 영적으로 보자면, 무슬림과도 전쟁 중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점점 무기를 잃어가고, 그들은 점점 무기를 쌓아가고 있다. 잃어감과 쌓아감, 훗날 둘이 전쟁을 하면 누가 이길까?
문화적으로 보자면, 세상과 전쟁 중이다. 다음 세대 한 명의 아이를 두고, 세상과 교회는 전쟁 중이다. 오른쪽에는 ‘다음 세대’가, 왼쪽에는 ‘다른 세대’의 진영이 대치 중이다. 이 전쟁에서 지금 누가 이기고 있는가? 자신있게 “지금 교회가 이기고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지금 우리에게는 기도의 무기가 필요하다. 언젠가 한 블로그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기도가 곧 무기다. 그래서 기도하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는
총칼 없이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보다, 훨씬 더 어리석은 사람이다.”
당신도 오늘 아침, 필자처럼 핸드폰에 정신을 빼앗겼다면, 우리는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다.
하루의 시작부터 제대로 된 무기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잊지 말아야 한다. 기도야말로 우리의 강력한 무기다.
그리스도인은 기도해야 한다. 교사는 기도해야 한다.
기도, 지금 이대로는 괜찮지 않다. 우리는 모두 기도의 무게를 더 많이 쌓아야만 한다.
김정준 목사
울산대흥교회 교육목사
영남신학대학교 신학과·신학대학원
전남대학교 대학원 문학 석사
한남대학교 대학원 박사 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