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은퇴 후 선교 떠난 이윤재 목사 (下)
“오늘 우리 교회의 문제는 다른 것이 아니라, 순교자가 없는 것 아닐까요? 지금 한국교회에 없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거룩한 분노 아닐까요? 지금 우리에게 임해야 하는 것은 엘리야가 가졌던 거룩한 분노의 불입니다. 무너지고 있는 교회를 향한 거룩한 분노로, 강낭콩 같은 붉은 순교의 피로, 교회를 무너뜨리는 악한 세력에 목숨 건 항거로 일어나야 합니다. 아프리카 한 교회가 그렇게 했다면,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대형교회 담임직을 사임하고 아프리카 선교사가 된 이윤재 목사는, 교회가 선교해야 하는 이유를 책 2권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교회가 선교하면, 선교의 여러 상황들에 계속 적응해야 한다. 선교하면 교회가 초대교회처럼 위협에 처할 수 있다. 선교하면 많은 재정적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 선교하면 많은 새로운 환경에 노출돼 긴장하고 깨어 있어야 한다. 선교하는 교회는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적응한다. 운영하는 교회는 쇠퇴하고, 적응하는 교회는 성장한다. 초대교회와 중국교회가 부흥한 이유가 여기 있다.”
한국교회의 선교를 향해서는 “막대한 물량과 예산으로 얻은 선교 종주국 자리에서 스스로 내려와, 세계 여러 권역별 선교 잠재국을 키우는 선교 다극화시대로 나가야 한다. 대륙마다 거점 선교국을 만들어 현지인을 선교의 주역으로 세우는 겸손한 협력자로 자세를 전환해야 한다”며 “한국은 선교의 경험과 훈련, 자립을 위한 적절한 후원을, 현지 교회는 인프라와 인적 자원을 제공하여 선교 시너지를 이뤄야 한다”고 제언하고 있다. 다음은 지난 편에 이은 이윤재 선교사의 아프리카 선교 이야기.
선교는 자기와의 싸움, 외로움
매일 아침 걸으며 묵상, 글쓰기
묵상, 만물 통해 하나님 보는 것
-선교지에서 새롭게 느낀 점이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크게 보면 선교도 목회죠. 사람의 영혼을 상대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점이라면 목회는 장로나 집사 등 각자 역할이 있고 시스템 안에서 동역하는데, 선교는 조금 자유로운 반면 본인이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죠. 한국에서와 달리 모든 일을 스스로 처리해야죠.
때로는 위험한 일이나 테러, 질병, 길이 안 좋아서 생기는 교통사고 등의 위험도 안고 살아요. 그래도 평생 목회만 하다, 하나님께서 남은 인생 가운데 선교할 수 있는 마음을 주셔서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선교는 자기와의 싸움이에요. 선교사는 비행기를 타는 순간까지만 아름답고,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 절벽에서 떨어지는 듯합니다. 떠날 때는 많은 사람들이 손뼉도 쳐 주고 그럴싸하지만, 도착하면 아무도 없습니다. 현지인들이 오라고 한 게 아니라, 스스로 찾아간 거잖아요. 환영하는 사람도 없고 문화도 다르고 언어도 달라서 외롭습니다.
선교에서 제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큰 선교, 많은 선교보다 하나님과의 묵상 시간입니다. 그렇게 힘을 받지 않으면, 버텨낼 수 없어요. 한국은 세미나도 책도 공부할 기회도 많지만, 여기서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아침 걷기로 했습니다. 운동이 아니라 묵상을 위해서입니다. 아침에 묵상하면서 그 땅을 위해 기도하고, 감동을 받거나 경험한 일들을 글로 썼습니다. 기억을 위해 글로 남기지만, 글은 재창조 효과가 있어요. 글을 쓰면서 성찰이 이뤄지고 자신을 돌아보는 거죠. 그 글들을 바탕으로 두 권의 책이 나왔습니다.”
-2권의 책 내용을 간략히 소개해 주신다면.
“선교 중 코로나19 사태가 생겼잖아요. 학교도 문 닫고, 차도 못 다니고, 한국 사람도 별로 없고, 열악한 환경에 사방이 막힌 상황이었어요. 열악한 환경이다 보니 핸드폰에 글 쓰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었어요. 그렇게 글쓰기를 시작해서 아침마다 묵상하며 쓰고 또 쓰고, 그게 습관이 돼서 한국의 아는 목회자와 성도들에게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글이 점점 쌓이고, 좋은 반응을 얻어 계속 글을 쓰다가 출판까지 하게 됐습니다.
1권은 주로 묵상 현장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기록했습니다. 독일 한 교육학자 도널드 숀(Donald Schön)이 ‘리프렉티브 프랙티셔너(Reflective Practitioner)’란 책을 썼어요. ‘묵상하는 실천가’입니다. 선교사는 실천하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실천을 잘하기 위해, 묵상이 필요합니다.
저는 모든 만물을 통해 하나님을 보는 것을 묵상이라 정의합니다. 성경을 보든, 자연을 보든, 역사를 보든, 사람을 보든, 이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현존 말입니다. 아름다운 자연을 통해,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을 봐야죠. 사건 자체가 중요하기보다, 사건을 통해 말씀하시는 부분을 봐야죠. 모든 일을 하나님의 눈으로 보는 훈련이 묵상의 핵심입니다. 이게 안 되면, 선교사만큼 비신앙적인 사람이 없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선교사들에게 목숨 걸고 묵상하라고 권합니다. 선교지에 있는 사람들의 제자화보다 선교사 자신이 제자가 되고, 선교사의 일보다 선교적인 삶이 중요하겠죠. 이를 위해 묵상을 해야 합니다. 단순히 기도를 많이 하라는 말이 아니라, 걸어가든 현지인을 만나든 모든 일을 하나님의 눈으로 보는 훈련을 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고난도 기쁨이 됩니다.
2권은 그야말로 선교 이야기입니다. 우간다, 탄자니아, 부룬디, 콩고, 남수단, 르완다, 이집트, 이스라엘, 마케도니아 등 여러 나라에서의 경험, 말씀을 전하고 그들을 훈련시키면서의 경험 등을 다뤘습니다.”
하나님 마음 품으면 되는 게 선교
헤게모니 잡으려 하면 ‘아저씨’ 돼
아프리카인들, 성육신 이해 빨라
민족별 복음 받아들일 문화 있어
-현지인이 “당신은 선교사(missionary)가 아니라 아버지(father)”라고 했던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보람이 느껴졌을 것 같습니다.
“매우 보람 있었을 뿐 아니라, 선교의 터닝 포인트였죠. 대부분 그렇지만, 저도 처음엔 그들을 선교의 대상으로 여겼죠.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형제자매라고 말하지만, 형제자매가 될 순 없죠. 거리감이 있고 느낌이 달라요. 그 사람들도 저를 선교사로 생각하고요.
그런데 제게 ‘아버지를 사랑한다’고 해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격이 없는데 그래도 아버지로 불러 주니 매우 고맙죠. 제가 정말 아버지가 된다면 문제가 없을 것 같아요. 아버지와 자녀 관계로 제가 말하고 싶은 건 말하고, 가르치고 싶은 건 가르치고, 있는 걸 다 퍼주는 것이 부모잖아요.
나이가 많든 적든 상관없이 이들이 영적으로 자녀라고 생각하면, 그때부터 선교가 쉬워지는 것 같아요. 좋은 것만 주고 싶고, 가끔 잘못하면 혼도 내고요. C. S. 루이스는 ‘하나님은 할아버지가 아니라 아버지’라고 했어요. 아버지는 혼도 내야죠. 좋은 말만 하면 할아버지죠.
친구 선교사가 케냐 나이로비에서 가르치다 우간다 오지로 갔어요. 딸이 아파서 거의 죽게 됐어요. 하나님 내 딸을 왜 이렇게 하셨냐고, 내 딸이 무슨 죄가 있냐고 울부짖었더니, 하나님께서 그러시더래요. ‘너는 딸 때문에 슬프냐? 나는 1억 명의 아프리카 자녀들 때문에 슬프다’고요.
그게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선교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으면 되는 것 같아요. 그게 아니고 가르치려 든다거나, 본인이 선교지의 헤게모니를 잡으려 한다거나, 총회장이 되려 한다거나 하면, 그때부터 선교가 아니라 조직이 되고, 아버지가 아닌 아저씨가 됩니다.”
-현지인들은 복음을 잘 받아들이나요. 우리와 문화 차이가 어떤지 궁금합니다.
“상부상조의 문화가 발달했어요. 대신 도덕적·윤리적 개념이 다소 약해요. 그런데 유무상통했던 초대교회 공동체를 생각해 보면, 더 성경적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우리도 예전에 그랬고, 지금은 그렇지 않으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설교를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를 위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고, 하나님께서 아들을 우리에게 거저 주셨다고 하면 ‘아멘’ 하면서 눈물을 흘립니다. 성육신에 대한 이해가 빨라요. 자신들도 추장이 자기 종족 사람들에 의해 죽는 경우가 많거든요. 아버지가 자식들 대신 맹수와 싸우기도 하고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당신의 아들을 내어놓으셨다는 것이 굉장히 쉽게 설명됩니다.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종말론입니다. 언젠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고 하면, 이해를 못해요. 이들의 시간 관념이 대개 과거형이거든요. ‘과거-현재-미래’가 있다면, 과거를 압도적으로 중시하고 미래는 거의 생각하지 않아요. 그들이 생각하는 미래는 내일 모레, 한두 달 뒤 정도에요. 평균연령이 50여 년이라, 10년 후나 100년 후는 상상하지 못하는 거죠. 그러니 재림 같은 내용은 이해하기 힘들어하죠.
이처럼 문화에 따라 복음이 잘 받아들여지는 부분이 있고, 안 받아들여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겠죠. 그래서 ‘선교사가 오기 전, 그리스도께서 먼저 오셨다’는 말도 있어요. 하나님께서 각 민족마다 복음의 어떤 부분을 잘 받아들일 수 있는 문화와 관습을 이미 다 넣어두셨다는 것입니다.
선교사가 가서, 하나님 아들이 이 땅에 오셔서 당신을 위해 죽었다고 하면, 아프리카 사람들은 막 눈물을 흘려요. 이미 그런 경험들이 많으니, 복음이 쑥쑥 들어가죠. 그러니 선교사는 본인이 복음을 전해서 현지인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생각해선 안 돼요. 하나님이 다 예비해 두신 거예요. 심지어 관습까지도.
선교사가 하는 일은 별로 없어요. 그저 그곳에 갔을 뿐입니다. 우리나라도 선교가 시작되기 전 유교와 불교, 무(巫)교가 있었잖아요. 유교를 통해서는 제자도나 성경공부 등을, 불교나 샤머니즘을 통해선 아침에 물 떠놓고 기도하는 모습을 통해 기도를 미리 준비시켜 기독교가 뿌리내릴 수 있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민족을 그렇게 다 준비시키셨어요. 그게 참 기적입니다. 모든 민족들에게 조금씩 복음의 어떤 부분을 이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서 받아들이게 하셨죠. 그런 각 민족의 다양성(diversity)을 인정하면서 복음의 본질(essence)을 잃지 않도록 해야지, 복음 전달의 모든 방식과 통로를 똑같이 만들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이단이라는 식은 복음의 다양성이 깨지겠죠.
한국 선교사들이 우리 것만 표준으로 삼고 그 외의 것은 이상하다거나 이단으로 치부하는데, 그래선 안 됩니다. 어떻게 모든 민족이 같은 방식으로 예수님을 믿겠습니까? 고집을 내려놓고, 다양한 생각을 품어야 됩니다. 저도 아프리카에 가서야 생각이 그렇게 넓어졌어요. 그들에게 맞는 복음이 따로 있습니다.”
한국교회, 물질적이고 너무 편리
열정 회복, 인내와 기도로 열매를
예배와 교제, 전도 동시 일어나야
-요즘 한국교회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한국교회에 많은 위기가 있는 것 같아요. 원인은 여러 가지 있겠지만, 너무 물질적으로 간 것도 이유가 될 수 있어요. 잘 살고 좀 성공해야 복 받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물질적 기독교로 가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편안함의 노예랄까, 불편이 곧 불행이라고 믿는 것 같아요. 이번에 한국에서 많은 교회들을 다녔는데, 목회자들 차량이 그렇게 좋을 필요가 있을까 싶었어요. 거의 그랜저급이었어요. 대신 새벽기도는 적어졌어요. 열정은 식은 반면, 편리함만 커진 것 같아요.
사서 고생하자는 말은 아니지만, 불편함 속에서도 순수하게 예수 믿는 아프리카인들이 그립다는 생각을 이 짧은 기간 동안 하게 됐어요. 교회가 너무 잘 돼 있어서 편리하고 깨끗하고 IT로까지 무장돼 완벽하지만, 왠지 휑하고 은혜가 없고 감동도 적고 좀 공허하다고 느꼈습니다.
Passion, Patience, Prayer, Product 등 4P를 회복해야 합니다. 열정(Passion)을 회복하고, 보다 인내(Patience)하고, 더 기도(Prayer)함으로써, 더 많은 열매(Product)를 거둬야 합니다.
교회 성장도 그랬지만, 교회 침체도 결국 목회자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봅니다. 목회자는 교회를 성장시킨 주역이면서, 침체시키는 악역도 맡고 있어요. 교인들 핑계 대면 안 됩니다. 우리가 다시 무릎 꿇고 기도하는 원형적 교회를 꿈꾼다면, 교회를 회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세계 역사를 쭉 보면 항상 공통점이 있습니다. 어떤 한 사람이 기도를 시작하고, 불이 붙습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에게 전염되고 전도가 일어나 사람들이 변화돼요. 그렇게 교회가 확산됐어요. 나부터 먼저 무릎 꿇고 기도하면, 안 되는 교회가 있겠어요? 지금부터라도 열정을 회복하고, 목회자들이 다시 희생하고 헌신하고 기도하면 반드시 교회가 회복될 것입니다.
이를 기본 전제로 3가지가 더 필요합니다. 첫째는 예배의 열정을 회복하는 교회, 둘째는 소그룹을 통해 교제가 일어나는 교회, 셋째는 선교를 통해 머물지 않고 부지런히 밖으로 나가는 교회입니다. 예배와 교제, 전도 이 3가지가 동시에 일어나야 합니다. 선교가 교회 성장의 도구는 아니지만, 열심히 선교하면 교회도 성장하겠죠. 선교 안 하는 교회가 성장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 위기의 출구는 해외 선교라고 봅니다.”
-끝으로 한국교회가 아프리카를 위해서 어떻게 기도하면 좋을까요. 목사님의 비전도 궁금합니다.
“코로나 때 3만여 명의 한국 선교사들 중 1만여 명이 들어왔어요. 그들 중 5천 명은 회복 후 다시 나갔지만, 5천 명은 못 나갔습니다. 그만큼 한국교회의 후원이 부족해졌기 때문입니다. 다시 선교사를 내보내야 합니다. 선교비가 줄더라도, 선교사들이 나가야 합니다. 고생하다 보면 하나님이 공급해 주십니다.
영국 한 유명한 선교사가 ‘하늘을 나는 독수리는 강을 건널 염려를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강을 건널 걱정은 땅에서나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실 것입니다. 저는 한 번도 누구에게 선교비를 요청한 적이 없어요. 항상 넘치게 부어주시지만, 제 욕심만큼은 안 주세요. 그만큼 주시면, 다른 짓을 할 수 있잖아요(웃음)? 꼭 선교에 필요한 만큼만 공급해 주십니다.
한국교회는 더 많이 기도하고 더 많은 선교사를 보내야 합니다. 선교사들이 좀 더 희생적으로 봉사하다 보면, 어느 날 밀물과 썰물이 바뀌듯 부흥이 밀물처럼 밀려오지 않을까요? 교회사를 봐도 언제나 오르락내리락 파도가 쳤습니다. 영원한 침체는 없었습니다. 다시 일어나고 침체하는 파동이 있는데, 지금은 침체기인 것 같아요. 오히려 잘 된 것입니다. 기도만 하면 다시 올라갑니다. 더 이상 내려갈 데가 없어요.
마지막으로 선교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꼭 선교사로 나가 보시면 좋겠어요. 재정이 부족하다면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선교에 대한 열정이 있는 분들을 데리고 함께 선교하고 싶습니다. 작년에 목회하시던 분을 감동시켜서 데리고 왔는데, 열심히 하고 계세요. 정말 행복해 합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