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진의 묵상일상] 묵상은 언제나 ‘Again!’
묵상, 잘하고 못하고가 어디 있나
이해된 본문 다시 보면 새 깨달음
해치우려 하지 말고 보고 또 봐야
하나님 깊으신 뜻 한번에 다 아나
읽어봤다? 말씀 사로잡혔나 점검
삼시세끼 먹듯 말씀 보고 또 보자
묵상은 언제나 ‘다시’이다.
하나님 말씀은 ‘다시 보기’, ‘다시 읽기’에 집중해야 한다. 다시 보기, 다시 읽기를 계속해야 말씀이 지닌 진한 맛을 맛보아 아는 자가 된다.
하나님 말씀 묵상은 ‘잘한다, 못한다’로 나뉠 수 없다. ‘다시 보는가? 다시 읽는가?’에 달려 있다.
하나님 말씀은 참으로 오묘하다. 본문을 이해하는 일로 끝나지 않는다. 이해된 본문을 다시 볼 때 새로운 깨달음이 찾아온다. 더불어 개인적인 상황과 맞물려 새로운 말씀으로 다가온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살아있는 말씀이 된다. 이런 말씀 경험이 우리를 하나님 자녀다워지게 한다.
하나님 말씀을 다시 보지 못하는 이유는 읽고 이해하는 과정을 섣부르게 판단하기 때문이다. 하나님 말씀 묵상을 해치우려는 섣부름이 그 맛을 음미하지 못하게 한다.
아브라함 헤셀은 말한다. “모든 인간의 삶에는 기지(旣知)의 수평에 막이 올라 영원한 세계가 열리는 순간이 있다. 어떤 이들에게는 그런 순간이 무심코 지나쳐 잊혀지고 마는 유성 같은 것이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이 된다.”
하나님 말씀이 계속 살아 있는 말씀으로 경험되기 위해서는 다시, 또다시 보는 일을 계속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유성(流星)이 아닌 영원히 잊히지 않는 불꽃 말씀이 되어, 말씀 없이 살 수 없는 거듭난 사람이 되어간다.
계속 다시 보는 묵상에서 하나님 말씀이 지닌 깊은 뜻에 맞닿아진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깊은 뜻을 어찌 한 번 읽음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그리하여 성경은 1독, 2독, 3독… 으로 자랑할 수 없는 오묘한 책이다.
하나님 말씀은 ‘다시 보고, 다시 읽고, 또 다시’를 반복할 때 묵상이 지닌 진가가 발현된다. 빠르게 무언가를 해결하려는 세상에서, 하나님 말씀은 다른 속도로 읽어야 한다.
우리가 성경을 일독하려는 이유는 ‘성경 나도 읽어봤어’라는 명함을 내밀기 위함은 아닐까.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 말씀, 성경은 일독으로 끝낼 수 있는 책이 아니다. 계속 보아야 하는 영감 있는 말씀이다.
영감 있는 말씀이란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 숨을 불어 넣으셨다는 뜻이다. 성경 기록자들에게 하나님은 자신 숨을 불어 넣으심으로 오류 없이 기록하게 하셨다.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서 1장 11-12절에서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라고 전한다.
하나님께서 숨을 불어넣으신 성경을, 우리는 몇 번 읽었느냐로 만족할 수 없다.
계속 보고 있느냐고 점검해야 한다.
또 일독했느냐 안 했느냐고 말할 수 없다. 일독은 했지만 남는 게 없다면, 기억나는 말씀이 없다면, ‘읽어봤음’으로 마침표를 찍게 된다. ‘그 말씀에’ 지금 내가 사로잡혔는가로 점검해야 한다.
성경을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 한 번 읽어보았다면, 다시 돌아가 또 다시 읽어야 한다. 그리고 또 읽어야 한다. 우리는 계속 하나님 말씀으로 성숙해져야 하기에 그러하다.
그리스도인에게 말씀은 밥이다. 밥은 살기 위해 먹어야 한다. 하나님 말씀으로 사는 존재가 바로 그리스도인이다. 먹어야 한다. 삼시세끼를 먹듯,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계속 보고 또 보아야 한다.
계속 ‘Again’을 외치며 그 자리를 묵묵히 지켜낸다면, 하나님 말씀은 누가 뭐라 해도 내 인생 완전한 답이 된다.
우리 인생 계획표에서 묵상은 언제나 ‘다시, 또 다시’이다. ‘또 다시’하는 일에 감격을 더해야 한다. 아니 그 감격은 읽는 이가 만드는 일이 아니다.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읽는 그 일을 멈추지 않으면 그 말씀이 감격이 된다. 그 감격스러운 순간이 날마다 이루어진다.
매일 맛있는 밥을 먹는 일과 같다. 감격스러운 말씀이 우리를 기다린다.
우리가 오늘도 선택해야 할 순간은 하나님 말씀을 다시 ‘Again’하는 일이다.
이해되어도 ‘Again’,
이해가 안 되어도 ‘Again’,
잘 읽히는 날도 ‘Again’,
읽기 싫은 날도 ‘Again’이다!
감격이 찾아올 때까지 오늘도 ‘Again’이다!
‘Try Again!’
송은진 목사
의정부 세우는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