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진의 묵상일상] 하나님 알고 경험하는 도구
말씀, 하나님 내게 보내신 연서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어
묵상, 조용한 침묵의 시간 아냐
중얼거림, 읊조림, 생각, 몸부림
연서(戀書)는 연애하는 남녀 사이에 주고받는 애정 편지다. 그 사람이 날 얼마나 사랑하는지, 생각하는지 글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연서는 그래서 곱씹고, 곱씹는다.
연애편지 한 번쯤 써 보고, 받아 봤을 터. 애정 어린 마음과 손길로 한 글자 한 글자를 얼마나 정성스럽게 썼는지, 괜스레 눈물겹지 않은가. 연서를 받은 날, 품에 꼭 안고, 눈물 그렁그렁하며 잠들던 그 시간이 귀하고 그립다.
하나님 말씀은 하나님이 나에게 보내주신 연서이다. 이 세상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그분의 연서이다. 하나님이 얼마나 나와 함께 하고 싶어하시는지를 온 마음으로 전달하신 연서이다.
그뿐이던가.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고 싶어, 친히 사람이 되셨다. 그 마음 가득 담아 내 손에 놓아주신 말씀. 그 말씀을 어찌 곱씹고 곱씹지 않을 수 있을까. 한 글자, 한 문장, 한 문단에 온 정성을 다해 읽고 읽어야 하는 하나님 말씀이다.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읽는 일을 우리는 ‘묵상’이라 한다.
묵상은 조용히 침묵하는 일이 아니다. 묵상은 명상이 아니다. 묵상은 잠잠히 있는 시간이 아니다. 묵상을 조용히 있어야 하는 시간으로 이해하니 더 다가가기 어렵고, 왠지 고상한 사람만 해야 하는 일로 우리는 오해했다.
묵상은 오히려 중얼거리고, 읊조리고, 생각하고, 온몸으로 기억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성경에 대해 ‘먹으라’라는 표현을 쓴다. 개가 뼈다귀를 하루 종일 물고, 뜯고, 핥고, 숨겨두고, 또다시 물고, 뜯고, 핥고. 이 행동이 바로 묵상이라 말한다.
하나님 말씀은 연서처럼 읽어야 한다. 글과 글 사이에 머물러 상대방 마음 한 자락을 담아보려 계속 보고 또 보는 그 행동을 하나님 말씀에도 적용해야 한다.
억지로 사랑하라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이 자신 마음을 나에게 전달하기 위한 그 정성을 읽어보자는 의미다. 어느 집에나 한 권쯤은 있는 성경이 아니던가. 그런데 누구나 한번 제대로 읽지 못하는 말씀이다.
들고 다니기는 하나 읽어 내려가지 못하는 말씀이다. 쉽고 빠른 세상 속도에 ‘멈춤과 생각’을 잃어가고 있는 요즘이다. 어느샌가 우리는 멈춰 서는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 멈춰 서면 큰일이나 나는 듯,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우리는 시간을 ‘때우며’ 살아가고 있다. 그 귀한 시간을 말이다. 짧은 영상에 빠른 손놀림으로 시간을 ‘때우고’, 웹툰 스토리와 이미지에 빠져 시간도, 생각도 모두 흐트러지고 말았다. 멈추어 서질 못하니 내가 어디에 닿아야 하는지 발걸음도 잊은 지 오래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늘도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17)”.
얼마나 나를, 우리를, 세상을 사랑하시는지 그 마음 전부를 온몸으로 보이셨다. 하나님 사랑은 애달프다. 그 애달픈 사랑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는 사랑으로 연결하셨다. 심판이 아닌 구원을 받게 하셨다.
우리 하나님 말씀을 온몸으로 읽는 묵상에 발을 디뎌보자. 첫사랑을 하듯, 다시 사랑을 하듯, 처음 하는 사랑처럼 하나님 말씀을 씹고, 뜯고, 맛보자.
묵상은 하나님을 알고, 경험하는 도구이다. 잠깐 멈춰서 읽은 말씀을, 들은 말씀을 되새겨, 하나님 선하심을 찬양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하나님 말씀은 연서처럼 읽어, 깊은 맛을 맛보아 아는 자가 되자!
송은진 목사
의정부 세우는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