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에서 배우는 선교 주제 28] 1장: 선교와 하나님 나라
1. 점진적 성장해 가는 나라
2. 사회 변혁보다 개인 회심
3. 하나님의 선물과 잔치로
4. 인간의 책임적 동참 요구
5. 역사성과 초월성 동시에
6. 모든 사람들 포함하는 곳
1장: 선교와 하나님 나라
본문: 사도행전 1장 1-11절
제자들이 기대하는 하나님 나라와 예수께서 생각하시는 하나님 나라는 어떻게 다른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제자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1. 선교의 핵심주제: 하나님 나라
사도행전 첫 장을 열어보면 하나님 나라가 아주 중요한 주제로 대두됨을 보게 된다. 1장 1-2절에서 사도행전 기자는 전에 쓴 기록인 누가복음에 대해 언급한 후, 3절에서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라고 말하면서, 부활과 승천 사이 결정적인 사십일 간의 말씀을 한 마디로 ‘하나님 나라’로 요약하고 있다.
뒤이어 6절부터 8절에 나오는 제자들과의 대화에서도 역시 주제는 하나님 나라이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라는 질문으로 시작된 제자들과 예수님 사이의 대화 역시 그 주제는 하나님의 나라였던 것이다.
사람들은 죽음 전에 가장 중요한 것을 말하게 돼 있다. 예수님께서 승천 전 40일 동안 말씀하신 주제가 하나님 나라였다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있어 하나님 나라가 차지하는 비중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초림을 통해 ‘다가올 세대(the age to come)’는 현 세대에 깊숙이 침입했으며,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 이미 시작됐던 ’다가올 세대‘가 현 세대를 완전히 대치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이 이뤄질 때 하나님 나라는 최종적으로, 그리고 완전하게 임하게 돼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 앞에 꿇고 모든 입이 예수를 주라고 고백하게 될 것이다(빌 2: 10-11). 또한 그때 하나님 뜻이 하늘에서 이뤄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마 6:10).
이 같은 재림의 시기가 올 때까지 즉 초림과 재림 사이의 기간 동안에는 두 세대가 겹쳐 있는 격이 될 것이며, 이때까지 그리스도인들은 열심히 증인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교회와 성도의 선교적 사명인 것이다. 따라서 예수께서 승천 바로 직전의 중요한 시기인 40여 일 동안 사도들에게 가르치신 하나님 나라에 관한 가르침은 하나님 나라 완성을 위한 사도들의 선교적 사명과 깊은 연관을 지닌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2. 동상이몽(?)
하나님 나라가 이처럼 핵심적인 주제임에는 틀림없지만, 이에 대한 예수님의 이해와 제자들의 이해는 사뭇 달랐다. 제자들은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행 1:6)?”라는 질문을 했다. 사도들은 이스라엘의 민족적 독립과 회복을 통하여 실현될 하나님 나라를 보고자 하는 소망에 줄곧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나라가 회복되면 자신들이 권력의 자리에 앉게 될 것이라는 환상에 빠져 있었다 (참고 막 10:35 이하, 눅 22:24 이하). 즉 제자들은 다분히 정치적이고 민족적이고 이 세상에 제한된 하나님 나라 이해를 지니고 있었다.
제자들의 하나님 나라 이해는 당시 일반적인 유대인들의 하나님 나라 이해와 맥을 같이 하고 있었는데, 당시 유대인들은 우주적 메시아보다는 다윗 왕조를 재건할 지상적 왕으로서의 메시아가 오셔서 새롭게 통치하실 것을 기대했다. 즉 그들은 그들의 죄로부터 구원하실 고난의 메시아에 대한 기대보다(마 1:21), 정치적 메시아로서 그들을 대적들로부터 구출하는 정복자 메시아가 될 것을 기대했다(눅 1:73-74).
예수님은 이러한 제자들의 잘못된 이해를 전면적으로 부정하지 않으시면서 간접적으로 가르침을 베푸시고 있다. 즉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행 1:7)”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다는 말씀은 이것이 믿는 자들의 사색 주제가 될 수 없다는 말씀이다. 제자들이 해야 할 일은 때와 기한에 대해 사색할 것이 아니라, 그 나라에 대해 증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었다(행 1:8).
사도행전 1장 8절 말씀에서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은 사도행전의 주제라고 볼 수 있고, 여기 나오는 지리적 명칭들은 사도행전의 목차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즉 ‘예루살렘’은 1-7장, ‘온 유대와 사마리아’는 8장 1-11절과 18절, 나머지 11장 19절부터 28장 31절까지는 복음이 유대의 경계선을 넘어 로마에까지 이르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나라의 존망에 대해 어떤 목적이 있으시지만, 제자들이 관심을 기울여야 할 문제는 그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이었다. 즉 그들이 하나님 나라 실현을 위해 할 일은 해방운동이나 어떤 투쟁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증인이 되는 것이었다.
제자들이 기다려야 할 나라는 정치적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증인이 됨으로써 임하는 하나님 나라이며, 이러한 나라를 위하여 성령 충만을 받고 증인이 되어야 함을 말씀하셨던 것이다.
3.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이 가지셨던 하나님 나라 이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그 나라가 어떤 성격을 지닌 나라인지 정확히 알 때, 그 나라를 위하여 더욱 효과적으로 사역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나라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점진적으로 성장해 가는 나라
천국의 비유들(막 4:30, 마 13:33, 눅 13: 20-21)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는 누룩과 같이 점진적으로 변화시킨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0-21)”. 이것은 유대 묵시문학이 기대하는 급진적인 변화나 젤롯당이 기대하는 정치 사회적 혁명을 통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내포한다.
2) 사회 변혁보다 개인 회심을 통해 이뤄지는 나라
예수는 불의에 물든 사회에 오셔서 그 사회를 당장 개혁하시거나 심판하시지 않으셨다. 오스카 쿨만이 말하듯 “예수께서는 개인들의 회심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신 반면, 사회 구조의 개혁에는 관심이 없으셨다”. 그 나라는 기본적으로 개개인의 회심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는 각 개인들이 악과 고난으로 얼룩져진 사단의 나라에서 회개함으로 해방되고, 하나님을 왕으로 고백하여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에 들어감으로 이루어져 가는 것이다.
물론 이 말은 예수께서 가져오시는 하나님 나라에 혁명적 요소가 전혀 없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예수께서 가져오신 하나님 나라는 기존에 풍미하던 삶의 방식과 철저히 대조되는 삶의 방식을 요구하는 면이 있다.
그 나라의 가치는 기존 사회에서 당연히 받아들여지는 삶의 방식들을 도전하며 변혁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러한 혁명적 요소는 통치 구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변화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즉 이 혁명은 개인의 가슴을 바꾸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3) 하나님의 선물과 잔치로서의 하나님 나라
예수께서는 우리가 즐겨 쓰는 하나님 나라를 “이룬다”, “확장한다” 등의 동사를 사용치 않으셨다. 주로 하나님 나라를 “받는다(마 25:34)”, “들어간다(막 10:15)” 등의 용어를 사용하심으로써 하나님 나라는 인간의 노력이나 투쟁으로 이뤄지기보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 자신의 행위임을 강조한다.
4) 인간의 책임적인 동참으로 요구하는 나라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이뤄지지만, 그렇다고 하나님 나라의 완성에 인간이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 완성 과정에서 끝없이 그의 백성들을 보내신다. 또한 인간들의 수용이 중요하다.
씨 뿌리는 비유(마 13:18-23)에서 나오는 것처럼 복음의 씨는 사람들의 수용성 정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마 13:44-46) 에서 나타나듯, 자신의 모든 소유를 팔아 그 밭을 사는 사람들이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인간들의 적극적 동참이 요구된다.
5) 역사성과 초월성을 동시에 지니는 나라
하나님 나라는 잔치로 많이 비유되었다. 하나님이 주인 되시어 풍부한 음식을 준비하시고 배부름, 만족, 무한한 기쁨을 얻는 곳으로 묘사돼 있다. 이러한 기쁨은 종말에 완전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동시에 하나님 나라가 종말 후에만 오는 것이 아니라, 이 땅 위에서도 이뤄질 것을 말씀하셨다. 귀신의 내쫒는 행위가 곧 하나님의 통치가 임한 것임을 증명(마 12:28, 눅 11:21)하시면서, 자신이 사단의 악과 고난의 통치 밑에서 허덕이는 사람들을 지금 벌써 해방시키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6) 모든 사람을 포함하는 나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녔던 하나님 나라 이해는 유대 민족주의와 깊이 연관돼 있었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높아지고 열방을 다스리는 것을 하나님 나라로 이해하는 경향이 강했다. 예수님은 유대민족주의와 연관된 하나님 나라 개념을 철저히 배격하셨다. 모든 민족, 모든 계층, 모든 연령의 사람들이 부르심을 받고 그 부르심에 응하는 모든 이는 왕국의 백성이 되는 것이었다.
4. 하나님 나라를 위해, 제자들이 해야 할 일은?
예수님 당시 많은 유대 종파들은 나름대로 하나님 나라 이해들을 가지고 있었고, 그 나라의 완성을 위한 전략들을 지니고 있었으며, 자신들이 가진 전략들이 가장 바른 것이라는 확신들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 바리새인들은 율법 준수, 에세네파는 죄악 세상과의 분리를 통한 철저한 금욕생활, 헤롯당과 사두개파는 정치 세력과의 적당한 타협, 젤롯당은 로마에 대항하는 철저한 투쟁 등을 그 전략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 1:4)”고 하셨고, 성령의 권능을 받고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것을 강조하셨다(행 1:8). 그리고 하늘로 올라가실 때 제자들이 넋을 놓고 쳐다보자, 천사들이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 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 1:11)”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이제 넋 놓고 하늘만 쳐다보지 말고, 승천하신 모습대로 다시 재림하실 때까지 열심히 증인이 되라는 충고를 함축하고 있다.
하나님 나라 사역을 위해 바리새인들처럼 말씀을 철저히 준수하는 것이 필요하다. 에세네파처럼 정결하고 거룩한 삶을 살도록 노력하는 것 또한 필요하다. 젤롯당처럼 구조악의 제거를 통하여 정치적 해방을 가져오고 이 땅 위에 하나님 나라를 구현하려는 노력 역시 매우 필요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 위에 가장 우선적으로 힘써야 할 일은, 사도행전 1장 8절이 강조하는 대로 성령 충만을 받아 그리스도의 능력 있는 증인들이 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복음은 바로 이런 증인들의 피어린 선교에 의하여 오늘 우리에게까지 전달되어 왔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안승오 교수(영남신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