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에서 배우는 선교 주제 28] 2장: 성령과 선교
하나님 나라 확장, 성령만이 가능
분노와 혼동 일으키는 폭풍 됐다,
소망과 힘 주는 신선한 숨결로도
성령, 초대교회 선교의 가장 핵심
성령 없다면, 초대교회는 비겁한
신자들의 불쌍한 작은 그룹 불과
사도행전 2장 1-47절: 성령과 선교
오늘날 세계적으로 부흥하는 교회는 오순절 계통 교회들이다. 오순절 외 교단 목회자들은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며, 선교지에 갔을 때 어떻게 성령의 역사를 가르치고 실천해야 할까?
1. 성령이 아니고서는
부활하신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 말씀하셨던 주제가 하나님 나라였음을 1장에서 살펴봤다. 제자들은 그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일꾼으로 부름받았는데, 그 일은 성령의 능력을 입음으로써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수 차례에 걸쳐 성령의 능력을 입어야 하며 그 능력을 입기까지 기다리라고 말씀하셨다.
주께서는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 1:4)”고 명하셨고,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 나라의 증인이 되기 위해 성령을 받아야 함을 강조하셨다.
과연 제자들은 성령 역사를 체험한 후 자신들의 목숨을 거머쥐고 있는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조차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행 4:20)”고 말할 정도로 담대한 증인들로 변화됐다.
성령은 교회로 하여금 주어진 복음의 소식을 갖고 ‘공중 앞으로 나가게’ 했다. 무리를 매력적으로 끌어당기고, 어떠한 위협 상황에서도 할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하셨다. 새로운 성령의 바람이 땅 위에 불어 어떤 사람들에게는 분노와 혼동을 일으키는 폭풍이 되었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소망과 힘을 얻게 하는 신선한 숨결이 되었다.
성령의 역사는 초대교회가 선교를 감당하는데 가장 핵심적이었다. 성령의 역사가 아니었다면 초대교회는 비겁한 신자들의 불쌍한 작은 그룹에 불과했을 것이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성령, ‘불’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
성경 속 불, 하나님 임재 상징해
열 통해 모두 변화, 불순물 제거
신자들 더러운 죄 속성, 다 태워
불, 계속 움직이며 변화 일으켜
이 시대 부족한 것, 하나님의 불
성령 임재와, 성령의 능력 역사
세상에 영향 미치지 못한 이유
초대교회 사도들과 성도들은 예수의 명령대로 기도에 전념했고, 과연 그 약속대로 그들은 성령을 체험했다. 성령은 ‘불’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전통적으로 성경에서 불은 하나님 임재의 상징이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실 때 “그가 보니 떨기 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하나님이 떨기 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출 3:2, 4)”라고 기록돼 있고, 이스라엘 백성과 시내산 언약을 맺으실 때도 “시내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출 19:18)”고 기록돼 있다.
불은 또 열을 내면서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 불순물들을 제거하고 순수한 정금을 만들어낸다. 하나님 임재의 상징인 성령의 불의 역사가 나타날 때, 신자의 모든 더러운 죄의 속성을 다 태워버리고 성도를 정금같이 만든다.
이와 함께 불은 결코 가만히 있지 않는다. 가만히 있으면 벌써 불이 아니다. 불은 계속 움직이면서 변화를 일으키는데, 성령의 불은 성도로 하여금 사명을 향해 움직이도록 만든다. 이런 점에서 우리 시대에도 성령의 불의 역사가 참으로 필요하다. 오스왈드 샌더스(Oswald Sanders)는 오늘날 이런 성령의 불의 역사가 약해짐을 한탄하면서, 다음과 같이 한탄하고 있다.
우리 시대에 가장 부족한 것은 하나님의 불, 즉 성령의 임재와 성령의 능력 있는 역사이다. 우리 신앙생활에 대해, 세상 사람들은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우리 생활에는 불이 붙어있지 않다. 우리의 교회 안에는 나방이 불에 끌려가듯, 사람들이 불가항력적으로 끌려 들어가는 거룩한 불길이 없다. 교회가 잃어버린 바 된 세상에 영향을 별로 끼치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불이 없다는 데 있다.
교회가 현대만큼 잘 조직화되고, 학문화되고, 인력과 충분한 자원과 재정을 가지고, 고도의 기술을 소유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현대만큼 미쳐버린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무능력해 버린 적도 없다. 우리의 기도는 “주여, 불을 보내주소서”가 돼야 한다. 그 외에 어떤 것이 우리 세대의 필요를 채울 수 있겠는가?
땅끝까지 나가는 선교에 앞서, 먼저 성령의 능력을 덧입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선행돼야 한다. 그래서 주께서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 1:4)”는 말씀을 강조하셨던 것이다.
성령, 제자들 복음 증인 되게 하셔
복음 효과적 전파 위한 은사·기적
놀라운 선교 열매들 거두게 하셔
그리스도 대속 깨닫게 하시는 영
2. 선교의 영이신 성령
성령은 선교의 영이시다. 본문에서 성령의 역할은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다. 첫째, 성령은 제자들을 복음의 증인들이 되도록 하셨다(2:1-4).
제자들이 함께 모여 기도에 힘쓰고 있을 때, 성령께서 제자들 마음 속에 힘 있게 역사하셨다. 성령은 각 개인의 심령을 감화·감동시키셔서, 제자들로 하여금 힘 있는 복음의 증인이 되게 하시고, 온 세상에 나가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도록 역사하셨다.
제자들은 전보다 더욱 풍성하고 힘 있게 성령으로 충만했다. 그들은 성령의 은사로 충만했으며, 전보다 더욱 성령의 성별하시는 능력 아래 이 세상과는 별개로 거룩하고 완전하며 영적인 사람들이 됐고 저 세상과 더욱 가까워졌다.
그들은 무엇보다 성령의 위로로 충만했고, 그리스도의 사랑과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 가운데서 더욱 더 기뻐했으며 이 소망으로 인해 제자들의 슬픔과 두려움은 온전히 사라졌다. 그래서 그들은 세속으로부터 벗어나, 하늘의 사역에 더욱 합당하도록 준비될 수 있었다.
둘째, 성령은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파하기 위한 은사와 기적을 주셨다(2:5-13). 제자들은 어떤 외국어도 배우지 못했고, 다른 나라 말을 배울 기회조차 없었다. 그러나 성령 충만을 받은 제자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각기 다른 방언으로 말하는 은사를 덧입었다.
성령께서는 복음을 효과적이고 능력 있게 전파하고 확장시키기 위하여 여러 가지 은사와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권능을 주셨다. 그래서 제자들은 이제 이전까지 지니고 있던 인간적인 생각과 사고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령이 친히 그들에게 말하게 하시는 것을 따라 말하며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능력 있는 증인이 될 수 있었다.
셋째, 놀라운 선교의 열매들을 거두게 하셨다(2:37-47). 성령께서 역사하지 않으셨다면 베드로의 설교가 아무리 훌륭하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아무리 엄청난 기적들이 일어나더라도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아서는 결과들은 일어날 수 없었을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실로 성령은 인간들의 마음 속에 있는 죄를 책망하며 그 인간으로 하여금 애통하는 데까지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성령은 말씀으로 임하여 놀라운 일을 이룩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제자들의 가르침을 받고 변했다. 그들은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였으며, 세례를 받았고, 그리하여 그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게 됐다.
이상과 같은 것을 종합해 볼 때, 선교에 있어 성령의 역할은 다음 몇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로 성령은 선교의 주도자이시다. 선교의 시작은 인간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주도에 의해 이루어진다. 웨슬리가 말한 대로 성령은 우리 앞에 먼저 행하사 선교의 길을 닦으시는 분이시다.
둘째로 성령은 선교의 전략가이시다. 그렌트 맥클링은 “성령은 전도와 선교에 있어 교회의 우두머리 전략가이시다. 인간의 계획은 하나님의 마음을 반영할 때만 실효성이 있다. 성령은 각 시대와 장소를 위한 전략을 가지고 계신다”고 이야기한다.
셋째로 성령은 선교의 동력자이시다. 성령은 선교의 원동력이 되는 능력을 주시는 동력자이시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전체 교회가 세계 복음화의 과제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능력의 부여자이시다. 성령이 오심으로 초대교회가 부활의 그리스도를 살아있는 증언자로서 세상에서 역할을 다하였다.
특히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하신다. 즉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깨닫게 하시는 영이며,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증거하는 영이시다. <계속>
안승오 교수(영남신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