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칼럼] 불편한 감정
“비가 내린다. 아침부터 컨디션이 안 좋다. 환경적 자극이나 어려움이 온다. 슬프다, 불안하다, 화가 난다.”
이런 불편한 감정들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한 어머니는 시집살이를 하면서 시부모와 남편이 주는 스트레스를 참아내기가 힘들었다. 그렇다고 시부모와 남편에게 대들 수는 없어, 첫째 딸에게 분노를 다 쏟아냈다고 한다.
엄마가 힘든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이에게는 힘든 일인데, 스트레스가 있을 때마다 아이를 사정없이 내리쳤고, 영문을 모른 채 그 아이는 수 없이 매를 맞으면서 자라야 했다. 성인이 된 그 엄마는 어느 날부터 원인 모를 통증을 온 몸에서 경험해 정상적인 삶을 살아내기 힘들어졌다.
이 어머니는 막내를 늦게 낳았다. 딸만 많은 집이었기에 아들이 태어난 것이 너무나 기쁘고 좋았지만, 체력이 예전 같지 않아 아이를 보면서도 짜증이 날 때가 많았다고 한다.
남편이 아이를 돌봐주기를 기대하지만 일로 바쁘게 뛰어다니는 남편은 실제로 도움이 별로 되지 않았고, 하루종일 아이들과 씨름해야 하는 엄마는 자신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화를 냈다고 한다. 엄마의 야단을 듣는 아이는 자신도 모르게 자꾸 손톱을 물어뜯었고, 그것은 엄마의 야단을 더 듣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불편함으로 다가오는 많은 감정들은 그냥 표출되진 않는다. 삶 속 다양한 경험들이 감정을 느끼게 한다. 우리는 아주 멋있는 사람을 보면, 가슴이 뛰고 설레는 감정을 경험한다. 소중한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 슬퍼하고 때로는 절망감에 휩싸인다. 아주 오랫동안 바라고 소망하던 일이 이루어지면 아주 기뻐하기도 한다.
이렇게 감정은 외부의 자극에 의해 나타난다. 적절한 감정은 우리 삶에서 필요하고, 우리가 어디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는지,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를 살펴보게 하는 좋은 신호등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불편한 감정으로 많이 힘들어하는 사람들은 외부 자극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많다. 유전적으로 예민하게 태어난 사람이 전체의 20% 정도 있지만, 어린 시절 감당하기에 무리가 되는 큰 자극이나 트라우마가 될 법한 상처들로 인해 신경조절체계의 경보음이 다른 사람보다 훨씬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아주 어린 시절 부모님이 이혼하신 경우, 부모로부터 습득해야 하는 안정감·소속감·가치감 대신 불신과 불안을 경험했을 때, 그것이 큰 상처로 남아 있어 조금만 불안한 일이 닥치면 위험 경보가 발동해 나도 모르게 그 불안감을 주는 대상에게 짜증과 분노가 일어나는 현상을 경험하기도 한다.
감당하기 만만한 대상일 경우 특히 그 부분이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고, 대상을 찾기 어려울 경우 자신에게 짜증과 분노를 낼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불편한 감정이 올라올 때 한 번씩 질문을 해볼 필요가 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 지금 경험하는 일에 비춰 적절한지, 아니면 과거의 상처로 인해 과민 반응하는 감정인지, 아니면 유전적으로 예민함을 타고나서 매사에 예민하게 느끼고 반응하는 편은 아닌지 점검해 봐야 한다. 그래야 감정이 나를 지배하지 않고, 내가 감정을 조절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
예를 들어 오늘 아이가 노느라 숙제를 하지 않았을 경우 엄마는 아이에게 실망할 수도 있고, 성실하지 못한 아이가 염려스러울 수도 있다. 엄마가 다양한 방식으로 훈육할 수 있지만, 한 예로 ‘숙제를 하지 않았으니 오늘 저녁 TV 프로그램을 볼 수 없어!’ 식의 벌을 줄 수도 있다. 이는 엄마가 느낄 수 있는 적절한 감정이자 적절한 훈육 방식일 수 있다.
그런데 다른 엄마는 똑같은 상황에서 결혼 후 자신의 말을 전혀 듣지 않고 마음대로 하는 것 같은 남편의 얼굴이 떠올랐고, 순간 남편에 대한 분노가 아이에 대한 분노와 함께 떠올라 아이에게 폭풍 같은 분노를 쏟아내기도 한다.
“너는 왜 이렇게 아빠를 닮아서 속을 썩이니? 너, 엄마 죽는 꼴 보려고 그래? 너 하나 보고 내가 지금까지 참아왔는데, 너까지 그러면 내가 어떻게 살라고 그래!” 하면서 아이의 엉덩이를 후려친다면, 그것은 이해 될 만한 감정이지만 적절한 감정은 아니다. 과거의 상처로 인해 과민하게 아이에게 반응하는 감정이라 볼 수 있다.
특히 자녀 양육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유튜브나 방송, 책을 통해 많이 배웠고 머릿속으로는 너무 잘 알지만, 실제로는 늘 감정 조절에 실패하는 엄마들이 있다면, 지식으로 아이를 키우려 하기보다 먼저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엄마의 불안감을 상쇄하기 위해 아이에게 과도한 통제와 요구를 지속한다거나, 아이에게 자신의 불안 감정을 짜증이나 분노로 쏟아내기 쉽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다 보면 불안하게 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호기심 많은 아이들은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을 할지 모르는데, 엄마가 불안하면 엄마는 그 불안을 경험하지 않고 싶어 미리 위험한 일을 하지 않게 당부하면서 아이를 소심하게 하는 일도 시도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엄마의 불안이 아이에게 자연스럽게 전수되는 일이 일어난다. 아이도 엄마처럼 세상은 불안하고 위험한 곳이라는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가 느끼는 불편한 감정은 건강한 반응일 수도 있고, 과민한 반응일 수도 있으며, 이해는 되나 그 상황에는 부적절한 감정일 수 있다. 내 감정을 관찰하듯 살펴보기 시작하면, 감정의 홍수에 쉽게 지배당하기보다 강한 감정의 힘을 약화시키는 법을 조금씩 배워나갈 수 있다.
불편한 감정도 나의 것이니, 적절하게 잘 사용하는 법을 익히는 것이 무엇보다 일상생활의 행복을 지키는데 참 중요한 부분이다.
김훈 목사 Rev Dr. HUN KIM
호주기독교대학 대표
President of Australian College of Christianity
One and One 심리상담소 대표
CEO of One and One Psychological Counselling Clinic
호주가정상담협회 회장
President of Australian Family Counselling Associ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