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답지 않아 다투는 우리> 홍동우 목사 (上)
“교회 내의 갈등으로 고민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만큼 한때 우리 모두에게 교회가 참 좋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쩌면 대다수의 독자들이 교회다운 교회를 꿈꾸며 각자의 자리에서 신음하며 씨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디 이 작은 책이 ‘교회’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가는 많은 분들의 여정에 좋은 말벗이 되어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필립 얀시는 교회를 ‘나의 고민 나의 사랑’이라고 표현한 제목의 책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변화된(될)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기 위해 모인 교회지만, 사랑해서 고민하고 사랑해서 가끔은 다툼도 일어난다. 그 다툼이 심해지면 평생 몸담았(을 것 같았)던 교회 공동체에서 떠나기도(쫓겨나기도) 한다.
<교회답지 않아 다투는 우리>도 제목 속에 저자가 말하려는 바가 거의 들어 있다. 다툼은 우리가 교회답지 못하기에 일어나는 것이고, ‘다툼 속에서 교회다움을 발견하다’는 부제처럼 갈등 속에서 교회가 무엇인지 숙고했던 저자의 지난 고민들이 고스란히 담겼다. 교회를 사랑하기에 ‘교회다운 교회’를 꿈꾸며 오늘도 진지하게 고민하는 이들을 위해, 저자는 김준호(30)·박세직(53)·현지우(70) 3인의 가상인물을 내세워 성경 말씀을 토대로 신앙의 재구성, 십자가의 리더십, 용서라는 세 가지 제안을 전한다.
이 책은 ‘2023 크리스천투데이 올해의 책’에 아쉽게 선정되지 못한 작품들에 선정됐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Palme d'Or) 경쟁 부문 다음 ‘주목할 만한 시선(Un Certain Regard)’ 격. 선정을 기념해 저자를 만나 책과 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뷰는 두 차례로 나뉘어 연재된다.
갈등 해소에 설교가 매우 유용해
CEO 마인드가 ‘사람의 모임’으로
하나님의 뜻, 양자택일 문제 아냐
긴 세월 두고 고백해야 하는 문제
-교회에 갈등이 생겼을 때, 부교역자로서 침묵하기보다 관련된 내용으로 과감히 설교를 하셨습니다.
“한쪽 편을 드는 설교가 아니라, 양쪽이 서로 오해하면서 분노 감정이 높아져 있던 순간에 한풀 꺾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이쪽 편도 저쪽 편도 아니던 어른들의 목소리가 좀 더 조명되기 시작했고, 갈등에서 화해로 가게 됐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참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그전에는 ‘설교에 어떤 능력이 있을까, 설교해서 뭐하지’ 하는 회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 개인의 성숙을 위해서는 모르겠지만, 교회 안에서 갈등을 무마시키는 작용으로서는 설교가 매우 유용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갈등이 생길 때마다 비슷한 설교를 몇 차례 했는데, 그때마다 담임목사님들도 시원하다고 좋아해 주셨습니다.”
-처음에는 한국교회 개혁이나 신학 같은 거대 담론에 관심이 있었는데, 점차 시선이 ‘사람’으로 옮겨지신 것 같습니다.
“과거에도 교회를 다녔지만, 자세한 속사정은 몰랐죠. 시시비비를 가리는 문제도 처음엔 생산자,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의 시각으로 바라봤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직접 사역을 하면서 여러 사람을 붙잡고 하소연도 해보고 심방도 해보면서, 하나의 문제도 굉장히 다층적이고, 단순히 찬성 반대의 문제가 아니라 각자 사연이 있고 고민이 있고 생각들이 진심임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교회 현실에 녹아들기 시작했어요.
예전에는 어떤 면에서 ‘생산자 마인드’로 교회를 봤던 것 같습니다. 교회에 고용된 CEO처럼 여겼는데,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직이 아니라, 사람이구나’를 느꼈습니다. 교회라는 조직을 어떻게 이끌지 고민하는 CEO가 아니라, 이들 삶의 방향을 잡아주는 것이 목사라는 정체성과 소명을 다시 깨닫게 됐죠.
그러면서 교회 내 다양한 문제를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습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의 차원으로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책 속 3명의 인물은 항상 제 안에 있었습니다. 한때는 김호준 청년처럼 교회 설교가 마음에 들지 않고, 읽는 책에 비해 설교가 얄팍하다는 비판을 했습니다.
한편으론 박세직 집사처럼 교회를 이쪽으로 이끌어야 더 잘 될 거라는 의견을 제시하는 동시에, 목회자로서 교회가 이쪽으로 가야 한다고 밀어붙이고 설득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과정을 겪어가면서,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책 속 현지우 권사처럼 ‘현타’를 겪기도 하겠죠. 이런 일들과 생각들의 반복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책을 내시게 됐군요.
“결정적 계기가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교회라는 조직을 제가 어떻게 잘 만들 수 있을까에 관심을 뒀습니다. 어떤 신앙 모델을 따르고 실천하는 100명 정도의 교회를 만드는 게 꿈이었죠.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교회라는 곳이 사람의 모임이라는 걸 알게 된 것입니다.
과거에 많이 듣던 이야기, ‘목사는 부르시는 대로 가는 것이다. 큰 교회로 부르시면 큰 교회로 가고, 시골 교회로 부르시면 시골 교회로 가는 것’이라는 말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제 역할을 더 고민하게 됐고, 목사는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교회란 무엇인가? 신앙이란 무엇인가?’를 환기시키는 사람이라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개인적 경험에 따르면 교회가 다툴 때, 서로 비난하고 누구 말이 옳다고 할 때, 오히려 역설적으로 교회가 무엇인지가 드러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평소에 아무 갈등이 없을 때는 무의미하게 앉아 있던 성도님들이, 다툼이 발생하니 ‘교회가 무엇인지, 목사가 무엇인지’ 묻게 되면서 오히려 알게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갈등의 순간은 오히려 ‘교회란 무엇인가’에 대해 말할 수 있는 하나님 주신 기회라는 생각으로 나아갔습니다. 별일 없을 때는 설교를 전하면 ‘아멘’은 하지만, 행동이 따라오지 않았어요. 그런데 분쟁이 있으니, 설교가 너무 중요해졌습니다. 누군가는 설교를 통해 한 꺼풀 넘어서고, 누군가는 ‘저격당했다’고 불편해하기도 하고요. 그러면서 설교의 역할, 목사의 역할, 성도의 다양성을 깨닫게 됐습니다.”
-다들 ‘교회에 진심’이라서 갈등이 생긴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교회 갈등 가운데 각자의 주장이 ‘하나님 뜻’이라고 하다 보니, 타협도 양보도 안 된다고 느꼈습니다.
“그런 면에서 설교가 여전히 유의미하고 가장 강력한 갈등 해결의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한 사건을 놓고 A안과 B안이 있을 때, 각자 기도를 할 것입니다. 그 각자는 삶의 배경과 기도에 근거해 하나님 뜻을 유추할 것입니다. 그렇게 갈등이 일어났을 때, A측과 B측 모두 일종의 신정론 문제에 부딪치는 것 같습니다.
‘나는 이 문제를 두고 기도해서 A안을 구했는데, 왜 저 사람들은 B안을 하나님 뜻으로 여길까’ 하는 것입니다. 상대편도 마찬가지고요. 그럴 때 설교자나 교회가 해야 할 역할은 A안과 B안 둘 모두 하나님 뜻일 수 있다, 혹은 두 안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크신 뜻이 있을 수 있음을 밝혀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인생에서도 A와 B 중 양자택일, 둘 중 하나만 하나님의 뜻이라고 국한시키는 경우가 많은 것 같고요.
하지만, 하나님 뜻은 ‘A인가 B인가’의 문제가 아닐 수 있습니다. A안도 B안도 하나님 뜻일 수 있고, 선택의 기로에서 ‘A or B’의 문제가 아니라, 이 선택 이후 좀 더 긴 세월을 두고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본 뒤 고백할 수 있을 따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미래를 살지 않은 상태에서 A와 B 중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그리고 둘 중 최선의 선택을 하나님 뜻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도 문제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청년부 설교 때 이야기했습니다. 백성들이 왕을 달라고 했을 때, 사무엘은 왕을 세우는 일은 하나님 뜻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왕을 세우게 됩니다. 이후 모든 일들을 하나님께서 다 수습하시죠. 이렇게 ‘A안이냐 B안이냐’보다 그 이후 수습하실 하나님에 대한 기대를 더 불어넣는다면, 어떤 선택에 있어 격한 갈등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요.
예컨대 건축을 앞두고 건축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리고 대출을 최대로 받을지 우리가 가진 돈으로 할지 등을 선택해야 할 때, 둘 중 하나의 선택만이 하나님 뜻인 것이 아니라, 우선순위를 선택하고 그 선택 이후 일하실 하나님을 좀 더 기대하자는 메시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수습하시는 하나님 기대를
사업설명회보단, 제비뽑기 어떨까
목회, 마음대로 되는 것 하나 없어
개혁 하나님 일, 목회는 버티는 것
-그렇다면 양쪽이 자신의 입장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갈등을 겪다가 교회 공동체가 어쨌든 한쪽을 선택했을 때, 선택받지 못한 쪽은 어떻게 마음을 먹어야 할까요.
“양쪽 다 자신의 입장이 하나님 뜻이라고 주장할 때, 설교자나 목회자는 둘 다 하나님 뜻을 추구하고 있다고 말해줘야 합니다. 둘 중 하나를 하나님 뜻으로 선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책에도 썼지만, 사도행전 1장에서 가룟 유다를 대신할 사도를 선택할 때, 둘 중 한 명을 제비뽑기로 해 버리잖아요.
교회에서 A안과 B안 중 의견이 좁혀지지 않을 때는 그냥 제비뽑기를 해도 되지 않을까요. 꼼꼼하게 마치 사업설명회를 하듯 평가해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하기보다, 때로는 목회자가 강단 있게 이렇게 던져보는 것도 어떨까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제비뽑기를 해보자 하는 용기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모두들 '하나님의 뜻'을 운운하지만, 해결되지 않은 갈등 뒤에는 내 욕심과 야망이 있었습니다.
“교회 생활을 할 때 다들 하나님 뜻을 이야기하지만, 자기 생각과 욕망에 성경 말씀이나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을 엮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정말 순수하게 하나님 뜻인지 점검해 보자고 하면, 사실 한도 끝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 인물들이 그렇듯 인간의 욕망이 여전함에도, 우리는 그들의 삶 가운데 역사하는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합니다. 개인뿐 아니라 공동체 전체 가운데, 우리 욕망을 넘어서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A안은 너희 욕심이야’, ‘B안은 너희 욕망이 섞였어’ 굳이 이렇게 하지 않고, 그 욕망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일하실 수 있다고, 크게 크게 생각하면 어떨까요?”
-뭔가 통달한 듯한 자세 같습니다.
“목회를 해 보니, 제 마음대로 되는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웃음). 성도들 의견을 제 뜻대로 꺾을 수도 없다 보니, 결국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제 생각을 바꾸는 것뿐이었어요. 그 최정점은 ‘그냥 냅두자. 그러면 하나님이 하시겠지’라는 생각으로 간 것입니다.
처음엔 교회와 성도들을 바꾸려고 많이 노력해 봤지만, 되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던 것을 경험하면서 알게 됐죠. ‘내 생각을 갖지 않는 것이 교회를 위해 가장 유익하구나’. 제 꿈과 비전을 내려놓은 것이 목회자로서 가져야 하는 마음 같기도 합니다.
이번 책 가장 처음과 끝에 유진 피터슨의 문장이 인용돼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새로운 지역에서 교회를 다닐 때마다 사람들의 문제 때문에 실망했지만,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빛이 비치니 그들 가운데 있던 정직과 겸손과 용기 등의 미덕을 보게 됐다’는 것입니다.
이 구절이 인상 깊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청년부를 담당하던 때였습니다. 어떤 사건으로 말미암아 갈등이 폭발했고, 결국 몇몇 청년들이 교회를 나가겠다고 결심한 날, 문득 교인들이 너무 싫어졌어요. 교회가 한창 건축 문제로 갈등이 심했던 상황도 겹쳐 있었거든요. ‘모든 사람들은 욕망에 찌든 쓰레기다. 나는 더 이상 목회 못하겠다’는 생각의 정점에 이르렀을 때, 설교를 앞두고 발견한 문장이었습니다.
이 문장을 보고 알게 됐습니다. 내 눈앞에서 문제를 야기했던 이 모든 사람들이 과거 신실하게 삶을 헌신했던 순간들이 살짝살짝 지나가고, 그런 순간들을 못 봤던 사람들이라도 그랬던 적이 있을 것 같았어요. 그러면서 좀 자유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이건 내가 변화시킬 영역이 아닐 수 있겠구나. 내가 이들에게 ‘욕망을 포기하라, 뜻을 굽히라’고 할 수 없는 영역일 수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한 편의 드라마 같습니다.
“비슷한 이야기 하나 더 해도 될까요? 전에 있던 교회가 서정오 목사님이 과거 담임으로 계셨던 곳이었습니다. 그때 젊은 목회자다 보니 교회가 성장하면서 건축 등 여러 제안을 하셨습니다. 이 교회는 70년 역사에 원로목사가 없을 정도로 장로님들 힘이 센 곳이었습니다. 서 목사님이 하려고 하신 걸 그때 다 막았대요. 이후 어찌어찌해서 서 목사님은 서울 동숭교회로 떠나셨죠.
시간이 흘러 제가 있을 때 교회가 다시 건축을 앞두게 돼서, 특별기도회를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제가 서정오 목사님을 강사로 모셔오자고 건의했어요. 그분이 강단에 서 있기만 해도, 서 목사님이 꾸던 꿈을 이룬다는 메시지가 될 테니까요. 그렇게 모셔 왔는데, 목사님을 보고 좋아하시던 분들이 거의 은퇴를 앞두고 있거나 은퇴하신 분들이었어요.
그때 순간 오버랩이 되는 기억이 있었습니다. 저 분들은 예전 서정오 목사님 계실 때 건축을 반대했을텐데, 지금은 교회 어른으로 계시는 거예요. 지금 제가 저분들을 보면 든든하고 저분들 덕분에 교회가 돌아간다고 생각하는데, 서정오 목사님 계실 때 제가 있었다면 저 분들을 정말 싫어했을 것 같았어요(웃음).
당시 저분들 나이의 지금 50대 분들이 너무 밀어붙여서 제가 짜증이 나 있는 상태였거든요. 그런데 20년 후 교회 모습을 그려보니, 저 50대 분들이 다 교회에서 어른이 돼 있으리라는 생각에 확 감동이 오고 신비에 휩싸였습니다.
책 세 번째 현지우 권사님 이야기에도 그런 제 깨달음이 담겨 있습니다. 한때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키던 성도님이 이를 후회하면서, 오히려 교회에서 어른 역할을 하게 되리라는 희망을 품게 됐습니다.
그렇게 교회에서 두 번 크게 갈등을 겪으면서, 목회는 결국 버티는 것 아닌가 많이 생각했습니다. 교회를 갱신하고 개혁하는 것은 하나님의 몫이자 영역이고요. 교회 개혁이나 갱신은 결국 교인들의 변화일 텐데, 제 힘으로는 안 되는 것들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그냥 버티는 것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 같습니다.
교회란 정말 역설의 공동체입니다. 교회 목사님에게 문제가 많을수록, 오히려 교인들이 깨어나기도 합니다. 이것도 너무 신비스럽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