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에서 배우는 선교 주제 28] 3장: 기사와 표적
사도행전 3장 1-10절: 선교에 있어 기사와 표적
성령의 이적과 기사가 일어난다고 보는가, 아니면 멈췄다고 보는가? 선교적 상황에서 이적과 기사의 긍정적 측면과 부작용은 무엇일까? 이적과 기사의 효과를 극대화시키고 부작용을 최소화할 방안은 무엇일까?
1. 선교에 있어 이적과 기사, 왜 중요한가?
바울의 선교 사역에 성공적 열매가 나타나게 된 가장 결정적 이유 중 하나를 든다면, 그것은 그의 사역 가운데 나타난 이적과 기사라 할 수 있다. 그는 로마서를 기록할 때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하여 나로 말미암아 말과 일이며 표적과 기사의 능력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이 일로 인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롬 15:18-19)”고 고백하고 있다.
즉 자신이 3차에 걸쳐 그 넓은 지역에서 선교 사역을 수행할 때,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놀라운 표적과 기사가 일어난 것이 선교에 크게 기여하였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사도행전에서 기적들은 선교 사역에 놀라운 열매들을 거두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특별히 허락하신 것들로 그려지고 있다.
교회사가 라투렛(Kenneth Scott Latourette)은 선교에 있어 기적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신약에서 가장 감명을 주는 것이 기적이었다. … 몇 번이고 흥미와 확신을 갖게 해 주는 것이었다. 고넬료가 회심하기 전에 본 환상들, 바울과 바나바에 의하여 총독 서기오 바울의 측근이었던 박수 엘루마가 눈이 멀게 된 일. 빌립보 감옥의 간수와 그의 가족들을 세례받게 했던 죄수들의 관대한 행위가 있기 전 발생했던 지진 사건 등은 즉시 마음에 떠오르는 많은 기적 사건들 가운데 일부일 뿐이다(The First Five Centuries 중).”
오늘날 오순절 교회가 전 세계적으로 매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다른 교단이 실패한 지역에서조차 교회 성장을 이룩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의 경우 전체 복음주의 교회의 3분의 2 이상을 오순절 교회가 차지하고 있다. 이 오순절 교회 성장의 요인에 대해 여러 가지 다양한 연구 결과들이 나오고 있지만, 가장 결정적 원인은 바로 성령을 사모하는 것이고 그 성령께서 주시는 이적과 기사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2. 앉은뱅이 치유의 기적 체험과 그 결과
사도행전 기자는 2장 43절에서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라는 보고를 하였는데, 3장에 들어와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 가운데 하나를 상세하게 설명해 준다. 그것은 바로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가던 베드로와 요한이 미문이라는 곳에서 구걸을 하던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운 사건이다.
물질을 원하던 앉은뱅이에게 베드로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행 3:6)”는 말을 하고 난 후, 그는 손을 내밀어 앉은뱅이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바로 그 순간 생전 서지도 걸어보지도 못했던 이 사람이 자신의 발과 발목에 기이한 힘을 느꼈다.
두 사람은 그 사람을 붙들어 주었고, 그는 곧 걸음을 걸었고 이내 펄쩍 펄쩍 뛰어오르기도 하고 달리기도 하면서 성전 경내로 들어갔다. 성전 경내는 그의 감사 찬송의 메아리로 울려 퍼지게 되었다.
이 앉은뱅이는 육체적인 불구자였을 뿐 아니라 영적으로도 깊은 절망감에 빠져 있었는데, 당시에는 앉은뱅이가 된 원인을 본인의 죄나 그의 부모의 죄 때문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고 는 육신의 질병을 치유 받음과 동시에 영혼의 질병까지 치유 받는 구원의 역사를 체험하게 되었다.
와그너는 저서 『성서적 교회 성장』에서 하나님 나라의 표적에 대해 두 가지 범주로 구분한다. 첫째는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사회적 표적들, 즉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포로에게 해방을 선언하고, 압박받는 사람에게 자유함을 주고 희년을 제정하는 것을 말한다.
또 하나의 범주는 특수한 개인들에게 적용된 개인적인 표적들인데, 이는 눈먼 사람을 다시 보게 하고 귀신이나 악령을 쫓아내고, 병든 사람을 고쳐 주며, 절름발이를 걷게 하고, 문둥병자를 깨끗케 하시고, 귀머거리를 듣게 하시고, 죽은 사람을 일으키는 표적을 일컫는다.
이 같은 두 범주의 표적은 모두 문화적 위임과 관련이 있는데, 전자는 일반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았고, 후자는 보통 기적이나 초자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았다. 또한 전자가 사회구조의 변화를 위한 장기적인 노력이라면 후자는 ‘기적’이라는 단어로 단기간에 확실한 효과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러한 이적과 기사는 놀라운 복음전도의 역사를 가져온다. 이적과 기사를 체험하게 되면, 먼저 복음을 전하는 자와 그의 말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리하여 이적과 기사는 그것을 체험한 자를 구원으로 이끄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된다.
당시는 철저하게 신앙과 능력이 동일시되는 시대였다. 즉 능력이 나타나면, 그 말은 실제적인 효험이 있다고 믿었다. 반대로 아무리 옳은 소리를 해도,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한 그것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이적과 기사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임재의 확증이며, 기독교 초기 선교의 핵심적인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치유함을 얻은 앉은뱅이는 기적을 체험한 후 곧바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면서 하나님을 찬미하였다.
둘째로 이적과 기사는 이적을 체험한 당사자를 구원으로 이끌 뿐 아니라, 주위 사람까지도 구원케 하는데 도움이 됐다. 앉은뱅이 치유를 목격한 사람들은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3:10 下)”는 반응을 보였고, 11절 이하에서는 솔로몬의 행각에 모여 베드로와 사도들을 주목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베드로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계기를 얻게 됐다.
아직도 상당수의 사회, 특히 미전도종족 사회는 대부분 개인주의가 아니라 집단의 성격을 많이 지니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는 중요한 결정을 집단적으로 하는 경향이 강하다. 한 개인의 결정보다는 집단적 결정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 집단적 결정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적과 기사이다.
3. 지금도 이적과 기사는 계속되는가?
지금도 이적과 기사가 일어날 수 있는가? 여기에 대해 지금은 기적과 이사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는 견해를 펼치는 사람들이 있다. 소위 말하는 정지설(Cessational View)이다.
이들의 견해에 의하면 사도 시대에는 의사가 없었기에 그런 기적이 일어날 필요가 있었지만, 오늘은 의사가 그런 기적을 행하기에 더 이상 그 같은 기적이 일어날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서, 이적과 기사는 사도 시대로 마감되었다는 견해를 펼친다.
그러나 신약성서 어느 곳에서도 기적이 사도들과 함께 중단되었다는 진술을 찾아볼 수 없다. 또 교부들의 저작들, 특히 변증론자들의 저작들은 악의 모든 권세 위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에 대해 수 없이 언급하고 있다.
키프리아누스(Cyprianus), 터툴리아누스(Tertullianus), 오리게네스(Origenes) 등은 모두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서 교회가 행하였던 기사와 표적에 대해 수 없이 언급하였다. 신약성서와 교부들의 저작에 의하면 기적을 행하는 능력이 열두 사도에게만 제한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분명히 기적을 행하는 능력은 초대교회에 널리 퍼져 있었다.
아울러 사도 시대에 복음이 기적의 도움을 필요로 했다면, 왜 후대에는 필요하지 않겠는가? 사도들에 의해 선포된 기독교가 로마 제국에서 공인되기 위해 기적이 필요했다면, 복음에 대하여 낯설고 적대적인 나라들에 복음이 전해지기 위해 여전히 기적은 필요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성령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며 능력 있는 선교를 위하여 여전히 기적과 이사를 이루신다는 견해, 즉 지속설(Continuational View)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로 선교 현장에서는 아직도 수없이 많은 기적과 이사들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런 일들로 인하여 복음 사역이 왕성하게 벌어지고 있다.
요즘 들어 이런 일들은 특별히 성령의 능력을 강조하고 사모하는 오순절 계통에서 왕성하게 벌어지고 있다. 오순절 신학의 특징인 오중복음 가운데 ‘신유의 복음(The Gospel of Divine Healing)’이 있다. 신유란 육체적·정신적 질병을 잃고 있는 인간의 몸에 초자연적·신적 능력이 작용해 질병으로부터 해방받고 건강을 회복하는 신앙적 사건을 말한다.
그리스도의 대속적 구원 사건과 성령 강림은 인간의 총체적 구원을 가능하게 한 것인즉, 현대 의학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 신유의 은사를 주시고 신유 체험을 가능하게 한다.
예를 들어 1952년 아르헨티나에서는 힉스(Tommy Hicks)라는 오순절파 전도자가 종교장관의 사무실에 들른 적이 있었다. 그때 마침 장관의 비서가 다리를 절뚝거리며 들어오고 있었다. 힉스는 그의 다리에 손을 얹고 기도했다. 기도를 시작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능력이 그 다리를 치유하셨다. 이로 인해 힉스는 장관과 함께 대통령을 만날 수 있었고, 이것을 계기로 오순절 교회와 복음주의 선교회 발전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마련되었다.
4. 이적과 기사의 효율성을 증대시키려면
이적과 기사가 선교를 위해 그토록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그것이 단순히 사도 시대에만 일어났던 것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 일어나고 있다면, 우리는 효과적인 선교를 위해 이적과 기사를 계속 사모해야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적과 기사에 대하여 부정적인 견해를 갖는다. 그것은 이적과 기사에 다양한 부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해, 어떤 점들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지 살펴보자.
첫째로 이적과 기사는 언제나 수단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방언과 예언에 대한 가르침을 베풀면서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고전 14:12 下)”는 권면을 하고 있다. 방언이나 예언이나 똑같은 성령의 은사이지만, 공예배 상황에서 방언이 교회의 건덕(健德·건전한 덕)을 위하여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방언을 삼가고 예언을 하라는 권면이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이적과 기사도 종국적으로 교회의 유익과 건덕을 위하여 성령께서 주시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적과 기사는 교회의 건덕을 위한 수단이며, 수단이 목적으로 둔갑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능력을 많이 받아 이적과 기사를 행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받은 능력을 과시하고 나름의 가정 제단을 만들면서 교회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행위를 하는 것은 이적과 기사가 교회의 건덕을 세우기 위한 수단으로 주어졌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성도들에게도 평소에 이적과 기사의 분명한 목적을 주지시킴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역사가 철저하게 교회의 건덕과 복음 전파를 위하여 역사할 수 있도록 지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둘째로 이적과 기사의 주인공을 늘 상기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적과 기사를 일으킨 사람들이 흔히 저지르기 쉬운 실수는 자신에게 조명이 비췰 때 그 역사의 주인공에게 영광을 돌리지 못하고 자신이 그것을 받아 누리는 경우이다.
베드로는 앉은뱅이를 치유한 후 사람들이 몰려들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행 3:12 下)”라고 말한 후,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행 3:16)”라고 함으로써 이적과 기사의 주인공이신 예수에게 주목하도록 만들었다.
즉 베드로는 사람들의 관심을 그 이적의 수혜자와 중개자들로부터(12절) 그 이적의 진정한 근원인 예수의 이름으로(16절) 돌이킴으로 말미암아,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구원에 이르도록 도왔던 것이다.
셋째, 지속적으로 신앙을 성장시키고 굳게 하는 것은 역시 말씀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적과 기사는 마음 문을 여는데 효과적이지만, 이적과 기사만을 추구하는 것으로는 신앙이 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앙이 기적만을 추구하는 것으로 왜곡되기 쉽고, 질병과 죄악, 사탄을 지나치게 일원화함으로서 과학적 치유 방법을 거부하고, 오직 성령의 직접적인 능력으로 치유 받아야 된다고 하는 극단적인 형태로 발전되기 쉽다. 따라서 이적과 기사와 함께 말씀을 추구하는 일이 함께 병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베드로도 앉은뱅이를 일으킨 이적을 행한 후 말씀을 자세히 풀어 가르침으로써 저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만나 신앙이 자라가도록 도왔다.
안승오 교수(영남신대)
성결대학교를 졸업하고 장로회신학대학원(M.Div)에서 수학한 후, 미국 풀러신학대학원에서 선교학으로 신학 석사(Th.M) 학위와 철학 박사(Ph.D) 학위를 받았다. 총회 파송으로 필리핀에서 선교 사역을 했으며, 풀러신학대학원 객원교수, Journal of Asian Mission 편집위원, 한국로잔 연구교수회장, 영남신학대학교 대학원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7 Key Principles of Dynamic Church Growth』, 『Rethinking the Theology of WCC』, 『선교사가 그린 선교사 바울의 생애』,『능력 있는 예배를 위한 7가지 질문』, 『건강한 교회 성장을 위한 핵심 원리 7가지』, 『사도행전에서 배우는 선교 주제 28가지』, 『현대 선교학 개론』(공저), 『한 권으로 읽는 세계 선교 역사 100장면』, 『성장하는 이슬람 약화되는 기독교』,『현대 선교신학』, 『현대 선교의 핵심 주제 8가지』, 『이슬람의 어제와 오늘』, 『현대 선교의 프레임』, 『제4 선교신학』,『성경이 말씀하는 선교』, 『현대 선교신학(개정판)』, 『현대 선교의 목표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