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조물의 감사 고백, 창조주에 대한 찬미 표현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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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록, 한 점의 그림] 윤경의 ‘하늘바라기’와 소망의 빛

창조주 계시 감지하는 <싯딤나무>
<사계>, 삶 속 초현실적 은혜 영상
고향 향한 동경, 소망의 빛 보여줘
<하늘바라기>, 올려다 보는 구도

▲윤경, Praise the Lord, 130.3x162.2cm, mixed media on canvas, 2017.

▲윤경, Praise the Lord, 130.3x162.2cm, mixed media on canvas, 2017.

사물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매우 단순한 행위에 불과하지만, 소홀히 여기기 쉬운 일이기도 하다. 일상에서 평범한 것에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은 분주하고 끊임없이 방해받는 현실에서 점점 더 어려운 일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예리한 통찰로 자연에 주의를 기울이는 작가가 있다. 영성과 예술성을 겸비한 화가 윤경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작가는 나무를 바라보며 세상의 위태로움과 아름다움을, 삶의 변화를 찾아낸다. 그의 겨울 나무는 눈보라 치는 산길에 외로이 그 자리를 지키는 쓸쓸한 나무를 떠오르게 한다. 주위는 추위에 얼어 있고 황량하다. 이 시간은 도무지 끝이 없을 것만 같다.

여기에 반전(反轉)이 일어난다. 어둠 속의 반짝임이 그것이다. 공간 너머에서 오는 빛은 추위에 떠는 나무를 비춘다. 나무는 자신을 추스르며 이 빛을 반긴다.

이런 회복은 <싯딤나무> 연작에서 찾아볼 수 있다. 겨울 나무들이 추위의 시간에서 벗어나 환희의 순간을 만끽하고, 무지갯빛 색깔들은 자신의 기쁨을 발산하고 있다.

여기서도 빛은 주인공 역할을 맡는다. 빛이 있기에 핏기를 잃은 피조물들이 생기를 얻는다. 나무들은 계절의 리듬에 맞추어 춤추고 노래 부르기 시작한다. 작가가 나무들을 보며 창조주의 계시를 감지하는 것이 여간 흥미롭지 않다.

영상 미디어로 제작된 <사계>를 보면 봄·여름·가을·겨울 이미지가 연속적으로 지나간다. 이미지는 모두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구도이다. 동일한 장면에 조금씩 색상만 바뀐 것인데, 각각의 장면은 계절에 따라 옷을 갈아입듯 용모가 달라진다. 잔잔한 선율에 실려 봄에는 ‘민들레 씨앗’, 여름에는 ‘물방울’ , 가을에는 ‘반딧불이’, 그리고 겨울에는 ‘눈싸라기’가 흩날린다.

<사계>는 일반적인 자연현상을 기록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 더 깊은 의미를 지닌다. 민들레 씨앗, 물방울, 반딧불, 하얀 눈은 그에게 형태 없는 내용, 곧 ‘소망의 빛’을 뜻한다. 일상적인 현실에 곁들어진 초자연적 사실, 즉 우리의 삶에 내려진 초현실적 은혜를 말하는 것이다.

만일 그런 초현실적 은혜가 없다고 가정해 보자. 이들의 삶은 얼마나 곤궁해질 것이며 암담할 것인지…. 그것은 마치 출구없는 밀실에서 발버둥치는 것과 같을 것이다.

내면에 각인된 소망에서 우리는 희망의 불꽃을 본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는 어린 왕자가 별들을 보고 감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별들이 그가 사랑하는 장미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지구에서는 장미를 볼 수 없지만 별들이 그에게 장미를 기억나게 해주기에 별들이 아름다운 것이다.

▲윤경, 별이 빛나는 밤에, 130.3x162.2cm, mixed media on canvas, 2015.

▲윤경, 별이 빛나는 밤에, 130.3x162.2cm, mixed media on canvas, 2015.

사물은 정신적 작용을 동반한다. <사계>에 등장하는 민들레 홀씨, 물방울, 반딧불, 하얀 눈은 어떤 면에서 고향에 대한 동경을, 나아가 우리의 마음을 넓혀주고 도약시키는 소망의 빛을 일깨워준다.

밤이 깊을수록 빛의 존재는 더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하늘바라기>에서 보듯, 작가의 작품은 위로 올려다본 구도를 취한 까닭에 우리의 시선은 하늘의 빛에 집중된다.

“한결같이 하늘을 향해 힘차게 뻗어 올리는 나뭇가지처럼 꿋꿋이 살아내라고 내 등을 두들기는 저 나무 기둥처럼 오늘도 나는 저 나무들처럼 하늘바라기가 되어봅니다.” (작가노트 중에서)

작가가 밤 풍경을 선택한 것은 우리 삶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을 것이다.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는 무자비한 폭우와 태풍, 눈보라가 치는 경험, 때로는 끔찍한 가뭄과 같은 수많은 재해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우리를 위협하는 것들이 곳곳에 잠복해 있어 하루를 보내는 것이 다행스럽게 느껴질 정도이다.

이보다 심각한 것은 내면의 결핍에서 오는 위험일 것이다. 플라톤이 인간을 ‘새는 물병’으로 비유했듯이, 우리의 갈망은 좀처럼 채워지기 않는다. 그래서 인생이라는 물병에 무언가를 끊임없이 붓지만 결코 끝까지 채우지 못하는 것이다. 이 같은 반복으로는 우리의 동경도 마찬가지로 실현되기 어렵다.

이 같은 상황에서는 ‘광야에서 물이 솟고’, ‘사막에 시내가 흐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되는 영적인 이미지(사 25:6-7)를 상상하기 어렵다. 이런 이미지보다는 목전의 산적한 문제가 더 절실하게 와 닿는다. 그러면서 우리의 갈망은 다른 지점을 찾아 나서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올바른 선택이 아니다.

▲윤경, 하늘바라기, 116.8x80.3cm, mixed media on canvas, 2021.

▲윤경, 하늘바라기, 116.8x80.3cm, mixed media on canvas, 2021.

C. S. 루이스가 『사자와 마녀와 옷장』에서 밝혔듯, ‘아슬란’이 올 때 차갑게 얼어붙어 있던 대지에는 얼음이 깨지고 추위가 걷히는 동시에, 나무에서 잎이 돋고 봄이 태동하시 시작했다. 위대한 왕 ‘아슬란’으로 인해 죽음이 지배하던 곳에서 생명이 승리를 거둔다는 줄거리로 되어 있다.

루이스는 소설을 쓸 때 이사야의 장면을 상상하였을 것이다. “산들과 언덕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뼉을 칠 것이며(사 55:12)”.

윤경이 선택한 것은 겸손하게 인간의 본분을 되찾는 것, 곧 피조물로서 감사의 고백과 창조주에 대한 찬미에 집중한다. 창조주에 대한 찬미는 그분의 영화로운 위엄을 더욱 아름답게 드러낸다. 하나님의 위엄이 구주이신 그분에게서 나오는 것임을 알 때 우리는 더 깊은 경이감은 느끼며 그분을 더 즐거워하게 된다.

작품 전체에 이런 고백과 감탄의 멜로디가 스며 있다. 계절의 감각을 살린 것, 밤하늘 풍경, 낭만적인 호수, 반짝이는 별빛 등 그의 작업은 여러 모습으로 제작되었지만, 공통적으로 창조주를 기뻐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의 작품에서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을 나타내고(시 19:1), 빛은 이 끝에서 나와서 저 끝까지 운행하며 온 세상에 빛과 온기를 가져다주며, 온전한 나무 형상은 회복된 인간을 각각 상징하고 있다. 요컨대 충만하고 흘러넘치고 아낌없이 나누어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이 그 안에 담겨 있는 셈이다.

서성록 명예교수
안동대 미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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