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에서 읽는, 사도행전 ‘에티오피아 내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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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재 선교사의 ‘아프리카에서 온 편지’ (5)

빌립과 에티오피아 내시 비교
믿음 안 사람과 믿음 밖 사람
보냄받은 사역자, 부름받은 신자
출발지 예루살렘, 종착지 땅끝
선교의 구심점과 원심점 이뤄내
성령 강권적 지시와 절대 복종

▲이윤재 선교사의 에티오피아 사역 모습.

▲이윤재 선교사의 에티오피아 사역 모습.

에티오피아를 불과 며칠 동안 보고 돌아간다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다. 그 긴 역사와 전통에 걸맞는 충분한 시간적 예우가 필요했다. 솔로몬과 시바 여왕 이야기로 시작된 악숨 왕국, 인류의 어머니 루시, 커피의 고향 카파, 1년이 13달인 나라, 맨발의 마라톤 아베베의 나라에서 6천여 명을 보내준 고마운 6.25 참전국가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가 나에게 가벼운 주제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Jimma에서의 짧은 일정(5박 6일)에 비추어, 내게 주어진 주제는 사도행전 8장에 나오는 에티오피아 내시 이야기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항상 사도행전 8장을 읽을 때마다, 왜 여기에 에티오피아 내시 이야기가 나오는지. 그는 역사적으로 누구였으며 오늘날 누구인지가 궁금했다. 그 해답을 그가 살았던 에티오피아에서 찾는 것은, 나에게 예기치 못한 축복이었다.

사도행전 8장에 나오는 두 주인공, 빌립과 에티오피아 내시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었다. 빌립이 믿음 안에 있는 사람을 대표한다면, 에티오피아 내시는 믿음 밖에 있는 사람을 대표했다. 빌립이 세상으로 보냄받은 사역자를 대신한다면, 내시는 세상에서 부름받은 신자를 대신한다. 빌립이 복음의 출발지 예루살렘을 대변한다면, 내시는 복음의 종착지 땅끝을 대변한다. 둘은 선교의 구심점과 원심점을 이루면서, 함께 위대한 하나님의 선교를 이루었다.

▲이윤재 선교사의 에티오피아 사역지 모습.

▲이윤재 선교사의 에티오피아 사역지 모습.

먼저 빌립을 보자. 그가 등장하는 사도행전 8장 1절 상황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세상에 보내는 방법으로 자주 쓰신다. 그는 스데반의 순교를 통해 일어난 핍박으로 흩어진 사람 중 하나였다. 1장 8절의 ’증인‘ 명령은 8장 1절의 ’흩어짐’을 요구했고, 8장 1절의 순종은 1장 8절의 지상명령으로부터 왔다. 누구나 1장 8절을 명심하는 자는 8장 1절의 실천을 각오해야 한다.

‘흩어짐(디아스페로, 씨를 뿌리다)’은 핍박의 결과일 뿐 아니라, 핍박의 목적이다. 핍박을 통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단순한 도피가 아니라 ‘씨를 뿌리는 일’이다. 핍박(실패·사고)이 이런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하나님의 신비한 계획에 속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무에게나 흩어져 씨를 뿌리게 하지는 않았다. 씨 속에 생명을 가진 자만이 씨를 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빌립은 아마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성령강림 현장에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그를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행 6:6-7)’이라 부른다.

그의 믿음은 베드로의 우뢰 같은 설교로 강화됐고, 지속적인 기도생활로 더 깊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영적인 삶은 네 딸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양육하는 좋은 가정생활로(행 21:9) 이어졌다.

▲이윤재 선교사의 에티오피아 사역 모습.

▲이윤재 선교사의 에티오피아 사역 모습.

빌립에게서 볼 수 있는 믿음의 모범은 성령에 대한 절대 순종이었다. 그는 핍박이 일어나자, 아무도 가지 않은 사마리아로 떠났다. 핍박으로 흩어진 사람 중 사마리아로 간 사람은 그가 유일했다. 그는 사마리아에서 악한 영과의 능력 대결을 펼쳤다. 그의 전도는 ‘말과 함께 표적이 따르는 능력 전도(행 8:6)’였다.

그러나 빌립에게는 더 많은 순종이 요구됐다. 한참 사마리아에서 영적 전쟁을 벌이고 있던 빌립에게 갑자기 ‘가사(행 8:26)’로 내려가라는 성령의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그는 명령을 받고 800m 이상의 높은 므낫세·에브라임 산지를 오르고 내려 벧엘’예루살렘’헤브론으로 이어지는 능선(족장들의 길)을 탓을 것이다. 그리고 쉐펠라 골짜기로 내려와 지금의 벧그부린에서 라기스를 통과하여 지중해 쪽으로 방향을 틀어 며칠을 걷고 또 걸었을 것이다.

그가 가사에 도착하자 마차를 향해 나아가라는 명령이 주어졌다(행 8:29).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마차 앞에 마주 서자, 이번에는 마차에 올라 책을 읽고 있는 사람 옆에 앉으라는 명령을 들었다(행 8:31). 에티오피아 내시를 통한 이방인 구원의 역사는 계속적인 성령의 강권적 지시와 그에 대한 절대 복종을 통해 이뤄진 것이다.

▲이윤재 선교사의 에티오피아 사역지 모습.

▲이윤재 선교사의 에티오피아 사역지 모습.

내시, 에티오피아 왕 최측근 인사
여왕 가까이 모셔 거세 요구당해
진리 향한 진지한 구도 자세 보여
다시 기쁘게 먼 길 떠나게 된 이유
삶의 목적 구원 확신 얻었기 때문
에티오피아, 세계 첫 기독교 국가

이제 오늘의 주인공 에티오피아 내시에 집중해 보자. 먼저 내시가 누구였느냐가 중요하다. 성경은 그가 당시 에티오피아 왕국 재정 담당 고위관리였다고 말한다(행 8:27). 그는 국가 재정을 책임짓는 자이자 군사 실권까지 갖춘 왕의 최측근 인사였을 것이다.

그가 내시였다 해서 환관 같은 존재는 아니었다. 성경은 당시 에피오피아 왕을 ‘간다게’라고 불렀다. 간다게는 왕의 이름이 아니라 칭호였다. 이집트 왕을 ‘바로’라 부르고, 로마의 황제를 ‘시저’라 불렀던 것과 같다. 역사에 의하면 당시 왕은 ‘아만디테레’라는 여왕(재위 주후 25-41)이었다. 그가 여왕이었기 때문에, 그를 가까이서 모신 남자들은 성적 안전을 위해 거세를 요구받았을 것이다.

당시 에티오피아는 지금의 에티오피아보다 더 이집트 쪽에 가까웠다. 에티오피아는 지금의 나일강 하류 지역을 의미했고, 중심 도시는 ‘모로(Moroe)’였다(지금의 북수단). 이 지역을 역사는 ‘모로 왕국, 누비아 왕국’이라 부르고, 성경은 ‘구스’라고 부른다(구스는 이집트 남쪽 지역 총칭).

에티오피아와 이스라엘 간의 뿌리깊은 관계는 주전 10세기, 솔로몬 왕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솔로몬의 지혜를 듣고자 멀리서 찾아온 시바 여왕 이야기(열왕기상 10장)는 에티오피아 왕 연대기에 의해 왕국 건설 전승으로 발전한다. 이 둘 사이에 태어난 메르네크 1세가 본국으로 돌아온 후 악숨에 왕국을 창설했다는 것이다. 그 뿌리에서 태어난 친 이스라엘 에티오피아 왕국은 매년 이스라엘 절기(유월절)마다 이스라엘에 공식 사신을 파견해 왔다는 것이다.

▲이윤재 선교사의 에티오피아 사역 모습.

▲이윤재 선교사의 에티오피아 사역 모습.

그래서 사도행전 8장의 에티오피아 내시는 개인 자격으로 이스라엘에 온 것이 아니라, 왕의 파송을 받은 국가 사신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는 분명 예루살렘 성전에서 열린 유월절 예배와 축제에 참석했을 것이다.

유월절 축제는 아마도 8일간 이어졌을 것이고, 금요일 오후 3시 성전에서 유월절 어린양을 잡는 의식을 절정으로 축제가 마쳤을 것이다. 그리고 성전 회랑에서 서기관들이 인도하는 토론식 가르침에 참여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유월절 축제를 마친 내시는 다시 짐을 챙겨 고향 에티오피아에 이르는 8천km의 머나먼 귀향길에 올라야 했다.

중요한 것은 그가 돌아가는 길에 성경을 읽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사야 53장이었다. 아마 그가 예루살렘에서 목격했던 유월절 행사를 보고 그가 가졌던 의문 때문일 것이다. 도대체 양은 왜 잡는가? 양의 죽음은 인간의 죄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혹시 그는 에루살렘에 머물면서 몇 년 전 예루살렘에서 죽은 한 유대인 사형수 이야기를 들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유월절 어린 양으로 다른 사람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는 이야기다. 이 모든 상황에 대해 그는 더 진지하게 알고 싶었다. 이 중요한 시점에 만난 사람이 전도자 빌립이었다.

▲이윤재 선교사의 에티오피아 사역 모습.

▲이윤재 선교사의 에티오피아 사역 모습.

에티오피아 내시는 진리를 향한 진지한 구도자의 자세를 보여준다. 그는 예루살렘 유월절 예배에 참여한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것을 일상생활 속에 연결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말하자면 주일 신자가 아니라, 주중 신자였다. 그는 성경을 읽을 뿐 아니라, 또한 질문했다.

탈무드 속 ‘배우려고 하는 자는 부끄러워해서는 안 되고 가르치려는 자는 인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과 같다. 성경은 ‘왜’라고 묻는 자에게만 비밀을 드러낸다. 그는 성경을 읽고 의심된 바를 묻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또 그는 믿음을 단순한 지적 동의로 여기지 않고, 인격적 위탁으로 받았다. 그가 질문하던 바를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했을 때(행 8:35)’, 그는 너무 기뻐 박수를 보냈을 것이다. 그가 예루살렘에서 보았던 유월절 어린 양의 도살과 이사야 53장, 그리고 풍문으로 들었던 십자가에 달린 유대인 이야기가 한 고리로 연결되면서, 드디어 그가 찾던 메시아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때 그가 주저없이 요청한 것이 세례였다(행 8:36).

내시는 이스라엘 어디에서 세례를 받았을까? 가사를 따라 지중해 남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브엘세바에서 지중해로 흐르는 작은 시내가 있다. 이름은 브솔 시내이다. 이 시내에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다. 다윗과 그 가족과 신하들이 아말렉에게 붙잡혀 간 날, 이 시내에서 하룻밤을 지낸 후 그들을 추격, ‘아무 것도 잃은 것이 없이 모든 것을 다시 찾은 사건(삼상 30:19)’이 있었다.

▲이윤재 선교사의 에티오피아 사역 모습.

▲이윤재 선교사의 에티오피아 사역 모습.

브솔은 히브리어로 ‘기쁜 소식’이란 뜻이다. 이 뜻깊은 브솔 시내에서 역사상 최초로 이방인이 세례 받고 영혼이 회복된 기쁜 사건이 일어났다. 다윗이 잃은 자기 가족을 찾은 그곳에서 하나님은 잃어버린 세상의 다른 자녀를 찾은 것이다.

내시가 세례를 받은 후 보인 태도는 구원받은 자들의 마땅한 변화를 보여준다. ‘내시는 기쁘게 그의 길을 가므로(He went on his way rejoicing, 행 8:39)’.

도대체 내시에게 기쁠 일이 무엇인가? 그는 8천km를 돌고 돌아 고향까지 가는 길, 가사에서 이집트까지 가는 긴 시나이 사막을 지나야 하고, 이집트에서 나일강을 따라 험한 길을 재촉해야 했다. 강도의 위험, 폭우, 폭염의 위험, 굶주림과 목마름의 위험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도 그는 분명히 기뻤을 것이다. 인생의 진정한 기쁨은 삶의 목적, 생명의 주인, 구원의 확신을 얻을 때 오기 때문이다. 구원은 우리가 가는 길에 고난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고난에도 불구하고 기쁘게 길을 간다는 것이다.

그가 본국으로 돌아간 후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남은 자료가 없기 때문에 우리가 그에 대해 아는 것은 없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는 분명 있는 힘을 다해 그가 보고 믿은 구원의 진리를 사람들에게 증거했을 것이다.

▲이윤재 선교사의 에티오피아 사역 모습.

▲이윤재 선교사의 에티오피아 사역 모습.

첫째, 하나님은 나 같은 내시도 그의 자녀로 받아 주셨다. 신명기 24장 1절, 레위기 27장 20절에 의하면 내시(거세자)는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한다. 인권 차별 때문이 아니라, 창조의 불완전성 때문이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믿는 나를 은혜로 받으셨다.

둘째, 하나님은 나 같은 이방인도 자녀로 받아주셨다. 우리는 무할례자요 하나님의 약속 밖에 있던 자였지만(엡 2:11-12), 하나님이 자녀로 받아주셨다. 그로 인해 스바냐 3장 10절, 시편 68편 31절에 기록된 모든 구원이 이뤄질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지금도 우리 안에 살아 계시기 때문이다.

드디어 주후 330년, 세계 기독교 역사에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났다. 에티오피아가 세계 역사상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것이다. 에티오피아 에자나 왕(King Ezana) 때의 일이었다. 영국(아일랜드) 5세기, 독일 7세기, 미국 17세기, 우간다 1877년, 한국 1885년에야 복음이 들어온 것과 비교하면, 에티오피아는 그보다 훨씬 빨리 복음을 받아들이고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했다.

심지어 이는 로마보다 빠르다. 로마는 에티오피아보다 50년 늦은 주후 380년, 데오도시우스 1세 때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 모든 놀라운 일의 배경에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섭리가 있었다. 그리고 전도자 빌립의 절대 순종과 에티오피아 내시의 절대 믿음이 있었다.

새해를 맞아 우리는 빌립이 가졌던 성령에 대한 절대 순종의 믿음과 에티오피아 내시가 가졌던 성경에 대한 절대 믿음의 신앙을 가졌는가? 새해에는 사역자는 빌립을 닮고 신자는 내시의 믿음을 따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새해에 우리는 빌립의 능력 전도로부터 시작하여 내시의 땅끝 선교에 이르기까지, 전도와 선교에 최선을 다하겠는가? 새해에 우리는 ‘모든 노력은 나에게서 나오고 모든 능력은 하나님에게서 나온다’는 말을 믿고 모든 노력을 다하여 모든 능력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는가?

May God’s blessings be with you, your children, your work, and your dreams in new year!

▲이윤재 선교사 부부.

▲이윤재 선교사 부부.

이윤재 선교사

우간다 쿠미대학 신학부 학장
Grace Mission International 디렉터
분당 한신교회 전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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