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 반대하다 감옥 간 아버지에게 “남쪽으로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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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명혁 목사가 생전 자신의 삶을 회고한 글]

▲김명혁 목사. ⓒ크투 DB

▲김명혁 목사. ⓒ크투 DB

18일 소천받은 김명혁 목사(강변교회 원로, 예장 합신 증경총회장)는 종종 설교 도중 자신의 삶을 회고하곤 했다. 크리스천투데이는 그 주요 내용을 정리해 다음과 같이 게재한다. -편집자 주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존재들 중에 교회보다 더 귀중하고 더 복되고 더 아름다운 존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성자 예수님께서 피 흘려 사신 예수님의 몸과 머리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성부 하나님의 눈과 마음과 귀가 항상 향하고 게시는 하나님의 집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또한 성령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성령님의 전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교회보다 더 귀중하고 더 복되고 더 아름다운 존재는 세상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망극하신 사랑과 은혜와 축복으로 교회를 너무너무 좋아했고 너무너무 사랑했습니다.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학교에 가서 공부하는 것보다 더 좋았습니다. 저는 1살 때부터 9살 때까지는 북한의 신의주에서 살았습니다.

▲김명혁 목사의 아버지 김관주 목사와 어머니 유춘택 사모, 명혁과 명신의 모습.

▲김명혁 목사의 아버지 김관주 목사와 어머니 유춘택 사모, 명혁과 명신의 모습.

저의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께서 신의주 제이교회에서 목회 하셨는데 일본 통치 때에는 신사참배를 반대한다고 자주 감옥에 잡혀가는 감옥생활을 하셨습니다. 저는 어릴 때 어머니와 함께 감옥 담장에 가까이 가서 노래를 부르면서 “아버지, 아버, 아버지”라고 소리를 지르곤 했습니다. 그때 제가 부르던 노래는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뻐꾹 새 숲에서 울 때 우리 오빠 말타고 서울 가시며 비단 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라는 노래였습니다.

제가 10살 11살 때에는 북한의 평양에서 살았는데, 해방 후에는 아버지가 평양 서문밖교회에서 가서 목회를 하셨는데 공산당 정부와 협력하지 않는다고 자주 잡혀가서 감옥살이를 하시곤 하셨습니다. 저는 자주 감옥에 잡혀가시는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신앙생활을 올바로 하기 위해서는 감옥에도 잡혀가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해방 후 북한에서는 주일에 교회에 가지 못하게 했고 학교에 오라고 했습니다. 저는 10살 11살 때에는 평양에 있는 제오인민학교에 다녔는데, 2년 동안 주일날 한 번도 학교에 가지 않고 아버지가 목회하시는 평양 서문밖교회에 가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 교회에 있으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2년 동안 월요일마다 학교에서 벌을 받고 때로는 정학을 당했습니다. 저는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결국 저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며 교회에서 정성껏 예배 드리기 위해 북한을 떠나 남한으로 가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감옥에 계시던 아버지를 찾아가서 남쪽으로 가겠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아버지는 저를 한참 바라 보시다가 “그러면 가”라고 말씀했습니다. 저를 너무너무 사랑하시던 어머니에게 남쪽으로 가겠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어머니는 울면서 “그러면 가”라고 말씀했습니다.

결국 저는 11살 때인 1948년 8월 고향과 부모를 떠나 캄캄한 밤에 38선을 뛰어넘어서 남쪽으로 왔습니다. 같이 오던 어른들 5, 6명은 38선을 넘다가 모두 인민군에게 붙잡혔습니다. 손 들고 서지 않으면 모두 총을 쏘아 죽이겠다고 명령을 했기 때문입니다. 저만 혼자서 남쪽을 향해서 40여 분 동안 달렸습니다. 언덕을 넘고 파 밭을 달리고 강은 건너서 서 월남을 했습니다. 그 후의 이야기는 생략합니다.

▲김명혁 목사의 모친이 그에게 보낸 서신.

▲김명혁 목사의 모친이 그에게 보낸 서신.

저는 서울에 와서 이모님을 만나게 되었고, 이모님 집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누리게 된 것이 너무너무 좋았지만, 아버지와 어머니가 보고 싶어서 2년 동안 밤마다 눈물을 흘리면서 울었습니다. 결국 저는 남한에 와서 고향과 부모를 떠난 고아와 나그네로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지니고 외롭게 한평생을 살게 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저의 삶을 너무 많이 축복해 주셨습니다.

서울중학교, 서울고등학교, 서울대학교에서 공부를 마음껏 하게 하셨고, 대학교를 졸업한 다음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12년 동안 동부 중부 서부의 좋은 신학교들에서 신학 공부를 마음껏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미국으로 갈 때 비행기 탈 돈이 없어서 미국 군함을 타고 2주 반 동안 긴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주머니에 단돈 100불을 가지고 미국에 가서 12년 동안의 유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함이 조금도 없는 유학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족한 저를 너무 많이 축복해 주셨습니다. 귀국 후에는 후암교회에서 교육 목사로 5년 동안, 영안교회에서 8개월 동안 담임 목사로, 그리고 강변교회를 개척해서 28년 동안 부족함이 조금도 없는 넉넉한 목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총신과 아신과 합신에서 교수 사역을 아주 넉넉하게 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가 개척해서 28년 동안 목회하던 강변교회를 너무너무 사랑했는데, 저는 강변교회에 모든 것을 바치기를 소원하면서 사랑했습니다. 제가 28년 동안 목회하는 동안 10년동안 사례비를 받지 않았습니다. 부족한 제가 교회를 귀중하게 여기면서 순수하게 사랑하니까 강변교회의 성도들도 교회를 순수하게 사랑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들 중에서 가장 귀중하고 가장 복되고 가장 아름다운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신약 성경에 나타난 예루살렘 교회와 안디옥 교회와 빌립보 교회의 귀중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조금이라도 닮도록 최선을 다하여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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