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이후 중국 기독교 역사 정리
정부 방침 적극 협력, 공인교회
거부하고 저항했던 비공인교회
두 진영 화합 ‘제3의 길’ 모색도
시진핑 교회 탄압 언급 無 아쉽
중국교회 삼자운동 발전사
진미수 | 새물결플러스 | 400쪽 | 25,000원
“현대 중국교회가 두 진영으로 나뉘게 된 배경을 보면 표면적으로는 1949년 신중국 성립 시기가 기점이 된다. 1949년 사회주의 정당이 집권하면서 기독교를 통제할 목적으로 ‘삼자회’를 만들고 삼자애국운동을 추진했다. 이에 따라 정부 방침과 정책에 동의하고 적극 협력해 삼자애국운동을 추진한 진영은 ‘공인교회’를 형성했다. 반면 정부의 방침을 거부하고 이에 저항한 진영은 지하교회를 형성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가정교회 또는 비공인교회’가 됐다.
사실 1949년은 표면적인 분기점이다. 이들이 나누어지게 된 근원을 알아보자면 1920-193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정부 방침에 적극 따른 진영과 반대한 진영은 이미 1920-1930년대부터 서로 다른 신학적 경향을 띠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 시기 각각 자신들의 위치에서 ‘자립교회 운동’과 ‘본색화 운동을 통해 서구 기독교와 무관한 중국적 기독교를 세워가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중국 선교, 나아가 중국인들의 신앙생활이 당국의 박해로 갈수록 어려워지는 가운데, ‘죽의 장막’에 가려진 19세기 이후 중국 기독교 역사를 정리한 <중국교회 삼자운동 발전사>가 발간됐다.
이 책은 19세기 초반 태동한 중국교회가 급변했던 중국 근현대 시기에 어떻게 생존을 도모해 나갔는지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자, 삼자교회와 지하교회 또는 공인교회와 비공인교회가 분리·대치된 배경과 과정, 삼자운동의 역사적 변천과정을 분석해 두 진영의 화합을 위한 ‘제3의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특히 ‘삼자운동’이 단순히 사회주의 신중국에 협력한 삼자교회의 전유물이 아니라, 서구 제국주의의 그늘 아래 있던 기독교를 중국인들의 독자적 종교로 제시하려던 ‘근원적 움직임’이었다고 진단한다.
현재 백석대 기독교학부 부교수로 재직중인 저자는 베이징사범대학 박사과정에서 중국 당대문학을 수료하고 중국 옌볜과학기술대학 한국어과, 백석예술대학 중국어과에서 강의했으며, 중국에서 사역하며 중국교회사를 연구한 전문 학자다.
사실 ‘삼자(三自)’란 그 유명한 선교사 네비우스(Nevius)의 ‘자진 전도, 자력 운영, 자주 치리’ 선교정책에서 연유한 토착 교회 육성 방안을 뜻한다. 한국교회가 대표적 성공 사례이기도 하다. 그러나 1949년 사회주의 중국 건국 이후, 특히 최근 시진핑 집권 이후의 ‘삼자’는 단순한 자립·자치·자전을 넘어선 ‘중국 (공산당)식 기독교’로 변질되고 있는 것도 사실. 7일 발표된 KWMA 한국 선교 현황처럼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추방당했고, 감시와 처벌은 갈수록 성도들을 옥죄고 있다.
단 이 책은 19세기와 20세기 초, 그리고 문화대혁명 무렵까지 중국교회와 주요 인물들의 사상과 역사 기술, 그리고 삼자교회와 가정교회의 비교와 대조 등 ‘중국교회를 바르게 소개하는 일’에 집중, 최근 흐름에 대한 비판적 접근이 적은 부분은 아쉽다.
결론에서 저자는 “삼자교회와 가정교회 양자가 본래 하나였고, 과거 동일한 꿈과 비전을 갖고 있던 관계라는 사실은, 오늘날도 동일한 비전 공유가 가능함을 강력히 시사한다”며 두 교회 간 화합의 물꼬를 트기 위한 ‘교류’를 제안하고 있다. 천천히 한 단계씩 교류의 역사를 만들어가되, 각자의 장점으로 상대의 부족한 부분을 짊어지는 ‘성경적 협력’을 권유한다.
이후 부록으로 중국 삼자교회 관찰에 대한 적용 격으로 한국교회에 적실한, 저자의 지도교수인 장동민 교수(백석대 역사신학)의 ‘북한교회 재건을 꿈꾸다’라는 글에서 미래 북한교회 5가지 재건 방향을 소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