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재 선교사의 ‘아프리카에서 온 편지’ (6)
삶, 성공과 실패로 판단 아니라
매일 하나님의 눈으로 기억하고
생각하고 마음으로 배우는 데서
판가름… 실천하고 글 올려주길
오랜 목회를 뒤로 하고 아프리카로 떠날 때, 아마 나는 새롭게 시작한 선교적 삶에서 목회와 다른 무슨 특별한 것을 기대했었는지 모른다.
그것은 아마도 무한 경쟁 속에 쉽게 지쳐버린 영혼과 시도 때도 없이 들려오는 소음으로부터 해방되는 기쁨과 함께, 그로 인해 주어지는 순수한 행복감과 진정한 헌신에 대한 갈망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선교 6년차를 맞이한 나는 이 세상 어디에도, 그리고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사는 어떤 종류의 소명의 삶에도 특별한 예외나 특혜는 없다는 매우 단순한 진리를 깨달았다. 선교가 소명의 영역에서 조금 더 치열하긴 해도, 그 영역에 속해 있다는 것만으로 순수한 행복과 진정한 헌신의 기쁨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선교 현장은 그야말로 깊고 어두운 정글처럼 안으로 들어갈수록 매일 들려오는 소음과 긴장, 그리고 목회와는 또 다른 종류의 경쟁과 무게 속에서 매일 희망과 낙심이 교차하는 삶임을 알게 되었다. 특별히 그 심연의 고통은 선교적 성취감을 존재의 중요한 목적으로 삼는 사람에게 더욱 크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는가? 사역의 장르를 바꾸고 소명의 공간을 바꾸면 더 행복해지는가? 집사로 있다가 장로가 되고, 평신도로 살다가 목사가 되고, 한국에서 목회하다가 아프리카 선교사로 가면 더 행복해지고 더 헌신적이 되는가?
시인 류시화가 쓴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에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 그가 북인도 바라나시 한 여관에 머물면서 여행할 때, 낮에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돌아오면 늙은 여관 주인이 항상 그에게 이렇게 묻곤 했다는 것이다. ‘오늘은 뭘 배웠소?’ 여관 주인은 그에게 ‘오늘은 뭘 보았소? 오늘은 뭘 구경했소?’라고 묻지 않고 ‘오늘은 뭘 배웠소?’라고 물었다는 것이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는 뭔가를 대답해야 해서, 처음에는 이것저것 둘러댔다는 것이다. ‘오늘은 인도가 무척 지저분하다는 걸 배웠습니다’, ‘오늘은 인도에 거지가 무척 많다는 걸 배웠습니다’. 어떤 날은 뭐라고 할 말이 없어 ‘오늘은 인도에 쓸데없는 걸 묻는 사람이 참 많다는 걸 배웠습니다’ 하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러나 여관 주인이 매일 그렇게 묻자, 그는 언젠가부터 자기도 모르게 스스로 자신에게 묻게 되었다고 한다. ‘오늘은 내가 뭘 배웠지?’ 심지어 아무 것도 배운 것 없는 날에는 오늘은 아무 것도 배운 것이 없다는 것을 배웠다고 했고, 자기가 말한 것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있는 날에는 오늘은 세상에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도 있다는 것을 배웠다고 했다.
심지어 그날따라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을 때는 오늘 나는 침묵의 자유를 배웠다고 했고, 자기 생각에 대해 크게 반대한 사람이 있는 날에는 세상에는 나 말고도 흥분하는 사람이 더 있다는 것도 배웠다고 했다.
선교사의 비극, 자기는 배우지 않으면서 남 가르치려는 것
믿음 좋은 신자 실수, 성공으로만 하나님 은혜 확인하는 것
사역자의 스트레스, 사역 열매·성공과 하나님의 복 동일시
만일 우리 삶의 목표를 성취와 성공에 두지 않고, 우리 삶의 불행을 실패와 실수에 두지 않고 매일 무엇인가 배우는 삶에 둔다면, 만일 우리 삶의 가치를 성공이 아니라 성장에 둔다면, 밖에서 들려오는 뼈아픈 비난과 안에서 들려오는 끊임없는 소음 속에서 끝나지 않은 기나긴 경쟁과 갈등의 상황들을 감정의 채널을 통해서만 받아들이지 않고, ‘여기서 내가 무엇을 배우지?’ 하며 잠시 멈춰설 수 있다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우며, 우리는 얼마나 많이 성장할 것인가?
한국에서는 오로지 책을 통해 배우며, 학교와 세미나와 성경공부를 통해서만 배운다고 생각한 나는 선교를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영역이 아주 무한하다는 것을 배웠다. 우리는 말이 있는 교과서뿐 아니라, 말이 없는 교과서를 통해서도 배운다.
어느 날 믿었던 사람 때문에 속상했을 때 밖으로 나와 30분만 하늘의 별을 바라볼 수 있다면, 어느 날 잘 풀리지 않은 일 때문에 괴로울 때 길가에 핀 작은 꽃 한송이 앞에서 10분 동안만 조용히 서 있을 수 있다면, 우리는 얼마나 많이 배울 것인가? 봄 언덕에 솟아난 작은 풀잎 하나는 하늘에 빛나는 별들의 운행보다 덜 경이로운 것인가? 그렇지 않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말하고, 낮은 낮에게 밤은 밤에게 말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나 사람 때문에 웃고 사람 때문에 울지만, 그들이 누구든 어떤 경우라도 내가 그들에게서 배울 것이 있다고 믿는다면 사람으로 인한 시험과 오해는 줄고, 사랑과 배움의 크기는 더 커질 것이다.
선교사의 비극은 자기는 배우지 않으면서 남은 가르치려는 것이요, 믿음 좋은 신자의 실수는 오로지 성공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은혜를 확인하려는 것이요, 사역자의 스트레스는 사역의 열매와 성공을 하나님의 복과 동일시하기 때문에 온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매일 엄청난 배움의 보화들을 놓치며 사는지 모른다. 성공했든 실패했든 배우면 성공이요, 성공했어도 배우지 못하면 실패다. 지나간 5년, 시행착오를 통해 배운 행복에 이르는 길이 있다. 그것은 하루를 지나 잠들기 전 적어도 10분 이상 오늘 나는 무엇을 배웠는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확실한 것은 일이 잘 안되고 실패했을수록, 그날 배운 것은 더 많다는 것이다.
지난 5년 간 치열한 삶의 명예를 걸고 감히 말한다면, 하루를 어떻게 살았든 이제는 어쩔 수 없다. 스스로 들어왔으니, 스스로 나가게 하면 된다(Let it come, let it go). 다만 잠들기 전, 잠시 멈춰 서서 ‘그래, 오늘 나는 무엇을 배웠는가?’ 물어보자. 만일 그것을 글로 쓸 수 있다면 좋다. 조금씩 익숙해져서 시간을 늘릴 수 있다면 더욱 좋다.
문제는 그것을 미루지 말고 오늘 당장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 나는 오늘 무엇을 배웠지?’. 이 질문을 하기 전에 잠들지 않는 시간이 많을수록, 우리의 내일은 확실히 더 밝을 것이다.
시편 기자도 평생 이런 마음으로 다음과 같이 고백했을 것이다. “내가 옛날을 기억하고 주의 모든 행하신 것을 읖조리며 주의 손이 행하는 일을 생각하고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시 143:5-6)”.
우리 삶은 다만 성공과 실패로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 매일 그것을 하나님의 눈으로 기억하고 생각하고 마음으로 배우는 데서 판가름난다. 마리아도 분명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고 생각하니라(눅 2:19)”.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 곧 그것을 실천하고 받은 은혜를 글로 올려주는 축복이 있기를 기도한다. 새 봄이 오기 전에 새 봄을 시작하자. 새 봄은 멀리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배워 새롭게 태어나려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이미 시작된다.
이윤재 선교사
우간다 쿠미대학 신학부 학장
Grace Mission International 디렉터
분당 한신교회 전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