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조직교회, 시대상 엿보여
6.25와 자연재해 속 원본 보존
당회 민주적 운영, 대의제 도입
연구자들뿐 아니라 일반인 열람
1887년 창립된 한국 첫 조직교회인 새문안교회(담임 이상학 목사)가 과거 60년간의 당회록을 현대어로 풀어쓴 <새문안 당회록(堂會錄) 현대어 풀이본(전 10권)>을 펴냈다.
수록 기간은 1907-1967년으로, 평양대부흥을 시작으로 일제강점기, 해방과 좌우 이념 대결, 6.25 전쟁, 전후 보릿고개 극복 등 고난과 영광의 60년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새문안교회는 옛말 한글체와 국한문체로 기록됐던 당회록을 청소년도 이해하기 쉬운 현대어 한글체로 출간했다.
1907년 ‘예수교장로회 독로회(獨老會)’ 조직 후 기록된 1권(교우문답책 1)을 시작으로 1967년 12월까지 60년 분량의 ‘당회록’을 현 세대와 다음 세대까지 읽기 쉽도록 현대어로 풀이해 총 10권의 책으로 묶었다. 새문안교회는 오는 4월 7일 발간 감사예식을 열 예정이다.
새문안교회 당회록은 목회자와 교인 대표인 장로들이 교회 주요 사안을 결정하는 근대식 대의(代議)제도의 소산인 ‘당회(堂會)’ 회의 내용을 기록한 것으로, 회집 일시부터 장소, 참석 회원, 결의 안건 등을 기록하고 당회장과 서기가 날인했다.
당회록은 상위기관인 ‘노회(老會)’에서 정기적으로 검사했으며, 교회 사정을 있는 그대로 명시했다. 이런 의미에서 새문안교회 초기 60년 당회록 발간은 한국 근현대사, 한국교회사, 교회 생활사, 한국어 변천사, 한국어 문체사 등의 연구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전쟁과 재해 속 원본 보존
국내에 100년 이상 교회는 많으나, 북한 지역 교회는 공산 정권 핍박으로, 남한 지역 교회들도 6.25 전쟁과 자연재해, 교회 이전과 건축 등 여러 상황으로 기록물이 유실된 경우가 많은 실정이라고 한다.
새문안교회는 지금까지 광화문 한 곳에서 자리를 지킨 덕분에 <당회록> 원본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새문안교회는 광복 후인 1948년 어려움 가운데서도 새 예배당을 준공했으나, 전쟁 기간 북한군에 의해 예배당이 징발(徵發)당해 인민군 본부로 사용됐다. 교회 측은 “그럼에도 <당회록>이 보존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설명했다.
◈대의제 도입, 제헌 국회보다 빨라
새문안교회 당회록은 교회가 일찍부터 민주적으로 당회를 운영했음을 보여준다. 새문안교회는 우리나라 첫 민주 선거인 1948년 5월 10일 제헌 국회의원 선거 훨씬 전인 1890년대부터 이미 선거제도를 통해 교회 장로와 집사 등 직분자를 세례교인들 투표로 선출했다.
첫 회의 기록 자료는 남아 있지 않지만, 1898년 ‘그리스도 신문’에 집사 선거 내용이 상세히 나와 있다. 이후 교회 회록이 분실됐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현재 교회에 전하는 가장 오랜 기록은 1910년 8월 16일 회의록이며, 집사 2인을 뽑는 선거 내용이다. 담임목사 위임 등 여러 결정도 투표로 했으며, 회의 내용도 기록으로 남아 있다.
◈남북한 교인 교류 활발
광복 전 당회록에는 새문안교회 교인들의 이명(移名·이사나 직장 등으로 교회를 옮기는 일) 기록이 잘 서술돼 있어, 행정체계가 잘 세워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새문안교회에서는 남북한 간의 교류가 잘 이뤄졌다. 북에서 이명온 교인들 기록(북쪽 교회 이름, 담임목사, 세례 여부, 가족관계 등)이 상세히 기록돼 있어, 통일 후 북한 종교시설 복원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이상학 목사는 “대한제국을 거쳐 일제강점기의 힘든 시기와 광복, 한국 전쟁 등을 거친 기독교 역사의 한 축이 고스란히 담긴 당회록이 지금까지 온전히 보존된 것은 한국교회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이라며 “한국교회사 연구자들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필요에 따라 쉽게 열람할 수 있다”고 말다.
◈당회록 외에 제직회록·교회회의록 등도 보존
새문안교회에는 <당회록>과 함께 1914년부터 시작한 ‘제직회’ 회의록인 <제직회록>, 지금의 공동의회 기록인 <교회회의록>, 광복 이전 주보 역할을 했던 <교회일지> 등 옛 문헌들도 보존돼 있다고 한다. 1914-1945년 <제직회록>은 앞선 지난 2016년 현대어 풀이본을 발간한 바 있다.
새문안교회 당회록은 한국 기독교 역사 연구자들 또는 선조들의 세례 문답 상황이나 행적을 알고 싶어 하는 교인들이 종종 열람을 요청했다. 그러나 원본 열람은 손괴(損壞) 위험이 있고, 영인본 일부는 한글 옛말체 및 국한혼용체로 쓰여 있어 일반인들이 빠른 손글씨로 기록된 회의록을 해독하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이에 ‘새문안교회 역사관’에서 봉사하던 박장미 권사가 지난 8년간 당회록을 읽기 쉬운 현대어로 번역·정리했다.
새문안교회 역사자료위원회는 창립 136주년을 기념해 사료편찬 일환으로 이 <새문안 당회록 현대어 풀이본>을 발간했다. 총 10권 3,866쪽이라는 방대한 분량으로 현대어 풀이와 당회록 영인본을 함께 실어 연구자들이 원본과 풀이본을 대조하면서 볼 수 있게 했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각 권 문헌 해제와 역대 당회장, 당회 서기, 기록 시기 등이 표기된 풀이본 일람표, 역대 당회원 일람표, 1887-1920년 새문안교회를 거친 美 북장로교 파송 선교사 목록, 당회록 기록 시기 새문안교회 대표 사진 등도 수록했다.
◈1900년대, 치리와 권징 내용 많아
초기인 1900년대 당회록에는 교인들의 세례 문답과 치리·권징에 대한 내용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또 현재 공동의회에 해당하는 교회회의 내용도 함께 기록돼 있다.
주요 치리 사유로는 술집 운영자에게 세를 놓거나 주일 성수를 하지 않은 교인, 음주, 남녀 학생들의 연애편지 교환, 민며느리를 들이거나 믿지 않는 집으로의 출가, 이혼 등이다. 교회는 이들에게 책벌을 내리기 전, 먼저 해당 교인을 불러 기도하고 권면했다.
우상숭배(제사)와 7계명(첩을 들인 일)을 어긴 이에게는 엄한 책벌을 내려 출교(黜敎)한 경우도 있었다. 가정을 지키고 기독교인의 거룩한 차별성을 권장하기 위한 일이었다.
당시에는 문맹인이 많아 교인 세례문답 문항에 ‘글의 유무식’ 여부를 묻는 항목도 있었고, 부인 직업란에 남편 직업이 기재돼 있으며, 서너 번의 문답으로 주일 성수와 우상숭배 준수 등이 확인돼야 세례를 받을 수 있었다.
◈장지영·최현배·홍난파·윤이상·김규식·김마리아 등
눈에 띄는 세례 문답자 이름도 즐비하다. 영친왕 서예 스승이자 고종 황제의 어진을 촬영한 우리나라 최초 사진관 천연당(天然堂)을 운영한 해강 김규진(金圭鎭), 그의 아들이자 현대 한국화가 청강(晴江) 김영기(金永基), 1921년 조선어연구회를 조직해 한글 운동과 연구에 헌신한 장지영(張志暎)과 최현배(崔鉉培), 국내 최초로 대한제국 학교와 세브란스의학교를 졸업한 면허의사 홍석후(洪錫厚)와 동생 홍난파(홍영후), 작곡가 윤이상(尹伊桑), 독립운동가 김마리아 등에 대한 세례 기록이 있다.
새문안교회 당회장으로는 설립자 언더우드를 비롯한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들 이름이 등장한다. 풍기 지역에 사과를 최초 도입한 아더 웰본, 연희전문 교수로 근대과학으로서 화학을 소개한 에드워드 밀러, 언더우드 선교사를 도와 연희전문 설립에 헌신하며 복음 전파에 매진하다 3년 만에 순교한 빅터 채핀, 경신학교장 에드워드 쿤스 등의 선교사들이다.
뿐만 아니라 서경조(徐景祚), 차재명(車載明), 김영주(金英珠), 강신명(姜信明) 목사가 당회장을 역임했다. 당회록 서기로는 권서(勸書) 시찰인 송순명(宋淳明) 장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부주석을 지낸 독립운동가 김규식(金奎植) 장로, 성경 번역가 이승두(李承斗) 장로 등이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