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하나님의 연인이자 하나님의 성육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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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소위 ‘녹색 연회 가이드북’에 대한 비판적 검토 (3·끝)

▲감리회 선교국 발간 ‘녹색연회’ 가이드북 표지.

▲감리회 선교국 발간 ‘녹색연회’ 가이드북 표지.

4월 열린 기독교대한감리회 각 연회가 소위 ‘창조세계의 부흥을 이끄는 녹색연회‘로 진행된 것과 관련, 총회 출간 가이드북에 소개된 여러 콘텐츠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이선희 전 목원대 교수님의 글을 연속 게재합니다. 양재성 목사(감리교생태목회연구소 소장)의 ‘설교예문 2: 당신은 하나님의 계시입니다’는 수정된 가이드북 편집본에서는 빠진 것으로 보이나, 이선희 교수님의 글 전문을 싣기에 그대로 게재합니다. 아래 글 페이지 수는 수정 이전 가이드북 기준입니다. -편집자 주

22쪽: 양재성 목사의 주장, “기독교 신앙은 구원 신앙과 창조 신앙으로 구성돼 있고, 구원 신앙은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으로 구성돼 있다”는 것에 대하여:

양 목사에 의하면, 개인구원은 이신칭의를 내용으로 하고, 사회구원은 사회정의, 평화 인권을 세우는 일을 내용으로 한다. 기독교 구원이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으로 구성돼 있다면, 이신칭의만으로는 구원받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웨슬리는 그의 설교 ‘믿음의 의’에서 말하기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하나님이 타락한 인간에게 그의 독생자의 공로와 중재를 통하여 주신 칭의의 조건을 (따라서 현재 구원의 조건과 그리고 만약 우리가 끝까지 그 안에서 지속적으로 거한다면, 마지막 구원의 조건을) 의미하는 것이다”(I,7)라고 말한다.

이 말은 이신칭의 받은 것과 그 믿음 안에서 끝까지 가는 것이 현재의 구원과 마지막 구원, 즉 마지막 심판 시 영생 선언의 필요충분조건임을 의미한다.

웨슬리의 이 말은 성경의 이신칭의 가르침과도 일치한다. 그렇다면 기독교의 구원이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으로 구성돼 있다는 주장은 이단적 주장이다. 개인구원에서 소위 말하는 사회구원이 경우에 따라서 열매처럼 나올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성경적일 수 있다.

그러나 기독교의 구원이 구원신앙과 창조신앙으로 구성돼 있다고 주장하면서, 창조신앙을 양 목사처럼 정의하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구원신앙 속에 이미 창조신앙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고, 그때 창조신앙의 의미는 다음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신칭의로 구원받고 그 믿음 안에 산다는 것은 나를 구원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이 창조주요 섭리주일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믿음을 통해 나를 구원하시고, 나에게 성령의 증언(롬 8:16)과 성령 세례(행 1:5, 2:33)를 주시는 구원자 하나님이심을 믿는 신앙 안에서 산다는 것이다. 이는 구원신앙 안에 창조신앙이 포함돼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양 목사가 정의한 창조신앙은 다음과 같은 뜻으로, 이신칭의 받은 사람의 믿음으로는 인정할 수 없는 내용이다:

창조신앙이라는 것은 모든 존재 안에는 신성한 빛이 있어 어느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뜻이요, 보잘 것 없다고 여겨지는 것이라도 함부로 대하는 것은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함부로 대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나님에 대한 불경죄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창조주와 피조물을 구별하지 않고, 양자 간에 모두 신성을 지녔다는 망언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범신론적 내지 물신숭배적 철학사상 내지 종교사상일 수는 있으나, 성경의 가르침은 아니다. 이런 주장은 생각과 판단력이 미숙한 사람들을 오도하여 성경을 왜곡함으로써, 구원의 길로부터 멀어지게 할 수 있는 이단설일 뿐이다.

22-23쪽: 양 목사의 주장 “자연, 하나님의 집”에 대하여:

자연은 하나님의 창조물이라는 주장은 성경적이다. 그러나 이 자연 안에 하나님과 인간과 모든 생명체들이 한 가족을 이루고 살고 있다는 주장은 비성경적 명제들을 이미 배태하고 있다.

예컨대 소위 ‘생태정의’라는 개념이 여기서 나온다. 생태정의 개념이 비성경적인 점은 위에서 이미 지적했다. 즉 웨슬리의 설교 ‘The General Deliverance’에 의하면, 하나님은 하늘 위에 계신 만물의 통치자로서 만물의 삶을 공정하게 섭리하시지만 인간을 가장 사랑하시고, 그 밑 생명체들은 그 만드신 질서를 따라 사랑하신다. 인간에게는 그 밑의 생명체들을 자비를 가지고 다스리라는 사명을 주신 것이다.

그러나 양 목사의 주장은 인간과 여타 생명체들 간 하나님의 질서에 따른 구별이 없다. 오히려 인간 외 여타의 생명체들이 먼저 자연이라는 집의 거주자들이고, 인간은 잠시 세들어 살다 가는 존재라고 정의함으로써 인간의 위치를 성경의 가르침과 반대로 위치시키고 있다(창 1:28).

창세기 1:28에 근거하여 웨슬리가 가르치는 ‘인간의 정치적 하나님의 형상’ 개념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이런 주장은 은근히 인간 외 여타 생명체들을 하나님과 함께 자연이라는 집에 끊임없이 거하는 신성을 가진 신비한 존재로 보게 하는 비성경적인 세계관으로 유도하는 경향이 있다.

이 역시 성경의 가르침과 상관없는 범신론적 철학 내지 종교사상은 될 수 있으나, 감리교의 성경적 신앙은 될 수 없다. 오히려 사람들을 성경으로부터 멀어지게 하여 건전하지 못한 범신론적 내지 물신 숭배론적 세계관으로 유도하는 이단설의 가능성을 담고 있다.

23쪽: 양 목사의 “자연, 하나님의 성육신”이라는 주장에 대하여:

양 목사는 요한복음 1장을 사용해 하나님이 말씀으로 세상을 지으셨다고 주장하며, 그 말씀이 하나님 자신이며 그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으니, 그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한다. 맞는 주장이다.

그러나 다음 문장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어로 써야 함에도, 주어를 슬쩍 ‘창조’로 바꿔 쓴다: “창조는 이와 같이 하나님 말씀이 육화된 신비한 사건이며, 하나님의 성육신의 사건입니다.”

그러면서 다음 문장에서 이 ‘창조’라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 행동인 동시에 그 결과물인 피조물 전체를 의미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또한 우리는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음을 알고 믿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의 창조 행위는 하나님이 말씀으로써 물질세상을 창조한 것이다. 이 하나님 말씀은 하나님 자신이다. 이 말씀이 성육신하여 물질의 몸을 입고 이 땅 위에 온 것이다. 그렇다면 물질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 자신이 육화되어 성육신하였다는 것은 그 창조행위를 통하여 피조된 물질로 육화하여 나타난 것이다. 그렇다면 창조된 피조물 전체가 곧 하나님의 성육신인 것이다. 즉 자연은 하나님의 성육신이다.

양 목사는 여기서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을 선명하게 구별하지 않고, 창조 행위와 피조물 전체를 한 가지로 창조라 부르고 있다. 이것이 그의 논증이 요한복음 내용과 전혀 다른, 비성경적인 범신론 내지 물신숭배적 세계관인 이유이다.

요한복음 1장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을 구분하여 말하고 있다. 즉,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고, 만물이 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지어졌다고 할 때, 여기서 말씀은 모두 성자 하나님, 즉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이고, 이 말씀이 함께 계셨다는 그 하나님이 성부 하나님이다. 그리고 이 창조 이후에 말씀이신 성자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성육신하셨고, 그래서 하나의 개체로서의 인간으로 사셨다는 것이 요한복음의 복음이다.

즉 창조와 성자 하나님의 성육신은 인과관계로 연결된 무엇이 아니며, 심지어 동일한 한 사건을 지칭하는 두 가지 이름도 아니다. 또 성부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성육신하셨다는 것이 아니고, 피조물 전체인 자연이 곧 하나님의 성육신 또는 성육신한 하나님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양 목사의 논증은 본 바와 같아 깨끗하고 정당한 논증이 아니다. 생각과 판단력이 미숙한 사람들을 혼란시켜 그 생각과 행동을 조종하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이는 논증이다. 차라리 요한복음 1장을 근거로 삼지 말고, 양 목사 자신이 붙인 제목처럼 그냥 “자연은 하나님의 성육신”이라고 주장하고, 그러므로 자연은 신성을 지녔으며, 그러므로 자연을 훼손하는 것은 신성모독이라 주장하면서 논증하는 것이 더 떳떳하지 않을까?

24쪽: 양 목사의 “자연, 하나님의 연인”이라는 주장에 대하여:

이 표어의 뜻은 “자연에는 하나님의 신성이 가득하다”는 양 목사의 주장에서 잘 나타난다. 위에서 양 목사가 말한 “자연은 하나님의 성육신이다”라는 주장에서 필연적으로 나오는 명제다.

자연에 하나님의 신성이 가득하다는 주장은 양 목사의 범신론적 내지 물신숭배적 사상을 잘 드러내 보인다. 양 목사의 이 사상은 성경적인 것은 아니다. 웨슬리가 이 주제에 대한 성경 가르침을 잘 이해하고 설교했다고 보인다(그의 설교, God’s Approbation of His Works, I,14-II,2).

즉 그에 의하면 지금 우리 앞에 있는 피조 세계 전체는 창세기 3장에서 아담의 타락 이후 태초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습과 완전히 다른 모습을 갖게 된 것이다. 지금의 피조 세계는 자연적 악과 도덕적 악으로 뒤덮인 상태요, 따라서 마지막 심판 시에 하나님이 지금의 물질로 된 피조세계를 모두 폐지하시고 비물질로 새로 창조하시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벧후 3:10-13) 인간 이하의 동물적 피조물들은 썩어짐으로부터 해방되어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롬 8:18-22).

그러므로 지금의 자연이 신성으로 가득하다는 주장은 성경적이지 않고, 범신론 내지 물신숭배적 사상일 뿐이다. 힐데가르트 폰 빙엔의 유사 주장을 로마가톨릭 교회가 받아들이고 그녀를 성녀로 삼은 이유는 본래 로마가톨릭 교회는 자연이라는 일반계시를 통해서도 창조주 하나님을 충분히 알 수 있다고 잘못 생각하기 때문이다.

25쪽: 양 목사의 “자연, 성서 이전의 성서”라는 주장에 대하여:

“자연은 성서 이전의 성서”라는 주장은 이신론(Deism)적 주장이다. 이신론에 의하면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한 물질적 피조세계에 이미 창조주 하나님을 알고 따르기에 필요충분한 계시를 다 베풀어 놓았다는 것이다. 창조 한참 후에 기록된 성경은 그런 만큼 자연보다 훨씬 뒤떨어지는 정도와 방식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담고 있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결국 성경을 미신과 비도덕과 비이성적인 것들로 가득한 책으로 평가절하하게 된다. 예컨대 마리아의 동정녀 출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예수 그리스도의 여러 기적 등을 모두 비이성적이고 미신적이라며 배척하게 된다.

웨슬리는 이신론을 무신론 내지 마귀의 역사로 평가한다. 양 목사의 “자연, 성서 이전의 성서”라는 주장 역시 아무리 좋게 평가해도 ‘하나의 책의 사람’이고자 했던 웨슬리에 의해 비판적인 평가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성경 외에 교황 회의에서 정한 교리 전승을 성경과 동등한 위치에 놓는 로마가톨릭 교회 같으면 양 목사의 이 주장을 혹시 신선한 시각이라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종교강령 25개 조항을 기본 교리로 갖고 있는 감리회는 그 주장을 인정할 수 없고, 이단설로 평가할 수 밖에 없다.

25-26쪽: 양 목사의 “자연, 하나님의 이름”이라는 주장에 대하여:

모세가 만난 하나님은 자신을 ‘스스로(自) 있는 자(然)’, 즉 자연적 의미로 소개한다고 양 목사는 보았다. 이 말의 뜻은 하나님께서 자연을 통해 생명을 낳으시고 기르시고 이끄신다는 것이라고 양 목사는 주장한다. 그래서 이제 자연과 하나님을 이원론적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에 양 목사 생태신학의 핵심이 있다. 즉 자연은 하나님이 낳아서 기르고 이끄시는 존재, 곧 자연과 하나님은 동일체이다. 자연이 곧 하나님인 것이다. 그래서 양 목사는 위에서도 주장하기를 자연 안에는 신성이 가득하고, 그래서 자연의 어떤 하찮은 것이라도 함부로 대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불경이고 신성모독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것이 양 목사의 범신론적 내지 물신숭배적 세계관의 핵심이고, 이런 사상은 비성경적이고 판단력이 미숙한 사람들을 하나님 말씀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며, 성경을 왜곡하게 하는 이단설이다.

31쪽: “창조의 일부이신 예수”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

여기서 ‘창조’를 창조행위라는 개념으로 보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는 성부 하나님과 동일한 신성을 가지신 하나님으로서 동일한 창조행위를 한 것이요, 성부 하나님의 창조행위에 일부로서 참여한 것이 아니다. 또 여기서 창조를 피조물로 오해하면, 이 표어는 예수 그리스도를 피조물로 보는 아리우스주의 이단설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끝>

이선희 박사
전 목원대 교수(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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