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제4차 로잔 대회 성공 위한 제언 (5)
복음 전파 우위성과 총체적 선교,
양립할 수 없는 모순적 개념 보여
총체성, WCC의 통전성과 다른가
정작 세계 복음화 목표 놓칠 우려
크리스천투데이 기사에 의하면, 기독교학술원(원장 김영한 박사)이 지난 1월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양재 온누리교회(담임 이재훈 목사) 화평홀에서 ‘2024 로잔 대회에 바란다’는 주제로 신년 영성학술포럼을 열었다.
이날 포럼에서는 김영한 원장의 개회사 후 김상복 교수(횃불트리니티 명예총장), 강승삼 교수(KWMA 전 대표회장), 한정국 목사(KWMA 전 사무총장)가 각각 발표하고, 안희열 교수(침신대)와 장성배 교수(감신대)가 논평을 했다. 기독교학술원이 로잔 운동에 관심을 갖고 로잔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바람을 제시한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기사 제목은 “로잔 운동의 최우선 순위, 언제나 세계 복음화 완수… 지금도 그래야”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소제목으로 “WCC처럼 변질돼선 안 돼… 복음 전파의 우위성 안에서, 양자 균형의 복음 전파해야” 등이 제시돼 있다.
로잔 4차 대회에 바라는 점으로는 창립 정신인 총체적 선교 계승을 가장 먼저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서 필자는 기독교학술원이 로잔의 선교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다음 몇 가지로 고민할 점을 제시해 본다.
첫째, 기독교학술원은 복음 전파의 우위성과 총체적 선교는 함께할 수 없는 모순되는 개념이 아닌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총체적 선교(Integral Mission)란 복음전도와 사회적 책임이 함께 가야 한다는 선교 개념이며, 이것은 결국 소위 말하는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을 똑같이 중요한 선교의 목표로 삼는 통전적 선교 개념과 유사하다.
총체적 선교란 단순히 방법과 자세에서의 균형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선교의 목표까지 균형을 가지고 영혼구원과 사회구원을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총체적 선교라는 말과 복음의 우선성이라는 말은 서로 상충되는 개념이며 그 둘을 함께 말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이다.
복음의 우선성을 주장하려면 총체적 선교란 말을 할 수 없고, 총체적 선교를 주장하려면 복음의 우선성을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기독교학술원이 이 기본적인 사항을 혼동할 정도로, 총체적 선교라는 개념은 모호하고 포괄적인 경향이 있다.
우리의 선교 모델이시며 우리에게 선교를 명하신 예수께서는 영혼구원과 사회구원을 함께 수행하지 않으셨다. 떡 문제, 경제 문제, 식민지로 인한 정치적 억압 문제 해결을 기대하며 왕이 되어 달라는 백성들의 요구를 거절하시면서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요 6:40)” 말씀하시고 인류를 영생으로 이끄는 일이 자신의 사명이라는 점을 강조하셨다.
만약 예수께서 총체적 선교를 수행하셨다면, 예수는 더 오래 사시면서 이스라엘의 모든 세상 문제도 함께 해결해 주셨어야 할 것이다. 기독교는 이 사회 모든 문제의 근원에 하나님을 등지고 배반한 죄의 문제가 있다는 것을 믿는 종교이고, 그러므로 그 문제 해결 역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돕는 복음 전도에 우선성을 두는 일에 있다.
둘째, 기독교학술원이 숙고해야 할 또 다른 이슈는 WCC와 로잔의 차이가 무엇인지에 관한 것이다.
기사에 의하면 학술원 김영한 원장은 “로잔 운동도 세월이 감에 따라 WCC처럼 변질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WCC와 로잔은 각각 에큐메니칼 진영과 복음주의 진영을 대표하는 기구 또는 운동이라 할 수 있다.
복음주의란 복음이 이 세계 변혁과 구원의 핵심이며, 그런 점에서 복음전도의 우선성과 긴급성을 견지하는 관점이다. 교회가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만, 교회가 가장 긴급하고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다른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 것이 복음주의다. 복음만이 개인과 세상을 진정으로 변화시킬 수 있고 구원할 수 있는 핵심 능력이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점을 생각할 때 WCC와 로잔을 구분하는 가장 결정적 기준은 ‘복음의 우선성과 긴급성’을 견지하는가의 문제다. WCC도 복음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복음을 말하고 구주 예수를 말한다. 다만 복음전도와 사회구원을 위한 행동이 똑같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로잔이 WCC와 다른 점은 복음전도가 최우선이라는 관점을 갖는 것이다. 그런데 로잔이 만약 복음의 우선성을 포기하고 총체적 선교를 강조하면, 결국 로잔은 WCC와 별반 차이가 없어지게 된다. 무늬만 차이가 있지 본질은 거의 대동소이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김영한 원장의 “로잔 운동도 세월이 감에 따라 WCC처럼 변질되지 않길 바란다”는 기대는 이루어질 수 없고, 결국 로잔은 WCC를 따라가게 되는 것이다.
셋째, 총체적 선교 개념의 장단점을 깊이 숙고하고 대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총체적 선교 개념이 나름의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총체적 선교’라는 개념은 균형감을 강조하면서 한 쪽으로 치우치기 쉬운 선교에 균형을 잡도록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어 보인다. 또 세계적 대회를 하려면 좀 새로운 주제를 말해야 하고 지속적으로 발전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는데, 총체적 선교는 이런 요구를 충족시키기에 적절한 개념이 될 수 있다.
총체적 선교는 아래 그림에서 볼 수 있듯 선교 안에 모든 것을 포함할 수 있으므로, 논의할 주제를 얼마든지 넓힐 수 있다는 점에서 리더나 학자들에게는 상당히 매력적인 개념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런데 총체적 선교 개념에 문제는 없을까? 총체적 선교의 장점과 한계점 중에 무엇이 더 클까? 위 그림에서 볼 수 있듯 총체적 선교는 통전적 선교와 마찬가지로 핵심 목적이 없다. 전통적 복음주의 선교에서는 복음화와 영생 같은 것이 핵심 목적이고, 다른 사항들은 이 핵심 목적을 돕기 위한 방법 또는 소목표로 이해되었다.
하지만 총체적 선교에 오면 복음화의 우선성을 상실하기 때문에 핵심 목적 없이 모든 것이 다 목표로 자리매김된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선교는 너무 많은 목표를 가지면서 정작 꼭 해야 하는 세계 복음화의 과제를 효율적으로 감당할 수 없게 된다.
세계 복음화의 과제를 효율적으로 감당하지 못하면 교회는 결국 쇠퇴하게 되고, 교회가 쇠퇴하면 로잔도 무너지고 주님께서 명하신 세계 복음화의 사명은 점점 멀어지는 것이다.
교회가 세상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복음을 통해 개인들을 변화시키고, 그것이 세계 변혁으로 이어지는 점진적인 것이어야 한다. 이것이 느리고 답답하고 매우 비효율적으로 보이지만, 예수께서 수행하신 구원의 방법이다.
이것을 거절하고 세상 문제에 직접 해결하려 뛰어들면 그것은 선교가 아닌 정치 운동, 인권 운동, 환경 운동, 복지 운동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점을 고민해야 한다. 설사 그런 사회 구원이 일정 부분 이루어진다 해도 그것이 하나님 나라는 아니다.
마지막으로 위의 문제들과 연관하여 필자의 의견을 제시한다. 바라기는 기독교학술원도 이 문제에 대해 함께 문제 인식을 공유하고 고민하면 좋을 것으로 생각한다.
1. 로잔은 총체적 선교의 개념을 명확하게 정립하여 제시하여 주기를 바란다.
로잔이 말하는 총체적 선교가 WCC가 말하는 통전적 선교와 무슨 차이가 있는지, 정확하게 밝혀주면 좋겠다. 개념이 명확할수록 선교가 바로 나아갈 수 있으므로 명확한 개념의 정립은 너무너무 중요한 것이다.
2. 로잔의 총체적 선교 개념이 방법과 자세의 총체성을 의미하며 목표의 총체성은 아니라면, 그것을 명확히 밝히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여전히 총체적 선교라는 용어 자체가 방법이든 목표든 우선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한계점이 있으므로,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이왕 이 용어를 쓰고 있고 대안이 없다면 로잔이 추구하는 총체적 선교는 방법과 자세에 있어 총체성을 말하는 것이고, 목표는 여전히 복음화의 우선성에 있음을 명확하게 밝혀주면 좋을 것이다.
3. 교회가 해야 할 대사회적 책임과 선교적 과제를 구분하여 개념 정립을 하면 좋을 것으로 보인다.
교회가 해야 할 대사회적 책임은 너무너무 중요하고 교회가 꼭 해야 할 의무이다. 로잔이 다양한 사회적 이슈들을 다룰 수 있고 그래야 한다.
그러나 대사회적 책임을 선교의 개념 속으로 포함하는 것은 선교의 핵심을 흐릿하게 만들 수 있는 위험성이 있으므로, 구분이 필요하다. 선교의 핵심은 복음 진리 전파에 있고, 그렇게 돼야 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물론 이것을 명확히 구분 짓기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뭘 그렇게 까다롭게 따지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결국 선교는 세상의 복잡한 이슈들에 싸여 미궁 속으로 빠질 위험성이 있다.
지도자는 위험을 미리 보고 대비하는 사람들이다. 보통 사람은 일을 당하고 난 뒤에야 잘못된 것을 깨닫고 뒤늦게 후회한다면, 지도자는 그런 일이 발생되지 않도록 미리미리 내다보고 위험성을 제거하는 사람들이다.
필자의 우려가 기우로 보일 수 있다. 필자의 관점이 너무 편협한 관점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볼 때 복음의 우선성을 상실하고 총체적 관점을 가지고 세상 문제 해결에 분주한 교회들은 대부분 쇠퇴하고 있고, 머지 않아 사라질 것이라는 것이 알리스터 맥그라스의 분석이다.
※보다 자세한 보충 설명을 원하면 책 <로잔운동의 좌표와 전망>을 참조하고, 자세한 각주나 토론 등을 원하면 이메일(aso0691@hanmail.net)로 연락 바랍니다.
안승오 교수(영남신대)
성결대학교를 졸업하고 장로회신학대학원(M.Div)에서 수학한 후, 미국 풀러신학대학원에서 선교학으로 신학 석사(Th.M) 학위와 철학 박사(Ph.D) 학위를 받았다. 총회 파송으로 필리핀에서 선교 사역을 했으며, 풀러신학대학원 객원교수, Journal of Asian Mission 편집위원, 한국로잔 연구교수회장, 영남신학대학교 대학원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7 Key Principles of Dynamic Church Growth』, 『Rethinking the Theology of WCC』, 『선교사가 그린 선교사 바울의 생애』,『능력 있는 예배를 위한 7가지 질문』, 『건강한 교회 성장을 위한 핵심 원리 7가지』, 『사도행전에서 배우는 선교 주제 28가지』, 『현대 선교학 개론』(공저), 『한 권으로 읽는 세계 선교 역사 100장면』, 『성장하는 이슬람 약화되는 기독교』,『현대 선교신학』, 『현대 선교의 핵심 주제 8가지』, 『이슬람의 어제와 오늘』, 『현대 선교의 프레임』, 『제4 선교신학』,『성경이 말씀하는 선교』, 『현대 선교신학(개정판)』, 『현대 선교의 목표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