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영 교수, ‘무종교인의 종교성’ 설문 분석
종교 없다지만, 영적 활동 하는 중
종교적이진 않지만 영적인, SBNR
신 부정해도 초월적 힘 관심 많아
종교적 경험 지금도 계속 하는 중
한국 무종교인들이 모두 종교성 없거나 무신론자는 아니며 ‘영적 관심’을 갖고 있지만, 이는 종교인들에게 또 다른 도전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목회데이터연구소(대표 지용근, 이하 연구소) 제1차 목회데이터포럼이 ‘무종교인은 종교와 무관한가?’라는 주제로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연동교회 가나의집 아가페홀에서 개최됐다.
이날 포럼에서는 ‘무종교인 종교 의식 조사’ 설문 결과 통계 발표에 이어, 정재영 교수(실천신대)가 ‘한국 무종교인의 종교적 특성’, 김선일 교수(웨신대)가 ‘무종교인의 종교성에 대한 신학적 응답’을 각각 발표했다.
정재영 교수는 “2015년 인구센서스에서 무종교인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전체의 56.1%로, 종교인 비율 43.9%보다 10% 이상 많았다. 통계청의 종교 조사 이래 무종교인이 종교인을 추월한 최초의 사례”라며 “여기서 무종교인들이 모두 무신론자이거나 완전히 세속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통계청 집계 무종교인 비율은 계속 증가해 왔다. 1985년 57.4%(2,321만여 명)를 제외하면 1995년 49.6%(2,173만여 명), 2005년 47.1%(2,182만여 명)로 과반수에 미달했으나, 2015년 56.1%(2,749만여 명)로 급증한 것.
정 교수는 “일종의 불가지론자일 수도 있고, 제도 종교나 종교단체에는 소속되지 않지만 나름대로 신앙 활동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며 “척도의 문제이기도 한데, 종교단체 가입 여부가 아니라 ‘얼마나 종교적인가’를 기준으로 하면 명확히 구분되지 않고 ‘완전히 종교적인 사람’에서 ‘완전히 비종교적인 사람’ 사이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전통적 종교의 테두리 밖에서 목격되는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종교성을 ‘무종교의 종교(religion of no religion)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종교가 없음에도, 영적 활동을 하기 때문”이라며 “이전에는 무종교인들을 전도 대상자로 여겨왔지만, 이런 점에서 최근에는 무종교인들 중 일정 유형이 있고, 나름대로 뚜렷한 특징이 있다고 이해된다. 오히려 종교 집단의 새로운 경쟁 상대로 인식되기도 한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 무종교인들이 기존 종교에서 이탈했는지 애초부터 속하지 않았는지, 아니면 나름의 종교적 수행을 하지만 기존 종교에 해당하지 않아 무종교인으로 분류했는지에 따라 성격은 매우 다르게 나타날 것”이라며 “최근 계속 증가하는 무종교인 성격을 파악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변화하는 종교의 지형을 파악하고 현대인들의 종교성을 포착함으로써, 기성 종교에 매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함”이라는 취지를 밝혔다.
또 “앞으로 무종교인들 수가 더욱 늘 것이고 이들 중 상당수는 기성 종교에서 이탈한 사람들이기에, 종교단체에 속하지 않으면서 과거 종교 전통을 일부 따르거나 종교 수행을 하는 사람도 늘어날 것”이라며 “신학교 출신이지만 지금은 무신론자라고 주장한 한 사람은 요즘에도 가끔 기도를 하고 나면 속이 후련해진다고 응답했다. 이런 사람을 종교성 없는 사람이라 말하긴 어려울 것”이라고도 했다.
이후에는 ‘무종교인의 특징’에 대해 짚었다. 먼저 ‘종교적이지 않지만 영적인(Spiritual But Not Religious·SBNR)’에 대해 “이번 설문에서 무종교인이라고 응답한 이들에게 ‘종교적인지’ 물은 결과 5.2%만 그렇다고 응답했지만, 질문을 바꿔 ‘신성한 것이나 초자연적인 것에 관심 있는 영적인 사람’인지 물은 결과 4분의 1에 가까운 24.1%가 동의했다”며 “무종교인들 중 적지 않은 수가 기성 종교는 아니지만 영적 차원에 관심이 많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들 가운데 절반 가까이(47.7%) 과거 종교가 있었다는 점은 종교와 완전히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고, 스스로 영적이라고 응답한 이들 중 46.1%가 과거 종교가 없었던 점은 기성 종교와 상관 없이 영적 관심이 있다는 것”이라며 “‘대부분 종교에는 나름의 진리가 있다’ 58.6%, ‘사회에 종교가 필요하다’ 56.9% 등의 결과도 종교 자체에 적대적이지 않은 태도를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둘째로 ‘영적 차원에 대한 관심’을 꼽았다. 그는 “신의 존재와 초월적 힘 모두를 부정하는 무종교인은 26.1%로 오히려 소수였다. 스스로 영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신의 존재를 믿지 않지만 초월적 힘이 존재한다(46.5%)’고 가장 많이 응답했다”며 “신 존재와 초월적 힘 모두 부정하는 ‘적극적 무신론자’는 26.1%로, 다수가 아니었다”고 했다. 셋째 특징은 ‘종교 경험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었다.
시사점에 대해 정재영 교수는 “이번 조사 결과가 보여주는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무종교인들이 모두 종교성 없는 사람들, 곧 무신론자이거나 완전히 세속적인 사람은 아니라는 점”이라며 “두 번째 특징은 이러한 종교성이 기존 종교나 제도 종교에 대한 관심이라기보다, 다양한 영적 차원에 대한 관심이라는 점이다. 종교적인 사람은 기성 종교에 더 관심이 많고, 영적인 사람은 그 밖의 종교적 또는 영적 차원에 관심이 많다는 차이도 있다”고 설명했다.
정재영 교수는 “무종교인이 관심 갖는 종교성은 ‘비본질적’이다. 종교의 심리적·정서적 기능에는 어느 정도 동의하지만, 종교 본연의 기능이나 현실 문제 해결에는 별로 동의하지 않았다”며 “이런 무종교인들을 기성 종교에 포섭하려는 노력은 성공할 가능성이 많지 않다. 이들의 영성에 대한 관심 자체를 의미 있게 받아들이고, 영적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방식으로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끝으로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종교는 큰 관심 영역이 아니지만, 조사 결과가 보여주듯 기존 종교인 비율로는 파악되지 않는 종교적·영적 차원에 대한 관심이 결코 적지 않다”며 “그러나 이는 또 다른 도전이 될 수 있다. 무종교인이 많다는 것을 이제까지 전도 또는 포교 기회로 여겼지만, 그들은 기성 종교에 거부감을 가질 뿐 아니라 스스로 종교 수행을 하면서 자신만의 종교를 만들어 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우려했다.
정 교수는 “기성 종교는 변해가는 사람들의 종교적·영적 관심에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있다”며 “자신들의 전통이나 핵심 교리 같은 본질적 요소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이들의 필요를 채울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하며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