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건희 전도사, ‘한국 개신교와 샤머니즘의 관계’ 연구’
샤머니즘과 개신교 접합 지점
1. 하느님과 하나님
2. 무당과 예수 그리스도
3. 신령과 성령
4. 굿과 예배
얼마 전 아이돌그룹 뉴진스를 길러낸 민희진 어도어 대표의 ‘무속경영’ 논란에서 보듯, 인공지능(AI) 기술로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에서 ‘무속(샤머니즘)’의 영향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목회데이터연구소 설문 결과에서 무종교인들조차 ‘사주가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미친다’에 47.2%가 응답했고, 젊은이들의 비율도 의외로 높았다. ‘신년운세’를 보는 사람과 ‘조상의 초자연적 도움’을 믿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이러한 가운데, 4일 오후 비대면으로 열린 한국기독교역사학회(회장 이재근 교수) 제424회 학술발표회에서는 류건희 전도사(만리현교회)는 ‘한국의 개신교와 샤머니즘의 관계 연구: 초기 선교사를 중심으로 한 개신교의 샤머니즘 수용’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류건희 전도사는 “샤머니즘은 당시 한국인 사고 체계와 삶을 지배하고 있던 원초적 신앙이자 종교적 심성으로, 초기 내한 선교사들 중 많은 이들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신앙, 한국 토착 종교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가장 강력한 신앙, 한국인의 삶에 가장 크고 많은 영향력을 지닌 신앙으로 봤다”며 “19세기 말 개신교 복음이 수용되는 과정에서 샤머니즘의 영향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작업”이라고 밝혔다.
류 전도사는 “오래전부터 실천신학 분야에서는 샤머니즘화된 개신교 신앙을 타파 대상으로 손꼽았지만, 샤머니즘을 예나 지금이나 부정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은 오히려 부적절하다”며 “한국 샤머니즘은 19세기 말 한국인이 수월하게 개신교 복음을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줬기 때문이다. 이는 선교 초기 다수 내한 선교사들의 기록과 증언에서 발견된다”고 말했다.
개신교 수용과 샤머니즘의 관계 탐색에 앞서, 그는 다른 지역과 다른 한국 샤머니즘의 특징을 4가지로 정리했다. 첫째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원시 신앙으로써 한국인의 문화, 사고, 신앙, 생활 양식 등 모든 면에서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둘째, 한국 샤머니즘은 외래 종교, 특히 불교, 유교, 도교와 혼합돼 발전해 왔으나 어느 종교에도 제압된 적이 없고 오히려 영향을 끼치며 형태를 변형시켜 왔다.
셋째로 한국 샤머니즘은 시베리아 샤머니즘과 달리 독특한 엑스터시 현상을 지니고 있다. 천상계로 올라가거나 지하계로 내려가 신령과 소통하는 시베리아와 달리, 한국 샤머니즘에서는 샤먼이 광란의 춤(frenzied dancing)을 통해 황홀경에 들어가면, 샤먼이 신령을 초대해 내려와 인간과 만나 소통한다. 넷째, 예로부터 오늘까지 한국 샤머니즘의 본질은 조화성(調和性)이다. 보통 종교는 절대 신념 체계이기에 배타성을 띠기 쉬우나, 한국은 예외라는 것.
이후에는 초기 선교사들이 한국 샤머니즘 이해 통로를 크게 3가지로 구분했다. 첫째는 한국을 먼저 방문했던 저서에 의한 영향으로, 그리피스(W. E. Griffis)의 1882년 『한국, 은자의 나라(Corea, the Hermit Nation)』, 1885년 『한국의 안팎(Corea, Without and Within)』이 대표적이다. 둘째는 미국 대학 및 신학교에서 학습한 종교진화론적 개념, 셋째는 서구적 왜곡과 편견을 뜻하는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적 사고의 영향이었다.
류건희 전도사는 “한국 샤머니즘을 바라본 초기 선교사의 관점은 다양하게 구분된다. 먼저, 대부분의 선교사는 한국인이 지닌 가장 보편적 신앙을 샤머니즘으로 보았고, 한국인에게 있어 가장 오래되고 고유한 토착적 신앙으로 생각했다”며 “장로교 언더우드를 비롯해 북감리교 헐버트도 샤머니즘의 혼합적 성격을 강조했다. 존스는 한국인을 다신론자로 평가하기도 했는데, 여기서 다신론적 영적 존재에 대한 믿음의 바탕에 샤머니즘이 있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류 전도사는 “언더우드나 게일, 마펫 등은 한국 샤머니즘을 기독교 신앙을 통해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봤다. 샤머니즘은 가장 이교적이고 저급한 형태의 주물숭배라거나, 성령을 통해 샤머니즘 악령의 유혹을 이겨내야 한다고 본 것”이라며 “반면 존스와 헐버트는 샤머니즘을 통해 기독교 복음을 전하고자 했다. 그들은 한국인의 종교 심성이 정령숭배를 기반으로 하며, 그 위계질서의 가장 위에 있는 ‘하느님’을 통해 하나님의 영적 성격을 소개하려 한 것”이라고 했다.
이후에는 개신교와 샤머니즘의 접합 지점을 네 가지로 구분했다. 먼저 ‘하느님과 하나님’에 대해 “선교사들은 한국인들이 어떤 민족보다 종교적임을 알게 됐고, 특히 최고신 개념으로써 정령의 위계질서 중 가장 높은 위치의 ‘하느님 신앙’을 발견했다”며 “이 ‘하느님’ 개념은 기독교의 하나님과 별반 다르지 않았기에, 하나님을 설명하는 데 있어 그다지 큰 어려움도 없었다”고 말했다.
둘째로 ‘무당과 예수 그리스도’의 공통점을 ‘화해’로 꼽으면서 “무당은 굿을 통해 신령과 인간 사이 풀리지 않는 문제를 중재하고 위로하며 안정을 제공한다. 이러한 과정은 ‘한풀이’로 불린다”며 “이러한 샤머니즘 영성에 익숙한 한국인들에게, 구원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리기 매우 용이했다. 초기 선교사와 한국인이 이해한 무당의 모습은 마치 인간의 죄로 인해 막혀버린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를 허물고자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과 유사했다”고 했다.
셋째로 유사점이 많은 ‘신령과 성령’에 대해선 “다수의 한국 성도들은 샤머니즘적 범신론 사상을 통해 성령을 이해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당시 한국에서 성령에 대한 신학적 정의가 명확하게 내려지지 않아, 성령에 대한 신학적 작업을 서두르지 않으면 샤머니즘 요소로 이해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며 “초기 성도들은 성신과 삼위일체 하나님이 어떻게 구분되는지 알지 못했고, 성령강림과 무당의 접신을 헷갈려 했다. 둘 모두 무소부재한 성격이어서, 성령이 샤머니즘의 신령을 대체하는 존재로 이해되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당시 한국인은 샤머니즘 사상에 입각해 인간의 삶은 신령의 뜻에 의해 좌우된다고 믿었다. 많은 신령의 종류 중 악령은 인간에게 병이나 화를 불러온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개종한 교인들은 더 이상 신령의 뜻에 의한 삶이 아닌, 성령에 의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라며 “당시 성령의 능력을 확인했던 확실한 계기는 축귀, 즉 악령의 떠나감에 있었다. 성령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축귀를 통해 증명된 것이다. 신령 뜻에 의한 운명론적 삶을 살던 한국 교인들은 그 이해와 경험을 바탕으로 성령을 이해하고 체험했으며, 성령의 능력을 확신할 수 있었다”고 했다.
넷째로 ‘굿과 예배’에 대해 “한국에서 예배가 드려지기 전부터, 예배에 대한 정신과 기능이 갖춰져 있었다. 한국 토착 종교 전통에 의해 어느 민족보다 뛰어난 열정이 있었고, 지극정성의 자세로 임했다”며 “이는 유교 전통의 조상제사와 샤머니즘 전통에서 굿의 영향이었다. 그러나 기독교의 예배 개념은 이 둘과 달리 두려움과 공포 등의 요소를 제거하고, 토착적 미신과 터무니없는 유치함 등을 박멸하고 도덕적·영적 건강을 제공받아야 했다”고 했다.
류 전도사는 “한국 토착 종교를 통해 습득된 예배 개념으로 인해, 한국인이 기독교 예배 개념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수월할 수 있었고 효과적이었다”며 “샤머니즘 전통의 예배와 초기 선교사들이 가르친 예배의 공통적 특징은 지극정성에 있다. 이는 한국인이 지닌 샤머니즘의 제의 문화와 초기 선교사가 청교도(Puritans)의 후예로서 지닌 경건주의(Pietism) 영향의 교집합 지점”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한국인들은 조상 제사나 무당 굿은 대충 할 수 없었다. 그들이 오랜 세월 간직해 온 종교적 전통이나 정서이기도 했으나, 무엇보다 삶의 실존과 직결돼 있었기 때문”이라며 “이러한 종교적 전통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인은 초기 선교사가 전하는 예배 개념을 수월하게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었다”고 정리했다.
끝으로 “오늘날 대다수 개신교인들과 초기 선교사의 샤머니즘 인식은 유사할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샤머니즘은 원시적·부정적 요소로 남아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그토록 부정히 여기던 샤머니즘 신앙이 당시 개신교를 수용하던 한국인에게 도움을 줬고, 다른 차원에서는 기독교를 긍정적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지를 제공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더불어 “오늘날 개신교와 샤머니즘의 관계는 어떠한가? 그 관계 속에서 어떠한 신앙적 유익을 도모할 수 있을까? 나아가 한국 토착 종교와의 관계 가운데 신앙적 유익을 도모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라는 질문을 남기면서 발제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