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진의 묵상일상 19] 묵상, 하나님 은혜 안에 내가 있음을 배우는 일
신앙은 나로부터 시작되지 않아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
하나님 나라, 약한 나도 편하게
묵상, 내가 나를 새롭게 보는 일
나는 오늘도 하나님 말씀을 곱씹는 묵상 과정에 참여한다.
어제도 참여했고, 그제도 참여했고, 오늘도 여전히 참여하고 있다.
하나님 은혜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라는 사람을 뚝 떼 보면 한없이 약하다.
그렇게 약할 수가 없다.
아무리 실력으로 버텨보고, 증명하려 하지만 버틸 실력도, 증명해낼 수 있는 자료도 내 안에 없다. 처절한 현실이다.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이다.
이 사실을 가장 깊이, 가장 처절하게 깨닫는 시간이 묵상이다. 하나님 말씀을 보고 또 보는 그 시간에 무릎을 ‘탁’ 치는 깨달음이다.
며칠 전 마가복음 9장을 묵상하며 예수님 말씀에 계속 서성거려야 했다.
묵상 과정에 참여하면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말씀 앞에 서성거리는 나를 내가 발견하는 일이다.
마가복음 9장은 예수님 사역 분기점인 빌립보 가이사랴 이야기이다.
예수님께서 높은 산에 베드로,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올라가셨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형언할 수 없는 모습으로 변화하신다.
그 예수님 곁에 모세와 엘리야가 함께한다.
그 모습을 본 제자들은 횡설수설이다. 하늘에서는 놀라운 말씀이 선포된다.
그 시각 남은 제자들은 귀신 들린 어린아이를 고치지 못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귀신 들린 아버지는 아이를 안고 고쳐달라 애원하였고, 제자들은 의기양양 나섰지만 아이 속 귀신은 더 아이를 괴롭힌다.
그곳에 서기관들이 있었다. 그들은 제자들을 당연히 조롱하며 비웃었을 일이다.
예수님은 서기관들이 무언가를 계속 말씀하시던 중 그곳에 합류하셨다.
귀신 들린 아이 아버지는 예수님 앞에 엎드려 “할 수 있거든 살려달라”고 간청한다.
예수님은 그에게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며, 믿으면 이뤄짐을 보게 될 것이라 하셨다. 예수님은 어린아이에게 들어간 귀신을 내쫓으셨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서 조용히 제자들은 예수님께 여쭙는다.
“우리는 어찌하여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을까요?”
예수님 대답이 내 발목을 붙잡았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제자들은 기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귀신을 쫓아낼 수 없었는가?
분명 전도여행에서는 의기양양하게 그 능력을 마음껏 사용했던 제자들이다.
왜 이곳에서는 그 능력이 발현되지 않았을까?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기도 외에는’
믿음, 기도, 신앙은 나로부터 시작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믿음은 하나님 선물이다. 내가 예수님을 믿는 일은 나로부터가 아니다. 하나님 선물로 내가 예수님을 믿고, 부르고, 의지하고 있다. 지금까지.
기도는 누가 할 수 있을까?
내가 기도하고자 하는 대상을 신뢰하고 의지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행위가 기도이다.
기도는 내가 그분을 믿을 때 할 수 있다.
귀신을 쫓아낼 능력은 나로부터 비롯되지 않는다.
제자들은 그 사실을 놓치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주신 그 능력은 내가 아닌 예수님을 믿을 때 발현되는 능력이었다.
내가 붙잡아야 할 분은 그 능력이 아니다. 그 능력을 주신 분이다.
이 말씀 앞에 나는 계속 서성거렸다.
내가 예수님을 믿고 있을까?
예수님께서 변화되는 모습을 목격한 제자들은 하늘에서 분명한 소리까지 들었다.
그 소리를 그들은 어떻게 해석했을까?
여전히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과 능력을 잃은 제자들 그리고 내가 계속 겹치기 시작했다.
나를 나답게 하는 하나님을 잃고 있는 나,
믿음 없이 믿는 척하는 나,
하나님 능력에 반신반의하는 나,
그런 제자들에게 다시 가르치시는 예수님,
깨달을 때까지 기다리는 예수님,
내가 오늘 깨달아야 할 말씀은 너무도 많았다.
벌거벗은 내가 어쩔 줄 몰라 하는데 하나님은 그런 나를 오늘도 품으신다.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예레미야 9:23).
“도끼가 어찌 찍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겠으며 톱이 어찌 켜는 자에게 스스로 큰체하겠느냐”(이사야 10:15).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고린도전서 4:7).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린도전서 15:10).
한없이 약한 나를 오늘도 나는 마주한다.
묵상이 주는 가장 큰 유익이란 내 약함이 세상에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이지만, 하나님 나라는 그런 내가 편히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시다.
꽝인 인생을 예수님으로 인하여 짱이 될 수밖에 없음을 드러내는 분이시다.
하나님 말씀을 곱씹고 읽고 생각하는 묵상은 나를 내가 새롭게 보게 하는 일이다.
묵상 과정에 참여한 나는 하나님 나라를 이끄는 주역이 된다.
하나님 은혜를 입는 시간이기에 그러하다. 그 말씀을 의지하는, 굳건히 잡는 시간을 오늘도 참여하는 우리가 되면 어떨까.
송은진 목사
의정부 세우는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