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록, 한 점의 그림] 기산 김준근의 『텬로력뎡』 삽도 탄생 배경
게일 선교사의 각별한 한국 사랑
12년간 한국인들 정서·문화 체험
소설 통해 기독교적 가치관과
삶의 자세 전하기 위해 번역해
배재학당 삼문출판사에서 발간
삽화 당대 풍속화가 김준근 의뢰
미국과 유럽에서 인정받은 화가
조선 문화와 전통 살리려 맡겨
중국·일본판도 현지 풍속 표현
기독교 미술 관통 흐름 선구자
『천로역정』(Pilgrim’s Progress)은 17세기 영국 청교도 작가인 존 버니언(John Bunyan, 1628-1688)의 우화 형식의 작품으로, 주인공 ‘크리스천’이라고 하는 한 남자가 성경을 읽고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여행하는 이야기로 돼 있다.
이 책은 저자의 생전에 이미 11판까지 나왔고, 판마다 각각 1만 부씩이나 인쇄됐으며, 수백 년을 거치면서 전 세계 100개 이상 언어로 보급된, 세계인이 애독하는 기독교 고전이다.
한국에는 북미 선교사이자 목사인 제임스 게일(James S. Gale, 1863-1937)이 1895년 국내에 처음 소개했다. 당시 외래 문학들은 중국어나 일본어 원고를 번역해 소개했지만, 『텬로력뎡』은 영어 원작을 1차 문헌으로 하되 등장인물이나 용어는 중문본(中文本) 『天路歷程』을 참고한, 한국 근대의 첫 번역 소설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게일 선교사가 ‘조선과 미국의 기독교도의 우애’를 다지기 위해 출간한다고 밝히긴 했으나, 『텬로력뎡』을 출간하게 된 배경은 그의 각별한 한국 사랑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서울의 연못골교회(현 연동교회) 목사를 맡을 때까지 12년 동안 한반도의 구석구석을 돌며 선교활동을 펴는 가운데 서민들의 삶 속에 들어갔고, 한편으로는 한국인의 정서와 문화를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었다.
그의 한국 문화에 대한 식견은 저술로 입증됐는데, 총 40편이 넘는 번역서와 단행본, 그리고 국내외 신문잡지 기고를 합치면 400여 편을 헤아린다. 그 중에는 잘 알려진 최초의 영한사전인 『영한자전』(A Concise Dictionary of the Korean language), 번역서인 『구운몽』, 『심청전』, 『춘향전』, 『동국통감』 등이 있다.
한글 그 자체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시작해 차츰 한국어로 쓰인 문학작품, 특히 고전소설, 시가, 민담 등으로 눈을 돌렸다. 그는 Korean Repository, Korean Review 등 선교사들이 주로 읽는 잡지에 한국 문화와 역사를 알리는 데 앞장섰다.
게일 선교사가 『텬로력뎡』을 한국어로 번역하게 된 배경은, 성경 다음으로 사랑받는 이 책을 통해 복음과 기독교적 가치관 및 삶의 자세를 전달하고픈 마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또 게일은 이 소설을 속칭 ‘언문’으로 불리는 한글로 번역하게 되면 더 많은 사람이 기독교적 삶의 가치를 익히고 배울 수 있으리라 판단했을 것이다.
게일은 자신의 한국어 교사였던 이창직(1866-1936)과 자신의 부인 헤리엇(E. G. Harriet)의 도움으로 번역을 완료했고, 이를 신식 인쇄기와 활자 주조기를 갖춘 배재학당 부설 삼문출판사(Trilingual Press)에서 발간했다. 『텬로력뎡』은 영문판과 유사하게 본문 옆에 삽도를 실었는데, 다름 아닌 당대의 풍속화가에게 의뢰하여 제작한 판화였다.
삽도의 주인공 기산 김준근(箕山 金俊根, 생몰월 미상)의 신상에 대해 아직까지 소상히 밝혀진 것은 없다. 하지만 그는 대한제국기(1897-1910)에 부산, 인천, 원산 등 개항장을 거점으로 삼아 우리나라를 찾은 여행가, 외교관, 상사 주재원, 선교사 등에게 풍속화를 팔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준근은 한국 문화에 관심을 표시하는 외국인들이 늘어나자, 다른 화공과의 협력과 판화 수법 공유 등 대량생산 시스템을 갖추어 내한하는 사람들의 수요에 부응하였다.
그렇게 팔려나간 작품들로 그는 국내보다 오히려 미국과 유럽에서 더 인정을 받게 되었다. 조선의 문화와 풍속을 담은 그의 작품들은 내한인들의 손을 거쳐 세계 각국으로 뻗어갔고, 한국인의 풍속을 알리는 선두의 자리에 서게 된 셈이다.
가령 한미수호통상조약 주역인 슈펠트(R. W. Shufeldt) 제독이 조선에 왔을 때 그의 딸 메리 슈펠트(Mary A. Shufeldt)가 동행하였는데, 그녀가 구입한 풍속화는 본국으로 돌아간 뒤 스튜어트 컬린(Stewart Culin)의 『한국의 놀이』(Korean Games, 1895)란 책에 수록돼 미국 전역에 알려지게 된다.
이런 식으로 기산의 예술은 문화의 전령 역할을 하였다. 그의 작품은 현재 프랑스 국립 귀메박물관, 영국 대영박물관, 영국도서관, 비엔나박물관, 덴마크 국립 코펜하겐박물관, 독일 함부르크 민속박물관,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 동베를린 미술관, 국립 모스크바 동양박물관, 네덜란드 국립 라이덴 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학자들은 대체로 선교사 게일이 김준근을 부산 초량에서 만난 것으로 추정한다. 초량은 1876년 강화도 조약에 따라 외국인의 내왕과 무역을 위해 문을 연 개항장이었는데, 게일의 눈에 외국인들을 상대로 조선의 다양한 풍속을 담은 풍속화를 그리던 김준근이 눈에 띄었을 것이다. 그 후 제임스 게일은 초량에서 활동하던 김준근을 원산으로 초빙하여 『텬로력뎡』의 삽도를 의뢰하였다.
선교사가 한국의 풍속화가에게 『텬로력뎡』의 삽도를 맡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무엇보다 선교사 게일은 이 책을 발간할 때 책의 내용이 조선의 문화와 전통의 특성을 살려 독자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랐던 것 같다.
이 방식은 게일이 품은 철학이기도 하지만 『천로역정』을 세계 각국에서 발간할 때 준수해온 방식이기도 했다. 가령 중국의 경우 스코틀랜드 출신의 선교사 번스(William C. Burns)가 1853년 버니언의 ‘The Pilgrim’s Progress’를 ‘天路歷程’이란 용어로 번역하면서 10점의 삽화를 넣은 것을 필두로, 1871년 광동어로 번역된 선교사 피어시(Rev. C. Piercy)의 『天路歷程 土話』에는 명나라 복식과 풍물로 된 30점이 수록되어 있다.
일본의 경우 선교사 윌리엄 화이트(Rev. William John White)가 1886년 14점의 삽화를 넣을 때 일본 에도 시대 복식 차림의 인물들로 표현한 것이 그 예이다. 세 나라의 삽화가 그 나라의 복식과 풍속에 따른 것은 선교사의 의향이 적극적으로 반영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한국 최초로 한글 번역된 『텬로력뎡』은 개화기 한국어 연구에 주요 문헌으로 손꼽힐 뿐 아니라, 이 책에 수록된 42점의 목판 삽도는 초기 기독교 미술 연구에 주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그것은 이 작품이 기독교가 한반도에 전래된 시기에 나온 귀중한 문화사료 때문이기도 하고, 우리나라 기독교 미술에 중요한 기틀을 마련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등장인물이 한복과 갓을 쓰고 천사는 선녀의 모습으로, 천국은 신선계로 표현하는 등 토착화된 기독교적 도상의 출현 이후 후배 작가들에 의해 기독교 미술을 관통하는 하나의 흐름으로 인식되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이는 초기 전교(轉敎) 단계에서 기독교를 서구 종교로 인식하는 대중의 선입견을 불식시키고, 전통 문화 속에 스며들게 하여 친근감을 높이려는 의도이리라.
문화사적 측면에서 보면 우리말로 된 책을 대하는 것으로도 진기한 일인데, 낯익은 복식과 풍속의 그림까지 곁들였으니 『텬로력뎡』은 여러 모로 시사하는 바가 클 수밖에 없다.
필사본 위주였던 우리의 대중소설에서 삽화는 익숙하지 않은 것이었고, 있다고 해도 특정 장면의 삽화에 그쳤을 뿐 이야기와 결부된 그림들은 드물었으므로, 『텬로력뎡』삽도는 이전과는 질적으로 차별화되었을 뿐 아니라 이를 계기로 프로테스탄트 도상의 첫 선을 보이게 됐다.
서성록 명예교수
안동대 미술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