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장소로서의 교회 공간 형성’
1. 환대 위한 공간 세팅 점검
2. 약한 연결 형성으로부터
3. 심리적 소유권 부여하라
4. 공통의 내러티브 형성
교회 공간이 공적·사적 공간을 넘어 누구나 자주 찾아올 수 있는 ‘제3의 장소’가 될 수 있다는 제안이 나왔다.
한국실천신학회(회장 구병옥 박사)가 지난 18일 서울 강북구 개신대학원대학교(총장 조성헌 목사)에서 ‘초연결 사회와 실천신학적 과제’라는 주제로 개최한 제92회 정기학술대회 중 양현준 박사(환대사역연구소)의 발표에서다.
‘초연결 시대, 제3의 장소로서의 교회 공간 형성 고찰’을 제목으로 발표한 양현준 박사는 “초연결사회 교회 공간에서는 자신의 자리가 없어 정체성을 형성하기 힘든 사람들을 위한 ‘자리가 준비된 환대’가 시행되고, 치유와 회복력이 있는 하나님의 구원 서사에 참여할 수 있는 장소가 돼야 한다”고 밝혔다.
먼저 양현준 박사는 “세속화 영향으로, 교회 공간은 ‘공적 공간’이라는 장소성을 점점 상실하고 있다. 자유로운 공간 생성이 가능한 초연결 사회에서, 교회 공간은 애착이나 정체성, 안전감을 부여하지 않는 ‘비장소(non-place)’로 인식되고 있다”며 “하지만 종교의 공적 참여가 요청되는 후기 세속 사회에서, 교회는 환대와 포용으로 연대와 화합을 이끌어가는 공간의 가능성을 보여 줘야 한다”고 취지를 전했다.
양 박사는 “과거 교회 공간은 하나님을 향한 예전의 공간임과 동시에, 교회 공간에 머무는 사람들의 정서와 인식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 공간, 나아가 지역 공동체의 뿌리로서 정체성을 형성하는 공적 공간이었다”며 “하지만 오늘날 교회 공간은 공적 공간의 정체성을 점점 상실하고 있다. 교회 건물을 구약 성전 개념으로 이해하고 성도들만 사용할 수 있는 제한적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도심 속 교회 공간은 자유로운 통행이 가능한 외부 공간이 아닌, 통행이 자유롭지 않은 내부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따라서 주중 출입이 자유롭지 않은 교회 공간은 비신자가 문을 열고 들어가기에 큰 용기가 필요한 공간이 되고 있다”며 “교회가 ‘개방된’ 곳이 아닌 ‘고립된’ 이미지로 공간을 만든 결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이 쉼과 회복을 얻어야 할 공적 공간으로서의 장소성이 점점 약화되고, 오히려 방문자에게 장소 상실감을 불러 일으키는 역설적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초연결 사회에서는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이 서로 접촉하고 교류하는 일들이 자연스럽게 이뤄지지만, 개인적 서사만 과도하게 급증하다 보니 타자를 존중해 그를 위한 자리를 내어주고, 그 자리에서 그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공감하는 자세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며 “자신의 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들은 타인과의 깊은 관계 형성을 회피하고, 자신에게 베푸는 사람과의 인격적 접촉을 최소화하려 노력한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자리가 있을 때 사람이 되고, 나를 위한 자리가 생길 때 환대가 이뤄진다”고 했다.
이후 레이 올든버그(Ray Oldenburg) 가 주장한 ‘제3의 장소’ 개념으로 교회 공간의 장소성 형성 방안을 탐구했다. 제3의 장소란 ‘사람들이 가정과 일터 밖 영역에서 다른 사람들과 즐겁게 어울리기 위해 자발적이고 격식없이 자주 찾는 공공장소들을 통칭하는 용어’다. 즉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 사이의 공간으로 서로의 주체성이 인정되고, 심리적 편안함과 지지가 이뤄지며, 방문자를 수평화시켜 상호 관계를 형성하고 지속하게 한다.
양현준 박사는 “선교학에서는 교회와 지역사회 간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주민들과의 만남이 가능한 ‘근접 공간’을 ‘제3의 장소’라 부른다. 이곳은 기독교적 분위기를 드러내지 않아 불신자들이 부담 없이 드나들고 서로 만나는 장소”라며 “교회 공간이 제3의 장소로 전환해야 하는 이유는 공동체 공간의 복원을 넘어, 지역성을 기반으로 공적 영역의 공공선을 회복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했다.
양 박사는 “제3의 장소로서의 교회 공간은 교회 공동체와 사회적 주체들이 함께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시작점이 된다”며 “나아가 제3의 장소는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포괄적 기독교 공동선 형성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공간이 될 수 있다”고 기대했다.
‘제3의 장소로서의 교회 공간 형성’을 위한 실제적 방법도 제안했다. 먼저 ‘공간 세팅을 점검하라’. 그는 “교회로 들어오는 이에게 공간이 어떠한 텍스트를 전달하는지 점검해야 한다”며 “건물 전부를 개방하기 어렵다면, 누구나 쉬어갈 수 있는 작은 환대의 공간이라도 개방할 필요가 있다. 따뜻한 색의 십자가, 단아한 테이블 위에 켜둔 초, 그 위에 놓인 성경책은 들어온 사람을 교회 공간이 따뜻하게 환대한다는 텍스트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둘째로 ‘약한 연결 형성으로부터 시작하라’에 대해 “약한 연결의 장소는 사람과 사람이 물리적으로 공존하지만 서로 일정한 거리를 가지면서도 상대방 존재를 의식하는 ‘분리된 관여’ 태도를 보인다”며 “음악, 공간 및 물건 배치를 통해 방문자가 스스로 유연한 경계를 형성할 수 있는 공간임을 인식하면, 방문자에게 편안한 자신만의 장소가 되어갈 것”이라고 제언했다.
셋째로 ‘방문자에게 심리적 소유권을 부여하라’. 양 박사는 “‘우리’라는 장소성을 만드는 핵심 요소는 참여이다. 교회 공간이 타자가 머물 수 있는 구심력을 가진 공간이 되려면, 소유자가 아닌 사용자가 공간 사용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공간 애착’이 생기기 때문”이라며 “공간 애착은 공동 공간이 자신의 사적 공간의 영역으로 치환되는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넷째로 ‘공통의 내러티브가 형성되는 공간을 형성하라’. 그는 “사람의 마음을 집단으로 연결시키는 상호작용을 통한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을 통한 서사가 형성되는 공간이 바로 장소이다. 사람들은 어떤 공간에 자신의 이야기가 담겨질 때, 그곳을 장소로 생각한다”며 “외부 사람들을 끌어들이려다 교회가 가진 특별한 이야기들을 포기해선 안 되겠지만, 교회와 교회 밖 이야기가 아닌, 두 이야기를 넉넉히 포용하는 하나님 나라의 서사가 흐르는 공간이 돼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결론에서 양현준 박사는 “고상하게 생각되는 종교적 제의를 위한 교회 공간이 지나가던 사람들이 기대하지 못했던 개방의 공간이 되는 순간, 의도하지 않았던 타자와 타자의 만남이 발생한다”며 “주일뿐 아니라 일주일 내내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와 자신의 삶의 공간을 자유롭게 만들며 다양한 타자와 마주칠 때, 그 공간은 모든 사람에게 기분 좋은 공통의 공간이 되고 하나님 나라의 아름다운 서사가 쓰이는 의미 있는 제3의 장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건물을 갖지 못한 상가교회, 임대교회가 다수인데, 이러한 교회들은 더 큰 공간로 옮기기 위한 임시 공간 또는 힘의 우위에서 밀린 목회 이야기가 담긴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다”며 “이러한 작은 교회 공간들이 복음의 공공성을 적극 실현시키는 환대 공간이 되고, 창의적 방법을 통해 교회의 공공성을 대표하는 장소성을 갖는다면, 사회를 풍요롭게 하는 공공의 파트너로서 교회의 가치와 역할의 중요성은 재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이 외에 한국실천신학회에서는 3차 발표를 통해 예배, 영성, 디아코니아, 상담치료, 전도/선교/교회성장, 교회교육, 목회사회/리더십 등 총 10차례 발표와 논찬이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