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세대 다시 보기 28] 부모교육, 부모다운 부모로 성장하기(2)
임계장, 고다자… 설 자리 없어
이 시대 아버지들의 슬픈 자화상
아버지 크기만큼 자녀 신앙 자라
아버지 상, 하나님 상에 투영돼
#‘고다자’, 이 시대 아버지들의 슬픈 자화상
《임계장 이야기》가 이 정도로 가슴 아픈 이야기인 줄 몰랐다. ‘63세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노동 일지’라고 했을 때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임씨 성을 가진 한 노인이 겪은 우리 사회의 안타까운 이야기일 것으로 추측했다. 책을 펴고 첫 번째 충격에 휩싸였다. 임계장은 임씨 성을 가진 노인이 아니었다. 자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나는 퇴직 후 얻은 일터에서 ‘임계장’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는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준말이다. 임계장은 ‘고.다.자’로 불리기도 한다. 고르기 쉽고, 다루기 쉽고, 자르기도 쉽다고 해서 붙은 말이다.”
그러니까 저자의 정체성은 ‘임시 계약직 노인장’이며, 동시에 ‘고르기 쉽고, 다루기 쉽고, 자르기 쉬운’ 노동자다. 이것이 두 번째 충격이었다. 임계장과 고다자가 동의어라는 것.
실제로 저자는 일을 하다가 다쳤지만 산재는커녕, 구두로 해고통지를 받고 바로 잘렸다고 한다. 25년을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했지만, 돌아온 것은 해고통지였다. 정확하게 ‘고다자’의 삶이었다.
‘임계장’, ‘고다자’는 이 시대 아버지들의 슬픈 자화상이다. 물론 어디 아버지들만 슬픔이 가득하겠느냐만, 그럼에도 유독 가부장적인 우리 사회에서 아버지들이 설 자리가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필자만 보더라도 그렇다. 두 분을 향한 온도차가 있다. 물론 아버지든 어머니든 똑같이 감사하는 마음은 있다. 그럼에도 어머니께는 좀 따뜻하다. 시시콜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장난도 잘 친다. 그런 장난들이 아버지에게는 잘 안 된다. 나도 모르게 차갑고 이성적으로 다가가게 된다.
필자가 사역하는 아이들도 그렇다. 가끔 예배를 마치고 부모님들과 함께 귀가하는 아이들을 보게 된다. 거리가 다르다. 어머니와는 좀 가깝게, 그리고 아버지는 좀 멀리. 잘못 보면 남 같아 보인다.
기실 가정에서 아버지들의 자리가 위기다. 한때 ‘아이를 성공시키는 3대 요인은?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그리고 아빠의 무관심’이라는 농담이 유행했다. 오래된 농담이긴 하나, 이것처럼 이 시대 아버지들의 위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표현이 또 있을까.
그림자. 이것이 이 시대 아버지들의 위상이 돼 버렸다. 실제로 한 아버지는 자신을 ‘현금 인출기’로 비유했다. 아버지 한 분이 상담을 요청하며 말했다.
“목사님! 매달 월급을 가져다주고 나면 집에서 제 역할은 없습니다. 아이들은 학교나 학원에 관련된 것은 모두 아내와 상담을 합니다. 아내가 종종 자녀와 관련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 꼭 ‘당신은 몰라도 너무 몰라.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라며 핀잔을 줍니다. 그러니 입을 더 다물게 됩니다. 이제는 끼어들 자리가 없습니다. 저는 그저 한 달에 한 번, 생활비를 인출해 주는 현금 인출기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부모교육 시간에 아버지에 관한 내용들은 좀 더 힘주어 강조한다. “가정에서 아버지의 자리가 진짜로 중요합니다. 아버지의 크기만큼 자녀의 신앙이 자랍니다. 가정에서 아버지의 크기가 곧 자녀 신앙의 크기입니다.”
#‘초두 효과’, 아버지의 크기가 곧 신앙의 크기다
첫인상이 정말 중요하다. 첫인상이 미치는 효과를 초두 효과(Primary effect)라고 하는데, 초두효과는 강력하다. 최설민 작가는 저서 《양수인간》에서 첫인상에 관해 이런 글을 인용한다.
“다트머스대학교 폴 왈렌(Paul J. Whalen) 교수 연구에 의하면, 인간은 첫인상을 판단하는 데 0.017초의 아주 짧은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상대를 판단하는 것이다. 또 이미 형성된 부정적인 첫인상을 바꾸기 위해 200배의 긍정적인 정보가 필요하거나 40번 가량의 좋은 만남이 필요하다고 하니, 사실상 바꾸기 어려운 것이 첫인상이다. 따라서 ‘언젠가는 나의 진면목을 알아주겠지’라고 막연히 바라는 것보다, 일단 좋은 첫인상을 만드는 법을 숙지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첫인상의 영향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강력하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자녀교육에 이용하는 것이 바로 초두 효과이다.
유대인들은 보통 자녀를 5단계로 교육한다고 한다. 이 가운데 2단계는 ‘꿀을 먹이면서 말씀의 즐거움을 깨닫는 교육’이다(시편 19:9-10). 그러니까 아이들은 성경을 한 구절 읽고, 꿀을 한번 찍어 먹는다.
이것이 바로 초두 효과의 강력함이다. 꿀을 먹을 때의 달콤함이 성경의 첫인상으로 각인되는 것이다. 꿀의 달콤함을 통해 하나님 말씀 역시 얼마나 달콤할 수 있는지 배우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이 달콤함을 잊지 않는다. 아니 잊을 수 없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크기로 연결되는 초두 효과는 무엇일까? 바로 아버지의 크기다. 가정에서 아버지의 크기가 큰 사람은 하나님의 크기도 크게 시작한다. 반대로 아버지의 크기가 작은 사람은 하나님의 크기도 작다.
J. B. 필립스가 《네 하나님은 너무 작다》에서 말했다. “우리가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는 개념은 어렸을 때 아버지에 대하여 가지고 있던 개념에 뿌리를 박고 있다. … 좋은 아버지 밑에서 성장한 사람은, 어린 시절 이후 성장 과정이 그의 하나님 개념을 특별히 왜곡시키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아주 좋은 분으로 인식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어떤 사람이 어린 시절에 아버지를 두려워하면서 자랐다면, 그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무서운 분’으로 인식할 것이다.”
즉 아버지 상(想)이 하나님 상에 투영된다. 아버지에 대한 첫인상이 하나님의 첫인상이 된다. 이 점에 관하여서는 다음 시간에 계속 이야기를 나눠보면 좋겠다. 중요한 것은, 부모가 성경적으로 자녀를 교육하길 원한다면, 일단 이것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
가정에서 아버지의 크기를 키워야 한다. 아버지의 크기가 곧 하나님의 크기다!
김정준 목사
울산대흥교회 교육목사
영남신학대학교 신학과·신학대학원
전남대학교 대학원 문학 석사
한남대학교 대학원 박사 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