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 열쇠는 문해력이다! 31] 거룩한 상상력으로 큐티한다!
큐티할 때 거룩한 상상력 필요
그 시대 순간으로 돌아가 상상
하나님 뜻 받아들여 순종 가능
거룩한 상상력, 관찰을 통찰로
기상천외한 행동을 끝없이 하는 어린아이가 있다. 어른들로 감당하지 못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댄다. 그녀는 ‘말괄량이 삐삐 롱스타킹’.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쓰고 잉리드 방 니만이 그린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의 주인공이다.
9살 소녀가 얼마나 상상의 나래를 펼쳐대는지, 번역한 분은 말한다. “삐삐의 기상천외한 행동과 상상력이 풍부한 거짓말에, 세상을 바라보는 순수한 눈길에, 이따금 보이는 따뜻한 마음 씀씀이에 놀라고 감탄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어린아이의 순수함에 상상력이 더해지니 기상천외한 일들이 벌어지며 전 세계 어린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 책은 80년 전에 출간되었지만, 요즘도 인기가 대단하다. AI 시대일수록 삐삐 롱스타킹 같은 창의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상상력이 경쟁력인 시대가 4차 산업시대이다.
상상력은 동화책에서만 발현되는 것이 아니다. 큐티할 때도 필요하다. 상상력은 이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게 해주는 까닭이다. <큐티, 공부와 만나다(이규철·김태현 공저)>에서 저자는 말한다. 창의력은 “있는 것에서 시작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는 의미라는 것. 이 세상을 창조한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창의력을 바탕으로 큐티를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질문을 해야 한다. ‘왜?’라는 질문을 품고 성경 말씀을 볼 때 하나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까닭이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게 해주는 힘이 바로 상상력이다.
하지만 큐티할 때 필요한 상상력은 세상에서 말하는 상상력과 다르다. 창조의 세계를 떠올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룩한’ 상상력이라 한다.
그렇다. 큐티에서는 ‘거룩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거룩한 상상력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이다. 그 나래를 하나님의 가치관 안에서 펼쳐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의 진심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거룩한 상상력은 성경의 그 시대, 그 순간으로 돌아가 상상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명제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 그럴 때 이해되지 않던 성경 구절들이 내 마음에 와닿는다. 하나님의 그 사랑에 눈시울이 붉어지는 이유다.
거룩한 상상력은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알게 해준다. <읽는다는 것> 저자 강영안 교수님은 말한다. “성경은 ‘남의 신발을 신고’ 읽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아야 그를 알 수 있다는 서양 속담이라고 한다. 그래야 성경을 인격적으로 읽을 수 있는 까닭이다. 바꾸어 말하면 ‘거룩한’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성경 말씀을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에 비추어 이해하는 것은 ‘우물 안 개구리’와 같다. 사람의 시야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남의 신발을 신고’ 성경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사람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도 조금은 이해하게 되는 이유다.
그렇게 읽으면 ‘역지사지’가 가능하다. 입장 바꿔 생각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의 입장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 어려운 순종이 가능해진다. 불순종의 아이콘들의 마음도 보인다. 이것이 바로 ‘거룩한’ 상상력이다. 하나님의 가치관 위에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이다.
저자는 ‘상상력’이 있어야 성경을 인격적으로 읽을 수 있다고 말한다. 주관적인 읽기나 객관적인 방식을 넘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있는 까닭이다. 큐티가 ‘하나님과 아름다운 인격적 교제’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 거룩한 상상력은 관찰이 통찰이 되게 해준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해준다. 그런 연습이 성경의 지혜를 보는 통찰력의 안경을 장착하게 해주는 것이다. 큐티에서는 통찰을 어떻게 정의하고, 왜 필요한지 다음 시간에 이어나가도록 하겠다.
이석현 목사
블로그 읽고 쓴다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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