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자> 용인제일교회 임병선 목사 (下)
“교회가 지역 사회와 지역 주민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성도들이 더 불편해져야 한다. 그것을 사명으로 여기고 기뻐해야 한다. 그럴 때 지역사회는 그 교회를 다시 보게 될 것이고, 지역 주민들도 조금씩 교회로 발걸음을 옮기게 될 것이다. 그것이 복음을 향한 첫걸음이 될 때, 교회는 지역사회를 섬기고 다음 세대를 세우는 교회로 발돋움하게 될 것이다.”
교회는 ‘지역사회에 착한 일을 하기 위한 센터’가 돼야 한다고 믿는 임병선 목사는 최근 ‘10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고 했던 과거 경주 최부자댁 가훈처럼, 교회 인근 반경 10리(약 4.5km) 안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도, 끼니를 걱정하고 굶는 사람도, 단수·단전으로 벼랑 끝에 내몰리는 사람도 없도록 하자는 캠페인이다. 이는 교회 2km에 위치한 전철역에서 한 청년이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듣고 시작됐다.
성도와 교회는 반드시 누군가에게 살리는 영향력을 주어야 한다고 믿는 임병선 목사는 총신대학교 신학과(B. A.) 및 신학대학원(M. Div.)을 졸업하고, 사우스웨스턴 신학대학교(South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서 석사학위(Th. M.)를, 리버티 신학대학교(Liberty University)에서 교회성장학 박사학위(D. Min.)를 받았다. 다음은 ‘실행자’ 임병선 목사의 나머지 이야기.
언덕 아래에 카타콤처럼 건축
주차장, 자전거 연습장 의견도
교회 건축, 설계부터 정형화돼
에너지와 시간, 충분히 들여야
-교회 설계 과정에서 안 믿는 대학생들의 아이디어도 공모를 통해 받으셨는데, 채택은 못했지만 다른 교회가 참고할 만한 내용이나 인상 깊었던 부분이 있을까요.
“교회 주차장을 평일에 자전거 연습장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자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부모님들이 자녀들과 자전거를 타러 오거나 가르쳐줄 공간으로요. 또 하나는 건축 부지가 언덕이었는데, 언덕 아래로 카타콤처럼 파서 교회 건물을 짓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건물 위는 동산이나 공원처럼 만들고, 아래에 예배당을 짓자는 것이었죠.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웬만한 교회 설계자보다 뛰어났어요.
채택된 내용은 주일 주중 복합공간으로 만들자는 것이었죠. 저도 생각하고 있던 내용이었는데, 대학생들의 아이디어를 보고 확신을 가졌죠. 모든 공간을 지역 주민과 다음 세대들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고자, 댄스 연습실부터 풋살장, 방송 스튜디오, 키즈카페 컨셉 등이 하나하나 만들어졌죠.
한 번 건축을 해보니, 교회 건축의 문제점을 알게 됐어요. 건축업자들에 의해, 건축이 정형화될 수밖에 없어요. 교회를 짓겠다고 하면, 설계가 이미 다 나와 있어요. 이전에 했던 설계들이 있으니까요. 교회마다 어느 정도 바꾸겠지만, 기본 철학이 바뀌지 않죠. 기존 예배당 중심의 설계에 카페를 집어넣는 정도이지, 전체적으로 우리 교회만의 철학을 담아낼 수 있는 건축을 할 수 없어요.”
-교회가 처음부터 제대로 설계를 하면 되지 않을까요.
“과정이 잘못 됐죠. 교회들이 설계 공모를 해요. 공모를 하면, 대부분 설계가 다 나와 있죠. 그것들 중 선택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 교회는 설계 공모를 하지 않고, ‘설계자’만 공모했어요. 어떻게 설계할지 브리핑만 받고, 저희 교회 전문가들과 프로젝트를 했던 성신여대 학생들, 그리고 저희 교회 성도들에게 설문도 받고 지역 조사도 하면서 하나씩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죠.
그런데 이렇게 하려면 에너지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걸리니까, 쉽진 않아요. 그래서 대부분 공모를 하거든요. 그러면 결국 설계자가 예전에 했던 방식대로 가게 되고, 거의 정형화된 교회가 지어지겠죠.
그러다 보니 한국교회는 대형교회든 작은교회든 다를 게 없고, 다 비슷해요. 용도도 같고, 크기만 다르죠. 교회학교 부서실부터 대예배실 소예배실, 요즘은 카페를 추가하는 정도입니다. 그러다 보니 획기적인 변화는 어렵죠. 변화하려면, 고민도 많이 해야 하고 에너지도 많이 들죠. 하지만 제대로 지을 거면 그렇게 해야죠.
설계자들도 키워야 하고, 전문가들과 협업도 잘 해야죠. 저희는 문화 전문가와 설계자, 성신여대 교수 등과의 협업으로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대부분 건축을 마무리하면서 저희 교회를 보러 오세요. 그런데 사실상 인테리어만 남았을 때는 새로운 것을 추가하기 어렵거든요. 색다른 걸 집어넣고 싶은데, 잘 안 되니 인테리어로 해결하려는 것이죠.
저희 교회에 홍대 소극장처럼 만든 채플 공간이 있는데, 교회처럼 정형화된 공간이 나온 거예요. 그래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지은 분께 다시 설계를 맡겼어요. 돈이 더 들더라도 제대로 하고 싶어서, 정말 소극장 같은 공간을 다시 만들어 주셨어요. 그곳에서 공연부터 다채로운 행사를 할 수 있도록 다시 세팅했죠.”
3040 육아 하면서 신앙 무너져
이들 보듬어 안는 교회 추구해
교회 중심, 60대에서 3040으로
프로그램도 계속 고쳐 나가야
-어린이날을 맞아 교회를 놀이공원처럼 만드는 ‘글로리에서 놀자’ 행사를 시작하신 계기는.
“부목사 하면서 아이들을 키웠는데, 어린이날 어디 갈까 하는 것이 고민이었어요. 그리고 놀이공원을 가도 사람만 많고 제대로 놀아주지도 못하니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차라리 교회가 이걸 해주면 부모님들에게도 좋고, 하나의 접촉점도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교회 건축 전에도 소규모로 해봤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그때는 주로 성도님들이 편하게 오셔서 즐기셨죠. 이걸 지역 주민들 대상으로 확대시켰는데, 감사하게도 맘카페에서 어머니들이 홍보해 주셔서 깜짝 놀랐어요. 이걸 원하는 분들도 많으시고, 정말 좋은 접촉점이 됐습니다.
맘카페 댓글들을 다 보는데 교회 안 다니는 분들이 대부분 너무 좋았다고 말씀하시고, 교회 자체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어요. 교회는 그들만을 위한 곳이고 자신들과 상관없는 곳으로 여겼는데, 막대한 재정이 들어가는 이런 행사를 해주는 게 너무 감사하다는 말들을 써주셨어요.
책에도 썼지만, 저는 청년 사역을 오래 했는데 제가 양육한 청년들이 결혼하고 30-40대가 돼 아기를 키우면서 신앙이 무너져가는 걸 봤어요. 그때가 정말 신앙의 암흑기거든요. 부부끼리 맞춰가기도 힘든데 아이까지 키워야 하니 갈등이 폭발하죠.
거기다 예배 시간에도 아이랑 있다 보니 은혜도 못 받는 거예요. 은혜가 메마르니 삶도 지치고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요. 그래서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쉼을 주고 30-40대를 환영하고 보듬어 안을 수 있는 교회가 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글로리 베베’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예배 시간에 아기들을 아예 맡아줘요. 30-40대 부모님들이 아이 없이 온전히 예배를 드리게 합니다.
감사하게도 호응이 많아서, 교회 부임할 때만 해도 평균 연령이 60대였는데 지금은 30-40대가 중심이 됐어요. 그분들이 주축이 돼서 캠핑 행사도 다 기획하셨고, ‘글로리에서 놀자’도 30-40대 성도들이 많이 참여해 주셔서 가능했죠.”
-요즘 많은 교회들이 ‘글로리에서 놀자’ 같은 행사를 어린이날 하고 있습니다. 이뿐 아니라, 교회가 세상을 선도할 만한 문화가 있을까요.
“교회에서 ‘10리 프로젝트’를 하는데, 중요한 건 교회는 사람을 살리고 생명을 구하는 곳이잖아요. 사실 세상이 몰라줘서 그렇지, 한국교회가 엄청나게 구제를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좀 더 지혜로울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군에서 정훈장교였는데, 군에서 하는 좋은 일들을 홍보하는 게 주 임무였어요. 그런데 이 부분에서 교회가 너무 취약해요. 파편화돼 있어 하나로 모아지지 못하고, 개별적으로 모든 일을 다 하다 보니 어려움이 있어요.
우리나라 방방곡곡 동네마다 다 교회가 있잖아요. 모든 지역 안에 있는 유일한 기관이에요. 이슬람 문화권을 가보면, 항상 회당이 중심이에요. 하다 못해 데이트를 해도 회당 근처에서 해요. 교육도 휴식도 거기서 하죠. 그래서 우리도 교회가 지역의 중심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누구나 지나가면서 들어올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면 의미 있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저희 교회에 편의점도 카페도 있어요. 그런데 이곳들은 교회에서 운영하지 않아요. ‘글로리비전’이라는 법인을 따로 만들었습니다. 카페와 편의점은 영리 목적이기 때문에, 교회가 운영할 수 없거든요. 그러다 보니 교회 카페는 대부분 목사의 사모 명의로 하게 되는데, 개인 명의로 하는 건 좋지 않은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저희는 시작부터 투명하게 하고 싶어, ‘글로벌비전’을 만들고 근린시설로 등록해 세금도 냅니다. 그리고 ‘아프리카 드림’이라는 선교 법인을 통해 학교를 건축하면서 정부나 기업 등의 기부를 받고 있습니다. 이번엔 삼성꿈장학재단에서 5천만 원 후원을 받았는데, 매년 후원해주실 것 같습니다(웃음). 이렇듯 구제도 천편일률적이 아닌, 나름대로 시도하고 준비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어린이날 행사도 주변 교회에서 많이 하게 됐다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내서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치고 빠지면서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한국교회는 한번 만들면 없애지를 못해요. 그런데 그것도 기득권이에요. 그 사역을 좋아하는 분들은 계속하고 싶어하거든요. 그런데 다른 의견도 있어요. 그런 유연성이 없으니, 안 바뀌는 거예요. 한국교회가 유연성을 갖고 새로운 사역을 자꾸 찾고 도전하고 만들어 가면 희망이 있습니다.”
-어린이날 행사 같은 경우도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만 이용할 수 있거든요. 그 이후 아이들은 가서 할 게 없어요.
“저희도 그런 고민을 했어요. 처음 해보니 유치원생과 저학년 중심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교역자들에게 미션을 줬죠. 최소 중학교 1학년까지는 놀 수 있는 것들을 만들어 줘야 한다. 그때부터 댄스나 농구 게임기, 인생네컷, 부모와 함께할 수 있는 오락게임 등을 도입했어요. 요즘은 다 대여가 됩니다. 그런데 안 될 거라 생각하고 시도를 안 하는 거예요. 이렇게 해 나가야 리뉴얼도 하는 거죠.
아까 건축 설계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에너지와 시간을 들여야 퀄러티가 보장됩니다. 저희 사역자들에게는 개그 콘서트 이야기를 많이 해요. ‘개그맨들은 사람들을 10분 웃기려고 일주일 밤을 새는데, 복음을 전하는 우리가 그들만큼 에너지를 쓰고 시간을 들이는가? 그러면서 어떻게 복음을 감히 논할 수 있는가?’”
사람 바라보는 목회 안 된다?
일단 사람 와서 설교 들어야
성도들 변화 여부 계속 관찰
영혼 사랑하면, 일단 해봐야
-끊임없는 고민이 인상적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이정익 목사님은 목회 당시를 회고하면서 ‘목회도 설교도 너무 사람을 바라본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일단 사람이 와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다음으로, 사람들을 위한 설교가 아니라면, 굳이 설교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냥 성경을 읽으라고 하면 되겠죠. 요즘 인터넷이 발달돼서 성경공부 콘텐츠도 많고 유튜브로 설교 들으면 되는데, 굳이 교회까지 와서 설교를 들어야 하나요?
설교는 성경 말씀을 쉽게 풀어주고 들려주기 위해서 하는 거죠. 들려줘야 하고, 들어야 합니다. 들어야 의미가 있고, 듣고 나서 변화로 이어지느냐가 중요합니다. 아무리 어렵게 설교해도 그 사람이 변화하면 문제가 없지만, 성도들이 듣건 말건 어렵게 설교하면 변화가 일어날까요? 늘 듣던 사람만 듣고 영혼도 못 살리고 변화도 없겠죠.
문제는 사람을 위주로 하느냐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고 변화시키는 일들이 나타나느냐에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그런 갈등과 고민은 계속 해야 합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라는 반성과 고민들이 있어야죠.
성도들 반응도 살펴야죠. 말씀하신 그런 차원이 아니라, 교회가 제대로 변화하고 성도들이 달라지고 있는가 하는 차원이어야 합니다. 성도들이 단순히 늘어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지역사회와 주민들을 살리고 아름다운 문화를 전하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고 있는지 끊임없이 반성하고, 그것이 안 되고 있다면 잘못된 거죠.
청년들이 제게 물어요. ‘목사님, 단기 선교 가라는 마음을 주셨는데 하나님의 뜻일까요, 아닐까요?’ 저는 답했어요. ‘가보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 알 수 있을 거야. 일단 가봐.’ <실행자>라는 의도가 이것입니다. 또 그랬죠. ‘1년 갔다 와서 하나님 뜻이 아니었다 해도, 그렇게 보낸 1년이 우리 인생에 헛된 것이 아니다. 비록 잘못된 감정에 이끌려 1년 간 선교했더라도 그것이 인생에서 절대로 실패가 아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시다.’
이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찾으려다, 아무것도 못해요. 그러니 일단 실행해 보는 거예요. 아까 이정익 목사님 말씀도, 뭔가 해 보셨으니 나오는 거죠. 제 말씀은 해보지 않으면 그런 답조차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지금 그런 고민만 하는 거예요.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일단 해보는 거예요. 해 보고 문제가 있을 때, 다시 바꾸면 되잖아요? 저는 이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정확한 잣대로만 하려다 움직이질 못하죠. ‘실행자’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도 이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이 있다면.
“한국교회가 기존의 틀과 전통을 내려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교회 대부분이 ‘지역사회를 위한 교회, 다음 세대를 키우는 교회’를 추구합니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그런 사역을 하고 있을까요?
저희도 건물을 짓고 지역 주민들을 위해 교회를 개방하니, 문제가 생겼어요. 풋살장도 체육관도 사전에 신청하는 게 아니라, 그냥 아이들끼리 와서 비어 있으면 어울려서 쓰는 시스템입니다. 아이들이 쓰레기를 버리고 기물이 파손되기도 했죠. 그러다 보니 관리비도 청소비도 많이 들었고요.
성도들 사이에서 ‘시간 제한을 두자, 사전 신청을 받자’ 등의 의견이 나왔어요. 그런데 아이들은 불편하면 아예 이용을 안 해요. 신청하라고 하면 안 와요. 그런데 이것 자체가 굉장한 기득권일 수 있어요. 문을 닫자, 제한을 두자 하다 보면 주민들이든 아이들이든 다 떠나가 버려요.
그래서 장로님이나 성도님들께 말씀드렸습니다. ‘거기까지 감당하는 것이 선교입니다. 거기까지 해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거기까지 나아가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