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나비, 2024년 상반기 워크샵
대한민국 발전, 한미동맹 덕분
공산주의에서 나라 구할 기회로
선교사·목사, 포로들 복음 전해
1만 6천여 포로들 기독교인으로
반공포로 석방, 당시 전쟁 상황
및 국제정세 꿰뚫는 통찰력으로
샬롬나비(상임대표 김영한 박사)는 지난 6월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온누리교회 양재캠퍼스 내 샬롬나비 사무실에서 ‘정전협정과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과정의 역사적 의의’라는 주제로 2024년 상반기 워크샵을 개최했다.
주제 발표는 대한역사문화원장 김재동 목사(하늘교회)가 맡았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 지배에서 독립한 140여 개 신생 독립국가들 중 한국은 139위로 가장 헐벗고 못사는 나라였다. 게다가 6.25 전쟁으로 국민소득 60달러도 안 되는,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며 “그러나 지금은 신생 독립국가들 중 유일하게 산업화와 민주화에 모두 성공했을 뿐 아니라, 이미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고 밝혔다.
김재동 목사는 “이처럼 세계적인 경제 강국과 선진 한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승만 건국 대통령이 여러 초석을 놓았기 때문이다. 그 여러 초석들 중에서 단연 으뜸은 한미동맹의 시작인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성사시킨 것”이라며 “이 대통령은 1950년 11월 29일 각료회의에서 중공군 개입에 대한 정일권 참모총장의 보고를 듣고 ‘중공군이 지금 침략해온 것은 하나님이 한국을 구하려는 방법인지 모른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고 소개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우리는 한국 지배가 소련의 계획에 들어있고, 북한군의 실패가 그들 계획의 포기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며 “지금 한국에 중공군을 끌어들인 것은, 국제연합군이 철수한 뒤에 그런 일이 발생하는 것보다는 낫다. 그러므로 우리는 싸워야 한다. 최악의 경우가 한국에 닥칠지 모르나, 민주주의를 구하게 될 것”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김 목사는 “이승만 대통령은 6.25 전쟁에 중공군이 개입하는 심각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한국을 공산주의로부터 구할 기회를 주셨다고 여겼다. 그리고 그의 예견은 적중했다”며 “6.25 전쟁은 분명 비극적 국가 재앙이었으나, 뜻밖의 축복을 안겨다 주었다. 그것이 바로 한미동맹의 시작을 알리는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이라고 전했다.
그는 “1951년 7월 8일 시작된 휴전협상은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조인까지 무려 25개월이 걸린 이유는 포로송환 문제 때문이었다. 특히 유엔군이 가둬놓은 공산군 포로들 중 공산 세계로 되돌아가기를 한사코 거부했던 반공포로 때문”이라며 “1952년 4-6월 포로 개별 심사 결과, 잡혀온 북한군 11만 1,360명 중 4만 6,760명이 송환을 거부했다. 그해 6월 조사에서는 중공군 포함 16만 9,983명 중 8만 6,867명이 송환을 거부해 유엔사가 놀랄 정도였다”고 소개했다.
김재동 목사는 “특히 기독교로 개종한 반공 기독교인 포로들은 ‘우리는 공산주의자가 아니고, 공산주의자가 싫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적극 지지한다’는 혈서까지 써서 이승만 대통령에게 애절하게 호소했다”며 “이에 감동을 받은 이승만 대통령은 어떻게 하면 반공포로들을 석방시킬 수 있을지 연구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이토록 많은 포로들이 강제송환을 거부한 데는 놀라운 배경이 숨어 있었다. 유엔군 군목이었던 美 북장로교 해롤드 보켈(Harold Voelkel·한국명 옥호열) 목사는 1951년 초 임한상·김윤찬·강신정·임재수·박지서·남기종·강응무 목사 등과 포로수용소 각 동을 순회하며 선교활동을 폈다”며 “반공포로들이 부산·마산·영천·논산·광주 등 내륙으로 분리 이송된 후 보켈과 강신정은 영천, 박지서는 마산, 디캠프는 부산, 커밍은 광주·논산에서 활동했다. 포로 신분이던 임한상은 논산으로 이송돼 선교활동을 계속 했다”고 전했다.
그는 “광주·논산 수용소 내 반공포로는 2만 1천 명이었고, 이들 중 신앙을 고백한 포로가 3,300명에 이르렀다. 이들 중 2,400명이 포로수용소 사역의 열매였다”며 “반공포로 중 상당수가 수용소에서 기독교인이 됐고, 선교사들과 국내 목회자들이 협력해 포로들에게 복음을 전한 결과, 총 1만 6천 명 이상의 기독교 반공포로가 생겨났다”고 정리했다.
김재동 목사는 “1953년 6월 8일 미국은 반공포로들을 돌려보낼 수 없다는 한국의 입장을 무시한 채 강제북송 협정에 서명했으나, 이승만 대통령은 이에 반발해 6월 17일 헌병총사령관 원용덕 중장에게 반공포로들을 즉시 풀어주라고 명령했다”며 “6월 18일 새벽 2시 각 수용소에서 총 2만 7,389명의 반공포로가 석방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승만 대통령의 역사적 반공포로 석방 단행은 즉흥적·감상적 결정이 아니었다. 이는 당시 전쟁 상황과 국제정세 흐름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으로 신생국 대한민국이 처한 상황을 예리하게 평가한 결과”라며 “그는 반공포로 석방을 한국의 안전보장을 확보하기 위한 대미 압박 카드로 활용했다. 휴전에도 반대하면서, 휴전이 이뤄질 경우 한미상호방위조약 등 대한민국의 안보 대책이 선결돼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미국은 한국과의 동맹을 바라지 않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한국의 살 길은 미국과의 동맹뿐이라고 생각했다”며 “미국과의 동맹으로 안보를 보장받고, 미국의 경제적 도움으로 전후 복구를 통해 국가를 일으키려고 한 것이다. 그래서 미국 방문을 통해 이 대통령은 미국의 군사 및 경제 원조를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을 다했다”고 평가했다.
끝으로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은 1953년 8월 8일 가조인식과 10월 1일 정식 조인식 이후, 1954년 11월 17일 한미합의의사록 합의와 한미상호방위조약 비준서 교환이 성사되면서 1년 4개월 만에 비로소 완성됐다”며 “2024년 올해가 진정한 한미동맹 70주년이라 할 수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미군 주둔을 통해 북한 침략을 억제하는 인계철선 전략이 채택됐고, 한국군 지휘권은 유엔군 사령부로 넘어갔다”고 정리했다.
또 “70주년을 맞이한 한미동맹이 가장 성공적인 동맹이라고 평가받는 이유는 ‘전쟁 방지’에 성공했고, 가장 가난했던 대한민국이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라며 “이보다 중요한 의의는 그 중심에 언제나 북한 동포들을 구출하고자 하는 이승만 대통령의 자유통일에 관한 분명한 의지와 목표와 열망이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이 대통령을 통해 드러난 북한구원과 통일한국의 정신을 계승·실천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앞선 개회예배는 샬롬나비 사무총장을 지낸 이일호 박사(칼빈대 은퇴교수) 사회로 최철희 선교사(시니어선교한국 고문)의 기도 후 샬롬나비 자문위원 김중석 목사(사랑교회 원로, 북한교회바로세우기연합 사무총장)가 ‘절대 소망’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이후 총무 최선 목사(세계로부천교회)의 샬롬나비 행동강령 제창과 육호기 목사(GMS 원로선교사)의 축도로 마무리됐다.
주제 발표 후 2024년 상반기 사업보고와 2024년 하반기 사업계획도 논의하고, 폐회예배에서는 총무 최선 목사 사회로 권요한 박사(서울대 학원선교사)의 기도, 상임이사 송길원 대표(하이패밀리)의 설교, 사무총장 박봉규 목사의 축도, 김영한 상임대표의 마무리 발언 등이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