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세대와 개혁교회 2] 개혁교회의 태동과 성장통
‘다음 세대와 개혁교회’라는 주제로 지난 4월 27일 열린 개혁신학포럼 제24회 정기세미나에서 발표가 진행된 최덕수 목사님(현산교회)의 ‘다음 세대와 개혁교회’ 원고를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본질과 비본질 구분 못한 채
객관성 상실하고 편협한 이해
동지 적 여기고 싸워선 안 돼
함께 연대와 교제에 힘써야
2. 개혁교회의 태동과 성장,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성장통
1) 한국 개혁교회의 태동과 성장
과거 한국교회 안에서 로마가톨릭과 구분되는 ‘개신교’라는 단어는 자주 사용되었지만, 성경에 기초한 종교개혁 정신을 따라 ‘항상 개혁하는 교회’라는 의미를 지닌 ‘개혁교회(Reformed Church)’라는 용어는 거의 들을 수 없었으며, 개혁주의 신학의 원리를 따라 실제로 개혁교회를 이루는 교회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개혁교회’라는 단어가 그리스도인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하였다. 미미하지만 각 지역마다 개혁교회가 세워지고 교회 이름을 ‘OO개혁교회’라고 붙이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기존 교회와는 다른 구조와 틀을 지닌 개혁교회가 세워지게 된 배경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는 한국교회의 세속화 현상이다.
과거 한국교회는 교파와 상관없이 전통적인 복음주의 교회들이 주를 이루다가, 1980년 후반부터 교파와 상관없이 현대 복음주의 교회가 주를 이루면서 교회의 세속화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 후 기존교회에서는 제대로 신앙생활을 할 수 없고 바른 교회를 세울 수도 없다는 판단 하에 성경적인 교회를 세우려는 움직임이 일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종교개혁 전통을 따르는 개혁교회가 세워지게 된 것이다.
한국에 개혁교회가 세워지게 된 또 하나의 원인은 개혁주의 신학의 대중화 현상이다.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그리스도인들이 경건서적은 읽었지만, 신학서적은 잘 읽지 않았다. 그런데 1980년대 중반 기독교 고전들이 출판되고 개혁주의 신학도서들과 청교도 저작들도 활발하게 번역 소개되었다.
2010년대 들어와서는 개혁주의 도서를 출간하는 출판사들이 생겨나고 개혁주의 신학과 청교도 세미나도 개최되면서, 목회자들은 물론 일반 신자들 중에도 개혁주의 신학에 대한 관심을 갖는 이들이 많아지게 되었다. 또 유학이나 이민 등 현지 개혁교회에 출석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인터넷을 비롯해 대중 매체를 통해 개혁교회들에 대한 정보들이 소개되면서 현대 복음주의 교회와는 차별화된 개혁교회가 설립되는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요컨대 개신교회들이 세속화되면서 기존 교회의 구조와 틀로서는 교회를 개혁할 수 없다는 절박감과 신학에 대한 이해가 점점 깊어지고 넓어짐과 동시에, 개혁주의 신학의 대중화가 이루어지면서 개혁교회 입지가 조금씩 강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나라에 있는 개혁교회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한 부류는 교단 내 모든 교회가 개혁교회를 이루고 있는 경우이고, 다른 한 부류는 기존 교단에 속해 있으면서 지교회가 개혁교회를 이루는 경우이다.
교단 내 모든 교회가 개혁교회를 이루고 있는 교단은 ‘독립개신교회(IRC)’와 ‘독립개혁장로회(IRPC)’이며, 이 외에 몇몇 교단들이 있다. ‘독립개신교회(IRC)’에 속한 교회 수는 4곳, ‘독립개혁장로회’(IRPC) 교회 수는 14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두 교단은 ICRC와 자매교단이다. 이 외에 개혁교회가 모인 군소교단으로 ‘대한예수교개혁회’(RCK), 한국개혁교회(KRC), 한국개혁장로회(KRPC) 등이 있다.
이 두 경우 외에 특정 교단에 속하지도 않고 독립교회로 남아 개혁교회를 이루는 경우도 있다. 한국 내 개혁교회의 수는 1백여 곳 이상 될 것으로 추정된다.
2) 성장 과정에서 생겨난 한국 개혁교회의 성장통
한국에 개혁교회가 점차 많아지는 것은 크게 환영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개혁주의 신학과 개혁교회에 대한 분명하고도 폭넓은 이해를 갖지 못함으로 인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말씀의 본의를 드러내고 성경적인 교회를 세우려는 열심은 좋으나 머리와 입으로만 신학하는 이들의 빗나간 열심과 기존 교회에서 겪었던 상처와 아픔을 더 이상 겪지 않으려는 노력이 지나쳐 균형감각을 잃어버리는 일들도 생겨났다.
전통적 개혁주의 신학이 가지고 있는 단면만을 개혁신학의 전부로 오해하여, 그 범주에 들어오지 않는 이들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일도 일어나고 신학에 대한 관심이 특심한 이들이 빚어낸 지나친 신학화의 과정에서, 본질적이지 않은 교리를 가지고 논쟁하는 일들도 일어나고 있다.
개혁주의 신학을 지향하는 이들이 연대하여 거대한 세속주의 공격을 막아내는 일도 힘든데, 상대를 판단하고 정죄하는 일에 더 열심을 내면서 연합하기보다 다투고 나뉘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초대교회가 하나의 교회로 출발한 후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 그리고 루터파 교회와 개혁파 교회로 나눠진 이후, 개혁파 교회들의 분열도 계속되고 있다. 배타적 진리를 드러내어 지키는 일로 인해 겪는 분열과 소외는 진리를 더 분명하게 드러내게 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끊임없이 본질을 추구하고 본래의 폼(form)으로 돌아가는 과정(reform)에서 나뉘는 일은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혁주의 신학에 대한 어설픈 이해와 성숙하지 못함으로 야기되는 나뉨과 분열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하나 되기보다 분리가 가속화되는 것은 개혁교회가 진리에 대한 이해와 열심이 남달랐기 때문이라 할 수 있겠지만, 분열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개혁신학을 하는 이들은 머리만 커져서는 안 되고, 마음까지 넓어져야 한다. 본질과 비본질을 구분하지 못한 채 객관성을 상실하고 자신의 주관적 견해를 가장 성경적인 진리라고 생각하거나, 개혁주의 신학과 개혁교회에 대한 편협한 이해로 인한 좁아진 마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함께 유업으로 상속받을 동지를 적으로 규정하고 싸우려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된다.
예수께서 자신을 내어주신 목적 중 하나가 만물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는 것이라는 사실의 기초 위에서, 개혁교회는 함께 연대하고 교제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최덕수 목사(현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