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력존엄사법? 현대판 고려장, 조력자살 강요법”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성산생명윤리연구소, 성명서 발표

좋은 죽음, 조력자살 몰아선 안 돼
호스피스·완화의료 시설 확충부터
자살예방정책 정면 배치되는 모순
복지부 장관, 생명 지키는 일 집중
생명 지킬 의사 부족해 증원 상황
의사, 조력자살 도구로 강요 법안

▲조력존엄사법을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 ⓒ페이스북

▲조력존엄사법을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 ⓒ페이스북

성산생명윤리연구소(소장 홍순철 교수)가 최근 제출된 소위 ‘조력존엄사법안’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7월 23일 발표했다.

안규백 의원(더불어민주당)은 21대 국회 당시인 지난 2022년 6월 국내 처음으로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한 데 이어, 7월 초 이번 국회에서 ‘조력존엄사에 관한 법률안’을 단독 법안으로 재발의했다.

21대 국회 당시에는 종교계와 의료계의 반대로 상임위원회 심의 단계에서 입법 논의가 중단됐고, 21대 국회 임기가 만료되면서 자동 폐기된 바 있다.

재발의된 조력존엄사법에서는 ‘조력존엄사’ 희망자가 조력존엄사심사위원회에 대상자 결정을 신청하고, 이를 심의·결정할 보건복지부 장관 소속 심사위원회를 설치하도록 했다. 심사위원회는 25명이며, 의료 전문가를 과반으로 구성한다. 대상자는 대상자 결정일 1개월 후 자신이 담당의사 및 전문의 2명에게 존엄사 희망 의사표시 후 이행할 수 있다.

또 존엄사를 도운 담당의사는 형법에 따른 자살방조죄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고, 대상자가 언제든지 존엄사 결정을 취소할 수 있는 철회권, 존엄사 이행으로 사망한 사람과 보험금 수령인 또는 연금수급자에 대한 불이익 금지 등의 민감한 조항도 신설했다.

이에 대해 연구소는 ‘존엄한 죽음을 왜곡하는 <조력존엄사 법안>을 반대한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통해 “2022년 법안 제출 당시 법안 이름을 ‘조력존엄사’라고 지은 것은 ‘조력자살’의 본질을 호도하는 행위라고 지적받았지만, 안 의원은 다시 같은 이름의 법안을 발의했다”며 “국민의 뜻을 외면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지난 2022년 조력존엄사법 첫 발의 당시 안규백 의원이 한 의학 전문 유튜브 채널에 출연한 모습. ⓒ유튜브 캡쳐

▲지난 2022년 조력존엄사법 첫 발의 당시 안규백 의원이 한 의학 전문 유튜브 채널에 출연한 모습. ⓒ유튜브 캡쳐

또 “안 의원은 법안 발의 근거로 ‘삶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증진하자’는 입법에 국민 80% 이상이 찬성한다는 설문 결과를 내세웠다. 말기 환자의 고통이 심하면 삶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가지고 조력자살하는 것이 존엄하다고 강요하는 것”이라며 “말기 환자가 됐을 때의 자기결정권은 자살이 아닌, 존엄한 생명을 잘 살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반박했다.

이들은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 학회가 존엄한 죽음을 위해 가장 중점을 둬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물었을 때 ‘조력자살 합법화’라고 응답한 사람은 13.6%에 그쳤다”며 “대신 간병 부담 완화를 위한 시스템 조성과 의료비 절감, 그리고 호스피스 서비스의 확충이 우선이라고 답한 비율의 합이 80.7%에 달했다”고 소개했다.

연구소는 “국민들은 잘 죽기 위해 조력자살법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돌봄 체계를 확대해 말기까지 잘 살다 죽음을 맞이하길 원하고 있다”며 “잘못된 조력자살법안은 자살률 1위인 대한민국에 왜곡된 죽음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병상의 환자들에게는 간병비와 병원비 등의 문제로 조력자살을 유도당할 위험이 생길 수 있다. ‘현대판 고려장’이라는 오명을 쓸 것”이라며 “우리나라에 이로 인한 생명 경시 현상이 생기지 않도록 이 법안을 폐기해야 한다”고 강력히 요구했다.

구체적으로는 “첫째, 국민의 ‘좋은 죽음’을 ‘조력자살’로 몰아가려는 왜곡된 법안 발의를 당장 중단하고, 돌봄 시스템 확대를 위한 개선 법안을 마련하라”며 “말기 환자로서 돌봄을 받을 시설이 현저히 부족하다. 조력자살을 논할 것이 아니라, 호스피스·완화의료 시설의 확충과 돌봄 인력의 양성과 확보에 힘쓸 것”을 촉구했다.

둘째로 “자살 예방 정책에 힘을 쏟고 있는 보건복지부 장관을 조력자살 심의위원장으로 삼는 어리석은 법안을 당장 철회하라. ‘죽음의 자기결정권’ 주장은 자살 또한 자기결정권으로 허용하라는 것으로, 자살예방정책과 정면 배치되는 모순”이라며 “보건복지부 장관이 생명을 지키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혼란을 일으키는 법안을 폐기하라”고 밝혔다.

셋째로 “의사를 죽음의 조력자로 삼는 일을 중단하라. 환자 생명을 지킬 의사가 부족해 의대 증원 사태가 일어난 현 시점에, 환자의 생명을 종결시키는 일에 의사를 배치하라는 법안은 매우 부적절하다”며 “생명을 지키고 치유해야 할 의사에게 조력자살의 도구가 되라고 강요하는 법안을 다시는 발의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연구소는 “생명은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이 허락하시기 전에 내 생명을 스스로 종결시키는 행위는 큰 죄악”임을 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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