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종교, 충돌의 2천 년 역사? 인간 본질에 대한 탐구 여정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그 얽히고설킨 2천 년의 이야기

숨이 턱턱 막힐 정도의 더위에는 시원한 카페나 휴양지 그늘에 앉아 ‘벽돌책’을 읽는 게 어떨까. 휴가 기간, 집중하면 독파할 수 있을 만한 분량의 인문과학 도서를 소개한다.

▲조제프 니콜라 로베르 플뢰리(Joseph-Nicolas Robert-Fleury, 1797-1890)의 작품 ‘재판정에 선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before the Holy Office)’.

▲조제프 니콜라 로베르 플뢰리(Joseph-Nicolas Robert-Fleury, 1797-1890)의 작품 ‘재판정에 선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before the Holy Office)’.

종교, 과학에 파괴적이지 않아
과학적 사상·활동 적법화하고
보존·장려·발전 도우면서 지원
계몽주의 시대, 과학-종교 조화
다윈 신앙 잃은 이유 진화론 아냐
과학-종교 ‘단 하나의 역사’ 없어
종교가 과학 핍박했다는 헛소문
편견 없이 바로잡고 대화 촉구

마지스테리아
니컬러스 스펜서 | 전경훈 역 | 책과함께 | 720쪽 | 43,000원

‘과학’은 여전히 기독교에 적대적일 뿐 아니라, 선명하게 다른 영역처럼 보인다. 최근 서울신학대학교 박영식 교수 사태에서 보듯, 교회 내에서도 성경 창세기 1장의 해석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창조론 vs 진화론’의 구도가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듯 하다.

소위 유신진화론 지지자들은 창조과학 비판에만 혈안이 된 나머지, 세상 모든 일을 진화로 풀어내려는 ‘무신론 진화주의’와 관련 세계관의 확장에 대해선 정작 별다른 대응에 나서지 않아 그리스도인들을 의아하게 만든다. 진화생물학자들이 인간은 기본적으로 유전자라고 선언하고, 신경과학자들은 두뇌 활동이라고 선언하며, 실리콘밸리 기술 이상주의자들은 ‘알고리듬(Algorithm)’이라고 선언해도 말이다.

“종교는 우리가 그렇다고 믿고 있는 것만큼 과학에 대해 그렇게 파괴적이지는 않았다. 할렐루야! 기뻐하라! 사실은 역사의 많은 부분에서 종교는 과학과 ‘전쟁을 벌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과학적 사상과 활동을 적법화하고 보존하고 장려하고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줌으로써 적극적으로 과학을 지원했다.”

<마지스테리아>의 저자는 이처럼 오랫동안 (서양 역사에서) 과학과 종교의 관계는 끊임없는 충돌이 아닌, 유익한 협력관계를 이뤘다고 주장한다. 이는 동양 역사에서도 마찬가지. 지금은 교회 내에서도 첨예하게 다투는 사안이지만, 이러한 역사는 길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고 외쳤던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이 후대에 프로이트가 주장했던 것처럼 인간을 강등하거나 비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신비주의 수도사이자 연금술사였던) 조르다노 브루노는 자신의 과학 때문에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니었다.

▲이탈리아 화가 크리스티아노 반티(Cristiano Banti, 1824-1904)의 작품 &lsquo;갈릴레오가 로마 종교재판소에 출두하다(Galileo facing the Roman Inquisition).&rsquo;.

▲이탈리아 화가 크리스티아노 반티(Cristiano Banti, 1824-1904)의 작품 ‘갈릴레오가 로마 종교재판소에 출두하다(Galileo facing the Roman Inquisition).’.

런던 왕립학회와 같은 초기 과학 학회들은 반(反)종교적이지 않았다. 뉴턴에겐 신학이 훨씬 더 중요했고, 과학보다 신학에 관한 글을 훨씬 더 많이 집필했으며, 그의 과학은 우주에서 신을 추방하지 않았다. 일반 상식과 달리, 계몽주의 시대는 과학과 종교가 조화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던 시기다.

초기 지질학의 업적 중 많은 부분이 성직자들에 의해 이뤄졌고, 그들 대부분은 눈물을 너무 많이 쏟지 않고도 새로이 확장된 지구의 역사를 자신의 신앙으로 수용할 수 있었다. 다윈은 (오직) 진화론 때문에 신앙을 잃었던 게 아니다. 더욱이 말년에는 진화론이 유신론과 양립할 수 없음을 부인했다.

특히 1633년 갈릴레오는 종교재판을 당한 후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말한 적이 없었고, 1860년 헉슬리는 새뮤얼 윌버포스 주교와의 진화론 논쟁에서 “주교의 자손이 될 바엔 원숭이의 자손이 낫겠다”고 말하진 않았다. 1925년 미국에서 스코프스의 소위 ‘원숭이 재판’은 진화론만큼 우생학의 문제였다.

이 세 가지 사건은 모두 종교가 힘으로 우위를 차지하지만 결국 과학에 모욕적으로 패퇴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데, 저자는 이 유명한 ‘전투들’ 안팎에는 더 많은 이야기가 얽혀 있고,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관한 ‘단 하나의 역사’란 없다고 강조한다.

지금 우리가 이것들을 ‘단 하나의 역사’로만 알게 된 것은, 1874년 존 윌리엄 드레이퍼가 썼던 <종교와 과학 충돌의 역사>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과학과 종교의 실제 역사는 훨씬 더 복잡하고 흥미롭다. ‘하나님의 두 책(자연과 성경)’이라는 오래된 비유는 자연 탐구를 지지하는 강력한 논거가 됐고, 초기 근대 과학은 신학의 보호를 받아 존속할 수 있었다.

저자는 이러한 굴절됐던 역사를 바로잡아 가면서, 과학과 종교의 관계는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누가 그것을 정의할 수 있는가’라는 인간의 본질과 권위에 관한 문제에서 필연적으로 부딪힐 수밖에 없음을 갈파한다. 과학과 종교의 역사는 곧, 인간 본질에 대한 탐구의 여정이었다는 것이다.

역사를 관통해서 인간이 물질적 존재임을 과학이 주장할 때면 어떤 종교적 사상가들은 어깨를 으쓱 하고 어떤 종교적 사상가들은 비명을 질렀지만, 인간이 ‘단지’ 물질적 존재일 뿐이라고 과학이 주장할 때는 모든 종교적 사상가가 비명을 질렀다는 것이다.

이처럼 책은 고대 세계부터 오늘날까지 종교와 과학의 얼키고설킨 관계에 대해, 특히 종교에 대한 과도한 비판으로 점철된 해석을 상세하고도 편견 없이 바로잡고 있다. 그러면서 오늘날 인공지능(AI)의 발달로 인간을 육체적·정신적 측면에서 새롭게 정의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과학과 종교가 더더욱 서로 대화를 멈추면 안 된다고 역설한다.

책 제목 <마지스테리아(Magisteria)>는 ‘교도권(敎導權)’을 뜻하는 라틴어 마지스테리움(Magisterium)의 복수형이다. 스승을 뜻하는 마지스테르(Magister)에서 나온 이 말은, 가톨릭에서 복음 선포와 관련된 교황과 주교들의 권위 있는 가르침이나 가르칠 권한을 가리키는 용어다.

이와 관련, 미국 유명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말년에 종교와 과학을 “서로 겹치지 않는 ‘마지스테리아(Non-overlapping Magisteria, NOMA)’”라고 선언했다. 둘은 서로를 침범할 필요도 없고 침범해서도 안 되는, 서로 구분되는 인간 활동 영역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앞에서 봤듯 “둘 사이의 경계는 깔끔하게 그어지지 않고, 둘의 영역은 제멋대로 뻗어나가며, 끝없이 매혹적으로 얽혀 있다”고 책을 통해 반박한다.

<저작권자 ⓒ '종교 신문 1위' 크리스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구독신청

많이 본 뉴스

123 신앙과 삶

CT YouTube

더보기

에디터 추천기사

10.27 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 및 큰 기도회 성료 감사 및 보고회

“‘현장에만 110만’ 10.27 연합예배, 성혁명 맞서는 파도 시작”

‘10.27 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 및 큰 기도회 성료 감사 및 보고회’가 21일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렸다. 지난 10월 27일(주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열린 예배는 서울시청 앞 광장을 중심으로 광화문-서울시의회-대한문-숭례문-서울역뿐만 아니라 여의대로…

제56회 국가조찬기도회

‘윤석열 대통령 참석’ 제56회 국가조찬기도회… “공의, 회복, 부흥을”

“오늘날 대한민국과 교회, 세계 이끌 소명 앞에 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며 온전하신 뜻 분별해야” 윤상현 의원 “하나님 공의, 사회에 강물처럼 흐르길” 송기헌 의원 “공직자들, 겸손·헌신적 자세로 섬기길” 제56회 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가 ‘…

이재강

“이재강 의원 모자보건법 개정안, 엉터리 통계로 LGBT 출산 지원”

저출산 핑계, 사생아 출산 장려? 아이들에겐 건강한 가정 필요해 저출산 원인은 양육 부담, 비혼 출산 지원은 앞뒤 안 맞는 주장 진평연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강 의원 등이 제출한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비판하는 성명서를 21일 발표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

다니엘기도회

다니엘기도회 피날레: 하나님 자랑하는 간증의 주인공 10인

①도대체 무엇이 문제입니까? - 이미재 집사 (오륜교회) ②모든 것이 꿈만 같습니다! - 박광천 목사 (올바른교회) ③어린이다니엘기도회를 기대하라! - 강보윤 사모 (함께하는교회) ④천국열쇠 - 강지은 어린이 (산길교회) ⑤용서가 회복의 시작입니다 - 최현주 집…

예배찬양

“예배찬양 인도자와 담임목사의 바람직한 관계는?”

“담임목사로서 어떤 예배찬양 사역자를 찾고 싶으신가요?” “평신도의 예배찬양 인도에 한계를 느낀 적은 없으신가요?” “예배찬양 사역을 음악 정도로 아는 경우가 많은데, 어떻게 가르치고 계신가요?” 예배찬양 사역자들이 묻고, 담임목사들이 답했다…

 ‘생명윤리와 학생인권조례’

“학생 담뱃갑서 콘돔 나와도,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훈계 못 해”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세미나가 ‘생명윤리와 학생인권조례’를 주제로 21일(목) 오후 2시 30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진행됐다. 이상원 상임대표는 환영사에서 “학생인권조례는 그 내용이 반생명적 입장을 반영하고 있고, 초‧중‧고등학교에서 사실상 법률…

이 기사는 논쟁중

인물 이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