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군산열도에 핀 꽃, 추명순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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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재 선교사의 ‘아프리카에서 온 편지’ 안식 (3)

절망뿐인 인생 찾아오신 예수님
전하기 위해 고군산열도 전도해
먼 섬 13곳 일일이 배 타고 다녀
미신과 가난의 섬, 열정적 전도
작은 섬 교회들도 추명순 닮아
어딘가 모르게 사랑과 은혜 넘쳐
영혼의 산고로 얻은 영적 자녀

목회자들도 추 전도사 닮아 있어

▲섬에는 수국이 피어 있다.

▲섬에는 수국이 피어 있다.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다니엘 12:3)”.

끝없이 펼쳐진 새만금 방조제를 달리며, 나는 마치 소풍 가는 어린아이처럼 즐거웠다. 새만금을 지척에 둔 전주에서 첫 목회를 했으면서 무엇이 그리 바빴는지, 마음 먹고 와본 적 없는 곳, 새만금은 역시 한국의 지도를 새로 쓰고 있었다.

▲섬에는 수국이 피어 있다.

▲섬에는 수국이 피어 있다.

총 길이 33.9km, 여의도의 140배, 409㎢(1억 2,370만 평), 서울시의 2/3에 이르는 광활한 땅이었다. 탁 트인 시야를 보려고 창문을 열자, 상큼한 바닷바람이 뼛속 깊이 시원하게 불어왔다.

▲추명순 전도사는 이처럼 흩어져 있는 고군산열도를 배를 타고 다니며 전도했다.
▲추명순 전도사는 이처럼 흩어져 있는 고군산열도를 배를 타고 다니며 전도했다.

새만금 방조제를 지나자 작고 큰 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야미도, 신시도, 무녀도, 선유도, 장자도, 그리고 대장도. 육치처럼 다리로 연결된 섬들을 지나면서 나는 모처럼 시원한 해방감을 만끽했다. 여름 휴양지로 그렇게 유명하다던 선유도를 이제야 보다니. 섬들은 듣기보다 아름다웠다.

장자도에 내리자 다리는 끊기고, 거기서부터는 배를 타야 했다. 눈을 들어보니 수평선 멀리 관리도, 방축도, 명도, 말도가 희미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주위를 돌아보니 이름 모를 꽃들이 만발해 있었다. 따뜻한 바다 날씨와 온도, 그리고 훈훈한 바람이 아름다운 꽃들을 피웠을 것이다.

▲고군산열도의 어머니 추명순 전도사.
▲고군산열도의 어머니 추명순 전도사.

그러나 이 섬들을 아름답게 한 것은 눈에 보이는 꽃들만이 아니다. 이 섬을 아름답게 가꾼 또 하나의 꽃이 있었다. 추명선 전도사, 그는 87세 나이로 하늘의 부름을 받기까지 이 섬들을 두 발로 걷고 수없이 돛단배로 이동하면서 고군산열도를 오늘의 천국의 섬으로 만들었다.

나는 교회사에 이름도 없는 한 무명 여전도사가 그토록 위대하게 헌신했다는 사실에 놀라며, 기쁘게 그의 발자취를 따르기로 했다. 이 순례에는 감리교 친구 최완규 목사가 동행하고, 믿음의 가이드 김삼성 집사가 안내했다.

▲만년의 추명순 전도사가 교회 앞에서 촬영한 사진.

▲만년의 추명순 전도사가 교회 앞에서 촬영한 사진.

추명순 전도사는 누구인가? 그는 1908년 3월, 충남 보령군 웅천면 서정리 엄격한 유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여자들에게는 글을 가르치지 않는 전통에 따라 그는 학교에 가지 못한 채, 어머니를 도우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나이 15살에 서천 조씨 집안으로 시집을 갔는데, 무뚝뚝한 남편은 아내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읍내 여관에 딴 살림을 차렸다.

인생이 잘 안 풀린다고 느끼던 어느날, 그 지역 유명하다는 관상쟁이가 찾아와 “당신은 남편 복이 없으니 새벽마다 기도하라”고 말해줬다. 추명순은 그 말을 듣고 아침마다 물 떠놓고 기도하던 중 어느 날 꿈에 예수라는 분이 나타났고, 얼마 후 한 사람이 그를 찾아와 전도했다. 추명순은 이때 예수님을 영접하고 가까운 비인성결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군산중동성결교회 김용은 목사가 와서 부흥회를 인도했는데, 추명순은 부흥회를 통해 큰 은혜를 받았다.

▲고군산열도 섬들.

▲고군산열도 섬들.

무엇보다 그가 받은 은혜는 ‘전도의 은혜’였다. 인생의 기쁨도 목표도 없던 그에게, 예수는 새로운 기쁨이요 인생의 새로운 목표였다. 그는 남은 인생을 자기처럼 인생의 기쁨도 목표도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 전도하며 살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김용은 목사를 찾아가 심정을 고백했더니, 목사님이 말했다. “그럼 어디라도 갈 거예요?” 추명순은 “예, 어디든 가겠습니다” 대답했다. 그래서 간 곳이 지금의 고군산열도였다. 그때가 그의 나이 52세, 한국전쟁으로 한창 가난하던 1959년이었다.

고군산열도는 군산시 서남쪽 50km 해상에 위치하며 옥도면에 소속된 섬이다. 선유도를 비롯해 야미도, 신시도, 무녀도, 장자도, 대장도, 관리도, 방축도, 명도, 말도, 비안도, 어청도, 연도, 개야도 등 63개 섬이 있고, 그중 16개가 유인도이다.

▲고군산열도 섬들은 지금도 배로 움직여야 한다.

▲고군산열도 섬들은 지금도 배로 움직여야 한다.

새만금이 없던 시절 이 섬에 가려면 군산에서 페리호를 타고 세 시간 가량 가서 선유도에 내린 후, 돛단배를 타고 다른 섬으로 이동해야 했다. 페리호로만 대여섯 시간, 거리로는 방축도까지 40km(100리), 말도까지는 50km(125리)나 되는 먼 길을 추명순은 일일이 다니며 전도했다.

예나 지금이나 섬들은 미신으로 가득차 있다. 그 많은 미신들을 섬기는 사람들 속에 들어가 쫓겨나고 돌에 맞고 굶고 열병에 걸려도, 그는 지치지 않은 열정으로 전도했다. 전도해서 몇 사람을 얻으면 한 집을 정해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고군산열도를 지키는 목회자들을 차례로 찾았다.

▲고군산열도를 지키는 목회자들을 차례로 찾았다.

섬은 미신만 많은 것이 아니라 가난하기도 했다. 그는 전도뿐 아니라 구호에도 힘써, 김용은 목사를 통해 받은 구호품들(밀가루, 옥수수가루, 유유가루등)을 13개 섬에 나눠주며 전도했다. 지금 13개 섬에 남은 교회들은 모두 추명순의 떨어진 고무신에서 나온 것이었다.

나는 최완규 목사와 함께 섬에 있는 교회들을 하나씩 방문하기로 했다. 교회들은 크지 않고 작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사랑과 은혜로 넘쳐 있었다.

▲고군산열도를 지키는 목회자들을 차례로 찾았다.

▲고군산열도를 지키는 목회자들을 차례로 찾았다.

그 먼 길을 홀홀단신 여자의 몸으로 돛단배를 타고 섬에 들어가 마지막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밤늦게까지 부둣가를 서성이던 사람, 배가 없을 때는 섬에서 몇 나절을 기다리고 태풍이 오거나 풍랑이 심할 때는 섬의 굴에서 바위를 이불 삼아 잠자던 사람, 일생 못 배우고 남편에게 버림받았으나 예수님에게 사랑받고 기쁨으로 다시 인생을 시작한 사람, 다 떨어진 고무신에 다리가 퉁퉁 붓고 못 먹어서 항상 야위어 있던 사람. 섬들마다 세워진 교회는 평생 육신의 자녀없이 외롭게 살던 그가 영혼의 산고로 얻은 자랑스런 그의 영적 자녀였다.

목회자들도 한결같이 추 전도사를 닮아 있었다. 어떤 목회자는 36년, 또 다른 목회자도 36년, 어떤 목회자는 20년, 사람도 많지 않은 작은 섬에 그토록 오랫동안 젊음을 바쳐 목회한 것은 어머니 추명선의 정신 때문인가?

▲고군산열도를 지키는 목회자들을 차례로 찾았다.

▲고군산열도를 지키는 목회자들을 차례로 찾았다.

나만 아프리카 고생한 것 아냐
헌신하는 수많은 증인들 있어
그들 뒤 따르는 작은 사람일 뿐
멀리 가서 꽃씨를 심든지,
지금 사는 데서 꽃을 피우든지
인생, 꽃 피우기 위해 사는 것
꽃씨는 하나님께서 이미 주셔
선교, 하나님 보내신 어디서든
하늘의 꽃씨 심어 꽃 피우는 것

그렇다. 나만 혼자 아프리카에서 고생한 것이 아니었다. 세상에는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헌신하는 수많은 구름같은 증인이 있었다. 오늘 나는 그들의 뒤를 따르는 작은 한 사람일 뿐이다.

고군산열도를 나오면서, 열도에 핀 꽃들을 다시 보았다. 꽃들 중에서 특히 수국이 아름다웠다. 수수하지만 복스럽고 외롭지만 함께 피는 꽃, 어떤 환경에서나 물만 있으면 잘 자라는 생활력 강한 꽃을 보면서 나는 고난의 세파에서 꿎꿎이 핀 고군산도의 아름다운 꽃 추명순을 보았다.

▲고군산열도를 지키는 목회자들을 차례로 찾았다.

▲고군산열도를 지키는 목회자들을 차례로 찾았다.

그리고 안식년을 떠나면서 누군가 했던 한마디를 떠올렸다. “멀리 가서 꽃씨를 심든지, 지금 사는 데서 꽃을 피우든지(Go to sow the seed of flower or bloom flower right where you live)”. 그렇다. 인생은 꽃을 피우기 위해 산다. 꽃씨는 하나님께서 이미 주셨다.

선교는 하나님이 보낸 어디에서든 꽃을 피우는 것이다. 지금 내가 사는 곳이 하나님이 보낸 곳이 아니라면, 하나님이 보낸 곳으로 가서 꽃씨를 심어야 한다. 그러나 내가 사는 곳이 하나님이 보낸 곳이라고 믿는다면, 거기서 꽃을 피우면 된다. 선교는 어디에서든 보내진 곳에서 하늘의 꽃을 피우는 것이다.

▲고군산열도를 지키는 목회자들을 차례로 찾았다.

▲고군산열도를 지키는 목회자들을 차례로 찾았다.

멀리 가서 꽃씨를 심든지
지금 있는 곳에서 꽃을 피우자
꽃씨는 하나님이 주신 것
우리 안에는 이미 많은 꽃씨가 있다
그곳이 아프리카든 고군산열도든
당신이 태어난 곳이든 당신이 일하는 곳이든
보내진 곳에서 꽃을 피우자
우리가 심은 꽃이 화려한 글라디오스든 담백한 들국화든
한 해 동안 피는 아프리카의 탄타냐든 한여름에 피는 백일홍이든
우리가 뿌리면 하나님이 꽃피우고
눈물로 씨를 뿌리면 때가 되면 꽃은 핀다

▲고군산열도를 지키는 목회자들을 차례로 찾았다.

▲고군산열도를 지키는 목회자들을 차례로 찾았다.

고군산도열도에 눈물로 하늘의 씨를 뿌린
아름다운 꽃 추명순 님을 기억하며

▲고군산열도 섬들.

▲고군산열도 섬들.

이윤재 선교사

우간다 쿠미대학 신학부 학장
Grace Mission International 디렉터
분당 한신교회 전 담임

▲섬에는 수국이 피어 있다.

▲섬에는 수국이 피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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