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군산·광주·김제·영광… 호남 지역 첫 선교사들의 발자취를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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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재 선교사의 ‘아프리카에서 온 편지’ 안식 (5) 신앙의 뿌리

나와 한국교회 형성 신앙적 뿌리
말할 수 없는 선교사들 헌신 결과
안식년 맞아 발자취 따라 감사를

▲군산 전킨 선교사 묘지.
▲군산 전킨 선교사 묘지.

열매 없는 뿌리는 있어도, 뿌리 없는 열매는 없다. 영화 <뿌리>에서 알렉스 헤일리가 쿤다 킨데의 뿌리를 찾아 아프리카로 떠났듯, 우리도 우리의 뿌리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혈육의 뿌리와 함께 우리의 존재를 형성한 것이 신앙적 뿌리다. 선교사로 새로운 길을 출발하기 전까지, 나는 사실 선교사의 중요성을 몰랐다. 그들의 업적은 알았지만, 마음으로 감사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짧은 시간 선교사로 일하면서, 나를 형성한 신앙적 뿌리가 가난하고 척박한 땅에서 말할 수 없는 희생으로 수고해온 선교사들의 헌신의 결과임을 알았다. 그래서 안식년을 맞아 그들의 헌신의 발자취를 따라 작은 감사를 드리기로 했다.

때마침 만난 양국주 선교사는 나에게 책과 정보로 내가 가야 할 길을 안내했다. 그는 재미교포로 평생 한국교회 선교 역사를 연구해온 학자다. 나는 나의 신앙적 뿌리를 찾아 호남의 대표적인 도시, 전주, 군산, 그리고 광주를 방문하기로 했다.

▲전킨 드루 선교사 기념비.
▲전킨 드루 선교사 기념비.

전주: 역사적 중요성과 지리적 위치
다가동 신흥학교, 예수병원, 기전학교
호남 최초 선교사 전킨과 부인 레이번
레이놀즈, 서문교회에서 구약 첫 번역

첫 번째 방문지는 전주였다. 전주는 1895년 미국장로교 선교연합회가 전라도와 충청도를 미국 남장로교 선교 지역으로 결정할 때 부터 호남 지역의 중요한 선교 본부였다. 그것은 전주가 차지해온 역사적 중요성과 함께, 지리적 위치 때문이었다.

전주는 내가 자라온 곳이기 때문에 나 혼자 돌아보기로 했다. 나는 먼저 신흥학교, 예수병원, 기전학교가 있는 다가동으로 향했다. 기록에 의하면 예수병원은 1896년 2월 20일, 해리슨 (William Harrison)이 세웠고, 1897년 3월에 전주 지역 첫 학교인 신흥학교가 세워졌다.

호남 지역 최초 선교사인 전킨의 부인 매리 레이번은 1897년, 군산 볼드윈 여학교를 설립한 데다 1900년 전주기전학교도 설립했다. 어릴 때 그저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던 신흥학교, 예수병원이 오늘 따라 새로워 보였다.

아프리카에서 학교 하나를 세우는데 얼마나 많은 노고가 따르는지 아는가? 학교는 세우는 것도 어렵지만 운영·유지가 더 어렵다. 영어를 전혀 듣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어눌한 통역을 통해 교육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병원은 또 어떤가?

이번에 JW 성천상을 받은 유덕종 선교사를 에티오피아에서 만난 적이 있다. 그가 30년 전 우간다에 와서 베데스다 병원을 세우고 쿠미대학에 의대를 만들려고 했을 때 고생했던 체험담을 직접 들은 적이 있다. 오죽 힘들었으면 에티오피아로 갔겠는가? 예수병원은 120년 이상 호남 지역 환자들을 위해 얼마나 수고했을까?

▲군산 선교사관.
▲군산 선교사관.

예수병원을 지나 다가교를 지나자, 현대식 건물 서문교회가 보였다. 이 교회가 호남지역 최초의 교회다. 이 교회는 호남 최초 선교사 전킨(William Junkin)이 세우고 그가 초대 담임목사로 일했다.

어릴 때 무심코 지나갔던 교회 마당에 서서 한참 교회 지붕을 바라보았다. 교회를 세우는 것은 쉬운 일인가? 작년에 우간다에 두 교회를 세우면서 선교지에 교회를 세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나는 잘 안다.

이번에 처음 안 것은 이 교회에서 한국교회 선교 역사에서 중요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것은 선교사 레이놀즈(William Reynolds)가 1910년 4월 2일, 이 교회에서 한국교회사상 첫 번째로 구약 성경을 완역했다는 것이다. 그가 서문교회 2대 목사로 시무할 때였다.

1892년부터 1937년까지 44년을 한국에서 선교사로 섬긴 레이놀즈는 그후 평양신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강의하면서 한국 신학의 틀을 세우는 데 기여했다.

전주에서 자라면서도, 나는 이러한 빛나는 선교사들의 수고와 유산이 있는 줄을 몰랐다. 참으로 미안한 일이다. 서문교회 안으로 들어가 뒷자리에 앉아 보았다. 말없이 비취는 십자가의 불빛은 131년 동안(1893-2024) 비춰온 복음의 등불이 이 지역의 영혼들을 위해 희생과 헌신으로 비춰온 긴 역사를 보여 주었다.

그 복음의 빛에서 내가 학생 때 다닌 남문교회, 내가 첫 목회한 희년교회도 생겨나, 오늘의 내가 있었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주님, 전주에 선교사들을 통해 복음의 빛을 비춰 주셔서’.

군산: 1895년 레이놀즈·드루 선교사
1899년 12월 구암교회 설립으로 열매
선교사 7명 군산 도착해 팀 선교 펼쳐
추명선 선교사, 멜본딘, 영명학교 등

두 번째 방문지는 군산이었다. 군산은 군산중동교회 서종표 목사의 도움을 받았다. 그는 초대교회와 선교에 관심이 많아, 잊혀져 가는 교회의 역사를 남기기 위해 책도 쓰고 선교를 위한 기념사업도 활발하게 벌이고 있었다. 열정적인 그는 우리 일행을 초청해 삼겹살까지 대접했다. 추명선 전도사 이야기(‘고군산열도에 핀 꽃, 추명선 전도사’ 안식 3 참고)는 그를 통해 안 소중한 이야기다.

군산의 선교는 1895년 5월, 전라도가 남장로교 선교지로 지정된 후 레이놀즈와 드루 선교사가 군산에 도착하면서 시작됐다. 그리고 그 열매는 1899년 12월 21일, 군산 최초 교회인 구암교회가 생김으로써 맺혔다.

▲건축중인 군산 선교역사관.
▲건축중인 군산 선교역사관.

구암교회는 선교사 전킨의 집에서 시작됐고, 그 뒤 1906년 개복동 교회가 문을 열었다. 전킨(목사)과 드루(의사)는 팀 선교의 모델이었고, 그보다 먼저 있었던 팀 선교의 모델은 7인의 선교 선발대였다.

언더우드가 첫 번째 안식년을 맞아 미국으로 돌아가 한국 선교의 필요성을 역설하자, 그때 감동을 받고 선교를 결심한 7명의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이 군산에 왔다. 윌리암 전킨과 그의 아내 매리 레이번, 윌리암 레이놀즈와 그의 아내 팻시 볼링, 르위스 테이트와 그의 아내 마티 테이트, 그리고 신흥학교를 시작한 해리슨의 아내 리니 데이비스였다. 선교에 있어 팀 선교는 얼마나 중요한가? 효과적 선교를 위해서도 우리가 따라야 할 선교 정신이 아닌가?

경포교회 이예종 장로의 안내로 군산 지역 선교 현장을 방문했다. 먼저 멀리 서해 바다가 바라보이는 구암교회에 올랐다. 이곳은 호남 최초의 선교사 전킨의 발자취가 묻어 있는 곳이다.

전킨이 자기 집에서 전도한 몇 사람의 조선 사람들과 처음 예배를 시작했을 때, 오늘날의 군산이 한국에서 몇 번째 안 되는 많은 기독교인이 있는 도시가 될 줄 알았을까? 교회 뒤에는 선교사들의 무덤이 있었다. 전킨, 드루, 불, 해리슨 선교사 부부의 무덤이었다. 마당을 내려오자 군산선교역사관이 지어지고 있었다. 멜본딘, 영명학교도 선교사들이 남긴 흔적이었다.

선교 현장을 내려와 옛 군산항구로 향했다. 일제가 호남평야에서 난 쌀을 배로 실어간 수탈 현장이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역사의 풍파에도 불구하고 전킨으로 시작된 복음의 생수는 익산, 만경, 김제, 정읍으로 흘러 오늘의 교회들을 이루었을 것이다. 나는 군산 지역에서 헌신하신 선교사들께 감사하며, 다음 도시 광주로 향했다.

▲&lsquo;광주의 양화진&rsquo;으로 불릴 만한 광주 양림동 선교사 묘역.
▲‘광주의 양화진’으로 불릴 만한 광주 양림동 선교사 묘역.

광주: 선교사 45명 묻힌 호남신학교 묘지
포사이드 선교사의 한센병 환자 사랑,
소록도에 한센병자 수용소 건립으로

광주에 도착하기 전 광주 지역 초기 기독교를 알기 위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전남 지역을 잘 아는 암태교회 최장원 목사에게 물었다. 그가 주저없이 광주 호남신학교에 묻혀 있는 선교사의 묘지부터 가라고 말했다.

호남신학교 묻혀 있는 선교사 묘지를 찾았을 때는 한낮의 더위가 뜨겁게 내려쪼이고 있었다. 계단을 천천히 올라 묘지에 도착했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이 많은 무덤들이 광주 지역에서 선교한 선교사들의 무덤이라니. 모두 22명의 묘가 자리하고 있었고, 숫자로는 모두 합쳐 45명이었다.

무덤을 돌면서 찬찬히 한 사람 한 사람을 살폈다. 무덤 중에는 우리나라에서 한센병을 치료하기 위해 애쓴 오웬 선교사(Clement C.Owen), 대한간호협회와 한국 최초로 여신도회를 만든 서서평 선교사(E. Shepping), 4대가 한국에서 선교한 유진 벨 선교사(Eugene Bell)와 그의 아내가 묻혀 있었다. 22명의 어린 순교자들도 함께 묻혀 있었다.

▲광주 양림동 선교사 묘역 안내판.
▲광주 양림동 선교사 묘역 안내판.

이곳에 묻힌 선교사들은 모두 자기를 희생하며 목숨을 잃기까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며 약한 자, 병든 자, 가난하고 굶주린 자, 갇힌 자, 쫓겨난 자를 보살피며 섬김과 나눔의 삶을 살았을 것이다.

이들의 선교는 교회를 세우는 것은 물론, 목포에 정명(스트레퍼 선교사), 광주에 숭일, 수피아 학교(마가렛 불)을 세웠고, 특히 1909년 포사이드 선교사(W. Forsythe)로부터 시작된 한센병(당시 문둥병·나병) 환자에 대한 지속적 관심으로 1916년 조선총독부가 소록도에 한센병자 수용소를 설립하도록, 1937년 소록도에 3,800명의 환자들이 수용되도록, 그리고 그 뿌리에서 손양원 목사가 나오도록 하는 역사적 밑거름이 되게 했다.

포사이드 선교사는 1909년 최흥종과 여행하던 길에 한센병 여인이 새벽 길거리에 볏짚을 깔고 누워 있는 것을 보고, 털외투를 입히고 노새에 실은 뒤 자신이 마부가 되어 광주까지 20리 길을 걸었다.

▲광주 양림동 선교사 묘역으로 가는 길.
▲광주 양림동 선교사 묘역으로 가는 길.

그의 지극한 사랑에 감동한 최흥종은 회심하여 훗날 광주의 아버지가 되었고, 그의 뿌리에서 수많은 목회자, 독립운동가, 사회운동가가 나왔다. 오늘날 광주 정신은 단순히 저항 운동이 아니다. 그것의 뿌리는 약자, 눌린 자, 병든 자를 사랑한 성경적, 희생적 삶이다(이 점을 놓치면 광주 정신은 단순한 민중운동이 된다).

김제: 조덕삼 장로 이야기 금산교회
영광: 최다 순교지 염산교회·야월교회

전주에서 광주로 가는 사이에 김제와 영광에도 들렀다. 김제에서는 조덕삼 장로 이야기로 유명한 금산교회에, 그리고 영광에서는 우리나라 최다 순교지인 염산교회와 야월교회에 들렀다.

금산교회(옛날 이름 금구 팟정리교회) 이야기는 누가 진정한 지도자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한국교회 초기 이곳에서 장로 선거가 있었는데, 교회를 세운 조덕삼 장로는 떨어지고 그의 마부였던 이자익이 당선됐다고 한다. 그런데도 조덕삼은 기쁘게 이자익을 축하했고, 후에 그가 장로가 된 후 이자익을 평양신학교에 보내 목사가 되도록 했으며, 그가 목사가 된 후 그를 도와 교회를 섬겼다는 이야기다. 이 땅에 사는 모든 장로, 목사, 교회 직분자들은 가슴으로 이 이야기를 새기길 바란다.

▲광주 양림동 선교사 묘역에 묻힌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 명단.
▲광주 양림동 선교사 묘역에 묻힌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 명단.

염산교회(77명)와 야월교회(65명)는 6.25 당시 가장 많은 순교자를 냈다. 나도 모르게 세속적 가치로 오염된 사람은 부디 이번 여름에 이곳을 방문해, 다시 한 번 신앙을 새롭게 하기를 기도한다.

나는 호남 지역에서 자라오면서도 내 신앙의 뿌리가 무엇인지 잘 몰랐다. 그것은 미국 남장로교의 뿌리였다. 1895년부터 남장로교는 호남·충청을 기반으로 선교를 시작했고,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그 영향을 받았다. 남장로교회는 말하자면 조금 더 복음적이고, 교회중심적이고, 선교적인 교회였다. 그러나 그 선교는 교회 안에만 머물지 않고 약자, 눌린 자, 못 배운 자, 병든 자에 관심을 가졌던 전인적이며 사회구원적인 선교였다.

초기 한국 사회의 모든 학교, 병원, 독립운동, 사회운동은 교회의 자연스러운 복음 전파의 일부였다. 그 전통이 훗날 보수와 진보로 분열되면서 어떤 교회는 교회중심적 구령적 교회로, 어떤 교회는 사회변혁적 진보적 교회로 나뉘었다. 그러나 성경적 복음은 전인적 구원을 목표로 하며 그것은 마치 하나님안에 있는 사랑과 공의의 본성처럼 나뉘지 않는다.

짧은 시간 호남 지역에서 헌신한 선교사들의 삶을 돌아보면서 그들이 보여준 헌신적 삶과 빛나는 유산, 그리고 온전한 복음 정신에 깊히 감사드리며 남은 생애 더욱 선교에 매진하기를 다짐하며 기도했다.

▲유진 벨 선교사 묘역.
▲유진 벨 선교사 묘역.

주여,
선교사들이 묻힌 자리가
우리가 다시 시작하는 출발점이 되도록 도와 주소서
먼 길을 달려오면서 희미해진 우리의 길이
그들로 인해 다시 분명해지게 하시고
세상 풍파로 인해 식은 우리의 가슴이
여름날의 햇살처럼 다시 타오르게 하소서
그리하여
가난한 조선의 희망이었던 복음이
다시 이 나라와
열방의 희망이 되게 하소서
우리가 오늘 그들을 기억한 것처럼
먼 훗날 우리로 인해 복음을 만난 사람들이
우리를 기억하도록
우리의 남은 생이 복되게 하소서.

▲남장로교 선교사들의 당시 목표.
▲남장로교 선교사들의 당시 목표.

이윤재 선교사

우간다 쿠미대학 신학부 학장
Grace Mission International 디렉터
분당 한신교회 전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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