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명절… 인생 마지막 향하시는 93세 어머니 뵙고 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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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재 선교사의 ‘아프리카에서 온 편지’ 안식 (7) 늙어감에 대하여

이제 어린 아들 아닌 같이 늙어가는 친구
잘 살았으니, 아직도 살아 있으니 늙는 것
늙음 받아들이고 행복 누리면 오래 살아
추락 전 천천히 내려올 때 가장 아름다워

행복, 지난 추억과 오지 않을 미래에 없어
과거 후회보다 손자녀 더 많이 안아주고
인생 탓보다 찾아오는 자식들에 감사를
다른 사람들 돕는 노인들, 힘들지만 행복

기억 잃는다? 쓸데없는 것들만 잊어버려
오직 하나님 한 분만 기억하고 잘 잊어야
고통은 우리 행복 따라다니는 친구 같아
인생은 하루가 선물, 매 순간이 행복 기회

▲이윤재 선교사가 어머니를 뵙고 있는 모습.

▲이윤재 선교사가 어머니를 뵙고 있는 모습.

어머니,

지난 7월 안식년으로 귀국하여 네 번 요양원을 방문했죠. 그때마다 어머니가 부쩍 늙어간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몸은 늙어도 정신은 건강하시다 생각했는데, ‘지금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물었을 때 ‘아직 70이 안 되었어. 80인가?’라고 대답해서 저를 깜짝 놀라게 했죠(사실은 93세). 사람의 내일을 몰라 한 번이라도 더 내려가려고 애쓰는 동안에도, 어머니는 당신 인생의 마지막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내려가고 있었죠.

그 따뜻한 어머니의 손을 놓고 요양원을 떠나는 순간, 어머니의 마지막 한마디가 두고 두고 제 마음에 걸렸죠. ‘이 목사, 머리가 너무 희어. 물 좀 들여’. 누가 세상에 70 된 남자를 보고 머리가 희다고, 물 좀 들이라고 말할까요? 저도 이제 어머니의 어린 아들이 아니라, 같이 늙어가는 노년의 친구가 된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젊을 때 유달리 아름다우셨죠. 익산 부자 송씨 가문 막내딸로 태어난 어머니, 어쩌다 학교에 오시면 윤재 어머니냐고 사람들이 부러워했죠. 그 어머니에게 늙음은 한순간에 온 것이 아니며, 또 잘못 온 것도 아니죠. 지금까지 그래왔듯 세상을 배워가며 어떻게 살아갈지 선택해 가는 인생의 한 단계일 뿐이죠. 아무나 늙나요? 그만큼 잘 살았으니 늙고, 아직도 살아 있으니 늙어가는 거죠.

사람들은 젊은 것이 아름답다고 말하지만, 아름다운 것은 젊거나 늙은 것이 아니라 사람이겠죠. 누구나 젊음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간다 해도 그 견뎌내기 힘든 젊음의 고통과 싸워야 하니, 꼭 돌아가야 좋은 것은 아니죠.

그래도 오래 산 사람들 보면 자신의 늙음을 받아들이고 작은 기쁨 속에서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이지요.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변하는 게 아니라 더 자기다워지기 때문이죠.

사람은 추락하기 전, 아래를 향해 천천히 내려올 때가 가장 아름답다는 말이 있죠. 석양에 붉게 물든 낙조가 아름답듯, 인생의 끝자락도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기쁨이 있고 행복도 있죠.

그 힘든 인생고와의 싸움이 끝났으니 얼마나 마음이 편하겠어요? 힘들게 과거로 돌아가는 것보다, 차라리 앞으로 가는 것이 더 낫지 않겠어요?

행복은 우리 선택에 달렸으며, 그나마 지금 여기가 가장 아름답지 않은가요? 젊을 때 우리는 행복은 좇아가 붙잡는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러면서 많은 실수를 했고 그 실수 때문에 우리가 얻은 것도 많지만, 그래도 행복은 지나간 추억이나 오지 않을 미래에 있는 것 같지 않아요.

지금 이 순간 행복하지 않으면 어떻게 내일 행복하기를 바라겠어요? 지나간 과거를 후회하기보다 손자 손녀들을 더 많이 안아주고, 힘든 인생을 탓하기보다 찾아오는 자식들에게 더 많이 감사하다고 말하세요. 아이들도 지나간 일의 고통을 늘어놓는 할머니보다, 지난날 행복했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머니를 더 보고 싶어하지 않을까요?

힘든 가운데 더 행복한 노인들은 그래도 다른 사람을 돕는 노인들이래요. 우리가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하듯, 우리도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을 만큼 도와야 하죠. 사람은 누구나 외로운 것, 어머니가 외롭듯 같이 사는 할머니들도 외로우니, 시간만 나면 손 잡아주세요.

나이가 들수록 우리에게 두 손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한 손은 나를 위해 쓰고 다른 한 손으로는 다른 사람을 위해 쓰세요. 주머니에 항상 사탕을 넣고 다니고 만나는 사람에게 하나씩 주세요.

나이가 들수록 필요가 적어지니, 세상의 필요는 줄이고 하늘의 소망은 늘리세요. 젊을 때는 필요한 것을 찾아 동분서주했으나, 나이가 들면 그래도 가장 나이가 많은 하나님을 닮아가야 하지 않겠어요?

혹시 기억을 조금씩 잃는다 해도, 쓸데없는 것을 잊는 것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오직 하나님 한 분만 기억하고, 다른 모든 것들을 잘 잊는 것이 행복 아닌가요?

죽음은 삶의 적이 아니라 친구래요. 언젠가 우리 인생의 끝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의 삶이 더 소중한 것이지요. 또한 고통은 행복을 막아서는 장애물이 아니라, 우리의 행복을 따라 다니는 친구같은 것이지요.

혹시 남은 생애에 조금 고통이 남아있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도, 염려하지 마세요. 행복은 사람들이 나에게 무엇을 해주느냐에 달려 있지 않고, 사람들이 주는 고통 때문에 우리가 불행해지지 않아요.

언젠가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날, 인생은 하루 하루가 선물이었다는 것, 매 순간이 행복의 기회였다는 것, 삶은 외롭게 홀로 싸우는 전투가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선물이요 나를 든든히 받쳐주는 힘이었다는 것, 사랑하고 사랑받는다는 것은 지금의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라는 것,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누리게 한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였다고 꼭 말해주세요.

하나님이 부르신 그 날까지 이 기도를 잊지 마세요. “하나님이여 내가 늙어 백수가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을 장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 나를 버리지 마소서(시 71:18)”.

그리고 하나님 앞에 설 때까지 이 약속을 잊지 마세요.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안을 것이요 품을 것이요 구하여 내리라(사 46:4)”.

어머니
안녕히 계세요. 사랑합니다.

이윤재 선교사

우간다 쿠미대학 신학부 학장
Grace Mission International 디렉터
분당 한신교회 전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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