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 열쇠는 문해력이다! 39] 쉬운 큐티의 도구 (4) 공통점 찾기 ②
큐티, 하나님과 아름다운 관계
확인하는 게 아니라, 성경과 나
사이의 간극 줄여 나가는 작업
한나에만 몰입, 엘가나 무관심
성경 모든 등장인물들 ‘나’ 가능
악인도 가능함 인정, 큐티 전제
<원숭이 꽃신>은 원숭이가 오소리의 꼬임에 넘어가 그의 종이 된다는 내용이다. 오소리는 평화로운 원숭이를 꽃신으로 유혹한다. 우리에게 유혹을 이겨내지 않으면 무엇인가의 노예가 된다는 교훈을 주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 원숭이처럼 되지 말자는 다짐을 하게 된다.
하지만 오소리가 되지 말자는 교훈을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자신은 악한 일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고정관념이 있기 때문이다. 순진해 보이는 원숭이에 자신을 대입하는 이유다.
큐티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대개 이분법적으로 성경을 읽는다. 악인보다는 의인에 집중한다. 성경에 등장하는 악인을 자신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고정관념을 깨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큐티가 ‘내로남불’에 그칠 수 있다. 하지만 큐티는 하나님과 나의 ‘아름다운 관계’를 확인하는 게 아니다. 큐티는 성경 말씀과 나와의 간극을 줄이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예수님을 닮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또 성경 본문에서 자신의 여건이나 환경과 비슷한 등장인물에 집중하게 된다. 혹은 자신이 되기를 바라는 쪽에 집중한다. 쉽게 말하자면 ‘가재는 게 편이랬다’고, 자신과 비슷한 쪽에 마음이 가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사무엘상의 ‘한나’를 예로 들어 보자. 그녀는 자녀를 위한 기도의 본이 되는 인물이다. 통곡하며 기도하는 그녀의 모습은 너무도 간절했다. 엘리 제사장이 술에 취해 있지 말고 술을 끊으라고 말했을 정도다. 그런 한나의 마음에 우리는 쉽게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남편 엘가나에는 집중하지 않는다. 특히 여자 성도들의 경우가 그렇다. 한나를 사랑하며 돕던 그의 모습은 그냥 지나치게 된다. 하지만 공감은 나와 비슷한 환경 혹은 경험치에 맞장구치는 게 아니다. 인지적 공감을 해야 한다. 바로 역지사지를 말하는 것이다. 입장 바꿔 생각해 봐야 한다.
그렇다 해서 남성 성도들이 한나의 남편 엘가나에 잘 집중하는 것도 아니다. 한나의 절절한 기도만 눈에 들어오는 까닭이다. 바람직한 장면이기 때문이다. 성도라면 누구나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까닭이다.
하지만 경험치나 주어진 환경이 같은 사람에게만 공감해서는 안 된다. 물론 경험치나 주어진 환경도 ‘공통점 찾기’의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보다 큐티를 하며 성령님께 기도하며 말씀을 묵상해야 한다. 큐티는 수학문제 풀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고정관념을 깰 수 있을까? 자신도 악인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성경 본문을 큐티하는 전제이다. 그 어떤 등장인물도 ‘나’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난 시간에 그리스도인은 ‘언행일치의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 말씀인 성경과 내 일상의 공통점 찾기를 해야 한다. 그래야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의 삶이 변화하는 게 큐티의 목적이라면, 부정적인 부분을 오히려 큐티하는 사람이 더 눈여겨봐야 한다.
그러기 위해 큐티하는 성도가 해야 할 것은 ‘스트라이크존 넓히기’다. 스트라이크 존이 넓어지면 타자는 힘이 든다. 쳐내기 어려운 구석에 공이 들어와도 쳐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자신이 처리하기 어려운 공처럼, 큐티 본문이 어려워도 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 말씀이기 때문이다. 내게 쉬운 본문만 큐티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다음 시간에는 실제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다.
이석현 목사
블로그 읽고 쓴다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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