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평연 악법 반대 세미나 (2)
1. 살인은 고통 완화 수단 될 수 없어
2. 제거되지 않는 고통, 의미 물어야
3. 자결권, 환자 의사 제대로 반영 못해
4. 인간 생명종결권은 오직 하나님께
5. 미끄러운 경사면 논증 우려는 현실
진평연이 ‘학생인권법 & 안락사법’ 악법 반대 세미나를 20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매화홀에서 개최했다.
학생인권법의 문제점 발표에 이어, 이상원 명예교수(총신대)는 안락사법(조력존엄사법)의 문제점을 지적했으며, 장지영 교수(이대서울병원)가 토론했다.
이상원 교수는 ‘안락사가 허용돼선 안 되는 이유’에 대해 발제했다. 그는 “안락사는 환자 입장에서 자살, 의사의 입장에서 살인”이라며 “의사가 환자의 요청으로 직접 생명을 종결시킨다면 살인행위이고, 환자가 자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제공했다면 살인방조 또는 자살방조 행위가 된다. 자비사·존엄사·간접적 안락사·무의미한 진료 중단 등 다양한 용어가 있지만, 결국 안락사이고 이는 살인 또는 살인방조”라고 지적했다.
이상원 교수는 먼저 “살인은 고통 완화를 위한 수단이 될 수 없다”며 “고통을 제거하거나 제거가 불가능할 때 완화시키는 것은 의료행위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나, 그 고통의 제거가 ‘살인하지 말라’는 제6계명을 깨뜨리면서까지 시행돼선 안 된다. 고통의 제거라는 복리적 가치와 무고한 생명의 절대적 가치가 충돌할 때 윤리적 판단의 저울은 당연히 후자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 인간의 의술이 생명의 탄생을 돕는 과정에 개입할 수는 있지만, 죽어가는 과정에 개입해 생명 종결을 앞당기는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했다.
둘째로 “제거되지 않는 고통이 있을 때는 고통의 의미를 물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삶의 현실에서 고통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고통은 인간의 범죄 결과로 찾아온 형벌인 동시에, 타락한 세계에서 인간이 건강하고 바른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최선의 삶의 질서”라며 “지금은 그리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도 적절한 완화의학 처방으로 대부분의 통증 조절이 가능하다. 고통 해결을 위해 안락사를 요구해야 하는 상황은 극복되고 있다. 문제는 돈인데, 국가적 차원의 의료보험 체계를 강화시키는 것이 관건”이라고 전했다.
셋째로 “환자의 자결권은 환자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때가 많다”고 했다. 이에 대해 “환자에게 죽음의 자결권을 부여하려는 자결권 옹호론자들의 의도가 환자들에 대한 긍휼의 실천에 있고, 안락사를 시행하는 의사도 단순 이기주의에 의거한 행동은 아니”라며 “그러나 고통 속에서 자신의 생명을 종결시켜 달라는 환자의 호소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다는 증거일 수 있다. 이때 환자의 속마음은 사람들과의 접촉과 애정, 같이 있어 주는 것과 격려를 요청한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넷째로 “인간의 생명종결권은 오직 하나님만이 갖는다”고 했다. 이 교수는 “환자의 자결권 논증에 대한 가장 강력한 비판은 신학적 관점에서 나온다. 인간 생명의 주관권은 하나님에게 있고, 인간은 자신의 생명에 대해서도 청지기의 입장이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 신학적 확신은 자결권을 근원적으로 비판한다”며 “사회학적 관점에서만 봐도 인간의 삶이 복합적 사회구조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긴밀하게 연관돼 있고, 한 인간의 번영과 실패가 나 자신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으므로, 자기 생명에 대한 자결권이란 설득력이 없다”고 비판했다.
다섯째로 “미끄러운 경사면 논증의 우려는 현실”이라고 전했다. 그는 “안락사가 법적으로 허용되기 시작하면, 비슷한 경우의 환자 생명을 자의적으로 종결시키는 문호가 점점 넓어져 환자 인권이 일방적으로 침해당하고, 생명의 존엄성이 심각한 위기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며 “안락사 허용입법 지지자들은 환자의 자결권, 환자 가족들의 권익, 의료 재정의 효율적 이용 등을 보장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입장을 견지하면서 악용 우려는 그리 크지 않고, 추가 보완 입법을 통해 제어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이는 이론적 구성뿐 아니라 헴록협회(The Hemlock Society)나 독일·네덜란드 등에서 역사적으로 이미 현실화돼 나타났다는 사실을 무시한 경솔한 판단”이라고 했다.
이상원 교수는 “법안이 소위 ‘조력존엄사’라는 말로 우회해 표현한 행위는 정직하게 ‘의사에 의한 살인’이자 ‘자살 방조’다. 그럴듯한 포장으로 사람들을 혼란케 하는 이 명칭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며 “현행 ‘연명의료법’이 허용하는 ‘무의미한 진료의 중단’은 인간이 취한 조치가 환자의 생명을 종결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신체 상태가 환자의 생명을 종결하는 것이므로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으나, 제출된 법안의 소위 조력존엄사(안락사)는 인간이 자의적으로 생명을 종결시키는 행위이므로 윤리적으로 심각한 문제”라고 정리했다.
존엄사는 결코 존엄하지 않다
고통은 가치 없다? 나치 정책
선 넘으면 윤리 기준도 무너져
죽음 통해 말기암 환자 삶의 질
향상시킬 수 있다? 엄청난 모순
죽음 준비, 현재 잘 사는 교육
이어 ‘존엄사는 결코 존엄하지 않다’는 제목으로 토론에 나선 장지영 교수는 “웰빙(well-being)을 넘어 웰다잉(well-dying)이 삶의 질의 척도로 자리잡고 있다. 한 개인이 자신의 죽음을 존엄하게 맞이하는 것은 지향해야 할 바이나, 우려스러운 것은, 생명의 존엄성과 생명윤리에 대한 충분한 성찰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안락사가 ‘자기결정권’이란 이름으로 포장되고 있는 것”이라며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무의미해 보이는 고통을 끝내는 것은 타당하다’, ‘내 삶은 내가 결정할 수 있다’ 등 무제한의 자유를 허용하는 지극히 인본주의적 관점에서의 인권”이라고 지적했다.
장지영 교수는 “고통이 있는 삶은 가치 없는 삶이라는 인식의 극단은, 장애인, 정신질환자, 만성 질환자들을 ‘살 가치가 없는 생명(Lebensunwertes Leben)’으로 간주하여 말살한 나치의 정책과 맞닿아 있다”며 “죽을 권리는 우리에게 허용되지 않았다. 우리는 이러한 주장의 위험성을 명확히 인식하고, 절대 넘어서는 안 될 선을 철저히 지켜내야 한다. 이 선을 넘는 순간 윤리적 기준은 도미노처럼 무너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장 교수는 “일례로 네덜란드는 2001년 회복이 어려운 말기환자가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으로 본인이 희망하는 경우에 한해 안락사를 허용했으나, 2018년에는 말기가 아니더라도 정신적 고통까지 허용 범위에 포함시켰고, 2020년 중증치매까지 범위를 확장했으며, 2023년 12세 미만의 소아에게도 이를 허용하며 점점 시행 대상을 확대하고 있다”며 “이에 전체 사망자 중 안락사의 비율은 2003년 1.2%에서 2022년 5.1%로 증가 추세”라고 경악했다.
그는 “법안을 대표 발의한 안규백 의원은 ‘조력존엄사 제도는 단순한 생명 중단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 해방과 환자의 마지막 선택을 존중하는 인도적 접근으로, 이를 통해 말기환자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설명한다. 죽음을 통해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모순”이라며 “이는 말기 환자의 고통이 심하면 삶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가지고 조력자살하는 것이 존엄하다고 강요하는 것이다. 병상의 환자들에게는 간병비와 병원비, 의료 효율성 등의 문제로 조력자살로 유도당할 위험이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장 교수는 “말기 환자가 됐을 때의 자기결정권은 자살이 아닌 존엄한 생명을 잘 마무리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품위를 지키며 평안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죽음을 준비하고, 현재를 잘 살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이 필수적”이라며 “죽음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거나, 고독한 죽음을 맞을 때 사람은 극심한 불안을 경험하게 된다. 그렇기에 죽음에 임박한 이웃들을 보살피는 일에 더 많은 시간과 자원을 준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 “현대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 중 하나인 치매에 걸려 인지능력이 훼손되고 일상의 삶이 무너지더라도, 가족과 이웃들이 나를 돌보아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이를 위해 간병 부담 완화를 위한 시스템 조성과 의료비 절감, 호스피스·완화의료 시설 확충과 돌봄 인력 확보, 고통을 기꺼이 분담하고자 하는 성숙한 시민사회 의식이 필수적”이라며 “조력존엄사는 회복 불가능한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게 아니라, 문제를 제거하는 가장 편하고 저렴한 대책에 불가하다”고 강조했다.